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저녁밥을 먹던 둘째가 "와! 좃나 맛있다"라고 한다. 부부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마주보며 할 말을 잊는다. 그러곤 금세 눈길이 4학년짜리 제 누나에게로 꽂힌다. 며칠 전 제 엄마 앞에서 뜻도 모르고 "엄마 이 책이 존나 재미있어!"라고 말했다가 불벼락을 맞은 일이 있었는데, 고새 일곱 살짜리가 그 말을 배운 것이다. "너 어디서 그 말 배웠어?" 엄마 아빠의 기색이 순식간에 심상찮게 변하자, 둘째는 겁먹은 표정을 짓더니, 금세 아앙 하고 울어버린다.
큰애에게 물어보니 한국에 있을 때 학교에서 아이들이 늘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란다. 너무 맛있다. 정말 재미있다는 말을 뜻도 모르고 '좃나 맛있다', '좃나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지난해 대학교 2학년 과제물 속에서 '좃나 예뻤다'라고 쓴 표현을 보고 대경실색해서 그 학생을 불러내어 그 뜻을 물어보았던 민망한 일도 새삼 생각나고, 얼마 전 이곳 대만에 중국어 배우러 온 듯한 여학생들이 길에서 저희들끼리 하던 말 가운데서도 얼핏 이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때는 설마 긴가민가했었다. 얼마나 재미있으면 '그것'이 바지 밖으로 나올 지경이 될까? 계집애들까지 예사로 그런 말을 지껄이니, 나중에는 '너무'나 '정말'의 동의어로 사전에 올리잔 말이나 안 나올까 걱정이다. 말이 자꾸 쓰레기처럼 변해간다.
- 정민, 「좃나 맛있다」, 『스승의 옥편』, 마음산책, 2007, pp.145-6.
|
|
|
|
|
요즘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듯한 일화다. 정민 선생의 아이가 지금은 훌쩍 컸으니 이제는 선생 앞에서 이런 말을 해서 혼이 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경우를 접하면 어른들은 흔히 '세상이 어쩔려고 이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웃지도 못하고 화도 못내는,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짓게 된다. 더욱이 이런 말들을 쓰는 요즘 아이들은 진정 그 말에 무슨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쓰고 있으니, 어찌 혀를 차지 않으랴!
중고생들이 가득한 버스를 타면 이 말을 대화가운데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특히나 여학생들도 이 말을 무척 애용한다. 굳이 구분을 짓자면, 요새 대학생부터 초등생에 이르기까지 이 말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사한다고 생각된다. 그 이상의 세대에서는 이 말에 그래도 어느 정도의 거리낌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욕의 대가 김열규 선생은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사계절, 1997.)에서 이러한 말은 이제 감투사나 감탄사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것으로 '제기랄, 니미랄, 젠장, 넥에미랄'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 이 '좆나'를 추가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상황 가운데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이런 욕들에 대해 단지 감투사 정도로 용인할 수 있는 여지를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구수한 입담에서야 누가 뭐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요즘 아이들이 애용하는 것은 그렇게 용인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왜일까? 그것은 이 말이 가지는 의미가 심히 껄끄럽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걱정스레 쓰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왕 쓰는게 얼굴에 철판을 좀 깔고 풀어보면, '좆나'라는 욕은 흔히 '좆 나게 ~하다.'처럼 쓰여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있는 힘을 다하다."의 뜻을 지닌다. 얼마나 힘을 썼으면 '그것'이 날 정도이겠는가 말이다. 비슷한 말로 '좆 빠지게'가 있다. 이 말의 뜻도 '좆 나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그 쓰임에 있어 성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면, '좆 빠지게'는 남자가, '좆 나게'는 여자가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는 '좆 빠지게'보다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좆 나게'나 그 변형이 주로 쓰인다.
그런데 그 쓰임의 유형이 어떻든 간에, 이 욕에는 일종의 남근선호사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나거나 빠지는 것이 남성의 그것을 저속하게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욕은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경멸해 마지 않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요즘 학생들이 그게 나는지 빠지는지를 의식하고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뭐 그걸 굳이 의식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래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이 의식을 한다면 이 말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표기의 문제를 짚어보자. 위의 인용문에서 정민 선생은 '좃'이라고 표기했다. 나는 '좆'으로 썼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사용을 보면 '졷'도 보인다. 이 세가지 표기 중에서 가장 옳은 표기는 '좆'으로 생각된다. '좃'이나 '졷'은 중세국어에서의 종성 표기법의 변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것들의 변형으로 '조또, 존나, 조낸' 등은 발음나는 대로 쓴 것으로 보여진다.
잠깐 엇나갔는데, 다시 돌아와서, 위의 정민 선생의 "동의어로 사전에 올리잔 말이나 안 나올까"하는 걱정은 아직 이른 듯 보인다. 이와는 달리 김열규 선생은 이제 이런 말은 '자동화'되었다고 말한다. 자동화란 "주어진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퉁겨 나온 말"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일종의 흔한 감투사가 되었다는 얘기다. 어떻든 간에 우리 사회가 이말을 정식으로 받아들일 만큼 '쓰레기'는 아닐 것이다.
"말이 자꾸 쓰레기처럼 변해간다."는 정민 선생의 마지막 말씀에 다소 씁쓸해진다. 그런 것도 같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 이런 말을 쓰는 게 거북스럽다. 그네들도 이걸 알면 거북스럽지 않을까? 이 글을 보는 어린 학생들이 있다면 그런 거북스러움을 느껴 앞으로 이런 말을 좀 가리게 된다면, 이 글을 쓴 나는 조금 덜 민망하겠다.
끝으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주 쓰는 '제기랄, 니미랄, 넥에미랄, 젠장' 계열의 욕도 걸고 넘어가자. 이 말을 쓰는 사람은 더 나쁘다. 이 말은 그야말로 심각하다. 이 욕은 '제(니) 에미 하고 ~할', '네 어미를 붙을'이란 되먹잖은 욕이다. 이 말도 이제는 감투사나 감탄사 정도로 자동화 되었다고 김열규 선생은 말하지만, 그래도 강제적으로라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을 살면서 어찌 욕 한마디 내뱉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이 잘난 대한민국에 사는 한, 저 국회의사당에 인간들이 살아있는 한, 욕 안하고는 우리 국민들은 곧 죽고 말 것이다. 십분 이해하지만서도, 좀 찬찬히 생각해보고, 쓸 욕만 쓰면 좋겠다. 욕도 가려서 쓰는 센스가 필요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