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반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며 핸드폰을 열었다. S의 집에 들렀다 서울로 가기에는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아서, 그냥 가야겠다고.
"어..그래? 난 네가 올줄 알고 닭도리탕 해놨는데...."
오! S의 닭도리탕은 내가 먹어본 것 중 가장 훌륭한데!
"그럼, 갖고 와~ 아하하하하~"
그녀의 일품 요리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뗑광을 부려서라도 받아 먹어야 한다. ㅡ_ㅡ 훗.
"알았어~ 그러면 오늘 밤이나 내일쯤 가져다 줄게~"
"엉~"
어차피 그녀도 점심때쯤 약속이 있어 나가봐야 했으니 우리는 나중에 닭도리탕 전달식을 하기로,훗.
아아~ 2주 전과 달리 햇살은 너무나 따뜻하다. 이제 봄이다!
전철을 평소 탈리가 없어, 어쩌다 한 번 탈 때마다 교통카드에 5천원씩 혹은 만원씩 충전하는데...
왜 나는 매번 그 잔금을 기억하지 못 하는 걸까. -_-
그래서 이 날도 - 금액 부족한지 모르고 그냥 탔다가 내릴 때 역무원 아저씨 부르기 싫어서 - 미리
여유있게 하자고 하면서 교통카드 충전기 앞으로 갔다.
나는 갈 때 마다 교통카드 충전기가 어렵다. ㅡ.,ㅡ....
지난 번에는 멍하니 멍청히 서 있어서 역무원 아저씨가 와서 도와주었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의 머리속엔 '젊은 사람이 왜 이걸 몰라?'라고 했었다는 것을.
이번엔, 잔금이 3,900원이나 있었다. 에잉, 괜히 했다 싶기도 했지만 어쩌랴, 이미 충전기는 나보고
얼른 만원 집어넣으라고 성화인데.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만원 충전해서 총 13,900원.
다음엔 충전할 일 없겠다.
나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전철을 탔다. 타자마자 전철노선표 확인.
가장 빠른 코스가 어디인가. 음~ 금정에서 1호선 타고, 다시 신도림에서 2호선을 타면...
금정에서는 쉽게 환승했는데, 신도림역에서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갈 때는 괜찮은데..
돌아올 때....어제도 하마터면 난 인천에 갈 뻔 했다....( -_-);
지난번과는 달리 헤매지 않고 한 번에 홍대입구역 무사히 도착!
약속 시간보다 무려 1시간 반이나 빨리 왔다. 최단 코스로 온 것도 있고, 애초 S의 집에 들리지 않아서.
나는 PC방에 들어가서 알라딘에서 좀 놀다가, N과 함께 먹을 점심 식사의 장소로 어디가 좋을지 검색.
몇 군데를 발견했다. 스페인 쉐프가 직접 요리하는 스페인 요리집, 제법 맛있게 만드는 파스타 집,
일본식 꼬치 전문집과 라멘집 등등.. 계속 음식 사진을 보고 있으니 배 속에선 밥 넣으라고 천둥을 쳐
대길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쯤에서 검색을 그만두고 N을 기다렸다.
스페인 요리집
N이 왔다. N이 선택한 요리집은 내 예상대로 스페인 요리집. 우리 둘 다 안 먹어본 음식이니까, 호감 상승.
미리 봐둔 약도를 머리에서 끄집어내며 찾아갔다. 홍대입구역에서 가까웠다. 사진에서 보기보다 가게는
작았고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그랬다. -_- 이름은, '라 빠에야' 였던가? (긁적)
그렇지만 우리는 이름도 어려운 스페인 요리 메뉴를 보면서 꺅꺅 신나라 했었다.
같은 재료와 같은 요리법이지만 밥이냐 면이냐로 나뉘어진 식사류, 간단한 스낵류, 코로케류 등등..
한참 구경하다가 우리는 밥을 먹자고 합의하고, '빠에라....뭐시기'를 시켰다.
제길....이름을 외워두는 것을 깜박하다니...ㅜ_ㅡ
밥 종류는 전부 '빠에라'로 시작하고 면 종류는 '디아구모'로 시작한다는 것 밖에 기억이 안 난다.
일반 생수이겠지만 이쁜 병에 담아 나오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스페인식 와인 칵테일인 '상그리아' 레드를 하나 주문했다.
상그리아에 장식용으로 나온 레몬을 나는 퐁당 담가서 마셨다.^^
이후, 나는 종일... 숙취같은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래도 그들은 상그리아를 제대로 못 만들었..;;;
그리고 우리는 전채 요리로 샐러드를 하나 시켰다.
샐러드 이름? 당연히 기억할리 없다....( -_-);
샐러드를 비비다가 옷에 소스가 튀길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테이블에 놓여 있던 넓은 냅킨으로
목에 둘렀다. 그랬더니, N이 막 웃는다. 아,왜? 영화도 안 봤니? 원래 이렇게 먹는 거야. 흥.
옷에 소스 튀어서 나중에 우느니 사람들이 쳐다봐도 이렇게 먹겠어.
오히려 레스토랑에서 목에 냅킨 두르지 않는 건...한국 뿐이라고...다들, 어떻게 안 튀고 먹을 수 있을까?
그리고 주 메뉴인 '빠에라...뭐시기'를 시켰다. 새우, 홍합 등 해산물을 넣은 요리.
카레와 같은 색이지만 카레 맛은 아니고 독특한 향신료 맛인데, 짧짜름 하면서도 맛있었다.
먹기 좋게 앞접시에 담아봤다. 사실, 이 음식이 무사히 나온 건 아니다. 웨이터가 우리 말을 잘못
들었는지 같은 종류지만 면인 '디아구모'가 나왔었던 것. 그래서 N이 확실하게 말하는 덕에 우린
쉐프가 다시 만들어준 이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때 N의 말이 인상 깊었다.
"예전에는 잘못 나와도 그냥 먹었지만, 요즘은 안 그래.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해야 한다구."
사실, 까탈스럽기로는 나를 따를 자가 없었는데, 이제 N도 야무진 성격으로 변해가나 보다.
나처럼 까탈부리는 놈도 상대방이 먼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넘어가면, 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힛.
대하는 먹기 좋게 몸의 껍질이 까서 나온다. 나는 홍합을 더 먹은 대신 남은 대하를 N에게 양보했다.
오픈형 주방이다. 유리 너머로 쉐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우린 불행하게도 그 주방 바로
옆에 자리를 앉는 바람에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스페인 쉐프는 두 명, 그리고 한국인 보조들.
화장실은 실내 구조가 협소해서 그런지 남.녀 공용이었다. 변기 달랑 1개, 세면대 달랑 1개.
특이했던 것은 세면대의 물 나오는 곳.
왜.. 인도 커리 그릇이 여기 있나 싶었다. ㅋㅋㅋ
카운터에 자리한 작은 기마 동상. 스페인의 옛 장군쯤 되었을까?
뒤로 미니 스페인 국기가 살짝 보인다.
어쨌거나 이 집은 가격도 저렴하고 아기자기한 실내 인테리어가 썩 괜찮았다.
그러나 맛은, N의 말을 빌리자면 별 ☆☆☆ 정도 뿐.
게다가 테이블 위에 미리 놓여있던 물컵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ㅡ.,ㅡ
거기서 내가 까탈부리지 않은 것은 그저, 귀찮아서일 뿐이었다.
공주의 집 커피숍
식사를 하고 난 후 홍대쪽 놀이터에 갔다. 전처럼 직접 만든 악세서리나 옷, 소품들을 파는 작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N과 나는 이것 저것 구경하는 재미로 좀 있다가 N이 다리 아프다고, 어디 좀 앉았으면
한다고 하여서 커피숍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늘 그렇듯 처음 발견한 곳을 간다.
그 때 눈에 띈 것이 '공주의 집' 커피숍. 이런 곳에 들어가보기는 처음이다.
애들 분위기의 유치짬뽕 집일줄 알았는데, 실내 인테리어는 상당히 (생각보다) 고급스러웠다.
전체적인 인테리어 색은 금색과 갈색 계열. 앤티크한 분위기다. 그 중 잘 나온 사진 하나.
우리가 앉은 창가의 테이블에는 공주 침대에나 있을 법한 저런 것이...;;;
그리고 테이블마다 옅은 금색의 발이 쳐져 있거나 고급스런 무늬의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난 이것을 보는 순간, 왜 국수 면발이 떠올랐을까. ㅡ_ㅡ;;
아프리카 마오이 족처럼 나도 이것으로 가발을 만들어서 쓰고 다닐까? 하는 정신나간 생각을 잠시..;;;;
N은 키위주스를, 나는 딸기와 바나나가 섞인 '꽃의 요정' 주스를...이름들이 죄다 특이했다..하하..
서비스 간식으로 나온 체다 치즈 쿠키도 같이 찰칵~ 맛있었다 ^^
그리고 테이블 위에 우아하게 서 있던 공주님에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사진 한 컷...
그렇게 커피숍에서 죽치고 있다가 좀 돌아다니고 싶어서 밖에 나왔다.
홍대에서 최초로 시작한 '럭셔리 노래방'이 있는 골목 사거리에는 거대한.....거대한 개가 있었다.
말라뮤트 종인 것 같은데, 난 이렇게 큰 말라뮤트는 처음 본다. 덩치가 호랑이쯤 되시겠다.
주인되는 젊은 남자는 그 개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솜사탕을 팔고 있었다.
불쌍해라. 개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개를 환장하게 좋아하는 나와 N은
곧바로 개 앞에 쭈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어댔다. (바로 우리같은 어린애에게 먹히는 완벽한 마케팅..)
사실은 무척이나 만지고 싶었는데 옆에 있던 의자의 안내문구에는 '발 만지지 마세요. 물어도 난 모름'
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써 있었..;;
사실 그 따위 문구가 있어도 개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는 만질 수도 있었지만 주인 허락 없이 만지는 건
실례라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남자가 하는 말,
"솜사탕 사면 만질 수 있어요~"
이런 뻔한 장사술...ㅡ.,ㅡ 그러나 난 벌떡 일어나서 N과 내 것, 두 개의 솜사탕을 사고 개 앞에 앉았다.
"솜사탕 줘도 되요?"
"안돼요. 솜사탕 주지 마세요."
그래서 난 손을 내밀어 만지려고 했는데, 개가 작게 으르렁 거리는 거 아닌가.
"아저씨! 으르렁 거리잖아요!"
하고 빽 하고 소리질렀다. 남자는 웃으면서,
"괜찮아요. 발만 만지지 마세요."
응? 발 만지는 순간,, 내 손이 개 입에 덥썩이라도 된다는 소린가...ㅡ.,ㅡ (삐질)
개들은 사람과 달리 기 싸움을 한다. 그래서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약간이라도 겁을 먹으면 그걸 알아채고
사람에게 으르렁 거리며 텃세를 부린다. 누구보다 그걸 알기에 난 한 번도 개 앞에서 기를 흐트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때는 타이밍을 놓쳤고, 난 단박에 그 개보다 하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기랄...
계속 못 만지고 있자, 아저씨가,
"자~ 만져도 되요. 살짝 머리만 쓰다듬어 주세요."
나는 아저씨의 말에 용기를 얻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식, 너도 나처럼 뒷통수가 절벽이구나. 냐하하항~!
아쉬웠지만, 개가 하루종일 스트레스 받았을 것 같아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힐을 신고 나온 N이 발이 아프다고 하길래, 낮은 플렛 슈즈를 사주려고 이러저리 돌아다녔다.
일본에서 살았던 N은 당연 일본식 플랫 슈즈를 찾지만, 그런 건 한국에 없다.
한국의 플랫 슈즈는 앞코가 뭉뚝해서 발가락이 아프단다. 한참을 헤맨 결과 어떤 가게에서 그나마 앞코가
뾰족하고 디자인도 그리 나쁘지 않은 아이보리색 하나 발견. 사실, N의 옷 때문에 그에 색을 맞추려다 보니
한참을 헤매게 되었다. 발이 아프면 마음에 여유가 없고 몸이 힘들다.
이제 발의 여유을 찾은 N은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나도 여름에 신을 (글레디에이터 영화에서나 신을 법한..;;)
하얀색 샌들(?)을 샀다. ㅎㅎㅎ 디자인이 얄상한 것이 꼭 기생오래비 같다. ㅋㅋ
그렇게 더 길에서 방황하다가, 술도 먹기 싫고, 노래방도 싫고, 당구장도 싫고 해서...
우리는 처음 보는 '퀴즈 카페' 에 들어갔다. 홍보용 현수막을 보니, 독립된 방에 앉아서 퀴즈를
푸는 것 같길래 한 번 해보자고 내가 졸랐다. 퀴즈에 젬병이면서도. (긁적)
퀴즈 전문 카페가 아니라, 닌텐도 위 게임을 하다가 화면 하단에 설치한 네모상자에서 파란불이 깜박거리면
화면을 바꾸고 퀴즈 문제를 맞춰야 한단다. 총 12개 문제가 1시간 동안 15분마다 4주기로 나눠서 나오는데,
다른 방의 사람들과 함께 풀어서 1등이 되면 이용료 10%를 할인해준다. 오호라~! +_+
아...그런데 문제가 장난 아니올시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빡세다. 거의 다 찍었다.
그래도 두 번은 1등 먹었다. 냐항항항~! ^ㅡ^
그러니까 우리는 각 방에 앉아서 화면으로 마실 음료나 먹거리를 주문하면, 그것이 카운터에 전송되어져
직원이 주문한 것을 내온다. 우리는 음료나 먹거리에 대한 돈을 내는 대신 1시간 동안 게임을 공짜로 한다.
(사실, 게임료가 음료값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_-)
그리고 중간 중간 퀴즈를 풀어서 1등하면 DC 쿠폰이. 아, 이거 참 괜찮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게임과 퀴즈에 미쳐 있어서.....인증샷을 못 찍었....;;; ㅜ_ㅡ
어쨌거나, 홍대는 늘 재밌다.^^
우리는 퀴즈 카페를 나와 이런저런 웃긴 이야기를 하다가 폭소가 터져 길거리에서 미치광이처럼 웃어댔다.
누가 보면, 우리가 술 먹고 그 난리를 피워대는지 알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재밌게 놀았던 휴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