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산적 그랍쉬와 땅딸보 부인 1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52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김영진 옮김, 롤프 레티히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대부분 서로 너무 다른 남녀가 만나 싸우고 친해지고 밀고 당기다가 연인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분이든 성격이든 취향이든, 주인공들이 '서로 너무 다르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에게 없는 것, 나와 다른 것 때문에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연애가 성사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도 마찬기지다. 연인이라면 모름지기 나와 달라야 매력이 있다. 하지만 또 그 차이 때문에 헤어지는 일도 다반사. 만나는 이유도 헤어지는 이유도 사실은 그런 것이다. "너는 나랑 너무 달라."

 

『거인 산적 그랍쉬와 땅딸보 부인』은 그렇게 만난 연인의 그 다음 이야기, 그래서 결혼까지 한 사람들의 다음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거인'이라 불릴 만큼 덩치 큰 그랍쉬는 마을 사람들을 모두 벌벌 떨게 하는 무서운 산적이다. 올리는 깐깐한 이모 아래서 조신하게 사는 데 지친 작고 통통한 아가씨다. 이 둘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주변(이라고 해야 올리의 이모밖에 없지만)의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한다. 여기까지는 이야기가 쌩하니 진행된다. 문제는 이 '해피엔딩' 다음부터다.

 

그랍쉬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갔고, 아빠는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할아버지 혼자서 그랍쉬를 키우면서 훌륭한 산적으로 만들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게 되었다. 도둑질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얼마쯤 자기 직업을 좋아하기까지 한다. 덤불이 우거진 동굴 속에서 쓰레기 더미와 더불어 살았고, 머리며 수염이며 자라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용감하고 당찬 올리는 그랍쉬를 무려 "새끼 양"이라고 부르며(처음 이 말을 들은 그랍쉬는 잠을 설쳤다) 수염도 다듬고 동굴도 청소한다. 그랍쉬는 그런 정도는 올리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참아 보지만, 도둑질은 어떻게 되질 않는 것이다! 그랍쉬는 산적이므로 도둑질을 해야 한다. 정체성의 문제다. 게다가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이제 먹고살 수가 없다. (동네로 내려가면 감옥에 갇힐 게 뻔하다.) 올리로서는 도둑질로 먹고사는 일이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돼지저금통에 코를 그려 넣는 일이 지겨웠던 걸 생각하면 숲 속의 모험은 너무나 신나지만 가끔은 문화생활도 누리고 싶다. 무엇보다 떳떳하게 살고 싶다. 둘은 사랑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심지어 아기까지 생겼다! 그랍쉬는 아기를 위해서 도둑질을 해야 하고, 올리는 아기를 위해서 도둑질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여기서 서로에게 얼마나 잘 맞추어갔는지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나는 책을 덮었을 것이다. (무려 두 권이나 된다고!) 둘은 아주 잘 싸운다. 끈질기게 고집을 부린다. 이러다 둘이 화해 못하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다. 다행히 싸우는 와중에도 짬짬이 애정 행각을 잊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다양한 애칭으로 부르는데, "쪽쪽 주둥이, 귀여운 꼬꼬닭, 기쁨 핥아 먹는 거인" 등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올리가 그랍쉬더러 "꼬마 킹콩"이라고 한 것이다. 얼마나 적절해?) 애정을 바탕으로 한 끈질긴 싸움 끝에 둘은 차근차근 답을 찾아간다. 그랍쉬는 도둑질을 봐가면서 하고(응?) 올리는 라디오보다 개구리 소리 듣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그랍쉬는 동굴은 별장처럼 두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새 집을 짓고, 올리는 그랍쉬가 훔쳐 온 병에 잼을 담아 팔아서 먹고살 길을 찾는다.  

 

산 속에 고립되어 살 던 그랍쉬는 결혼과 더불어 온갖 사건에 휘말리면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때로는 도움을 주고, 더 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랍쉬는 차차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올리는 숲 속에서 발가벗고 목욕하고 뛰놀면서 자유를 만끽한다. 엄마가 되고, 농사를 짓고, 꾀를 내어 먹고살 궁리를 한다. 2권까지 이어지도록 내내 둘은 싸우고, 화해하고, 모험을 함께하고, 자식을 낳고(많이도 낳는다), 한걸음씩 성장하다 아주 성대하고 따뜻한 결말을 맺는다.

 

친구든 연인이든 서로 달라서 좋아하고 그래서 갈등하는 사람이라면 어린이나 어른, 누가 읽어도 좋을 책이다. 서로를 위해 맞추는 것만큼이나 고집도 잘 부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속 깊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구드룬 파우제방 특유의 재치 넘치는 문장, 빙긋 웃게 되는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짧지 않은 책을 끝까지 읽게 한다. 그림을 그린 롤프 레티히는 그 유명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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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3-05-09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고집도 잘 부릴 줄 알아야 해요. 잘 지냈어요, 네꼬님?

네꼬 2013-06-12 16:18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잘 지내고 계세요? 저야 고집스럽게 놀고먹고 있죠. 호호. (노는 데 조금 지치고 있어요...)

도넛공주 2013-06-10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못 본 사이에 막 유부녀가 되어있는 네꼬님...

네꼬 2013-06-12 16:18   좋아요 0 | URL
도넛공주님! 못 본 사이에 저 유부녀도 됐고 백수도 됐어요!! 크하하. 공주님도 잘 있어요?
 

집 앞 생선가게에 갔다가 아저씨가 포장해주시길 기다리는 사이, 문 밖에서 동행을 기다리는 개를 보았다. 같이 오신 분이 누구인지 몰라서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는데, 의젓하게 서 있는 모양이 꽤 시크한 개인 것 같았다.

 

 

살짝 찌푸린 미간, 짧지만 당당한 다리, 억지로 입은 듯 주름진 옷...

 

 

 

하지만 나에게 굴욕 사진이 찍혔지.

 

 

 

 

눈을 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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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5-0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을 감다니요.. 견공은 바람의 향기를 음미할 뿐입니다...

네꼬 2013-05-03 11:31   좋아요 0 | URL
바람의 향기래. ㅋㅋ 근데 왜 전 메피님이 바람의 향기를 음미하시는 모습이 떠오를까요? ㅋㅋ

Mephistopheles 2013-05-06 09:13   좋아요 0 | URL
전 개가 아니라 곰인걸요. 꿀의 향기겠죠.

네꼬 2013-05-06 17:56   좋아요 0 | URL
ㅋㅋ 꿀 냄새 맡는 메피님 ㅋㅋ

프레이야 2013-05-02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ᆢ 옆모습이 더 멋지네요. 녀석ㅎㅎ 시크하긴^^

네꼬 2013-05-03 11:30   좋아요 0 | URL
눈은 좀 굴욕이지만, 어딘가 까칠한 매력이 있어서 좋아요. 호호. 너무 귀여운 개보다 이런 개가 전 더 좋더라고요.

비로그인 2013-05-0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을 감아도 고고하고 당당한 자태네요~아유 저 다리와 발!!

네꼬 2013-05-03 11:29   좋아요 0 | URL
글쎄 해찰 한번 안 부리고 의젓하게 저러고 있더라고요. 발이 너무 예쁘죠. 만져 보고 싶었어요. ㅠㅠ

레와 2013-05-0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젓한 견공. ^^

네꼬 2013-05-03 11:28   좋아요 0 | URL
잘생긴 건 아닌데 자꾸 보게 되는 마력~

마노아 2013-05-0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핫, 네꼬님과 생선가게도 재밌는 조합인데 거기서 만난 의젓한 견공이라니! 흥미진진한 이야기에요.^^ㅎㅎㅎ

네꼬 2013-05-06 17:56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제가 생선가게 앞에서 강아지를 만나서 좀 놀랐답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만져보고 싶었지만 실례가 될까 봐 참았어요.

무스탕 2013-05-03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지만 당당한 다리! 예리한 관찰이었어요!
동네에서 한자리 하는 멍인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지난번에 적은 고양이가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어요.
경찰서 직원들이 종이상자로 집을 마련해 줘서 어미는 상자안에서 새끼를 먹이고 있더라구요.
주변에 거친 사람이 없는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건물(뒷문)입구에 집을 뒀는데 그대로 잘 지내는듯 싶어요.
바로 옆이 식당이라 먹을것도 곧잘 챙겨주는것 같구요.
여섯 마리 모두 어미를 닮았어요. 무니가 다른 새끼가 한 마리도 없다니 섭섭할정도..
새끼들 모두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엄청 커요 :)

네꼬 2013-05-06 17:58   좋아요 0 | URL
자태가 남다르죠 ㅎㅎ

역시나 강아지 얘기 언제 나오나 하고 읽었는데 또 고양이 얘기네요. 하하.
그 고양이 어떻게 될지 걱정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헹, 다행이에요.
아기 고양이들한테는 너무 거친 세상이지만, 주변에서 잘 챙겨주신다니 다행이에요.
그런 거 보면 참 착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쵸, 무사탕님.
저도 고양이들 잘 살아라 하고 기원하고 있을게요.
 

지난 토요일, 아침도 못 먹고 공부하러 갔는데 성실한 조원들 때문에 원래 하던 것과 달리 열심히 하게 됐다. 그날 따라 책을 여러 권 들고 가야 했는데 저녁엔 결혼식에 가야 해서 입을 옷이며 동선이 복잡했다. 남편이 차에 갈아입을 옷을 싣고 왔는데 (나 무슨 연예인) 전날 챙겨둔 그 옷을 입기엔 낮의 날씨는 너무나 쨍쨍. 어쨌든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나달나달했다. 3시가 다 되어 갈비탕 한 그릇을 흡입하고 어찌어찌 결혼식을 갔다가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에서 맛없는 부페 음식을 계열 없이 몇 점 먹고 집에 오니 한밤중. 나는 피곤해서 어깨가 무릎까지 떨어졌고, 더웠다 추웠다 해선지 어째 춥기까지 해 그만 좀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안됐는지 남편이 냉장고를 뒤져 뜨거운 토마토수프를 끓여주었다. 뜨거운 토마토수프를 먹고 나는 그만 문어가 되었다.

 

 

 

 

네꼬남(편)의 토마토수프

 

1. 양파를 얇게 썰어 버터에 달달 볶아요. 많은 레시피에서 "양파가 갈색이 될 때까지" 볶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팔이 아파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요. 그 마음 잘 압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러면 안 돼요. 네꼬남 말씀이 "양파 볶기가 수프의 절반"이라고 합니다.

 

이랬던 양파가

 이렇게 될 때까지 볶으세요.

 

2. 닭육수 또는 치킨스톡을 넣고, 토마토, 토마토소스, 월계수잎, 기타 허브 등 넣고 싶은 것을 몽땅 넣고 끓입니다.

 

3. 계속 끓입니다. 중불이 좋겠지요.

 

4. 때를 보아 전분물을 풀어서 걸쭉하게 만듭니다. 이정도 되게요.

 

 

 

5. 먹기 전에 소금으로 간하고, 타임이나 바질 등을 넣으면 좋겠지요.

 

 

*

 

어제는 노동절. 나는 노동자가 아니지만 노동자 남편을 앞세워 나들이를 나갔다. 완전 오래간만에 찾은 환기미술관은 조용했고, 홍대 앞 길바닥에서 마시는 낮술도 썩 좋았다. 5월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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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5-0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위에 모짜렐라 치즈 두껍게 얹어서 오븐(전자렌지)에 돌리고 나서 크래커를 부셔 휘휘 저어 후루룩 마시면...(TGI..어니언 스프..)

네꼬 2013-05-03 11:28   좋아요 0 | URL
크크크. 맞아요, 치즈가 있으면 좋죠! 어제도 그렇게 먹었어요. 근데 크래커 생각은 못했네요. 네꼬남이 만들어준 빵은 넣어서 먹었습니다만. (에헴.)

2013-05-03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3 1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3-05-0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왕!! 당장 만들어보고 싶당...!

네꼬 2013-05-03 11:24   좋아요 0 | URL
레와님은 빵도 잘 만드니까 수프랑 같이 해서 먹어요. 으왕 맛있겠다! (추릅)

hnine 2013-05-0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군이 혹시 프로 요리사?? 치킨스톡 넣어 요리할 줄 아는 남자분 많지 않으실텐데요, 흠...훌륭하십니다. 이거 일단 만들어놓으면 식구들 잘 먹을 것 같아서 저도 몇번을 시도하려다가 허브, 닭육수에서 딱 막혀버리곤 한답니다.
제일 감동적인 부분은, 남편분께서 네꼬님의 지친 모습을 보고 뭔가 기운날 음식을 만들어줄 생각을 하셨다는 것이랍니다.

네꼬 2013-05-06 18:02   좋아요 0 | URL
으헤헤 hnine님 댓글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쑥스러워하면서 좋아했어요. (집에선 프로 요리사~) 수프 끓일 때 제가 만든 닭육수(에헴)가 있을 땐 그걸 쓰고, 급할 땐 그냥 치킨스톡을 쓰지요. 전 사실 둘 다 좋아요. 저희는 곰국 끓이듯 수프를 잔뜩 끓여놓고 먹어요. 으왕, 맛있죠 맛있어요. 살짝 자랑하자면, 허브는 남편이 베란다에서 키운답니다~ (어머 닭살)

... 저 막 이런 댓글 달면서 좋아서 웃고 있어요. 저 너무 못났어요?

마노아 2013-05-03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악, 여기서 핵심은 네꼬'남'입니다. 완전 부러워요. 오월을 네꼬님이 이미 다 선점한 것 같아요. 아흐 동동다리...ㅜ.ㅜ

네꼬 2013-05-06 18:03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은 악, 역시 핵심을 아셔. 저 그거 지어내고 혼자 막 좋아했는데 으히히.
 
내가 찾는 친구 웅진책마을 49
슈르트 카위퍼 지음, 김영진 옮김, 정승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일곱살 메스는 단짝인 팀이 전학 갈 예정이란 소식에 상심하지만, 남은 몇 주 동안 둘만의 언어를 만들고 장난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마지막 날 둘은 (아마도 난생 처음일) 어색한 작별을 하고 돌아서는데, 그날 밤에야 메스는 자기가 팀의 멋진 주머니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구의 그토록 소중한 물건이 나에게 있다니! 메스는 다음날 일찍 팀의 집을 찾아가지만 이미 친구네는 이사간 뒤. 설상가상으로 일이 꼬여 부모님한테도 사태를 설명할 수 없게 된 팀은 홀로 기차를 타는 모험을 하고, 신문에 광고를 내고, 노래자랑에 참가하는 등 고군분투한다.

 

정말이지 너무나 쿨한 주머니칼, 내 물건이 아닌 걸 갖고 있는 불편함, 애타게 보고 싶은 친구,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막막함, "하도 커서 메스 머릿속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계획. 아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만한 고민과 나름대로 긴박한 사건 전개가 책을 끝까지 읽게 한다. (무엇보다 친구를 만나는지 못 만나는지 알아내야 하니까!) 네덜란드 동화작가 슈르트 카위퍼의 1991년 작품으로, 네덜란드에서는 TV 시리즈와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모라면 혹시 주머니'칼'이란 소재 때문에 저어할 수도... 그래서일까? 작품성과 재미에 비해 덜 알려진 것 같다. 아이들은 소설적 재미에, 어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엿보는 즐거움과 교훈(-_- 남의 물건 갖고 있으면 안 된다~, 농담입니다)에 더 점수를 줄 것 같다. 나로서는 조금 더 웃겼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 놓칠 수 없는 재미: 닭어

메스와 팀이 만든 둘만의 언어로, 닭의 "꼬꼬"처럼 모든 음절을 "오"로 끝나게 변형하는 것이다.

"오곳 좀 보" (이것 좀 봐.)

"오 촉 촘 조모옸오." (이 책 참 재미있어.)

눈으로 읽다가도 이 대사들은 소리내어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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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5-0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 촌고논 오도 옸올꼬? 노도 촌고 촞오고고 솦오조오~
또로호조 옪올 소고 옶오오 헥헥~

네꼬 2013-05-03 11:23   좋아요 0 | URL
호호호. 온존 조모옸오오! 온곤 종독송옸오오. 조도 고롰도노꼬오.

(헥헥. 이거 하다 보면 막 저도 모르게 입이 닭처럼 돼요. 낄낄낄. 아 재밌다.)
 

백수가 된지 두 달여 되어 간다.

알라딘 서재에 퇴사 소식 전한 거랑, 트위터에 가끔 한두 마디 올린 것 말고는

문장을 만든 일이 거의 없다.

편집자로 지낸 13년, 문장을 들여다보고 고치고 만들고 하는 데 지쳤나 보다.

(더 오래 하시면서도 열정을 잃지 않는 선배들을 떠올리고 보면

사실 난 적성에 안 맞는 거였어, 무릎이 꺾인다. ㅠㅠ)

 

퇴사하고 한 달 남짓은 오히려 전보다 바빴다.

회사 다니는 동안 바쁘다고 미루어온 만남들도 있었고,

마무리 단계라 손을 못 떼서 갖고 나온 일도 좀 해야 했고,

은행일이며 운전면허 갱신 신청 같은

사소한 듯하지만 중요한데 평일 낮에만 할 수 있는 일들도 해야 했다. 

틈틈이 밀린 TV 시청도 해야 했다. (실망스럽게도 낮엔 재밌는 게 별로 없었다.)

새로 뭔가 배우는 걸 하나 등록해서 일주일에 두 번 서울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가급적 버스를 타기로 마음 먹어 버리는 바람에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시간, 거기서 버스 타고 서울까지 나가는 시간,

내려서 공부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바쳐야 했다.

그리고 돈 내고 단체기합 받고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한 뒤 허기진 채로 집에 돌아와

선 채로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요가 선생님을 미워하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이것,

회사 다닐 때는 주말에 몰아서 하던 집안 일의 프로세스를 새로 만든 것이다.  

매일매일 집에 윤이 나게 하겠다는 과욕과 내가 이러려고 백수 됐나 하는 낙담 사이를 오가며

죽 끓는 듯한 변덕을 퐁퐁 부리다가_참아주신 남편님 감사합니다_

조금 귀찮아도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는 적정 강도를 겨우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 조금씩 한다'는 것이다. (역시 파랑새는 우리집에 있었어!)

물론 난제들도 남아 있다.

만날 낡은 옷만 입고 있긴 싫은데, 집에선 대체 무슨 옷을 입고 있어야 되는 거지?

 

 

사실은 한동안 알라딘에 서운하고 서먹해서 다른 데 블로그를 열려고 했다.

새로운 일을 구상하는 데 필요해서, 일로 하는 것도 절반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하면 막 처량해지고

다음 포스팅을 올릴 재미도 안 났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 답을 찾았다.

 

일을 해온 13년, 고생도 하고 상처도 받았지만 대체로 즐거웠고 후회가 남지 않는 것,

출판에 대한 굳은 신념이나 각별한 자부심도 없고,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투철한 사명감 같은 것도 없던 내가 이만큼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그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 인생의 한 장이 넘어갔다는 생각에 엉엉 울었지만

미련이 남지 않았던 것도, 그 일을 충분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블로그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는 친구들이 좋고, 친구들한테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는 게 좋고,

친구들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훈수 두는 게 좋다.

여기 오니까 신난다. (이럴 줄 알았지, 내 이럴 줄 알았어.) 

강아지 연구소도 열고, 표 안나게 서재 손질도 좀 했다.

 

 

 

앞으로 자주 쓸게요!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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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3-04-25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저 문장을 꼭 지켜야 해요, 네꼬 님! (외침)

네꼬 2013-04-27 01:20   좋아요 0 | URL
치니님 치니님! (외침)

LAYLA 2013-04-2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꼭 자주 쓰세요! (외침)

네꼬 2013-04-27 01:22   좋아요 0 | URL
LAYLA님! (외침) 옛썰! (외침)

LAYLA 2013-04-25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뒤의 사과는 아...군침 도네요.

네꼬 2013-04-27 01:23   좋아요 0 | URL
허기지고 목마르고 위로가 필요하니까요. 달고 시원한 게 필요한 거죠.

LAYLA 2013-04-2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요가 뒤에는 꼭 파란 사과를 먹어야 할 거 같아요.

네꼬 2013-04-27 01:23   좋아요 0 | URL
사실은 맥주를 마실 때가 더 많습니다.... (나란 여자)

Mephistopheles 2013-04-25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안쓰면 고발 들어갑니다. (외침)

네꼬 2013-04-27 01:23   좋아요 0 | URL
어머나 반가운 메피님 식 환영. (크하학)

hnine 2013-04-2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수'라니요. 출퇴근 하는 직장 안다닌다고 백수는 아니지요.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한 백수라고 부르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두주먹 불끈)
강아지 연구소라는 말씀에 눈이 반짝 합니다.

네꼬 2013-04-27 01:25   좋아요 0 | URL
저 저 저 생산적인 일 안 하는데... 라고 썼다가, 아냐 밥도 하고 가끔 책도 읽고 빨래도 하니까 생산적인 일이지, 하고 어쩐지 흥분했습니다. hnine님 반가워요. 헤헤. 강아지 연구소 야심찬 개업!

다락방 2013-04-25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고 볼거에요, 앞으로 정말 자주 쓰는지.
서재브리핑에서 네꼬님 이름을 보니 참 좋으네요.
:)

네꼬 2013-04-27 01:26   좋아요 0 | URL
다락님, 어쩐지 콧소리 넣어서 불러 봤어요. 내 서재 안 와도 다락님 서재는 가보곤 했다요.

순오기 2013-04-2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네꼬님 서재가 안보여서 마노아님한테 물어봤더랬어요.
무슨 일 있는가 하고...
오래만에 소식을 들으니 반가워요, 한동안 뜸했지만 우리 자주 만나요!!(외침)

네꼬 2013-04-27 01:27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가워요! 무슨 일 없어요!! 자주 만나요!!! (점점 더 큰 소리로 외쳐 보았습니다.) 잘할게요!!!! (고함)

프레이야 2013-04-25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년 일하시고 두달째, 백수 아니고 백조라지요^^
네꼬님 자주 경쾌한 페이퍼 올려주세요.
강아지연구소는 뭘까요? ^^ 기대기대^^

네꼬 2013-04-27 01:28   좋아요 0 | URL
강아지 연구소는 반응이 시작부터 좋군요. 으헤헤헤. 제가 강아지 사진 엄청 갖고 있으니 하나씩 풀겠어요. 기대하시라! 크항 (와 근데 백조랑 저는 정말 안 어울리네요! ㅎㅎ)

마노아 2013-04-26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네꼬님의 외침이 메아리가 되어서 제 귀에 울리고 있어요요요요요~
반갑고 기뻐요. 우리는 마치 친정 식구 같은 사이~ 난 무조건 네꼬님 편~(응?)

네꼬 2013-04-27 01:29   좋아요 0 | URL
들어갔어요오오오오오오? 마노아님 보고 싶어요. 우리 본지 넘 오래다. ㅠㅠ 무조건 내 편이라니, 여러분 들으셨죠? 으하하.

레와 2013-04-26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다... ^^

네꼬 2013-04-27 01:29   좋아요 0 | URL
레와님도 참. 만날 좋대. (히죽히죽) 빵 또 구워요!

웽스북스 2013-04-26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만에 서재들어와서 네꼬님 글 보고 뒷북으로 방가워하는 웽디양 ㅋㅋ

네꼬 2013-04-27 01:31   좋아요 0 | URL
웬디다 웬디다 웬디가 나타났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웬디님.

이순화 2013-05-0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직설적으루다가 난 본명을 쓰리다... 닉네임을 쓰지 않은 자 나뿐이군...
서재 손질 오디 오또케 했다는 걸까...
책 만든 일을 좋아했다는 거 행운이라 생각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먹고 산답시고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지...

집에 항상 끓인 보리차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 집안 물건들이 늘 자기 자리에 놓여있게 하는 것,
깨끗하고 빳빳하게 세탁된 속옷들이 각잡고 서랍장에 앉혀져 있어 목욕 후 쏙 끄집어내는
재미를 맛보게 하는 것, 몇 개 안되는 화분의 화초가 늘 생기있게 푸르도록 하는 것,
주부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도 전담업무가 된 이런 일들을 나는 요즘 너무도 부지런히 챙겨하는
중이얌. 좀 집착한다 싶을 정도로. 중요한 건 가족들에게 엄청 생색을 내야 한다는 것.
자기PR을 하는 거지.

곧 시간 만들어 보자구.

네꼬 2013-05-02 15:31   좋아요 0 | URL
으왕 선배~ 반가워요! 으앙.
서재 손질은 정말 저만 알게 해놨어요. ㅋㅋ
선배가 위에 쓰신 주부의 전담 업무, 저는 그것들을 겨우겨우 하고 있어요. (그것들만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선배는 회사에서 그 엄청난 일을 하시고, 게다가 주부까지 하시니 (육아는 또 어쩔...) 대단하심다. 저는 저는 그렇게 못해요. 흙. 그러니까 마구 생색내시고 마구 박수 받으세요. 마땅한 일입니다.
빨리 만나요! 집에 놀러 오세요. 응? 올웨이즈 웰컴.

이순화 2013-05-0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댓글 이렇게 길게 적는 거 촌스런 건가봐... 담엔 짧게...

네꼬 2013-05-02 15:31   좋아요 0 | URL
(비밀댓글들의 길이를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