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에 아버지는 아담한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멜로디를 살짝살짝 바꿔 가며 연주해 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곁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그럴 때면 커다란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카펫에 선명한 사각형을 새겨 놓곤 했다. 내가 트럭과 자동차를 사각형 안으로 몰아넣으면 마치 그 차들이 빛의 도시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34쪽)
화가가 글로 묘사하는 어린시절의 풍경들이 그림보다 훨씬 선명하게 떠오른다. 선교사 부부의 손자로서 중국에서 태어난 영국인 아기는 아들이 강인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를 실망시키며 미국, 캐나다, 인도를 전전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전쟁의 광풍, 정착하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 꾸준히 혼자 자라는 어린이. 그의 외로움과 걱정, 가끔씩 빛나는 낙천성이 침착하게 그려진 책이다. 기억도 기억이지만 그것을 침착하고 끈질기게 글로 표현하는 힘이 결국 그림도 그리게 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노먼 록웰의 그림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반가웠다. 올해 첫 독서로 일과는 상관 없는 책을 골라 들었는데 결국은 쓰는 일과 그리는 일, 어린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그림책 『냄새차가 나가신다!』로 유명한 제임스 맥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