해리 혹은 순실이 누구인지 평소 자신의 신념이 무엇인지 우리는 신경 쓰며 살지 않는다. 자신이 관계되기 전까진. 살인 사건의 문제 해결보다 시체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 말로우의 선택에 나는 공감했다. 히치콕은 인간의 이런 특징을 잘 잡아낸다. 《이창》에서는 주인공이 다리를 다쳐 움직이기 힘든 사진작가이기에 가능한 풍경들을 보여 줬잖은가.
치콕 《해리의 소동》은 인간의 부조리, 양심, 인간애 등등을 블랙코미디로 보여 준다. 시체와 무의미한 무덤 파기는 무덤덤하게 표현되는 반면, 버몬트의 멋진 가을 풍경과 클래시컬한 음악은 영화를 풍성하게 한다. 히치콕 타이틀이 무색하게 망작으로 평가되긴 했지만.

 

 

 

 


미셸 우엘벡과 조르주 페렉의 세태 묘사는 어딘지 비슷했다. 심리와 대사 가득한 프랑스 영화들의 특징처럼. 최근 한국 영화들이 조폭과 비리와 치정과 애국 4가지 키워드만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영악한 제재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에겐 성향 문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 그토록 경멸했지만 러시아 문학 자장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겉과 다르게 애증이었을지도. 부유층의 삶을 누리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망명의 삶을 살아야 했고 아버지가 극우파 러시아인에게 살해까지 당했으니 미워할 수밖에. 무위의 선은 있지만 당위가 없는 미움이 있던가.


˝192×년 4월 1일(언젠가 한 외국 비평가는 전체 독일 소설을 위시해 많은 소설들이 날짜로 시작하는 데, 오직 러시아 작가들만 ㅡ 우리 문학 본연의 정직함으로 인해 ㅡ 마지막 숫자까지는 쓰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구름이 자욱하나 환하게 밝은 어느 한낮, 4시 즈음에 베를린 서부 지역의 타넨베르크 거리 7번지 근방에 아주 길고 샛노란 이삿짐 트럭이 멈춰 섰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재능》 첫 문장

˝세상에, 나는 이 모든 것 ㅡ 상점, 유리창 너머의 물건들, 상품의 둔탁한 얼굴, 그리고 특히 거래 의식, 느끼한 인사치레의 교환, 전과 후 ㅡ 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소박한 가격의 낮게 드리운 속눈썹......, 할인의 고상함......, 상업 광고의 인류애...... 이 모든 것은 선의 역겨운 모방으로, 선량한 이들을 교묘하게 유인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알렉산드라 야코블레브나가 내게 고백한 바에 의하면, 단골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면 정직함의 포도주, 상호 호의라는 달콤함에 취하는 독특한 세계에 정신적으로 전이되어, 상인의 불그스레한 미소에 빛나는 황홀한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들어간 상점의 종류는 구석 위 탁자 위에 전화와 전화번호부, 수선화가 꽂힌 꽃병, 커다란 재떨이가 놓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규정될 수 있었다. 그가 즐겨 피우는 러시아산 필터가 있는 궐련은 거기 없어서, 담배 가게 주인의 자개단추가 달린 얼룩덜룩한 조끼나 호박 빛깔의 대머리만 아니었다면 그는 빈손으로 나왔으리라. 그렇다, 내게 억지로 맡겨진 상품으로 인한 지속적인 초과 지출의 은밀한 보상 형태로 나는 자연으로부터 평생에 걸쳐 뭔가를 받으리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재능》


위 문장은 물질 만능주의를 다룬 조르주 페렉 《사물들》 서술과 닮은 듯 달랐다. 조르주 페렉의 인물과 문장들에서는 무기력한 도취가 느껴졌다면 나보코프의 그것에서는 지긋지긋해하는 증오의 냄새가 가득했다. 각각의 개성이자 재능.


오늘 국회에서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 퇴진 운동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하는 걸 봤다.
나보코프의 저 문장을 변용해 말하면, 우리에게 억지로 맡겨진 대통령으로 인한 지속적인 초과 지출과 피해의 확실한 보상 형태로 우리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다. 확실하면서도 고작이라는 생각이 드는 맥빠지는 어떤 답안이다. 하나의 답은 무수한 답 중 하나일 뿐이고, 답과 해결 사이에는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히치콕 영화 속 평범한 마을에서와 달리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슨 신념으로 사는지 내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이 글의 첫 문장과 뒤 문장의 모순 상태처럼 계속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 나는 증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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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5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5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6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소년 2016-11-16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해리 혹은 순실이 누구인지 평소 자신의 신념이 무엇인지 우리는 신경쓰며 살지 않는다. 자신이 관계되기 전까진.”


“ 히치콕 영화 속 평범한 마을에서와 달리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내가 누구인지 무슨 신념으로 사는지 내내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이 글의 첫 문장과 뒷 문장의 모순 상태처럼 계속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 나는 증오스럽다.”



매우 공감합니다..^^

최순실 비리 -> 한국 경제에 손해 -> 내 세금.. 내 돈... 내 미래


이번 같은 경우... 보편적인 공감이 가능한 문제죠...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니까요..


어느 곳이나 방관과 외면이 존재하지요.. 그러다가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 싶으면 그 때 서야 일어납니다.. 역사의 모든 현장에서 비슷했죠.. 식민지.. 전쟁.. 홀로코스트.. 용공조작.. 혁명.. 처음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 몇 명 잡혀가고 죽임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외면했습니다.. 그러다가 학살이 일어납니다.... 학살 또한 나와 관련 없으면 침묵합니다.. 그러다가.. 그 범위가 확대되어 자신에게 옵니다.. 그 때서야.. 혁명의 깃발을 들어 올리죠..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 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AgalmA 2016-11-17 16:10   좋아요 3 | URL
촛불집회 초기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 때도 시청 앞에 줄기차게 갔었는데, 무력감과 함께 피로감이 상당했어요. 많은 분들이 그러 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일도 사람들의 피로감이 무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요. 죄책감도 피로감으로 변질되었던 게 아닌가 싶고요.
지금이야 정유라 건부터 해서 교육, 경제, 정치 뭐 하나 최순실 일가와 안 엮인 게 없으니 모두가 분개해 일어나게 되었지만, 이 일도 장기화 될 때 어찌 될 지....

커피소년 2016-11-18 08: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아고.. 공감 100% 좋은 글 감사드려요.. 특히.. 마지막 문장이요..ㅎㅎㅎㅎ

[그장소] 2016-11-17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다리를 다친 이창의 주인공들 인 까닭일까... 그러면서 각각 맡은 역은 다르게 소화하는 ! ^^

AgalmA 2016-11-17 23:01   좋아요 2 | URL
플래시 터뜨리며 소리지르는 걸로 범인을 위협할 수밖에 없던 주인공처럼 우리도 딱 그 짝입니다. 다들 역할 잘 소화하고 있는 건지...악당들은 어디서든 참 잘 하고 있는 듯;

[그장소] 2016-11-17 23:09   좋아요 2 | URL
음음, 악당들은 참 잘한다는 말에 .. 한숨 나지만 .. 맞네요 .. 정말 !^^;;
그들에겐 기준이랄게 딱히 없어서 ..한 방향 시스템이 아니니까 그럴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자기좋은 쪽으로 어떻게든 유리하게 끌고가려고하니까요 ..

AgalmA 2016-11-17 23:29   좋아요 2 | URL
저녁에 어머니랑 통화하며 서로 탓~ 저 인간들처럼 어머니도 좀 사기치는 기술도 있고 그랬음 저도 배우고 그랬을 거잖아요! 내가 안 되면 너라도 좀 잘해야지! 하며 서로 실실 웃으며 서로 사기는 못 치고 당하기만 한다고 비웃어줌-ㄱ-;;;

[그장소] 2016-11-17 23:31   좋아요 2 | URL
이걸 웃어요 ..말아요? 못났네~ 못났어 ! 근데 그게 좋은거라는 걸 아니 .. ㅎㅎㅎ
우리가 무한도전처럼 평균 미달자면서도 많은 애정을 받는 위치까지 가려면 진짜 ..도배 잘하는 기술이라도 ( 자격증?) 있어야 지 ... ( 응?) 푸흣~!! ( 우리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죠~^^ㅋ)

AgalmA 2016-11-17 23:43   좋아요 3 | URL
웃어요, 말아요 여기 또 있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군밤 알밤 타령~
http://www.dzgol.net/board_news/27403454

<jtbc 뉴스 원문>
[기자]
두 번째 키워드입니다. < 수능에 나온다면 >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수능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고전 작품을 고전 인용해 야당을 비판했는데요. 먼저 들어보시죠.

[이정현 대표/새누리당 : 고전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군밤을 바위에다가 심어서 알밤을 따먹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실현 가능성이 있다. 정말 군밤에서 싹이 터가지고 알밤을 따먹을 걸 기대를 하지 도대체 (야당) 이 사람들의 말을 어디서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 겁니까.]

그런데 저 말이 맥락을 잘못 인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앵커]
아마 이정현 대표 입장에선 야당이 요구조건을 계속 바꾸니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얘기한 것 같은데, 고전 인용은 그 때문에 한 거잖아요.

[기자]
그런 것 같아 보이는데요. 일단 이정현 대표가 인용한 고전은 고려가요 ‘정석가‘의 일부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삭삭기 셰몰애…‘ 이렇게 시작하는 건데 뜻이 뭐냐면 ˝사각사각 가는 모래 벼랑에 구운 밤 닷 되를 심고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만 유덕하신 님 여의고 싶다˝는 뜻인데요.

좋은 땅도 아닌 모래땅에 생밤도 아닌 구운 밤을 심어봐야 싹이 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하고 이만큼 이별하기 싫다는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문학 작품으로 우리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결국 이정현 대표는 ‘영원한 사랑‘을 강조한 구절을 야당을 비판하는 데 썼다는 지적입니다.

[앵커]
‘정석가‘요? 저는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하여간 이성대 기자는 이런 것까지 공부해야 될 것 같군요. 그럼 어떤 게 이 상황에 적절할까요?

[기자]
만약 이정현 대표가 의도한 대로 야당이 자꾸 입장을 바꾸고 거짓말만 한다, 이런 식의 비판을 하고 싶다면 ‘정석가‘가 아니라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안믿는다˝ ˝외손자가 제사 지내준다는 말을 믿으라˝는 식의 표현이 더 정확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가뜩이나 오늘 수능시험 국어가 어려웠다는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정치권의 이런 사례들 때문에 수험생들이 앞으로 이런 사랑을 노래하는 작품을 남을 비판할 때 쓰는 거로 혼동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분명히 나옵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다!


친구가 사무실로 꽃배달. 돈 아깝게 왜 이랬냐고(속으로 이 돈이면 책이 몇....) 구박하자 친구ㅠㅠ
하지만 사나웠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긴 했다.
박근혜 하야 촉구 그림이라도 그려야 되나 했다. 모델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아서ㅜㅜ 하아...
하야...하야...




요즘 서재에서 너무 주절거리고 있는 거 같아 이 글 이후로 자중하려고요.
스트레스는 공부로 풀자!


그리고 곧 갈등...
💖Sigur Ros💕

https://youtu.be/rTDzh9hi6h0
Sigur Ros - Samskey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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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6-11-04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보다 하야 좋네요^^ㅎ 꽃이 아주 이쁩니다. 하야는 그보다 더 이쁠까요ㅎ?

AgalmA 2016-11-05 02:56   좋아요 2 | URL
하야하시면 빚을 내서라도 꽃마차 태워드릴 텐데 말이죠ㅎ;;

고양이라디오 2016-11-07 12:2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꽃마차 만드는데 돈 보태겠습니다. 노아의 방주급으로 만들어서 부정부패세력 전부 싸잡아서 보내버리고 싶네요ㅎ

책읽는나무 2016-11-04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무슨 날일까요?
한아름 품에 안길 꽃선물을??^^
혹시 그날인가요?
그렇다면 저두 축하드립니다

꽃을 보니 정말 마음이 절로 풀리군요!!
마음을 풀어야만 하는데 뉴스만 보면 배가 왜그리 살살~~아픈지ㅜㅜ
저도 매번 남의 서재 들어가 댓글에다가 분노를 표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앉아서 대통령 욕하고 한숨짓기만 며칠~~~~문득 내가 왜 이러나??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자제하려구요ㅋㅋ
다음주말엔 울동네에서도 궐기대회 한다면 한 번 나가볼까!!!생각중이에요
거기가서 분노 표출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제하면서 정말 공부를 좀 해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무작정 흥분만 해서도 안될 것같더라구요ㅜㅜ

AgalmA 2016-11-05 02:55   좋아요 1 | URL
지나가긴 했는데 생각하신 그 날이 맞구요^^; 서로 시간이 잘 안 맞아서 저렇게...
꽃을 보니 맘이 좀 풀려서 서재 이웃분들도 조금 기분전환이 되지 않을까 싶어 올려 봤습니다. 자랑이나 그런 건 아니고요^^; 축하 감사드립니다.
서재에서도 다들 책읽기 집중 안 된다고 성토 많이 하시죠... 매일매일 뉴스가 터지니 관심을 안 기울일 수도 없고... 광화문에만 몰릴 게 아니라 곳곳에서 국민의 뜻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야 정도 되어야지 다른 걸로는 빠른 수습이 어려울 거 같아요. 이 정권은 정말 한시도 국민을 편하게 하질 않으니...

북다이제스터 2016-11-04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것을 설명해 주세요. ㅎㅎ ㅋㅋ

AgalmA 2016-11-05 02:56   좋아요 1 | URL
그 분이 저보다 더 많은 걸 설명해 주셔야 할 거 같아요ㅎ 하루가 멀다 하고 시끄러우니 도통 집중이 안 되어서 이거야 원;;

2016-11-06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11-1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뭘 또 자중을 , 그런거 하지말라고! ^^

AgalmA 2016-11-17 22:58   좋아요 1 | URL
잘 나타나시지도 않으면서 이럴 땐 꼭 참견하시더라ㅎㅎ! 오랜만이네요. 그장소~ 그참견~yo~

[그장소] 2016-11-17 23:1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게요! 아니 도배를 하는것도 아님서 ..뭘 자중씩이나 .. ㅎㅎㅎ 도배부터 하고 말해요!^^ ㅋㅋㅋ

AgalmA 2016-11-17 23:13   좋아요 1 | URL
도배부터 배우래~우앙ㅜㅁㅜ; 나는 좀 하는 줄 알았는데ㅋㅋ;;

[그장소] 2016-11-17 23:3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왜 내 눈 앞에 나타나~ 🎶🎵
( 댓글도배를하고~)^^ㅋ


AgalmA 2016-11-17 23:46   좋아요 1 | URL
숨겨왔던 나의🎶~~도배질의 불을 지핀 그장소~

[그장소] 2016-11-17 23:5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렇게 우린 프로댓글러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ㅋㅎ
 

자신의 삶이 추악할수록, 사람은 그 삶에 매달린다. 그때 삶은 모든 순간들에 대한 항의며 복수다.
오노레 드 발자크

˝간호사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근데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살다 보니, 파출부 일을 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적절한 대답거리를 찾느라 머리를 쥐어짰다. 그 순간 내가 셸부르의 집세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하는 걸까? 결국 내가 택한 대답은 ˝아, 예......˝였다. 이 말 속에 나는 그 어떤 삶에 대한 이해를 담고자 했다. 그 대답이면 족했던지, 그녀는 문쪽으로 걸어갔다.
미셸 우엘벡 《플랫폼》


출근길에 이 책을 가지고 나오길 잘했다 생각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검고 작은 물체가 내 커피컵 앞으로 다가왔다. 제법 큰 파리였다. 어디서 사고를 당했던지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 난간 모서리에서 주춤하더니 픽 떨어져 사라졌다. 나는 실소했고 파리에겐 날개가 있으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설마 그게 마지막이었다면 미안해서 어쩌지. 또 다른 소리가 들려 돌아봤다. 비닐 하나가 바람결에 바닥을 기어 다니며 내는 소리였다. 내 작은 선생님들, 배우들. 울리고 웃기는 재주는 그들보다 못하지만 사람치고 나는 조용한 편 아닌가 생각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다른 생물들처럼 대부분의 사람도 조용히 제 삶을 산다.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으니 돈 같은 건 없고 모래 같은 게 가득했다. 올해 처음 입은 옷이었다. 그것은 내가 손대는 모든 것을 버석거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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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6-11-04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랫폼을 읽었고 심지어 우엘벡을 좋아하지만 저런 문장은 기억에 없어요. 좌절ㅠㅠ;;;

AgalmA 2016-11-04 02:36   좋아요 0 | URL
삶에 대한 이해를 담고자 했다니... 전체 서술은 멋지지만 우엘벡스럽지 않아! 하며 읽어나가다 보니 곧 우엘벡스러움이 나와 그럼 그렇지 하고 읽고 있습니다ㅎ;;
저도 다른 분 우엘벡 리뷰에서 인용 볼 때 나도 읽었는데 저런 멋진 문장 왜 기억에 없지 좌절합니다^^;;

moonnight 2016-11-0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마치 시와 같은 제목이에요@_@;

AgalmA 2016-11-04 02:35   좋아요 0 | URL
제가 소설보다 시를 더 좋아하긴 합니다만 의도한 바는 아닙니다~ 시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우엘벡이 시로 문학 시작한 거 치곤 소설이 시적이지 않은 건 의외이지 않나요? 우엘벡 시가 저는 참 궁금하더라는~

2016-11-04 0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4 0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4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4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하는 게 아니라 백전불태하는 거라 말했다. 나는 마치 이겨본 적이 있는 것처럼. 저녁 내내 내 곁을 맴돌며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본새로 보아 고민이 있는가 보다 했다. 나는 마치 고민이 없는 것처럼. 아니, 나도 있어서 알아본다고 해야 하나. 어제도 울고 싶었고 오늘도 울고 싶었고 내일도 울고 싶은 나이니,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게 하필 나였다. 고민 상담을 해주는 건 나도 괴로운 일이다. 상대에게 이입해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며 가장 최선의 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부담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을 또 어찌 맞아야 할지 그의 참담함과 고심이 자꾸 밀려와 한밤의 술자리를 나는 거절하지 못 했다. 안면을 튼 사람이라고 친절히 맞던 종업원은 손님 응대에 대한 충고를 받자 안색이 바뀌었다. 나는 일행의 그 충고가 나빴던 점에 대해 또 충고했다. 이 지적질의 퍼레이드는 끝이 나지 않겠지. 아무리 사람이 적은 직장을 다녀도 이런 피곤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누구는 붙잡고 누구는 내보내야 하리라.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고 저 사람은 그게 아니었다 등등.... 을 말하자 상대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본다. 내가 최순실이길 바라는 사람, 나는 수갑 차는 시늉을 해 보였다. 상대는 그래도 수십억 아니 수 억이라도 챙겨 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말했다... 다들 제 삶이 답답해 미치겠지.... 이 땅에는 최순실같이 용한 점쟁이를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남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제 의지를 믿고 살았던 사람이었는데도 사람 사이에서 삶이 잘 풀리지 않으니 그리된다, 사람은. 그래서 그런 자가 권좌에 올랐다. 히틀러가 우연이 아니었듯.


저녁에 생일 케익을 준비해줘 놓고는 취중에 꽃다발까지 사주겠다는 걸 말리며 택시로 향했다. 지방 택시와 서울 택시가 섞여 있어 우리는 택시 고르기마저 어설펐다. 서울 택시가 슬금 다가와 사람들이 꼭 지방 택시를 잡는다며 타박했다. 사장이 만원 몇 장을 택시 기사에게 던지고는 도망갔다. 표현에 서툴고 도움받는 것에 서툴고 우리는 구석구석 서툰데 어른이라 불린다. 잘하는 것 없이 어른이어야 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택시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택시 기사가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은 걸 나는 묵인했다. 하루 종일 내내 무언갈 따져야 하는 게 삶이라니.... 매일매일 삶에 무엇이든 지불하고 있는 기분.


나는 시원하게 욕할 줄 아는 재주가 없다. 욕 대신 담배를 핀다. 그래서 뭐. 언제 내가 좋은 사람 이랬나.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목이 마르다. 갈증이 가시지 않아.


또 졸립다. 책 한 줄 못 보고 오늘도 이렇게 또 간다. 뭐가? 오늘이. 오늘이 뭔데?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행복이 뭔데?
당신이 제일 잘 하는 게 뭔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자기가 부족한 것만 생각했지 제일 잘 하는 게 뭔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상했다. 자신이 잘 하는 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 그걸 일로 가지려는 것이고? 나야말로 당황했다. 내가 소설 배울 때 얘기를 했다. 정의니 전쟁이니 큰 얘기로 떠드는 게 아니라 밥숟가락 하나 겨우 얘기하는 거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얘기부터 하는 거라고. 소설은,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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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11-0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 저것 글 보다가 이 글이 무플이라 여기에 댓글 씁니다.
볼 게 많아 좋은 아갈마 님의 서재.
나는 언제 이렇게 해 보나...(혼잣말)ㅋ

AgalmA 2016-11-05 13:39   좋아요 0 | URL
ㅎ 무플인 것도 고독해보이고 좋잖아요ㅎ
왜요. 제가 pek0501님 글 처음 읽었을 때 오래 품고 이것저것 연결해 생각 풀어가시는 분이구나 인상적으로 생각했었는데요?

오쌩 2016-11-16 0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글 좋네요. 일상의 이야기.책애기만 쓸 필요는 없죠.
아갈마님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AgalmA 2016-11-17 16:14   좋아요 0 | URL
책 얘기가 아닌 일상사를 쓰면 눈치가 좀 많이 보여서요; 여기도 공적인 장소니까.
인사 챙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 만에 뵈니 더 반갑네요.
날이 쌀쌀한데 건강 잘 살피시길.
 

요 며칠 이 곡을 한참 들었다. Pat Metheny - Come and See




 

팻 매시니 카소 기타 소리는 들을 때마다 아찔할 정도로 좋다. 옆 얼굴과 앞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는 피카소 그림처럼 하프와 기타가 합체된 듯한 소리. 공연장에서 실제 그가 피카소 기타 치는 걸 보면 르페우스로 보인다! 줄무늬나 후드 티셔츠 말고 고대 그리스 복장으로 나타나셔야죠!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 철학의 씨줄과 날줄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는 리안 마리아스 문장도 피카소 기타 소리 못지않다.

˝종교는 인간에 의해 수용되고 신에 의해 무상으로 주어진, 하나의 확실성이다.˝

가톨릭 철학자로서의 견해가 뚜렷하지만 재련된 도끼로 찍듯 체계화에 단련된 문장이라 무신론자라 해도 가벼이 지나칠 수 없다.

˝철학은 항상 자신의 확실성의 근거를 갱신한다˝

˝철학자는 이성의 고안자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입법자다˝



 

동양은 왜 합리적 논변을 구성하지 않았는지 깊이 들어가지 않고 서양 사상의 뛰어난 차이점이라 간주하며 희랍철학 분석으로 들어가는 건 좀 아쉽다. 서양인의 당연한 한계일까. 철학의 역사가 철학이란 입장에서 마리아스에게 동양 사상은 그의 역사가 아니니까.


11월 1일부터 집앞 재활용 쓰레기 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하자 오늘 골목 곳곳에 산더미로 쌓여 있는 그것들을 봤다. 마리아스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을 인용하며 일상 사물을 통해 인간이 가지게 된 경이(驚異)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관조의 시간이 희박해진 현대에서 사물은 경이보다 쓰레기에 더 가까워졌다.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인간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벤야민의 아우라도,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도,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도 논의 이상의 위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리아스가 현대 철학을 근대 철학 단원에 포함한 것에 자못 수긍되기도 한다. ˝귀결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영역˝.... 죽음으로 마감되기 전까지 나는 나로 귀결되지 못한다. 그 처리도 내 손으로 할 수 없다! 오로지 현재 속에서만 서성대며 서로를 딱하게 생각하며 ˝이게 나예요˝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나는 나의 방부제, 당신은 당신의 방부제이다. 워워, 너무 시니컬해졌어.


더 읽고 싶은데, 더 생각하고 싶은데 졸려서 너무 슬프다.
내 몸으로 갈 수 있는 하루가 너무 짧다.
Come and See
Sleep and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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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10-31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팻 메스니 좋아해요ㅠ
키스자렛두요~~

AgalmA 2016-11-01 07:50   좋아요 1 | URL
^^ clavis님이랑 음악 좋아요♥ 하이파이브하는 거 좋네요^^

고양이라디오 2016-11-04 1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음악과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오늘은 Agalma님의 서재에서 조용히 음악들으면서 책구경하면서 놀다가겠습니다ㅎㅎㅎ

come and see 하겠습니다ㅎ

AgalmA 2016-11-04 10:06   좋아요 1 | URL
고양이라디오님 문화생활에 기여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서재시스템 자체가 스터디그룹 같기도 하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