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의 파괴자_2011.1.1
(요 8:3-11, 개역)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간음하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그 현장에서 발각되었고, 어떠한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운명은 돌에 쳐 죽임을 당하는 율법의 형벌뿐이었다. 분명, 그녀는 새파랗게 질렸을 것이다. 반라의 몸에 가녀린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모세의 율법’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여야만 했을 만큼 유대인들의 근본적인 정신 사상이자,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것은 다른 의미에서 ‘고정관념’이기도 했다. 우리가 유대인을 비난할 수만 없는 것이 그것이 그들이 배운 사고방식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를 구타하는 것은 ‘패륜’이라고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돌덩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들이 손에 쥔 돌덩이. 그것은 ‘정죄’였다.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해,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 손에 든 것.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자신에게도 던져야 할 돌덩이를 남을 향해 들고 있는 꼴 있었다.
아, 너무나 견고하고 높은 저 ‘모세의 율법’. 누가 감히 도전할 자 있으랴!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세운 율법에 도전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일이자, 일종의 ‘민족적 패륜’과도 같아 보였다.
‘모세의 율법’이 정죄한 여자. 마땅히 돌로 쳐 죽이는 것 외에 다른 방도를 생각할 수 없는 여자. 그 여자를 향해 예수님께서 폭탄 선언을 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그것은 완전히, 전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대원칙의 파괴’였다. 유대인의 민족정신의 파괴자,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
훗날 요한은 예수님의 이 파괴적인 행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임을 다음과 같이 변론해준다.
(요 13:34, 개역)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렇다. 그것은 익히 없었던 새로운 계명, 새로운 율법이었다. 돌로 쳐 죽이는 법이 아닌 사랑 안에서 긍휼과 용서의 법이었다. ‘모세의 율법’을 들어 죄인들이 죄인을 정죄할 때,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죄인을 향해 ‘사랑의 계명’을 들어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다.
교회.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새 계명이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은 얼마나 어려운지. 교회 안에서 상처받고, 갈등할 때 우리는 ‘주님 보고 신앙생활 해야지요.’ 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때로는 나 자신부터 반성하게 된다. 형제, 자매의 뺨을 때리면서 ‘주님만 보고 신앙생활 해야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수님은 원칙을 파괴했다. 무엇인가? 원리와 원칙 그 모든 것 위에 가장 첫째 되는 원칙이 바로 ‘사랑과 긍휼’이라는 것을 말씀해주고 계시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