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시민이 되다 

일주일 넘는 강행군으로 녹초 상태였다. 잔업을 집에 가져 왔으나 책상과 의자가 지긋지긋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자고 일어나야지 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사달이 나는 걸 늘 겪었으면서.

다시 눈을 뜨게 된 건 고성 때문이었다.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였다. 나는 또, 하고 생각했다. 사람의 인지능력은 참 신기하지.

이곳에 이사 올 땐 언덕 끝 외진 곳이라 조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집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괴성과 싸움과 실랑이를 듣고 봐야 했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 이 동네가 유독 그런 것인지 점점 가늠하기 어려웠다. 집 앞은 구석이면서 제법 넓어 쓰레기 수거차, 레미콘 차량들조차 공회전을 하며 대기하는 일도 잦았다. 도서관 5분 거리 외에 이 집의 장점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 너무 힘들었으므로 누군가 나가 봐 주길 바랐다. 마침 옆집이 대문을 열고 나가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해 주겠거니 하며 다시 잠들었다. 비명 소리가 1분 이내 내 의식에서 사라졌다.

 

 [*] 키티 제노비스 사건(Murder of Kitty Genovese)1964313일 뉴욕 주 퀸스에서 캐서린(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에게 강간살해당한 사건으로, 방관자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위키백과 : https://ko.wikipedia.org/wiki/%ED%82%A4%ED%8B%B0_%EC%A0%9C%EB%85%B8%EB%B9%84%EC%8A%A4_%EC%82%AC%EA%B1%B4

 

 ※ boooo님이 <한국 스켑틱 2015 vol. 2>를 보고 이 사건이 기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한 글이 생각났다.

 http://blog.aladin.co.kr/764863113/7607878

 

 

 

 

 

 

 

§§ 마봉춘 기자가 나타나다

역시 사달이 났다. 연신 시계를 봐가며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하고 있었다. 아래층부터 또각또각 구두소리와 함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구두소리가 낯설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신고 다니기엔 너무 굽 높은 구두소리였다. 어쨌거나 나는 매우 바쁘오. 제발 날 귀찮게 하지 마쇼! 오지마, 오지마…… 속으로 중얼대며 책상에서 안절부절이었다. 스케줄 펑크내서 죄송하다고 언제 전화로 알려야 하나 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시계를 또 봤다.

. . .

(올 것이 왔군. 다 알면서) 누구세요?

마봉춘 기자입니다.

(의외의 답. 요즘 전도(傳道) 멘트가 색달라진 건가;) 네?

마봉춘에서 나왔는데, 간밤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혹 아시는 것 없나요?

(아, 어제의 비명소리가 …….)

취재를 나올 정도의 사건이었다면 내가 더 묻고 싶었다. 시계를 보았고 세수도 못한 몰골로 7센티 이상의 구두를 신은 마봉춘 기자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왜 하필 오늘! 모든 불운이 다 닥친 것인가! 물론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10시까지 밥도 먹지 못하고 책상에 코를 박고 있어야 하는 상황을 계속 겪는다.

나는 대문 손잡이를 잡은 채 마봉춘 기자를 정식으로 만날 기회를, 사건의 의문을 버렸다.

열린 창 너머 또각거리는 마봉춘 기자의 동태가 전해졌다. 낭랑한 목소리로 오가는 주민들을 붙잡으며 어제의 사건 소식을 묻고 있었다. 일이 잘 진척되지 않는지 푸념소리가 들렸고 조금 후 사라졌다.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곧 튀어나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봉춘에 복직하게 된 이상호 기자는 잘 지내고 있을까. 징계 처분 외에 무엇이 더 기다리고 있을까. 

광화문에서 이상호 Go발 뉴스 인터뷰 하던 때가 아주 오래 전 일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정원이 제일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 또 밤

하루 종일 복기한 어제의 사건을 급히 검색해봤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망사고는 아니었다.

요 며칠 계속 프로파일러 생각을 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간밤의 지구대에 보고된 사건 사고 중 범죄성이 짙은 사건을 골라낸다고 한다. 트라우마 때문에 잦은 이직률에 자살까지 한다는 직업의 특수성을 전하는 전직 프로파일러는 결혼과 대인관계를 포기하는 말투였다. 꿋꿋한 표창원 씨를 떠올리고 있을 때 그도 표창원을 언급했다. 한동안 언론에 잘 나오지 못했던 표창원 씨가 요즘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자주 나와 반갑다.

지난주에 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 화재 현장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은 대번에 냄새가 난다고 한다. 사람이 탄 비리고 역한 냄새.

오늘도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 자신도 겨우 구해냈다. 11시에 밥을 먹고 있었다. 머리 위 형광등에서 벌이 마치 어떤 의식처럼 붕붕거리고 있어 어떡해야 하나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벌의 날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은 영영 멈춘 것 같았다. 그 잔해를 찾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잔해는 꼭 찾아야 한다. ■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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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7-17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같은일들이 실제에서도 일어나고있다는것이 소름돋아요. 괜찮으신가요?

AgalmA 2015-07-17 02:23   좋아요 0 | URL
저도 도울 수 있었을 일이었는데, 제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던 게 내내 맘이 걸렸습니다...이리 반성문 비스무리하게 쓰고 있는 정도면 괜찮다고 봐야겠지요ㅜㅜ? 정말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안부 인사 감사드립니다

2015-07-17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7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돌궐 2015-07-17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험으론 벌은 자기가 들어온 구멍을 알고 있습니다. 놔두면 알아서 나가더라구요. 힘드신 일도 그럴 거에요.

AgalmA 2015-07-17 11:44   좋아요 0 | URL
그 벌이 저 벌이 아닌 것일텐데 일순간 착각ㅎ;;....헌데 벌이 들어올 때 소리도 들었던 터라 다시 날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형광등에서 그쳐서 말이죠. 어쨌거나....

에이바 2015-07-17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그동안 바쁘셨군요.. 식사는 하셨나요? 포스팅은 반갑지만 마음은 무겁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AgalmA 2015-07-18 00:37   좋아요 0 | URL
비빔면 먹었습니다~^^...바빠도, 돈이 적어도 감안하겠는데 책 볼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화납니다ㅡㅜ 일하며 온종일 생각만 하다보니 책 얘긴 쥐꼬리고 생각만 잔뜩 입니다;

cyrus 2015-07-1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나올법한 일이지만, 정말 영악한 놈은 사건 취재 오는 기자나 사건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 찾아오는 경찰로 가장해서 증인으로 여길 만한 사람들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AgalmA 2015-07-18 00:39   좋아요 0 | URL

삶처럼 아무리 대비해도 무언가 온다면 기습적이겠죠...
cyrus님은 이제 하드보일드 SF 소설을 쓰시면 되겠습니다! ^^

CREBBP 2015-07-1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작 소설 정도로 알았는데 실전 얘기였군요. 그 방면으로도 소질 있으신듯.. 묘사가 묘하게 재밌어요. 아 재미있으라고 쓴 건 아니라는 건 알지만..

AgalmA 2015-07-18 01:27   좋아요 0 | URL
소설쓰기를 즐깁니다만 이런 소재와 방식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ㅜ 겪는 일화들이 이렇다보니~_~);

2015-07-18 0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7-18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일 없었다면 되었습니다. 병나지 않도록. 잘 챙겨 먹고 다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