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회사를 바꾸었을 뿐인데 두 회사 분위기가 얼마나 다른지, 마치 직업을 바꾼 것 같았다. 늘 긴장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랬기 때문에 번번이 실수를 했다. 일도 사람 관계도 다 어려웠다. 살면서 그렇게 자신감이 추락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버티겠다고 마음 먹었고, 헤엄치는 마음으로 띄엄띄엄 책을 읽고 엉망으로 끄적였다(수영을 못한다..). 다락님을 만난 건 그때였다. 독후감 써봤자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다락님처럼 인기 많은 사람이, 게다가 미녀가(그땐 진짜 안젤리나 졸리처럼 생긴 줄 알았..) 내가 징징대며 써내려간 메모에 댓글을 달았다니, 좀 문화 충격이었다. 여기는 막 그러는 덴가 봐. 게다가... 마음을 담아서 썼어!

 

나는 맥락을 따지지 않은 호의, 남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어떤 힘을 갖는지 다락님한테 배웠다. 물론 여기에는 적절한 간섭과 현명한 거리두기가 포함된다. 다락님 덕분에 나도 나만의 개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한테 관심을 가지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것, 특정 책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나와 다락님은 취향이 별로 겹치지 않는다. 다락님의 서재를 찾는 그 많은 친구들 중에 나 같은 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녀의 글들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은, 다락님이 사람에도 문학에도 세상에도 그런 호의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솔직하게 쓰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다락님이 책을 준비한다면서 '흔한 블로거 글 모음'이 될까 봐 걱정하고 '서평 잘 쓰는' 다른 사람과 비교될까 봐 걱정할 때 나는 그딴 소리는 집어치우고 맥주나 마시라고 했다. 그리고 책을 만드는 쪽에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독보적인 매력이 있는 필자라고 말해 주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댓글과 거기 대한 댓글들,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온기를 보라고 했다. 다락님이 좋은 필자인 것은, 그런 교류를 통해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생각을 수정하고 또 고집하면서 늘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한 다음, 내가 생각해도 말을 참 잘한 것 같아서 술 먹다 까먹을까 봐 핸드폰에 메모해두었다!)

 

다만 나는 다락방이 아니라 네꼬인 관계로 우리의 다락님을 이제부터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아직은 마뜩찮다. 이 옹졸한 네꼬의 질투까지도 마음 넓은 다락님은 이해해주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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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3-11-25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말을 한 다음, 내가 생각해도 말을 참 잘한 것 같아서 술 먹다 까먹을까 봐 핸드폰에 메모해두었다!)

ㅋㅋㅋㅋㅋ 아 귀여운 네꼬님 ㅋㅋㅋㅋㅋ

네꼬 2013-11-25 22:49   좋아요 0 | URL
쳇 그러면서 왜 만날 놀려먹는 거요! 똑똑하면 다요? 다요. (읭)

레와 2013-11-2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유하기 싫어요.. ㅡ.ㅜ


하지만 책은 많이 팔고 싶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네꼬 2013-11-25 22:50   좋아요 0 | URL
아아 그쵸. 레와님, 제 말이 딱 그거예요. 책 많이 팔렸으면 좋겠고, 공유는 하기 싫고.. 역시 방법은 우리가 많이 사는 거...?

아무개 2013-11-2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같진 않겠지만 대부분 다락방님이 거의 먼저 마수(?)를 뻗치셨군요.

저도 다락방님의 호의 가득한 댓글덕에 여태 알라딘에서 버티고 있는데요 ㅎㅎㅎ

네꼬 2013-11-25 22:5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마수인 것입니다. 거미줄일 수도 있고요. 그럼 우린 다락님의 거미줄에 옹기종기 매달린 곤충.. 아니아니, 이슬이라고 해두죠;;;

치니 2013-11-2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줄에 참 공감가요. 하지만, 좋은 건(사람은) 늘 그렇게 되더라고요, 나 혼자 꽁꽁 싸매지질 않고. :)

네꼬 2013-11-25 22: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우주의 흐름인 것인가!! 그러나 저는 당분간 더 꽁해 있겠습니다. 제가 젤 잘하는 것 중 하나죠. 꽁. ㅋㅋㅋ

paviana 2013-11-25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노가리 먹을줄 아는데....ㅠ ㅠ

네꼬 2013-11-25 22:52   좋아요 0 | URL
허허 파비님. 저는 노가리보단 멸치파예요. 사실 패이보릿은 쥐포. 그럼 한 쥐포 하실까요?

moonnight 2013-11-2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다락방님이 너무 바빠지셔서 내 댓글에 답 안 해 주실지도 몰라. 라는 패닉 -O-;;;;;;;

다락방님도 네꼬님도 어쩜 이렇게 따스하신지. 그리고 다락방님이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게ㅎㅎ 맥주나 마시라고 말해주셔서 고마워요. 네꼬님. 수고하셨어요. ^^

네꼬 2013-11-25 22:53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우리, 다락님이 우리 댓글에 대꾸 하나 안 하나 같이 지켜보고 있다가 변심한 것 같으면 막 뭐라고 그럽시다. 같이요. 알겠죠?

실제로는 좀더 과격하게 했어요.. 음.. 잔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나란 여자 터프한 여자.

Mephistopheles 2013-11-25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면 이런 대사가 있어요..

릭(험프리 보가트)이 옛 애인을 그것도 자신을 배신한 애인(잉그리트 버그만)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경찰서장이 이런 말을 하죠.

"내가 여자였으면 반드시 당신과 결혼했을 것이다." 라고요.

네꼬님도 거의 내가 남자였음 다락방님과 결혼 혹은 연애했을 것이다...까지 보여지는 페이퍼네요...

네꼬 2013-11-25 22:54   좋아요 0 | URL
(정중) 메피님, 그러나 죄송하게도, 제가 남자였다면 여자로 태어났을 남편하고 결혼했을 겁니다. (진지) 아마 다락방님도 그걸 원하실 겁니다. (어쩐지 한숨)

Mephistopheles 2013-11-26 09:58   좋아요 0 | URL
남편님 검열이 의심되는군요.

네꼬 2013-11-28 17:42   좋아요 0 | URL
노코멘트. ㅋㅋㅋㅋㅋ

하늘바람 2013-11-2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우리 다락님이어서 생긴 질투 전 그 질투가 질투나네요

네꼬 2013-11-25 22:55   좋아요 0 | URL
하하 재밌는 얘기네요, 하늘바람님! ㅎㅎ 질투는 질투를 낳고 그 질투는 질투를...?

2013-11-27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8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13-11-26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책 출간 소식을 이렇게 여기서 네꼬님께 듣네요.
정말 멋진 소식이에요.

네꼬 2013-11-28 17:41   좋아요 0 | URL
섬사이님 오래간만이에요! 멋진 섬사이님 (응? ㅎㅎ)
 
[잘되는 집안의 10cm 비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잘되는 집안의 10cm 비밀 - 풍수 인테리어를 이용한 정리와 배치의 기술 내 손으로 하는 풍수 인테리어 시리즈 1
이성준 지음 / 예문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풍수 인테리어'라는 말은 어떤 잡지에서 처음 읽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외투와 모자, 가방 등을 바로 옷장에 넣지 말고 잠깐 밖에 걸어두어 바깥의 기운을 완화하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읽고 그동안 내가 '풍수'를 막연히 기복신앙의 일종으로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외투에 묻혀 온 찬 공기, 냄새 같은 것들을 적당히 완화하고 정리하면 쾌적하고 좋겠지! 생각해보면 일이 잘 되게 하려고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무언가를 두라는 내용일 텐데. 풍수란 그런 건가 보구나.

 

이 책의 부제 역시 풍수를 그렇게 설명한다. '풍수 인테리어를 이용한 정리와 배치의 기술'. 책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부제다. 이 책은 다른 건 안 해도 이것만 이렇게 하면 돈이 굴러 들어온다거나, 이런 터에 자리 잡은 가게는 그냥 대박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집안이 잘되는' 정리와 배치의 기술은 꽤 종류가 많고 내용도 세세해서 오히려 잔소리에 가깝다. 그런데 그 잔소리는 다음의 몇 문장으로 요약될 것 같다. 집안을 계속 점검하고 돌봐라. 가족끼리 서로 바라보고 살면서 늘 챙겨라. 무엇도 너무 빡빡하게 하지 말아라. 유행보다 실용성을 따져라.

 

이를테면 늘 기가 통하도록 집의 중심 동선과 복도 등에 큰 물건을 두지 말라거나, 현관을 늘 깨끗이 유지하라거나, 식탁 조명을 밝게 하라는 것, 모서리에 화분을 두라는 식의 조언은 공간을 필요에 맞게 조정하고 물건을 있어야 할 곳에 두라는 말이어서 조언이라기보다 상식적인 말 같다. 그렇지만 이런 말을 계기로 집안을 둘러보면 구석구석 한 번 더 손이 간다. 쾌적하게 자야 하는 침실에 잡스러운 물건은 없는지, 어두운 기운이 모이기 쉽다는 벽장 앞에 자잘한 물건들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과한 장식품이 거실 분위기를 해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 잘 신경쓰게 되지 않는 베란다 등에 풍경을 걸어 이따금 소리가 나게 하라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집을 깨어 있게 하라는 말씀이군. 제목에서 드러나듯 큰 틀은 가구와 벽, 가구와 가구 사이 '10cm'의 틈을 두라는 것이다. 그것이 기의 흐름을 트기 위한 핵심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습기도 덜 차고 청소도 쉽고 보기에도 여유가 있어 보일 테니 다음 번 가구 배치 때 고려해봐야겠다.

 

금전운을 좋게 하려면 주방의 매트를 초록색으로 하고 침실을 노랑과 금색을 꾸미라거나, 화장실은 흰색과 겨자색을 쓰고 공부방에는 빨간색이 적절히 있어야 한다는 식의 색채 조언들도 있다. 얼핏 보면 앞서 말한 '기복신앙'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색채 심리'나 마찬가지다. 초록색을 보면서 안정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 공부할 땐 빨간색에서 약간의 자극을 받고 하는 식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식탁은 가급적 둥근 것으로 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일수록 마주보고 밥을 먹게 하고 아이가 아프면 잠자리를 먼저 살피라는 등 가족에 대한 부분도 많다. 그런데 몇 군데에서는 저자가 독자의 오해를 피하려 복선을 깔았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부장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남편)'을 중심으로 기술된 부분, 집에서 기운이 가장 넘치는 잠자리를 남편에게 주라거나 '집사람'이라는 말도 '집 사랑'으로 볼 수 있지 않냐거나 하는 대목들이 그랬다. (읭..) 풍수학도 좀 현대화해야 되지 않을까? 또 본문에 예로 제시된 인테리어 사진들은 풍수 지침에는 맞을지언정 아름답지는 않다;;; 예시들이 예뻤으면 독자들의 '집 정리' 의욕을 더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새롭게 집안을 꾸밀 때, 생활에 의욕이 떨어져 새 기운을 찾고 싶을 때 참고하면 좋을 '정리정돈' 지침서다. 더불어 이렇게 하면 정말 복이 올까 하는 기분 좋은 기대를 가져보는 것도 재밌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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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페파 2013-11-18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갑니다.

네꼬 2013-11-25 12:5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13-11-18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이 책소개 잠깐 보고 잊어버렸는데 리뷰봤을때 우리집도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네꼬 2013-11-25 12:50   좋아요 0 | URL
으앗. 네, 집 정리하실 때 한번 참고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하늘바람 2013-11-18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우리집좀 바꿔야겠어요

네꼬 2013-11-25 12:51   좋아요 0 | URL
저는 많이 바꾸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참고하기는 좋은 책인 것 같아요.

z1 2013-11-18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네꼬님이 잠깐 언급하셨던게 인상에 남아서 주문은 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포스팅 보니까 읽고싶은 욕구가 다시 막 샘솟네요 ㅋㅋ

네꼬 2013-11-25 12:52   좋아요 0 | URL
스피드퀴즈님 안녕하세요? 으왕, 근데 왠지 제가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으아, 마음에 드셔야 할 텐데. 이거 두근두근. ((보셔서 아시겠지만 본문이 아름답진 않아요 ㅎㅎ))
 
[나쁜학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쁜 학교 푸른숲 어린이 문학 31
크리스티 조던 펜턴 외 지음, 김경희 옮김, 리즈 아미니 홈즈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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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 슬금슬금 외지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던 때, 이누이트 소녀 올레마운은 외지인들이 운영하는 학교가 너무나 궁금했다. 학교에 다녀본 언니는 그곳에 가면 머리카락도 잘라야 하고 허드렛일도 해야 하고 무릎 꿇고 회개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올레마운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배워서 스스로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다. 당시에 언니가 읽어주던 책은 공교롭게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고, 마시지 말라는 약을 마셔서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고, 괴상한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겁에 질리지 않고 모험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 특히 어린이의 본성이다. 글을 배우는 일은 어떤가. 글자를 익히는 것 자체도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글자는 넓은 세상(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포함해서)을 향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강력한 도구다. 아빠가 '외지 사람들은 살코기 보관하는 법도, 생선 다듬는 법도, 파카나 카믹(신발)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이누이트의 풍습을 버리게 한다'며 허락하지 않아도, 올레마운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이 돌멩이 보이니? 이 돌멩이도 한때는 끝이 날카롭고 뾰족한 돌덩이였단다. 하지만 바닷물이 철썩철썩 때리고 또 때려서 모진 부분을 다 없애 버렸지. 이제는 그저 조그만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게 바로 외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에게 하려는 일이란다."

"하지만 아빠,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꾼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전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전 바닷가에 영원토록 처박혀 있지 않을 거예요." (19쪽)

 

가까스로 아빠의 허락을 얻어 찾아간 기숙학교는 처음부터 쌀쌀맞게, 아니 모질게 올레마운을 맞이한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물론 옷과 신발도 그들의 것을 착용하게 하고 학기 시작 전까지 고된 일을 시키며 기도를 강요한다. 이름도 바꾸고 영어만 써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가족들은 여건이 나빠져 올레마운을 보러 올 수 없고, 올레마운은 검문 때문에 사정을 솔직히 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고집 센 올레마운을 미워하는 '까마귀 수녀'에게 학대를 받을수록 올레마운은 더 이누이트다워진다. 까마귀 수녀가 우스꽝스러운 스타킹을 신게 해 '뚱뚱 다리'로 놀림받게 되자, 올레마운은 아무도 모르게 스타킹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런 올레마운을 눈여겨보고 따뜻하게 대해준 맥퀼런 수녀 덕분에 위기를 넘긴 올레마운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맥퀼런 수녀에게 선물받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품에 안고서.

 

호기심을 따라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꼬박 두 해를 보내고서 돌아왔다. 이제 나는 하얀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93쪽)

 

책 뒤에는 역시나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동생들을 위해 올레마운이 그들과 함께 다시 학교에 가는 뒷이야기가 실려 있다. 호기심 때문에 학교에 가 보았지만 역시 우리 민족이 최고다, 하는 결말이 아니라, "우리 이누이트는 고집불통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처에 대한 회복력이 강했다."며 동생들과 동행하는 결말인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탄압받는 소수민족문화 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혜적인 시선 없이, 어린이책답게 어린이의 본성에 주목하고 주인공의 열망과 좌절, 용기와 성장에 대해 씩씩하게 써내려간 동화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 이처럼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 동화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책은 실제로 원주민 기숙학교 경험을 가진 마거릿 포키악 펜턴이 며느리(!) 크리스티 조던 펜턴과 함께 쓴 것이다. 이야기가 끝난 자리에 실제 올레마운(아마도 작가?)의 옛 사진들이 실려 있어, 읽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 또 이누이트란 어떤 사람들인지, 왜 그들에게는 학교가 없었는지-추위를 견디며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정에서 배웠으니까!), 외지 사람들이 왜 캐나나 몰렸고 어째서 그런 학교를 지었는지 설명하는 페이지도 있다. 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올레마운처럼 기숙학교에서 학대받던 아이들은 이누이트의 생활 감각을 잃어버리고 이누이트 사회와 외지인 양쪽 모두에게 소외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런 이들이 용기를 내어 지난 일을 알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새로 배우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도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고통받던 당사자뿐 아니라, 이제라도 거기 귀 기울이는 이들이 진정한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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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11-1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도 상처에 대한 회복력이 강했다. " 찡하네요. ㅠ_ㅠ 올레마운이 씩씩함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저도 어느 아이에게 맥퀄런 수녀가 되고 싶어요. ^^

네꼬 2013-11-17 23:1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 대목이 좋았어요. 올레마운이 외지 사람들을 다 미워하기만 했다면 이해는 하더라도 속상했을 것 같거든요. 이누이트다운 저 의지!

문나잇님은 분명 그런 좋은 어른일 거예요. (수녀는 되지 마시고...)

꿀꿀페파 2013-11-1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보고갑니다!

네꼬 2013-11-25 12:52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리뷰들 많이 읽으셔야 해서 힘드실 것 같아요;;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데 산책하던 개들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였다. 주인이 알면 싫어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양해를 구하자니 내가 좀 이상한 여자로 보일 것 같아서 이럴 땐 어지간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런데 아... 세 마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중형견... 짧은 순간 갈등했지만 결국 몰래 사진을 찍기로 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흩어진 낙엽을 찍는 척했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 그러나 이쯤에서는 주인이 의심할까 봐, 오히려 개들을 피해서 찍는 척 잠시 연기를 하면서 개들을 보내주었다...

 

 

 

 

..... 텅 빈 거리.

 

 

소용없는 것이다, 개가 없는 풍경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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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3-11-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노노 ~ 제가 견주 입장에서 보건대, 웬만한 분들은 자신의 강아지를 이뻐해서 사진 찍는다면 싫기는커녕 기쁠 거에요. 무, 물론 개에게도 초상권이 있다, 이런 분도 간혹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선 개를 산책시키면 똥 쌀까 봐 눈을 흘기는 분들이 이뻐하는 분들보다 많기 때문에 ㅠ 서러움을 훅 날려주는 네꼬 님 같은 분에게 오히려 고마울 걸요.
저도 저번에 신호등 대기하고 섰는데 옆에 임산부가 서 계셔서 혹시라도 두리가 냄새 맡고 접근하면 싫어할까 봐 잔뜩 쫄았다가, 그분이 두리더러 착하다며 예뻐하고 웃음 지으니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몰라요.

네꼬 2013-11-10 20:05   좋아요 0 | URL
아아 그런가요! 저는 왠지 싫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을 못 붙였어요. 음, 그리고 아마 저 같은 주인이라면 엄청 뻐길 텐데 그러면 너무 얄미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담 주인 없이 있는 개는 찍어도 되냐! 네, 저도 물론 개의 초상권에 대해 생각해봤는데요, 어차피 된다 / 안 된다 우리한테 말해줄 순 없으니까 그냥 저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하하;;;;;

신호등 대기하고 서 있는 두리를 보면 누구라도 그럴걸요. 으왕, 만지고 싶다, 두리!

moonnight 2013-11-10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여워라 네꼬님. >.<
제 생각에도 예뻐서 사진 찍으면 주인분들도 좋아할 것 같은데요. ^^

네꼬 2013-11-10 20:06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나는 문나잇님이 이러시면 이상하게 산적처럼 웃게 돼요. 껄껄껄...
(전 사실, 주인이 너무 잘난척할까 봐도 좀 망설여져요. 저란 여자.)

프레이야 2013-11-10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개가 없는 거리에 낙엽만 뎅그러니ᆞᆢ 낙엽 찍는 척하며 두근두근 하셨을 귀여운 네꼬님^^

네꼬 2013-11-10 20:08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ㅠㅠ 네 진짜 두근두근 했어요. 주인이 째려볼까 봐요. 오히려 약간 촬영에 방해된다는 듯 비켜 섰는데 왠지 서러움 -_-;; 아 언제까지 이렇게 도촬해야 할까요. ㅠㅠ

BRINY 2013-11-1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가 있는 거리 좋아요~
유기견 두마리가 사이좋게 붙어서 지나가면 한마리가 지나갈 때보다 더 찌잉해요.

네꼬 2013-11-17 23:09   좋아요 0 | URL
ㅠㅠ 붙어 다니는 유기견 두 마리라니. ㅠㅠ 어쨌든 개들은 여럿이 같이 있을 때 더 마음을 흔드는 것 같아요. 좋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요.
 
방학 탐구 생활 - 제1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5
김선정 지음, 김민준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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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이한 석이는 학원에나 다니라는 아빠 말을 따르는 대신 장대한 계획을 세운다. 신 나게 놀고 잠도 자고 경비를 마련해 무인도로 떠나고 유명해진 다음 스타를 만난다는 것. 석이는 우연히 아이돌 팬클럽 운영자인 아저씨를 알게 되어 스타를 만나기도 하고, 아빠 만두 가게에서 일하고 번 돈으로 경비를 마련해 동생 호와 함께 작은 섬으로 떠난다. 그곳은 칠금도로, 만두 가게에서 일하는 한수 형네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다. 가는 길, 배에서 잘못 내리는 바람에 만난 반 친구 경성이까지 합세해 세 아이가 모험을 시작한다.

 

일단 큰소리부터 치고 수습하느라 애먹는 석이, 겁은 좀 있지만 매사에 야무진 호, 까칠한 것 같지만 속은 순한 경성이 등 세 아이는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간다는 점에서 믿음직한 주인공이다. 이들을 가로막는 아빠와 부추기는 한수 형, 아이들을 귀찮아하면서도 친손자처럼 대해주는 할머니 등 어른들도 실제 모험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어린이가 모험을 떠날 때 있을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교통편과 묵을 곳 등을 얼버무리지 않고 오히려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거짓말 같은 모험을 ‘실제 사건’으로 만든 작가의 뚝심도 보기 좋다. 떠나기 전까지 약간 지루한 부분을 지나가고 나면 모처럼 숨통이 트이는 모험, 살이 까져 피가 나고 쫓기고 고립되고 성취하는 모험을 함께할 수 있다. 유머와 감동을 눈치 채려면 고학년 어린이들이 읽어야 하겠고, 이야기를 따라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중학년 어린이들도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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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3-11-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글 덕분에 갑자기 떠올랐어요. 방학동안의 특별한 모험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이 제게도 있었다는 걸요! ^^

네꼬 2013-11-10 20:09   좋아요 0 | URL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모험이라면 질색하던 어린이. 어려서부터 불편한 거 딱 질색이었어요. ㅋㅋ 근데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그런 걸 즐겨서 귀엽고 기특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