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이 곡을 한참 들었다. Pat Metheny - Come and See
팻 매시니 피카소 기타 소리는 들을 때마다 아찔할 정도로 좋다. 옆 얼굴과 앞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는 피카소 그림처럼 하프와 기타가 합체된 듯한 소리. 공연장에서 실제 그가 피카소 기타 치는 걸 보면 오르페우스로 보인다! 줄무늬나 후드 티셔츠 말고 고대 그리스 복장으로 나타나셔야죠!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 철학의 씨줄과 날줄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는
훌리안 마리아스 문장도 피카소 기타 소리 못지않다.
˝종교는 인간에 의해 수용되고 신에 의해 무상으로 주어진, 하나의 확실성이다.˝가톨릭 철학자로서의 견해가 뚜렷하지만 재련된 도끼로 찍듯 체계화에 단련된 문장이라 무신론자라 해도 가벼이 지나칠 수 없다.
˝철학은 항상 자신의 확실성의 근거를 갱신한다˝
˝철학자는 이성의 고안자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입법자다˝
동양은 왜 합리적 논변을 구성하지 않았는지 깊이 들어가지 않고 서양 사상의 뛰어난 차이점이라 간주하며 희랍철학 분석으로 들어가는 건 좀 아쉽다. 서양인의 당연한 한계일까. 철학의 역사가 철학이란 입장에서 마리아스에게 동양 사상은 그의 역사가 아니니까.
11월 1일부터 집앞 재활용 쓰레기 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하자 오늘 골목 곳곳에 산더미로 쌓여 있는 그것들을 봤다. 마리아스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을 인용하며 일상 사물을 통해 인간이 가지게 된 경이(驚異)에서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관조의 시간이 희박해진 현대에서 사물은 경이보다 쓰레기에 더 가까워졌다.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인간도 그렇게 되고 있다고 말하지 않던가. 벤야민의 아우라도,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도,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도 논의 이상의 위력을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리아스가 현대 철학을 근대 철학 단원에 포함한 것에 자못 수긍되기도 한다. ˝귀결이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영역˝.... 죽음으로 마감되기 전까지 나는 나로 귀결되지 못한다. 그 처리도 내 손으로 할 수 없다! 오로지 현재 속에서만 서성대며 서로를 딱하게 생각하며 ˝이게 나예요˝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나는 나의 방부제, 당신은 당신의 방부제이다. 워워, 너무 시니컬해졌어.
더 읽고 싶은데, 더 생각하고 싶은데 졸려서 너무 슬프다.
내 몸으로 갈 수 있는 하루가 너무 짧다.
Come and See
Sleep and 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