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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일찍이 고독의 몸으로서 적막과 무료의 소견법으로 거위 한 쌍을 구하여 자식삼아 정원에 놓아기르기 십개성상이러니, 올 여름에 천만뜻밖에도 우연히 맹견의 공격을 받아, 한 마리가 비명에 가고 한 마리가 잔존하여 극도의 고독과 회의와 비통의 나머지, 식음과 수면을 거의 전폐하고, 비 내리는 날 밤, 밝은 밤에 여윈 몸 넋 빠진 모양으로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동무 찾아 목메어 슬피 우는 단장곡은 차마 듣지 못할러라. 죽은 동무 부르는 제 소리의 메아리인 줄은 알지 못하고, 찾는 동무의 소린 줄만 알고, 홀연 긴장한 모양으로 조심스럽게 소리 울려 오는 쪽으로 천방지축 기뚱거리며 달려가다가는 적적무문, 동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때, 또다시 외치며 제 소리 울려 오는 편으로 쫓아가다가 결국은 암담한 절망과 회의의 답답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서는 꼴은 어찌 차마 볼 수 있으랴. 말 못하는 짐승이라, 때묻은 말은 주고받지 못하나, 너도 나도 모르는 중에 일맥의 진정이 서로 사이에 통하였던지, 10년이란 기나긴 세월에 내 홀로 적막하고, 쓸쓸하고 수심스러울 제, 환희에 넘치는 너희들의 요동하는 생태는 나에게 무한한 위로요 감동이었고, 사위가 적연한 달 밝은 가을 밤에 너희들 자신도 모르게 무심히 외치는 애닯은 향수의 노랫소리에는 나도 모르게 천지적막의 향수를 그윽히 느끼고 긴 한숨을 쉰 적도 한두 번 아니러니--. 고독한 나의 애물아. 내 일찍이 너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칠 능이 있었던들, 이내 가슴속 어리고 서린 한없는 서러운 사정과 정곡을 알려 들리기도 하고, 호소도 해보고, 기실 너도 나도 꼭 같은 한없는 이 설움 서로 공명도 하고, 같이 통곡도 해보련만, 이 지극한 설움의 순간의 통정을 너로 더불어 한가지 못하는 영원한 유한이여.....

  외로움과 설움을 주체 못 하는 순간마다 사람인 나에게는 술과 담배가 있으니, 한 개의 소상반죽의 연관이 있어 무한으로 통한 청신한 대기를 속으로 빨아들여, 오장육부에 서린 설움을 창공에 뿜어내어 자연의 선율을 타고 굽이굽이 곡선을 그리며, 허공에 사라지는 나의 애수의 자취를 넋을 잃고 바라보며, 속 빈 한숨 길게 그윽히 쉴 수도 있고, 한잔의 술이 있어 위로 뜨고 치밀어오르는 억제 못 할 설움을 달래며, 구곡간장 속으로 마셔들어 손으로 스며들게 할 수도 있고, 12현 가야금이 있어 감정과 의지의 첨단적 표현 기능인 열 손가락으로 이 줄 저 줄 골라 짚어 간장에 어린 설움 골수에 맺힌 한을 음률과 운율의 선에 실어 찾아내어 기맥이 다하도록 타고 타고 또 타, 절절한 이내 가슴 속 감정의 물결이 열두 줄에 부딪혀 몸부림 쳐가며 운명의 신을 원망하는 듯 호소하는 듯 밀며 땡기며, 부르며 쫓으며, 잠기며 맺으며 풀며, 풀며 먹으며, 높고 낮고 길고 짜르게 굽이쳐 돌아가며, 감돌아가며 감돌아들며, 미묘하고 그윽하게 구르고 흘러 끝가는  데를 모르는 심연한 선율과 운율과 여운의 영원한 조화미 속에 줄도 잊고, 나도 썩고 도연히 취할 수도 있거니와 --. 그리고, 네가 만일 학이라면 너도 응당 이 곡조에 취하고 화하여, 너의 가슴속에 가득 답답한 설움과 한을 잠시라도 잊고 춤이라도 한 번 덩실 추는 것을 보련마는-- 아아, 차라리 너마저 죽어 없어지면 네 얼마나 행복하며 내 얼마나 구제되랴. 이 내 애절한 심사, 너는 모르고도 알리라. 이 내 무자비한 심술, 너만은 알리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아. 말 못하는 짐승이라 꿈에라도 행여 가벼이 보지 말지니, 삶의 기쁨과 죽음의 설움을 사람과 같이 느낌을 보았노라. 사람은 산 줄 알고 살고, 죽은 줄 알고 죽고, 저는 모르고 살고, 모르고 죽는 것이 다를 뿐, 저는 생.사 운명에 무조건으로 절대 충실하고, 순종한 순교자--. 사람은 아는 것을 자랑하는 우월감을 버리고 운명의 반역자임을 자랑 말지니 엄격한 운명의 지상명령에 귀일하는 결론은 마침내 같지 아니한가?

  너는 본래 본성이 솔직한 동물이라, 일직선으로 살다가 일직선으로 죽을 뿐, 사람은 금단의 지혜의 과실을 따먹은 덕과 벌인지 꾀 있고 슬기로운 동물이라, 직선과 동시에 곡선을 그릴 줄 아는 재주가 있을 뿐, 10년을 하루같이 나는 너를 알고, 너는 나를 알고, 기거와 동정을 같이 하고 희노애락의 생활 감정을 같이 하며, 서로 사이에 일맥의 진정이 통해 왔노라. 나는 무수한 인간을 접해 온 10년 동안에 너만큼 순수한 진정이 통하는 벗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찾지 못했노라. 견디기 어렵고 주체 못 할 파멸의 비극에 직면하여 술과 담배를 만들어 마실 줄 모르고 거문고를 만들어 타는 곡선의 기술을 모르는 솔직 단순한 너의 숙명적 비통을 무엇으로 위로하랴. 너도 나도 죽어 없어지고 영원한 망각의 사막으로 사라지는 최후의 순간이 있을 뿐이 아닌가? 말하지니 나에게는 술이 있고, 담배가 있고, 거문고가 있다지만 애닯고 안타깝다. 말이 그렇지 망우초 태산 같고, 술이 억만 잔인들 한없는 운명의 이 설움 어찌하며 어이하랴. 가야금 12현에 또 12현인들 골수에 맺힌 무궁한 이 원을 만분의 1이나 실어 탈 수 있으며, 그 줄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타본들 이놈의 한이야 없어질 기약 있으랴. 간절히 원하거니 너도 잊고 나도 잊고 이것저것 다없다는 본래 내 고향 찾아가리라. 그러나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이것저것 다 있는 그대로 그곳이 참 내 고향이라니, 답답도 할사, 내 고향 어이 찾을꼬, 참 내 고향 어이 찾을꼬.

  창 밖에 달은 밝고 바람은 아니 이는데, 뜰 앞에 오동잎 떨어지는 소리 가을이 완연한데, 내 사랑 거위야, 너는 지금도 사라진 네 동무의 섧고 아름다운 꿈만 꾸고 있느냐?

  아아, 이상도 할사, 내 고향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바로 내 고향일 줄이야 꿈엔들 꿈꾸었으랴. 이 일이 웬일인가? 이것이 꿈인가. 꿈깨인 꿈인가? 미칠 듯한 나는 방금 네 속에 내 고향 보았노라. 천추의 감격과 감사의 기적적 순간이여. 이윽히 벽력같은 기적의 경이와 환희에 놀란 가슴 어루만지며,  침두에 세운 가야금 이끌어 타니, 오동나무에 봉이 울고 뜰 앞에 학이 춤추는도다. 모두가 꿈이요 꿈 아니요, 꿈깨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만상이 적연히 부동한데 뜰에 나서 우러러보니 봉도 학도 간 곳 없고, 드높은 하늘엔 별만 총총히 빛나고, 땅 위에는 신음하는 거위의 꿈만이 그윽하고 아름답게 깊었고녀--.

  꿈은 깨어 무엇하리.

 

                                           

                                                                                                            -- 공초 오상순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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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애잔함과 허무를 응시하는 작가의 마음.
"내 고향은 바로 네로구나. 네가 바로 내 고향일 줄 꿈엔들 꿈꾸었으랴."
산문의 힘은 이런 걸까요? 맞닥뜨린 상황과 굽이치는 정서의 세밀한 부분을 낱낱이 해부하여 보여 주는 것...

잘 읽고 가옵니당^^

水巖 2006-08-2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고1때 국어교과서에 나온 겁니다. 그 시절에는 저 글에 심취되어 통으로 외우고 다니기도 했었죠. 다시 한번 읽고 갑니다.

파란여우 2006-08-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문고도, 가야금도, 담배도 못하지만 몰운대에서 하현달을 보며
달적지근한 가시오가피를 마실 수는 있다죠.
술은 달팽이님이 사세요.
그러니까 이게 화개차 혼자만 마시고 늦게 온 변명의 댓가입니다.^^

달팽이 2006-08-2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저도 그 부분이 클라이막스처럼 느껴졌더랬어요...
수암님, 그 시절 물질적으로는 형편없었던 그 시절이 그래도 가끔 그리워지는 이유는 뭘까요? 이런 힘넘치는 수필을 요즘은 보기 힘들어서일까요?
여우님, 물론입니다. 여우님 그 자체로 안주 몫은 하니까요..ㅎㅎ

로드무비 2006-08-2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고 때 영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스스로 도취되어 읊으시던 기억이 납니다.
제목이 귀에 딱 들어왔죠.^^

달팽이 2006-08-2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허, 그랬군요.
갑자기 로드무비님의 세대가 궁금해지군요...
난 내 정도의 연배로만 알았는데 이제껏...

소와룡 2016-06-28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양이의 여러가지 이야기가 떠올라서 선생님의 글을 읽고 빌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달팽이 2016-07-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소와룡님.
 

무란 없는 것이 아니라 비워져 있는 것.

비워져 있는 것은 곧 채울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

늘 비워둠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공복.

 

한 번 화두를 꺼내면 접을 수 없는 그대에게

어찌 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생과 사의 화두 속에 파묻혀 있는가.

이젠 벗어나 시냇물에 발이나 담가보게.

 

 

                              - 경봉 스님이 효봉 스님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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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갈게요. 무더운 여름, 건강하시죠? 부산은 좀 선선하려나? ^^

달팽이 2006-08-1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낀 구름으로 조금은 누그러진 더위가 느껴지네요.
다음 주가 되면 바람속에서 시원함이 일것 같습니다.
올려보냅니다.
혹 시간이 걸릴지라도..ㅎㅎ

해콩 2006-08-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라면... 제가 내려갈 수 있겠는 걸요.. ^^ 암튼 맘써주심에 감사~

이누아 2006-08-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겨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_()_

달팽이 2006-08-1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합장.
 

  궁리( 窮理, 사물의 근본원리와 인과관계를 연구함) 와 거경(居敬, 정신을 항상 깨어있게 유지함)공부는 서로 수미가 되기는 하지만 사실은 두 가지 공부가 됩니다. 둘로 나눔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두 가지 공부가 서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뒤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 이 순간부터 공부를 시작하십시오. 이럴까 저럴까 머뭇거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힘을 써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사물의 근본원리와 인과관계를 고찰할 뿐, 절대로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조금씩 공부를 쌓아나가는 중에 순수해지고 익어지는 것이지, 단기간에 효과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체득하기 전에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을 죽을 때까지의 평생 사업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 사물의 이치가 남김없이 이해되고 깨어있음이 전일하게 되는 것은, 모두 공부가 깊이 나아간 뒤에 자연히 얻어지는 것입니다. 어찌 한 순간에 문득 깨달아 이내 성불했다는 사람들처럼 황홀하고 아득한 중에 그림자만 얼핏 보고서 가장 큰 일이 끝났다고 외치는 것과 같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이를 실천에서 증험해야 비로소 '참된 지혜'가 될 것이며, 항상 깨어있음을 유지하여 마음이 한순간이라도 둘로 셋으로 갈라지지 않아야 비로소 '참된 체득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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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오고 또 오지만 다 온 것이 아니니

겨우 다 왔구나 하는 그 자리에서 또 다시 오는 것이 있다.

오고 또 오는 것은 본래 시작이 없는 곳에서 오는 것이다.

묻노니 그대는 어디서부터 왔는가?

 

만물이 돌아가고 또 돌아가지만 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

겨우 다 돌아갔구나 하는 그 자리는 일찍이 돌아간 적이 없다.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그 돌아간 자리는 돌아감이 없다.

묻노니, 그대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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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4-3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옛 선비들의 마음공부의 방향을 읽을 수 있는 글이다.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단순한 일생과 전기는 얼마나 하찮은가?
그들이 세상에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도 온전하게 자신의 중심을 지킬 수 있었던 공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눈 앞에 황진이가 옷을 벗고 야심한 밤에 화담의 문앞을 서성이던 장면이 스쳐간다.
그 앞에서 꼿꼿하게 자신을 지켰던 화담의 마음 속엔 이미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以覺爲我 夢者是誰 以夢爲我 覺者是誰

以生爲我 死者是誰 以死爲我 生者是誰

覺不知夢 覺是夢之幻 夢不知覺 夢是覺之幻

生不知死 生是死之變 死不知生 死是生之變

夢覺互幻 死生相變 而求我於其間 未得眞實處

世無一人 疑到於此者 噫擧世方在夢裏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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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6-02-1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몽쇄언]을 읽고 계시군요. 서늘한 달빛 아래에서 월창거사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게 꿈인지 생시인지..혹은 꿈도 아니고, 깨어있지도 않은 어떤 상태가 존재하는 듯 느껴지기도 하지요. 사랑하는 이야기를 함께 들으니 흐뭇합니다.

달팽이 2006-02-13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새벽 출근길에 밝은 달빛이 잔잔한 강물 위에 비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산위에 뜬 달이 진짜인지 물 위에 어린 달이 진짜인지 우리들은 알지 못합니다.
꿈을 꾸면서 경험하는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에게만 고유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제 꿈에 친구와 물을 뜨러 악어늪을 지나야 하는데 조심하라고 충고하지만 그 친구는 스스로 덤벙대다가 악어에 물렸습니다.
마치 내가 물린 것처럼 온몸이 아팠습니다.
물린 것은 친구가 아니라 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 느낌은 마치 생시와 다름이 없었지요..
깨어난 나는 온몸에 땀이 흥건히 젖어있음을 느꼈지요..
저마다 꿈꾸는 세상
저마다 사는 세상
모두가 한바탕 꿈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