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타로 카드를 휙휙 뒤집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당신은 천성적으로 외로운 사람이에요."
동료들 하기에, 장난 삼아 따라해봤더니 벼락같은 말이 떨어졌다.
그래, 내겐 저 말이 청천벼락이다. 아니, '확신을 속에 품은 절망'의 비수다.
알고 있었다.
10대의 어느 한 순간에 지구 밖의 존재에 대해 깨달은 그 순간부터
지긋지긋하게 나를 따라붙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늘 내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는 것을.
매 순간, 그럴 듯한 이유나 핑계거리로 '만년 혼자'인 상태를 합리화 시켰었다.
'난 원래 연애 따위에 관심 없는걸~'
'일이 이렇게 바쁜데, 그런걸 할 시간이 어딨어?'
'내가 그/그녀를 받아들이면 거짓 사랑이 되므로 상처만 줄거야. 그건 안되지'
'나에겐 전생에 사랑했던 자가 있어. 그 운명을 기다리는 것 뿐이야.'
왜 남들 다 하는 연애 따위는 관심이 없는지, 아니, 관심을 안 가지려고 하는지
왜 남들 다 느끼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지, 아니, 왜 알려고도 하질 않는지
늘~ 이런 저런 이유들을 늘어놓으며 내 자신과 타인을 납득시켜야지만 직성이 풀렸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비정상'인 것이거나 '뭔가 모자른 사람'이라는 둥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해버리는 꼴이 될까봐 무의식 중에 나로부터 현실로부터 회피해 왔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반은, 스스로를 조금씩, 휴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인정하고 있었다.
왜 마음을 열지도 않으면서 삶이 공허하고, 외롭다고 투덜되는지 정확한 이유는 어딘가
있을거야 라는 무의식 속에 책임 전가를 한 후 나름대로 반은 인정하고 살았었다.
그래서 언젠가 '연애를 할 마음이 생기거나 내 사랑을 만나게 되면' 이런 걱정 따위는 한 방에
홈런을 쳐서 날릴 줄 알았는데.
어이쿠야- '천성적으로 타고난 외로움쟁이' 라니.
그건 뭘 어찌해도 나을 수 없는 병이란 것이 아니더냐!
얼마 전에, 영화 [쌍화점]을 드.디.어. 봤다.
솔직히 말하면 해피 엔딩일지 아닐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저, 먼저 본 사람들의 "배드 씬 죽여줘~" 혹은 "두 남자와 한 여자의(그것도 고려 시대의) 삼각관계"
라는 호기심 자극할 만한 이야기들 때문에 아무~생각~없이(솔직히 기대와 함께 -_-ㅋ) 보았더랬다.
근데, 웬일. 쌔드 엔딩이 아닌가!
그것도 왕과 왕후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고 왔다리 갔다리 하는 지조 없는 홍청관 쉐키 놈 때문에...ㅡ.,ㅡ
결말이 참 가슴 아팠다. 동성이던 아니던간에, 사랑 때문에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의문과 함께.
무슨 근거로 '쌔드 엔딩은 아니겠지' 라고 믿었는지...예상치 못했던 결말에 한참이나 멍을 때리고 만 것.쯥...
내가 정말로 씁쓸하고 기분이 우울했던 것은 나는 저런 사랑의 기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이후 본 영화 [렛 미 인]은 또 다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리뷰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결말로 마무리 지었으나(그것도 황급하게 -_-) 사실...내심 속이 쓰렸다.
'제기랄~ 기분도 꿀꿀한데 지독한 염세주의자의 필력이 어떤건지 보여주마~' 버젼으로 쓰자고 마음 먹었으면
다 쓰고 나서 스스로도 다시 읽어볼 용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우울하고 부정적인 글이 되었을지 모른다.
어릴 때 [호밀밭의 파수꾼] 책 앞 장에, 코울필드가 나와 같은 염세주의자인 것에 만세!를 부르며 흥분해서
주저리 주저리 건방진 글귀를 썼던 시절의 내 모습이라면 글 속에 천만개 정도의 얼음 가시를 슝슝 박아 놓을
자신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러기에는 많이 물러 터져서 말이다. 쩝...
어쨌거나, 두 번째 까지는 '단지, 운이 안 좋았을 뿐이야.'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요즘의 일 때문에 조금 지쳐 있어서 감정이 예민해진 탓인지 몰라 하고 또 자기 합리화에 성공 했으니까.
그런데...오늘, 세 번째 직격탄을 맞고...바닥에 널부러져 피를 철철 흘리다..간신히 정신 차리고 이렇게
글자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원래 속에 있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내 성격에 지금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짜증이 나 있던 것인거다. ㅡ.,ㅡ
만화 [마틴 & 존] 시리즈를 2~6권 몽땅 차가운 바닥에 앉아 아주 성실(?)하게 정독해 주신 결과,
빌어먹을 게이츠, 또, 주인공들간의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 쌔드 엔딩인 것이야.
다른 시각에선 해피 엔딩일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선 어쨌든 슬프거든.
철푸덕 바닥에 옆으로 누워서 '사랑-쌔드 엔딩 3종 세트'를 맞은 충격에 휩싸여 나름대로 센치한 기분을
느끼려고 했는데...현실은 냉정해,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냉기에 그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내 옆에 같이 누워 있던 개를 살며시 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주며, 나름~ 분위기 있고 멋있는 목소리로,
"바닥이 차다..."
라고 했는데, 이 눈치 없는 개님께서 휙- 바닥에 도로 누워 버리신다. 아~분위기 정말 깨져라. -_-
또 이런다.
분위기 있게...동정 살 정도로 가련(?)하게, 사랑을 모르는 내 처지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을 생각이었는데..
쓰다 보니..또 코메디가 되어간다. 난 정말-!! ㅡ_ㅡ
지구에는 없은 것 빼고는 다 있다. 지금 문명에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아니, 넘쳐날 정도로
충분하게 거의 모든 편의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사랑을 파는 가게 따위는 없는 것일까?
부끄럽게 핑크통에 반짝이는 하트 팍팍 박아넣은 유치 찬란한 통조림에 넣어서 더럽게 비싼 값에 팔아도
좋으니까 그런 가게 좀 있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저렇게 서로들 가슴 아파 하고 아름답게 변해가는지 나도 좀 알게.
타로 카드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점/운세에서 '천성이 외로운 사람' 이라고 나와서 심히..좌절 모드 중이다.
새삼, 내 정체가 뭐냐? 라고 묻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가끔은 짜증이 난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는 모든 옵션을 다 갖추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켕.
이래서 새벽이 싫다.
꼭 횡설수설 하니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