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할 기회_2010.01.16
(히 12:17, 개역)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리스도인에게 회개란 것은 마치 한 잔의 물처럼 시원하다. 우리는 여전히, 늘 허물지고 연약하며 온전히 행하지 못하고 만다. 그러므로 회개란 것은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의 긍휼을 맛볼 수 있는 매우 신기한 묘책이다. 나의 잘못으로 앞뒤 하늘까지 꽉 막혔을 때라도 오직 단 하나 ‘회개’란 방편을 통해 다시금 나아갈 길을 되찾게 된다.
그런데 여기, 에서에 대한 증언을 통해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그의 기막힌 사연을 전해 듣는다.에서, 그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째서 그는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까? 하나님은 불공평하신가? 하나님은 이토록 잔인하신가?
그러나 이내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에서에게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원천적으로 에서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에서가 회개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서는 육신적으로 장자로 출생하여 장자권을 부여받았을 뿐, 사실상 그는 전혀 장자답지 못했으며 오히려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고 있었다. 사실 그는 사냥꾼으로써는 충분한 자격을 갖췄지만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야할 장자로써는 그 자질과 책임감을 조금도 소유하지 못한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는 단지 태에서 먼저 났기에 일방적으로 장자권을 부여받았을 뿐이다.
잠언 11장 22절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고 했다. 돼지코에 금고리가 전혀 어울리지 않듯 에서에게 장자란 신분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 에서의 치명적인 결함은 ‘신중함의 결여’이며, 동시에 ‘영적무지’였다. 그의 영적무지와 무능함을 관통해볼 때 사실상 그는 거의 ‘無靈者’(영이 없는 사람)같이 보여진다.
에서의 장자권이 단순히 육신의 장자권에 불과했다면 하나님은 굳이 그의 장자권을 야곱에게 양도하도록 하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장자권은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계보를 잇는 영적인 의미가 부여된 장자권이었음으로 하나님은 바로 이 ‘영적인 장자권’을 통찰하지 못하는 에서의 영적 무지함을 알고 계셨고, 그의 장자권을 영적인 사람 야곱에게 양도하게 하셨다.
한편, 야곱은 에서가 받은 장자권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조부 아브라함으로부터 아버지 이삭을 거쳐 후대까지 전해질 ‘영적 장자권’임을 관통해봤던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형 에서의 영적 무지를 보면서 ‘저 장자권은 오히려 내 것이 되어야 된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장자권이 주는 육적 풍요로 말미암아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탐낸 것이라면 그는 한낱 탐욕주의자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야곱은 육신적인 장자권을 탐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영적인 장자권을 탐냈고, 그것을 볼 줄 아는 영적 통찰력을 갖추고 있었다. 즉, 그는 진정으로 자격을 갖췄던 것이다.
자, 이제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 에서가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하나님은 에서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에서도 얼마든지 회개할 수 있었다. 그가 장자권을 뺏기는 그 찰나가 오기 전까지 그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은 기회를 충분히 주셨다. 그러나 문제는 에서의 태도와 삶의 방향, 그의 목적의식이 지닌 문제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에서는 완전한 사냥꾼이 되는 것 외에 영적인 그 어떤 것에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오랜 시간 장자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단 한 번의 기막힌 순간으로부터 말미암게 될 것임을 조금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찰나가 지난 뒤에서야 에서는 결핍을 발견했으며, 차츰 그 결핍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결핍이며, 무마할 수 없는 공허라는 현실을 감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미 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순간 에서는 지금껏 강한 남자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었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대성통곡해 보았지만 회개할 기회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우리가 누릴 행복과 기쁨을 빼앗아 가시는 잔인한 분이 아니시다. 언제든지 문제는 우리의 영적 무지이며, 우리가 영적으로 무지할 때, 언제든지 이미 받은 은혜를 빼앗길 위험에 처해 있다라는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은혜를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어서 영적 통찰을 갖지 못하게 되면 우리 역시 회개할 시기와 기회조차 놓쳐버리게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회개할 수 있을 때 회개하는 것이며, 우리가 불순종으로 구부러뜨린 불찰에 대해서는 기회를 잃어버리기 전 실제적인 행위의 돌이킴이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