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이 격동될 때

(막 1:45, 개역)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예수님께서 병고치는 은사와 사역으로 갈릴리를 두로 다니실 때 한 문둥병자가 친히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많은 병자들이 나아 왔음에도 유독 이 한 명의 문둥병자를 클로즈업해서 다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예수님의 치료를 받은 후 특별한 지시를 받았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병고치는 사역으로 인해 지나치게 주목 받는 것과 사람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어 더 분주해지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문둥병자를 고쳐줌과 동시에 그에게 잠잠히 모세에게 병 나은 것을 증거하고, 어디가서 내 도움으로 나았다고 굳이 소문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예수님의 소문은 허다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문둥병자는 ‘예, 그렇게 하고 말구요’라고 대답했을 것이고,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정작 병이 낫고 나니까 동네로 돌아가 자신이 낫은 경위를 샅샅이 전파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병 나은 경위를 물었고, 그는 흥분에 도취되어 아낌없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탁은 알았지만 주의 깊게 유념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흥분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곤란을 겪은 사람은 다름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더욱 드러내어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나섰습니다.

아무튼 이 문둥병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비록 예수님의 부탁을 지키지 못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범죄의 문제로 귀결할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문둥병자가 약속은 했지만 그가 받은 은혜와 회복이 너무나 크고 감동적이고, 그 마음을 격동시키는 흥분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는 사건의 경위를 샅샅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나 우리가 이런 문둥병자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누구든지 그 마음이 격동되고 흥분될 때는 말할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문둥병자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교훈받을까요? 우리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다한다면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지 말라고 해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마음이 격동될 때 우리는 언제는 말하게 되고 맙니다.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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