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순종 2

누가복음 17장 7-10절에는 주인을 섬기는 한 종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 종은 주인의 밭을 갈고 양을 친다. 그날도 주인의 밭과 양치는 일을 힘껏 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는데 주인이 그를 불렀다. 주인은 고생했는데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주인이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예비하고 있어 내 식사의 수종을 들고 그 후에 네 것을 먹으란 말이었다. 그러자 종은 한마디 변명 없이 순종했고 그런 아름다운 순종에 있어 어떠한 사례도 받지 못했다. 왜냐면 그는 종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자신은 무익한 종일뿐이며 마땅히 할 것을 한 것뿐이라고 말이다.

내게도 주인이 계시다.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 말이다. 그분은 나를 친구로 삼아주기도 하셨지만 분명 나를 종으로 취하기도 하셨다. 그분의 피값으로 속전을 주고 사신 귀한 종.

그런데 나는 한 번도 내가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종의 신분으로, 종의 위치로써 그리스도를 섬겨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주님이라고 불러왔었는데...

내가 종이구나. 그런데... 종은 어떻게 주님을 섬기는 것이지??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종 된 사람을... 그가 주인을 섬기는 것을 한 번도 보질 못했다. 다만, 누가복음에서 그 종을 가늠해볼 뿐이다. 그리고 땅에 계셨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통해 볼 뿐이다.
 

누가복음의 저 아름다운 종을 보면서 내가 섬겨온 주님을 생각해보았다. 마음이 슬플 뿐이었다. 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정말 주님의 종이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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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순종 1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부근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가 접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예수님은 12제자 중 두 명을 선별하여 맞은편 마을로 가서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고 지시하신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분명 그 나귀의 소유주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 소유주가 남의 나귀에 왜 손을 대느냐고 따지고 들 것이므로 곤란에 처할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주님께서는 미리 할 말을 제자들의 입에 넣어주신다. 누구든지 왜 풀어가려느냐고 물으면 바로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제자들이 옆 마을에 당도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 곳에 정말 나귀 새끼가 매어있음을 보았고 거침없이 나아가 매어있는 것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했던바 옆에 섰던 사람들이 풀어다 어디 쓰려고 하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께서 쓰실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도 만류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의 합당한 이유와 목적은 필요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따져보아야 할 것은 실상 한 가지뿐이다. ‘주여, 과연 이것이 주의 행하심입니까?’ 구체적인 이유와 설득은 소멸한다. 주님의 명령이라면 우리는 그저 종의 순종을 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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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순종

교회 안에서 어떠한 사안에 대해 교제를 요청받고 제안을 받는다. 그런데 더러는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 얘기될 수 있다. 불행히도 내가 판단했을 때 결코 긍정적인 것 같지 않다. 정말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정말 그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런 갈등을 내놓고 교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어려움이 무던히 받아들여지고 관용될 수 있을 때라면 무슨 큰 문제가 있으랴.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이 변함이 없는 경우가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강요할 때도 있다. 나는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정말 아니라고 판단될 만한 것이 실제로 많이 있다. 그것조차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기억해보자. 세상이나 육신적으로도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것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그것들을 넘어서기도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갈등 앞에서 주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만 같다.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5)

주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취하신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아, 주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의 교회이다. 주님의 몸이다! 내가 교회를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가! 내 사랑이 비웃음이 될 만큼..

정말 그러하시다면.. 주님께서 죽도록 사랑하시는 이 교회를 통해서 나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실까? 정말 그러하실까? 나는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심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랑받는 교회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나를 낮추어 생각해보며 돌이켜 본다.

물론, 정말 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작 사람은 불완전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변명이 될 수 있었다면 믿음의 순종은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19:21)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길 바람으로 믿음의 굴복을 해보자. 그리고 주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종의 순종을 할 수 있길 기도하자. 만약, 사람이 정말 틀린 것이라면 주님께서 그것을 수보하실 것임을 믿어보자. 정작 주님은 그 사안을 떠나서라도 때로는 내 순종의 행위를 알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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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의 순종<07. 9. 5>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16:23)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얘기를 듣고 베드로는 용감하게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말하였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얘기하신다.

‘지금 네 뒤에는 사단이 와있다. 베드로 너를 미혹시켰구나. 나를 넘어지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베드로야 니가 지금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느냐? 그것이 사단이다.’

순종하기 힘들어 하는 내 앞에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는 지금 누구의 일을 생각하고 있느냐? 너의 그 조그만 머리에서 나온 알량하고 고집 쎈 생각과 지식을 좀 내려놓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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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진실_2006. 10. 23

 

순종은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사랑의 실천이고 표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랑하길 원하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행하길 원하면서 순종하지 않을 때는 그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 안에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순종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형태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생각지 않았던, 예상하지 않았고 원치 않던 모양이다. 당연히 우리가 원했던 모양의 모습의 순종이 다가온다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치 않는 모양으로 순종이 나아왔을 때 우리는 적잖히 당황하게 된다. 그제야 참된 순종의 비결, 순종의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원치 않는 모양의 순종을 만났을 때 순종을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그 결정 속에는 참된 그리스도를 섬김과 자아의 부인, 희생, 자기 뜻의 포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순종이야 말로 참된 믿음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믿음의 척도가 드러나게 된다. 그 한계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순종은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가장 빛나는 덕목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을 많은 부분에서 대변해준다. 그것은 자아에 속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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