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은 아무래도 피곤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수속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여기서 집까지 또 어떻게 가나 걱정이 될 정도였다. 좀 사치스럽더라도 차를 공항에 두자고 할 걸 그랬나 하는데 앞서 걷는 아저씨의 통화 내용이 들린다. 익숙한 듯 차 번호와 차종(비싼 차였다)을 대는 것을 보니 맡겨 놓은 차를 찾으시는 모양이었다. 하얀 바지에 분홍 셔츠, 재색 카디건 어디에도 주름이 없었다. 부인으로 짐작되는 분도 비슷한 차림이다. 일등석을 타셨나 보다. 나 좀 부러운가?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부러웠던 것은 노보리베츠의 온천 호텔에서 마주친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우리한테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 만큼 장난스럽고 재미있는 분이셨고, 할머니는 무척 조심스러우면서도 내내 웃는 얼굴이셨다. 할아버지는 호텔의 큰 개 사진을 찍는 사람들한테 빙글빙글 웃으며 이 개가 몇 년 전에는 요렇게 조그마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컸다고 아는 척도 하시고, 당신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짖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시면서도 사진을 찍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개에게도 피해를 줄 까 봐 (그럴 리가 없는데도) 조심하셨다. 다음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목욕탕에 갔는데, 들어가는 길에 이미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노부부와 마주쳤다. 내가 인사를 해도 될까 망설이는 사이에 두 분이 먼저 인사를 하셨다. 그 짧은 사이에도 할아버지는 열쇠를 떨어뜨리시면서 아이코 하시고,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시면서 할아버지를 챙기셨다. 나는 그분들이 부러웠다. 나중에 남편이랑 저런 노부부가 되고 싶다. 아마 내가 할아버지 같고, 남편이 할머니 같겠지만.
그리고 또 나는 공항 가는 기차에서 본 중년 부부가 부러웠다. 청바지에 재킷, 운동화를 신은 아저씨는 작은 여행 가방을 끌고 타셨다. 아주머니는 간편한 티셔츠에 머플러를 두르고 계셨다. 자유석 칸이었으므로 우리도 그분들도 서서 가야 했는데, 두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디를 가시는지 몰라도 그분들 역시 그런 여행이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주머니를 훔쳐보고 나도 좀더 나이가 들면 꼭 숏컷을 해서 자연스러운 은발이 되어야지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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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내내 비바람과 함께 다녔지만 홋카이도는 재미있었다. 지루할 만큼 실컷 기차를 타고, 버스로 캄캄한 산길을 올라 평생 잊을 수 없을 안개를 보았다. 시골 술집에서 주인 아주머니, 손님들과 함께 나는 겨우 10%, 남편은 80% 알아듣는 술 수다를 떨었다. (10%는 네, 전혀 소용 없지요.) 연어알이 얼마나 맛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조그만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바다를 소재로 한 그림책을 읽었다. 빗방울을 얼굴에 맞으며 온천욕을 했다. 빗속을 뚫고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람 부는 언덕을 사진 찍었다. 맛있는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 빵을 먹었다. 맥주를 마시고, 양고기를 먹었다. 유리로 만든 아주 작은 강아지 인형을 샀다. 친구에게 주려고 나무로 만든 장난감도 샀다. 재미있었다.
날씨 운은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다행히 집으로 오는 버스는 금방 탈 수 있었다. 여행 전에 아주 깨끗이 정리하고 간 덕에 집은 쾌적했다. 남편은 여행가방을 열고, 그 옆에 빨래 바구니를 가져다 놓았다. 빨랫감을 챙기다 보니 순식간에 짐 정리가 됐다. 우리는 금방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또 떠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