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 백전백승하는 게 아니라 백전불태하는 거라 말했다. 나는 마치 이겨본 적이 있는 것처럼. 저녁 내내 내 곁을 맴돌며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본새로 보아 고민이 있는가 보다 했다. 나는 마치 고민이 없는 것처럼. 아니, 나도 있어서 알아본다고 해야 하나. 어제도 울고 싶었고 오늘도 울고 싶었고 내일도 울고 싶은 나이니,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게 하필 나였다. 고민 상담을 해주는 건 나도 괴로운 일이다. 상대에게 이입해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며 가장 최선의 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는 부담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을 또 어찌 맞아야 할지 그의 참담함과 고심이 자꾸 밀려와 한밤의 술자리를 나는 거절하지 못 했다. 안면을 튼 사람이라고 친절히 맞던 종업원은 손님 응대에 대한 충고를 받자 안색이 바뀌었다. 나는 일행의 그 충고가 나빴던 점에 대해 또 충고했다. 이 지적질의 퍼레이드는 끝이 나지 않겠지. 아무리 사람이 적은 직장을 다녀도 이런 피곤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누구는 붙잡고 누구는 내보내야 하리라.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고 저 사람은 그게 아니었다 등등.... 을 말하자 상대는 그걸 어떻게 알았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본다. 내가 최순실이길 바라는 사람, 나는 수갑 차는 시늉을 해 보였다. 상대는 그래도 수십억 아니 수 억이라도 챙겨 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말했다... 다들 제 삶이 답답해 미치겠지.... 이 땅에는 최순실같이 용한 점쟁이를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남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제 의지를 믿고 살았던 사람이었는데도 사람 사이에서 삶이 잘 풀리지 않으니 그리된다, 사람은. 그래서 그런 자가 권좌에 올랐다. 히틀러가 우연이 아니었듯.
저녁에 생일 케익을 준비해줘 놓고는 취중에 꽃다발까지 사주겠다는 걸 말리며 택시로 향했다. 지방 택시와 서울 택시가 섞여 있어 우리는 택시 고르기마저 어설펐다. 서울 택시가 슬금 다가와 사람들이 꼭 지방 택시를 잡는다며 타박했다. 사장이 만원 몇 장을 택시 기사에게 던지고는 도망갔다. 표현에 서툴고 도움받는 것에 서툴고 우리는 구석구석 서툰데 어른이라 불린다. 잘하는 것 없이 어른이어야 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택시기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택시 기사가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은 걸 나는 묵인했다. 하루 종일 내내 무언갈 따져야 하는 게 삶이라니.... 매일매일 삶에 무엇이든 지불하고 있는 기분.
나는 시원하게 욕할 줄 아는 재주가 없다. 욕 대신 담배를 핀다. 그래서 뭐. 언제 내가 좋은 사람 이랬나.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목이 마르다. 갈증이 가시지 않아.
또 졸립다. 책 한 줄 못 보고 오늘도 이렇게 또 간다. 뭐가? 오늘이. 오늘이 뭔데?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행복이 뭔데?
당신이 제일 잘 하는 게 뭔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자기가 부족한 것만 생각했지 제일 잘 하는 게 뭔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상했다. 자신이 잘 하는 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지 않나. 그걸 일로 가지려는 것이고? 나야말로 당황했다. 내가 소설 배울 때 얘기를 했다. 정의니 전쟁이니 큰 얘기로 떠드는 게 아니라 밥숟가락 하나 겨우 얘기하는 거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얘기부터 하는 거라고. 소설은, 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