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 나온 <은유가 된 독자>도 제목이 근사해서 기억해 두었다가 읽었다. 책과 독자의 관계를 저 먼 옛날 ‘기록’이 시작된 순간부터 훑어내려 온다. 나에게는 좀 난해한 대목도 있고 (그러므로 잘 모르겠지만) 산만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 여러 군데 밑줄도 그었다. 역시나 좋은 책. 아마도 서양 문학을 잘 아는 분들은 이 책의 은유를 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겠지. 


이건 다른 얘기인데, 본문에 종종 의아한 표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무늬만 독자’ ‘살인미소’ ‘정신 줄’ 같은 것. 저자가 원래 이런 유행어(?) 속어(?) 뉘앙스로 썼을지도 궁금하고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말로 바꿀 때 이런 식으로 해야 했을까 좀 아쉽다. 이런 표현의 유효기간을 생각해도 그렇고, 저자의 서정적이고 꼼꼼한 문장을 생각해도 그렇다. 혹시 저자가 속어로 썼다면 원래대로 옮기고 해설을 달아주었으면 좋았겠다고, ‘(은유가 된) 독자’로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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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11-13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반가워요^^ 저도 <독서의 역사>를 좋아해서 밑줄 그어가며 몇 번이나 읽었지요. 그래서 아마도-_- <은유가 된 독자> 역시 당연히 샀지 싶은데-_- 어느 구석에 쌓여 있는지 모르겠네요ㅜㅜ 네꼬님 페이퍼 읽고서야 기억이 났어요ㅠㅠ
하여간-_- 저도 번역이 뭔가 미심쩍어 보일 땐 제발 원문 그대로 충실히 번역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돼요.;;

네꼬 2017-11-14 17:28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안녕하세요! 제가 이렇게 띄엄띄엄 하네요;; 게으른 저.. ㅜㅜ <독서의 역사> 좋아하신다니 새삼 반갑고 *ㅅ* 기쁩니다. 저는 <독서의 역사>만큼 좋지는 않았지만 서양문학을 좋아하신다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 그리고 어 번역은 (제가 몰라서) 이상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그런 표현들은 자꾸 걸리더라고요. 문나잇님은 보시면 어떨지 궁금해요. 꼭 찾으시길,,! 헤헤.
 















진아는 폭행을 일삼는 남자친구를 신고했으나 그가 가벼운 벌금형을 받는 데 그치자, 스스로를 보호할 생각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이 사실을 알린다. 그러나 그녀를 응원하는 이들보다 ‘멍청한 여자’ ‘남자 신세 망친 여자’라는 비난하는 이들이 더 많다. 진아는 악성 댓글 중에서 그녀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쓴 것이 분명한 한 줄을 발견하고, 그것을 단서 삼아 혹은 핑계 삼아 고향으로 내려간다. 댓글을 쓴 사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진아는 대학시절은 물론 시골에서 보낸 어린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뜻밖의 사실을 마주한다. 그것은 그녀의 친구들, 나아가 그녀 자신조차도 강간의 피해자였다는 것과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깊이 서로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맥락을 들여다 봐.”(진아의 상사가 사건 이후 진아에게 한 말)

Vs 여러 화자 또는 주체의 엇갈린 진술, 순서가 뒤섞인 회고


이진섭이 왜 폭행을 저질렀는지, 즉 진아가 왜 맞았는지 ‘맥락’을 살피라는 종용은 결국 진아를 ‘맞을 만한 여자’로 만든다. 맥락은 가해자가 폭력성을 갖게 된 이유를 추적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명백히 발생하였고 여전히 있는 피해 사실을 지우고, 맥락에서 피해자의 잘못을 캐낸다. 그 반대편에서, 작가는 일관되지 않은 서사 방식을 채택한다. 이것은 ‘믿을 만한 사람, 일관된 사람’으로 보이는 가해자(진섭, 동희)와 달리 두서없이 말하고 감정적이며 믿기 어려운, 어리고 지위가 낮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전략으로 보인다. 가해자와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게 하는 것. ‘소설’이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


그런데 이렇게 흩어진 시점, 여러 화자가 진술하는 방식은 피해자의 감정 분출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진아는 진섭의 폭행과 수많은 2차 가해의 피해자로서 댓글 작성자를 찾아내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그녀 자신의 과거가 뜻밖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무심코 저지른 냉대와 사소한 거짓말, 간절했던 소망이 타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오래 전 동희가 자신에게 저지른 것이 강간이었다는 사실 또한 깨닫는다.


그리고 두 사람.


● 유리 : 사랑과 관계를 갈구하는 불안정한 그녀를 남자들도 여자들도 무시하고 쉽게 경멸한다. 주인공 진아조차 유리를 거의 잊고 지내다가 ‘진공청소기’를 언급한 악성 댓글 때문에 떠올린다. 이어 유리는 다른 사람들의 험담에 가까운 증언으로 묘사된다. 진아가 떠올리는 유리의 마지막 모습도 여러 차례 번복된다. 회식 자리에서 아예 못 본 것으로(69쪽 ‘그것이 끝이었다’), ‘7-38’이라는 숫자가 성폭력 피해자 상담 번호임을 안 뒤에야 당시 유리가  ‘진아야, 나 좀 도와줄 수 있어?’라고 말한 것으로, 마침내 동희가 유리를 강간했음을 알고 나서야 자신이 그 마지막 순간에 유리를 확실하게 외면했던 것으로 기억이 구체화된다. (또는 인정하게 된다.)


● 동희 :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일을 주도하고 싶은 자, 통제하고 있다고 확인하고 싶은 자,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선점하고 싶은 자, 실리를 따져 교수가 되고자 하는 자, 기꺼이 조직의 정치에 몸을 굽히는 자, 강간하는 자.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이에 뭐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너 피해의식 있어.’ 교수 이강현 앞에서 늘 주눅이 들어 최선으로 충성한 뒤에 이런 말을 듣는다. ‘너도 원한 거잖아. 원해서 해놓고 왜 이래.’ 



단아는 편지를 쓰고, 유리는 일기를 쓴다. 수진은 책을 읽고, 미영은 대자보를 쓴다. 그리고 진아는 수사를 한다. 그들의 '자기만의 방식'은 잊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말하고 쓰고 알리는 것들이다. 그런 뒤에야 우리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간을 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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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불운이 이어져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아침 일찍 유리컵을 깨뜨린다든지, 외출을 준비하는데 단추가 떨어진다든지, 차를 빼다가 잠깐 사이에 기둥을 긁는다든지, 한꺼번에 두 군데 이상이 아프다든지, 열쇠를 잃어버리는 일. 하나씩 일어나면 액땜이려니 여유 있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달아 또는 동시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조바심이 생긴다. 나쁜 일이 생기려나 봐. 그런 운이라는 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면 '액땜'이라는 말로 얼버부리는 것도 결국 내가 운이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행운을 기대하는 마음이나 불운을 걱정하는 마음은 닮았다. 운수가 트인다고 의기양양 하다가도 금세 어깨가 움츠러드는 내가 참 한심하다고 바로 오늘 아침에도 생각했다.


도미니크는 그런 점에서 대단히 멋지다. 도미니크가 누구냐면 "넘치는 기운을 주체하지 못해 늘 무슨 일을 벌여야 직성이 풀리는 개"다. 치솟는 모험심을 채우기 위해 이제 막 고향을 떠난 도미니크 앞에 점쟁이 악어 할멈이 나타나서는 운수를 봐주겠다고 한다. 도미니크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가겠다면서도 앞날의 운수는 보지 않겠다고 단호히 사양한다. 그리고 모험이 기다리는 어두컴컴한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도미니크가 선량한 마음으로 이웃을 돕고, 용맹하게 악당에 맞서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것은 사실 전형적인 동화의 줄거리다. 그렇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솜씨는 조금도 전형적이지 않다. 도미니크가 "새로운 냄새를 맡을 때마다 코가 바짝 긴장되고 환희에 차서" 부르르 떨며 '냄새들의 음악회'를 즐기는 모습이나(그는 냄새로 심지어 마을의 역사와 과거 선생의 월급, 당시의 밀감 값, 현재의 출생률도 알아낸다) 흥분했을 때 참지 못하고 컹컹 짖는 모습은 개의 특성과 딱 맞아서 읽는 내내 웃게 된다. 이발소에서 귀와 주둥이에 뜨거운 수건을 얹는 대목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 호쾌한 영웅 이야기를 읽고 나니까, 나처럼 째째한 사람도 등을 쭉 펴게 된다. 그래, 운이랄 게 별거 있겠어? 그때 그때 닥치는 일들 잘 해내가면 되지. 깨진 컵 조각 잘 치우고, 단추를 새로 달고, 운전 조심하고, 열쇠는 새로 맞추면 된다. 아플 땐 쉬어 가고, 이참에 운동도 열심히 하기로 하자. 이러다 또 운에 기대어 기분이 오르내리는 날이 오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로도 괜찮다. 동화책을 읽는 것은 역시 좋은 일이다. 무엇이든 배우게 되고, 그것으로 또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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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7-02-17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반가워요♡ 제게도 약간 기운 빠지는 오늘이었는데 네꼬님이 건네주시는 도미니크 이야기로 기운을 냅니다. 저도 읽어볼께요. 고맙습니다.^^

네꼬 2017-03-02 15:21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댓글이 너무 늦었지요. 제가 사는 파주는 여전히 춥습니다. ㅠㅠ 문나잇님은 봄 따뜻하게 시작하시길 바랄게요!

moonnight 2017-03-02 15:27   좋아요 0 | URL
어맛 네꼬님♡ 오늘 무척 쌀쌀하네요 감기조심하셔요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요즘 읽은 재미있는 책들.


사소한 것들의 과학 (마트 미오도닉, MID)


글쓰기는 내용 뿐 아니라 형식도 새로운 게 좋다는 걸 새삼 알게 해준 책. 과학책이지만 개인의 경험을 소설처럼 구성해 들려주고, 사적 공적 사진과 그림을 동원하며 필요하다면 영화 각본 형식도 불사한다. 물론 이런 '형식 파괴'를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 조사와 공부, 충분한 사색이 필요했겠지. 과학 '문외한'인 나로서는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즐겁고, 과학책이 대세구나!(응?) 하는 생각도 하게 되는 독서였다. 원제는 "STUFF MATTERS" 인데 (흥미를 끌려고 했겠지만) 한국어판 제목이 좀 아쉽다. (부제는 더 아쉽다...)



작가의 공간 (에릭 메이젤, 심프라이프)


작가의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을 연결한 서술이 재미있다. 이를테면 작업실 풍경이 어떠해야 하는지 +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같은 것. 글쓰는 일을 존중하라는 말도 좋다. 나는 집중력이 부족한데 -_-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알고 보니 (사 놓고 읽지 않은) "일상 예술화 전략"의 작가던데, 그 책도 읽어봐야겠다.



어른 노릇 아이 노릇 (고미 타로, 미래인)


정말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의 에세이. 아이들을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어른들이 그렇듯이 획일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지 마라, 감동을 강요하지 마라 등 (좋은 뜻에서) 고미 타로가 할 법한 말들 모아 놓았다. 그런데 '제도 교육'조차 잘 되지 않는 나라의 독자로서 읽기엔 일본이니까 그런 말을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 교육을 불신하는 태도는 그렇다 치고 본인이 아기 그림책을 그렇게 재미있게 많이 그려 놓고(!!)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길 건 또 뭔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왠지 생각이 좀 복잡해지는 책이다.



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이봄)


마스다 미리 만화책은 좋은 것도 별로인 것도 있었는데, 의외로 산문이 더 좋았다. (그림으로 말하는 작가니까 글은 그림보다 덜 좋겠지 하는 편견에 젖어 있던 나를 반성 =_= 그래 나나 잘 해야지..) 담담하고 솔직한 글이 이 책의 주제와도 잘 맞고, 반가운 책도 여러 권 다시 만났다. 어쩌면 홋카이도 바다를 옆에 두고 기차 안에서 읽었기 때문에 더 좋았는지도.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엘런 L. 워커, 푸른숲)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270쪽) 이 문장에 저자의 생각이 쏙 담겨 있다. 심리학자로서 자신이 아이를 갖이 않기로 결정하면서 갖게 된 생각과 여러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나 역시 아이 없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왜 안 갖냐"거나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날 때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을 이 책에서 거침없이 해서 좀 좋았다. 예를 들어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아이를 왜 낳으셨어요?"라거나 "아이를 안 낳으셨어야 해요."라고 대꾸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는 점이 어딘가 분했는데, 그런 사람이 나뿐이 아니었다. (물론 이 책 속 사람들도 실제로 그렇게 대꾸하지는 않는다.) 아이 없이 사는 성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이들 얘기도 공감이 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이 없이 사는 것이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 결과라는 설명이 나를 안심시켰다.


덧붙여 적어 보자면. 아이 없이 사는 삶을 선택했다는 것이 아이 낳은 이들을 비난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린이를 자주 만나는 나로서는 나는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부러울 때도 많고, 내 인생이 다른 식으로 흘러갔다면 아이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 허탈할 때도 있다. (이런 말 하면 꼭 "지금이라도 가지세요" "마음 편히 가지면 생길 거예요." 이런 분들 있는데 저기 제발......) 조심스럽게 추측하자면 아이를 키우는 분들 중에도 아이 없이 살았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떠올려보는 분들,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운 건 서로 부러워하고, 좋은 건 좋아하면서 각자 잘 살면 좋겠다.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니까. 당연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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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6-22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책도 좋을 것 같지만, 네꼬님의 글도 참 좋으네요.

네꼬 2016-06-22 11:32   좋아요 0 | URL
다양한 사연들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근데 뭐랄까 좀 미국식 상담 기록(응?). 페이퍼에는 못 썼지만, 번역이 아쉬워요. 여자는 ˝~해요˝ 남자는 ˝~합니다˝ 투로 옮겼는데, 영어는 그런 거 없잖아요. 이상함. 나는 왜 이걸 다락님한테 하소연하고 있나! (그리고 고맙습니다..)

치니 2016-06-2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없이 살았으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떠올려보는 분들, 있지 않을까? -> 수도 없이 떠올려 볼 걸요. 제 경우에는 근데 떠올린다고 그게 또 아이 낳은 걸 후회해서는 아니고, 그냥 자연스레 떠올려 볼 때가 있어요. 만약...? 하면서 이런저런 공상을 하는 거죠.

저도 요새 과학 팟캐스트가 제일 재밌어요. 학교 다닐 때 이런 거 있었음 과학을 좋아하는 이과생이 되었을지도! 라고 할 정도로요. 저 책도 보관함에 담아뒀는데, 어서 읽어야겠네요. 흐.

네꼬 2016-06-22 16: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1 : 후회해서가 아니라 다른 삶을 생각해볼 수 있죠! 저도 그래서 부럽고 허탈하고 그런 건데, 이런 얘기 하면 꼭 대화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고요. ㅠㅠ 이렇게 알아주는 치니님이 좋아요. ^^

맞아요 2 : 저는 팟캐스트까지 듣진 않지만, 요즘은 과학이 설명해주는 명쾌한 부분들이 좋더라고요. 이런 걸 일찍 알았으면 (제가 이과생이 될 린 없고!) 세상이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paviana 2016-06-22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의 선택을 지지해요. 너무 오래간만이지요? ㅎㅎ
아이 없는 삶도 아이 있는 삶도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거잖아요.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우리 살아요.

네꼬 2016-06-22 16:29   좋아요 0 | URL
꺅! 꺅! 꺅! (<-좀 방정맞은 원숭이 스타일)
너무 오래간만이에요 ㅠㅠ 나도 그렇지만 파비아나님도 너무해 ㅠㅠ
순간 순간 소중해요. 정말. 요즘 그런 생각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소중한 파비아나님. 꺅! 꺅!

코코죠 2016-06-2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안부를 전하고 묻고 싶은데 인터넷이 잘 안되는 곳에 있어요ㅠ 저는 구)오즈마에요. 기억해주시려는지. 여튼 또 끊기기 전에. 저는 딸이 하나 있는데 다들 하나 더 낳으래요. 하! 웃기지 않아요? 내 애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요! 아이가 없든 하나든 일곱이든 누구나의 인생에나 저마다의 방식이 있다고, 그 말을 적고 싶었어요. 그나저나 우리 네꼬님은(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쓰다듬쓰다듬) 왜 자꾸만 이뻐지고 멋져지고 막막 깊어지고 근사해지고 그르나옹? 질투나게시리. . .

네꼬 2016-06-23 12:03   좋아요 0 | URL
악 오즈마님! 왜 코코죠가 되었죠. 그리고 왜 인터넷 안 되는 데 계시죠. 어디 가셨죠. (질문 - 따지기 공세...) 아기 크는 거 이래저래 훔쳐보고 있어요. 예쁘고 동그랗고 활기찬 아기던데! 각자의 이유로 그렇게 사는 거니까 각자 잘 살면 좋겠어요. 그래야 같이도 잘 살지. 그쵸?

그리고 나는 못나졌고 늙었고 얄팍해졌습니다. (정색)

moonnight 2016-06-23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히 책들을 보관함에 넣고;;

아이 네꼬님 글 너무 좋잖아요ㅠㅠ;; 저는 일단 결혼도 안 해서 왜 안 하느냐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느냐 심지어는 너같은 이기적인 인간 어쩌구 하는 말도 듣는데, 정말 각자 선택한 길에서 각자 잘 살면 좋겠구만요. ㅠㅠ;

네꼬 2016-06-27 11:20   좋아요 0 | URL
각자 잘 살면 ˝좋겠구만요˝ 정말요 그렇겠구만요.

왜 왜 자꾸만 남의 삶에 그렇게 간섭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럴 시간에 각자의 인생을 잘 닦으면 좋을 텐데. 간섭자들의 마음은 어디가 그리 허약한가..
 

간밤에 로봇과 인간이 함께 등반하는 실험에 대한 꿈을 꾸었다. 로봇은 산에 빨리 올라갈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는데도 인간과 함께 등반하려는지 중간 중간 쉬었다. 그래서 결국 인간과 같은 속도로 정상에 올랐다. 그러니까 산에 오르는 건 효율이 아니라 감상이 우선인가? 일요일에 요 앞 공원을 산책하다가 한참 동안 청설모를 구경했는데 그게 꿈으로 나왔을까? 아니면 이게 로봇이 아니라 사실은 강아지 얘긴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깼다. 5월이 되었는데도 새해 결심인 '일찍 일어나기'에 실패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냥 그 결심을 버려야겠다.


*
















<<13.67>>은 추천하는 말에서 '일본 드라마 <파트너>가 생각나겠지만 그것보다 재미있다'고 했는데(정확한 문장은 아님), 역시 <파트너>가 생각나고 그것과 다르게 재미있었다. 추리 천재(!) 관전둬의 면면이나 그를 보는 형사들의 시선을 묘사한 대목들은 전형적이지만 사건의 짜임새가 '정성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촘촘하다. 내가 수사 드라마 팬이어서 그런지 변장/배후조종/은폐 요소는 약간 짐작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 이야기는 없고,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홍콩의 역사를 날마다 적어두지 않고서는 이런 작품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와 인간과 그것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추리물.


하늘 아래 새 이야기가 없긴 하지만 스티븐 킹은 내가 이야기란 걸 난생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정신 없이 몰아친다. <<별도 없는 한밤에>>는 맨앞의 소설 <1922>가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불쾌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은 아무 힘이 없다. 다음 이야기가 이 공포를 달래주리라 기대하면서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러려면 어쩌면 이번 이야기는 더 무서울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스스로 달래면서 읽어야 하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이 소설집은 작품 배열이 좋다. 불쾌하게 한다 → 무섭지만 견디게 한다 →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 무섭게 한다. 그러면 나는 역시 도리가 없다. 무서워하면서 그의 책을 또 읽을 수밖에.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책의 체제를 이해하는데 약간 머리를 써야 했다. '스티븐 킹의 사계' 연작이 봄여름/가을겨울 두 권으로 나왔는데, 그중 봄여름에 해당되는 것이 이 책이고, 봄에 해당되는 소설 제목을 책 제목으로 삼았다. 어째서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을 제목으로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쇼생크 탈출'과 '스탠바이미'를 표지에 적기 위해서겠지. 그러고 보면 이 복잡한 체제를 문제 삼고 싶지 않아진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나는 30번쯤 보았다(과장이 아니다). 내용을 너무 잘 알아서라기보다, 그냥 영화로 간직하고 싶어서 일부러 소설은 읽지 않았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어도 문제(소설은 별로네?), 영화가 못 만들어졌어도 문제(나의 30번이여...)니까. 그런데 읽고 보니 소설은 소설대로 좋고, 영화는 와! 잘 만든 거였다! 소설에서 무엇을 버리거나 바꾸고 무엇을 살려서 영화로 만들지, 아주 잘 결정된 것이었다. 함께 실린 여름편 '우등생'도 재미있게 읽었다. 밝고 건강한 웃음을 간직한 채 악을 탐하는 미국 소년이라니.


*


그러고 보니 전날에는 옛날 회사 동료와 싸우는 꿈을 꾸었다. 상사에게는 깍듯하고 동료에게는 이기적이어서 싫어했던 이였는데 꿈이었으니 당연히 더했다. 상사가 그에게 전화로 귀찮은 일을 지시하는 걸 나도 뻔히 들었는데, 그는 해맑은 얼굴로 내게 일을 떠넘기는 것이었다. 나는 화가 나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얼마 전에는 다시 대학에 가는 꿈도 꾸었다. 수업이 힘들어서 수강 취소하려고 컴퓨터를 찾아 온 학교를 헤맸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방만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충실하게 살기'가 말만큼 쉽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람은 왜 노력하고 살아야 하나? 꿈 없이 허송세월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시간은 이미 많이 써버린 것 같다. 그래서 좀 걱정이 된다. 그래도 며칠 전에 간 삼겹살 집에서 나를 '30대 중반' 고객으로 기입해둔 것을 슬쩍 본 일은 좀 좋았다. 나 40대 초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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