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매력_2010.12.13
(삼상 25:42, 개역) 『급히 일어나서 나귀를 타고 따르는 처녀 다섯과 함께 다윗의 사자들을 따라가서 다윗의 아내가 되니라』
성경에서 나발은 ‘속이 좁고 무자비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는 매우 거부였고, 총명한 아내 아비가일을 둔 복이 많은 생을 살고 있었다. 다윗의 은혜를 생각지 않고 호의를 거절했던 나발은 하나님이 쳐서 죽었다. 그리고 다윗은 아비가일을 그의 아내로 삼았다.
단조로운 이야기의 흐름 속에 우리는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않곤 한다. 그러나 왜? 아비가일은 다윗의 청혼을 받아들인 걸까? 다윗이 매력적었나? 물론, 다윗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는 골리앗을 쓰러 뜨린 용감한 장군이면서 군대장관이었고, 천부적인 감수성과 음악적 재능으로 시와 악기 연주에도 능했다. 용맹함과 근육질의 몸매, 감수성까지 겸비했으니 아마 남자로써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비가일에게 청혼할 당시 다윗은 그만큼 매력적이었을까? 그는 군대장관에서 해임되었고, 왕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이나 말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다윗은 끝난 사람이었다. 누가 도망자의 아내, 언제 죽을지 모를 파리 목숨 같은 남자의 아내가 되고 싶을까?
다윗을 진정시키기 위해 급한 나머지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렸겠지만. 그의 청혼을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었다. ‘남편 죽은지가 얼마나 됐다구요...’. 더구나 그녀는 남편이 남겨 놓은 거액의 유산이 있었다. 얼마든지 편하게 남의 여생을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다윗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폭풍 같은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왜?
아비가일은 표면에 드러나 다윗의 수많은 단점과 장애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것을 관통해 다윗의 믿음을 봤다. 비가 쏟아지는 먹구름을 넘어서면 여전히 찬란한 태양이 세상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현실의 모든 먹구름을 넘어 다윗의 견고한 중심과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의 깊은 것을 통찰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단점을 뛰어 넘어 숨은 장점을 바라보는 능력’을 ‘아비가일식 통찰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매력’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매력을 갖고 있느냐고? 아니라면 또, 그 매력을 얻고자 달려야 하는 것이냐고.
예수님이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를 때, 그들이 그물을 버렸다고 했다. 그들은 이제 다른 일을 시작해야 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건 미친 선택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사람을 낚는단 말인가? 보이스 피싱인가? 한편, 그들은 직감했다. 사람을 낚는 데는 더 이상 그물은 필요 없다고 말이다. 그것은 적중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을 이끌어 오는 신적 권능이었다. 그들에게 매력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신적 권능이 있을 때 영혼들이 이끌려 왔다.
베드로가 그물을 던졌다. 밤이 맞도록 헛수고였다. 예수님이 던져보라 했을 때, 153마리가 그물을 찢기우며 딸려 올라왔다.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있어 ‘수단과 방법’의 중요성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또 묻게 된다. 그것이 결과를 위한 모든 것이 될 수 있느냐고. 수단과 방법, 매력 그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기억하자.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지 않을 때는 다 무용지물이란 것을. 매력이 매력다워지는 것, 수단과 방법이 가치 있게 되는 것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그것을 사용할 실 때 그 때 뿐이란 것을 말이다.
아비가일에게 청혼한 그 날 다윗에게 객관적인 매력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섭리했다. 아비가일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가장 중요한 매력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임을 이해했다. 우리는 어떤 매력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우리가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정작 우리는 ‘믿음의 매력’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여전히, 그렇지만 인간적인 매력, 수단과 방법의 매력, 객관적인 매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야 할까? 기억하자. 하나님이 섭리하지 않으면 그건 죽은 매력이 된다는 것을. 그러나 ‘믿음의 매력’은 정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매력이라는 것을. 다윗에게 그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매력은 아비가일을 반응하는 하나님의 섭리에 유용하게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