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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쉬운 한 그릇 요리 - 간편해서 좋아
함지영 지음 / 시공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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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차림은 보통 밥과 국, 김치를 포함한 밑반찬을 바탕으로 한다. 나의 경우 국을 생략하고 찌개를 올리거나 고기나 생선을 주재료로 한 요리를 더하거나 경우에 따라 밑반찬만으로 밥을 먹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데 요즘은 혼자 먹는 때가 많아서 밑반찬은 고사하고 감자나 떡으로 대강 '때우는' 때가 많아 서럽던 차. '한 그릇 요리' 컨셉의 책이 일단 반가웠다.

 

이 책은 차리기 손쉽고, 어느 정도 포만감도 주는, 또 맛도 있는 한 그릇 요리들을 소개한다. 사실 이 책을 구해서 보는 사람들은 이미 요리책을 몇 권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나 역시 그렇다. 이전 요리책들이 주로 밥, 국, 찌개, 반찬 등의 구분으로 요리를 소개하는 것이 비슷비슷하다면 거기에 비해 이 책은 '한 그릇 요리' 컨셉에 충실하게 밥, 죽, 면, 탕 등 비교적 간소하게 차릴 수 있는 메뉴와 맛탕이나 핫도그 같은 간식거리를 소개한다. 이제는 요리책의 필수요소처럼 된 '육수 내기' '계량하기' 등 요리 초보자들을 위한 기본 정보와 군데군데 소개한 팁들도 충실히 담긴 편이다.

'베이컨김치볶음밥', '스팸달걀밥'처럼 "요리"나 "레시피" 같은 단어를 쓰기엔 좀 싱겁게 느껴질 정도로 간단한 메뉴부터 '단호박해물찜', '애플타르트'처럼 요리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 도전해볼 만한 복잡한 메뉴까지 무려 123가지나 되는 요리가 소개된 것도 장점이다. 꼭 이 책의 레시피를 따르지 않더라도 딱히 요리할 메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좋은 참고가 된다.(사실 이 책을 받은 날 바로, 맨처음 소개된 새우양파덮밥을 내 맘대로 해서 먹었다.) 또 한 가지, 완성접시들이 예쁘고 장식도 세련되어서 사진을 보는 것만도 눈이 아주 즐겁다.

 

그런데 책을 넘겨 보는 동안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했다. 제목을 비롯해 표지 어디에도 이 책이 '가족이 있는 사람'을 전제로 했다는 내색이 없는데, '한 그릇 요리'라는 명확한 컨셉이 오히려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것 같은데, 정작 본문은 '남편 입맛에 꼭 맞춘 한 그릇 요리' '아이가 잘 먹는 한 그릇 요리' '나를 위한 한 그릇 요리' 등으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즐기는 특별한 요리' '주말 낮에 즐기는 간식거리' 챕터도 있지만 이미 가족이 컨셉으로 들어와 있는 셈.) '강된장부추비빔밥'과 '떡갈비쌈밥'은 남편을 위한 요리로, '소시지볶음우동'은 아이를 위한 요리로, '가지덮밥' '꼬마 김밥'은 나를 위한 요리로 꼭 나누어야 했을까?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혼자 사는 사람(특히 남자) 독자들에게는 좀 당혹스러운 구성은 아닐지, 왠지 정말 왠지 나는 그런 게 마음에 걸렸다. 또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왜... ㅜㅜ) 계량 단위에 '꼬집'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나로선 내키지 않았다. 한번 들으면 딱 아 얼마큼 넣으라는 거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꼬집'이라는 단위는 참 귀엽고 직관적인 단어다. 그렇지만 꼭 책에서까지 이 말을 써야 했을까? 어차피 일러두기에 "꼬집, 조금, 약간 : 소금이나 후춧가루 등을 엄지와 검지로 살짝 집은 정도를 말해요."라는 설명을 붙일 것 같으면, '꼬집'이라는 단어는 안 써도 되지 않았을까? 참고로 이 뜻에 대응하는 우리말로 '자밤'이라는 단어가 있다.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으면서부터 끊이지 않는 고민.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귀찮은 고민이 바로 '뭘 해 먹을까?'다. 이 책은 메뉴 정하기의 참고서로, 이만하면 혼자 먹더라도 해보자 싶은 요리들의 안내서로서 의미가 있다. 자격증 없는 요리사 레벨을 1~5로 나눈다면(5가 높은 것) 자기가 최소 2레벨은 된다고 생각하는 요리사들이 보기에 적당하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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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3-09-09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리뷰 참 좋다..! ^^
'자밤' 잊지 말아야지. 헤헤

네꼬 2013-09-12 09:39   좋아요 0 | URL
레와님아 나 지금 빙긋 웃으면서 댓글 달고 있소. 사실은 흐흐 소리가....
뭐 저도 순우리말 애호가는 아니지만 '자밤'은 쓸모가 많은 말이라 안 까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흐흐.

Mephistopheles 2013-09-1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표현도 있더군요 1아빠숟갈, 2아빠숟갈....소금은 소큼소큼 뿌리고 후추는 훗주춧~뿌려줘야 한다고

네꼬 2013-09-12 09:38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아아악 메피니이이이임! 왜 그런 말을 제 서재에 쓰시는 거예요. 혼자만 아시지 왜왜왜왜왜 (귀 막고 외침)
 
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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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정기용이라는 이름을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적의 도서관들을 설계했고, 회자되는 건물들도 지었다 하니 아마 여기저기서 이름을 들은 적은 있을 텐데도 그랬다. 한때 서현 선생의 건축 관련 책들을 좋아했던 것 말고는 건축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책이 있는 것도 몰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림일기 : 정기용 아카이브전'을 본 친구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고 주말 나들이 삼아 미술관에 가기로 결심했고, 그 참에 정기용 선생 관련 책들을 찾아보느라 이 책을 알게 됐다. 친구가 올린 사진은 선생의 스케치 일부였다. 거기엔 이런 메모가 달려 있었다. '좁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산 큰 하늘 큰 빛 큰 바위를 보고 살게 하자.'

 

이 책은 '건축계의 공익요원'이라는 별칭을 얻은 정기용이 10여 년 간 전북 무주를 오가며 말 그대로 한 지역을 설계한 기록이다. 책 뒤에 실린 좌담에서 농담처럼 얘기 되었듯이 정경유착이라든가 건축가의 전횡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낮은 수준(짐작컨대 손해 수준)의 비용을 받는 대신 건축가의 열정과 사랑, 실험을 고스란히 쏟아 부은 독특한 프로젝트였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시대와 사회, 특히 농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면서 발언하고 운동해온 건축가다운 행보이기도 했다.

 

영세민의 집값을 낮추기 위한 방책으로 흙건축을 연구하던 정기용은 그 인연으로 진도리마을회관을 지었는데, 그 상량식에서 당시 무주군수를 만나 무주 프로젝트의 싹을 갖게 됐다고 한다. (마을회관 상량식에서!) 이후 십여 년, 정기용은 군수를 비롯한 공무원들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대치하면서 무주의 여러 공공건축을 설계했다. 무주가 작은 군이니, 공공건축이라 해도 대형 경기장이라든가 시청 신축 같은 일이 아니다. 면사무소, 청소년회관, 농민의 집, 된장 공장, 요양원, 버스정류장 등 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보통의 건물을 설계한 것인데, 각각을 지을 때 에피소드들이 다채로우면서도 정직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는 재미만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설계할 때 건축가의 이상과 실험정신보다 주민의 삶과 요구를 우선으로 한, 그러나 완전히 고집을 꺾지도 않은 정기용의 성품이 소박한 문장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테면 면사무소를 지을 때 주민들은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 주지." 라며 심드렁했단다. 평생 농사로 안 아픈 데가 없는 마을 노인들이 몸 뜨끈히 담글 목욕탕이 없어 옆 동네까지 차를 빌려 가야 된다는 말에,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마련한 이야기는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유지비를 줄이기 위해 홀수날은 남탕으로, 짝수날은 여탕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군내 행사 때 주민들이 하도 참여를 안 해 고심하던 군수가 이른바 VIP석에만 차양이 있고 주민들은 뙤약볕 아래 스탠드에 앉기 때문임을 알고 등나무를 심은 이야기도 있다. 정기용은 이 등나무가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소박한 지지대를 했다. 이제 등나무 넝쿨이 우거진 공설운동장은 산책 코스로, 쉼터로 사랑받고 있다 한다. 리노베이션으로 주변이 정리된 군청이라든가 풍경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간결하게 설계된 버스정류장 이야기도 좋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이 책이 프로젝트의 성과만을 기록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노인요양시설을 침대마다 독립된 방 비슷하게 꾸민 것은 사생활을 존중하는 설계였으나, 요양원 운영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는 침대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 결코 이전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한다. 청소년수련관은 청소년 수가 적어 취지와 달리 잘 활용되지 않고 있고, 감리를 하지 못한 식물원은 오히려 주변 경관을 해치듯이 자리 잡아 버렸다. 또 완공 이후 임의로 덧댄 공사가 건물을 망친 경우도 있다. 정기용은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듯 늘어놓지 않고, 지나치게 겸손한 언어로 포장하느라 옆길로 새지도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후학과 사회를 위한 것이지만, 마치 혼자 있는 방에서 쓰인 결연한 일기 같다.

 

건축가의 이런 태도 때문일까. 책을 만든 모양새도 그렇게 성실하면서 객관적이다. 설계도면과 메모, 완공된 사진들이 적절한 캡션과 함께 잘 정리되어 실렸다. 책 뒷부분에는 이 프로젝트의 성과와 한계를 짚는 좌담이 실렸다. 2007년말 희망제작소에서 진행된 이 좌담에는 강내희, 박원순, 홍성태 등 각계 연구자들이 함께했는데, 이들의 발언들에 밑줄 그을 부분이 많다. (2007년말....) 사람과 사회, 지역, 특히 농촌을 향한 건축과 사회운동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한편,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드러난 문제점도 조목조목 짚었다. 이어 이유주현 기자가 실제 주민들을 인터뷰한 내용도 실렸다. 새로운 건축들이 주민의 삶에서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짚은 것인데, 다른 면사무소까지 번진 '목욕탕문화'에 대한 칭찬뿐 아니라 아름답긴 하지만 너무 얇아 역할을 다 못하는 전통시장 천막에 대한 불만, 인기에 비해 너무 작게 지어진 천문대에 대한 아쉬움 등 생생한 주민의 목소리를 솔직히 담았다. 나는 무엇보다 정기용의 설계도를 들고 동분서주한 사무실의 실무자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무주라면 치를 떨고 도망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선생의 스태프라는 사실이 더할 수 없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하는 그 인터뷰가.

 

*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2011년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의 건축도면과 관련 자료들로 꾸며졌다. '국립' 미술관이면서도 외곽 산 밑에 자리잡아 찾아가기 어려운 곳, 심지어 놀이동산이 옆에 딱 붙어 있어 어수선한 곳. 모르긴 몰라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건축은 우선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 '공간'과의 감응에서 시작한다고 했던 선생이 생전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는 아파트가 국토를 점령하고 농민에겐 여전히 땅이 없는 이 나라를 어찌하면 좋겠냐는 선생의 강의를 영상으로나마 들을 수 있다. 기증받은 것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지만 그 양이 방대해 관람객을 압도하는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복잡한 도면, 감정이 느껴지는 드로잉과 스케치, 꼼꼼한 메모들은 관람자에게 '감응'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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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9-04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큐.."말하는 건축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을 보며 드는 생각은...짧고 굵게 살것인가. 아니면 길고 가늘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앞섭니다. 이 분의 단명 이유는 단하나겠죠. 체력이 열정을 이기지 못했으니까요.

네꼬 2013-09-06 12:25   좋아요 0 | URL
메피님, 안 그래도 리뷰 쓰면서 메피님이 한말씀 해주시겠구나, 했어요. (^^)
정말 돌아가시기 얼마 전 찍은 영상들을 보니 뭉클하더라고요. 다큐멘터리도 있다니 찾아봐야겠어요. 우앙. 훌륭한 분.

마늘빵 2013-09-05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네꼬님 나도 이거 샀는데. 이분 전시회 보고서. 건축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참 다양하게 했더라고요.

네꼬 2013-09-06 12:26   좋아요 0 | URL
아아 아프님도 갔었구나! 그쵸. 모형(? 이렇게 말해도 돼요?)만 봐도 멋지고요. 자료들도 남기신 것의 극히 일부라는데도 그만큼! 책도 (의외로) 정독하게 되더라구요!

무해한모리군 2013-09-0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려구요.
도심의 주요 건축물이 서양건축가들의 작품으로 뒤덮이고 있어 아쉽고,(뭐 건물에 국적이 중요한건 아니지만 좀 건물만 너무 튀는듯도 하고) 꼭 기억해둬야 할 사람들이 평가되지 못하는 것도 너무 아쉽고 그렇네요..

[이렇게 말하지만 제 기억에 처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건물이 지금은 없어진 옛조선총독부(그러니까 제가 방문할 당시엔 박물관?)였어요. 초등학교 때 아주 맑은 봄날 방문했는데 마당 자판기에서 핫도그를 뽑아 먹으며 보던 그 건물의 당당함과 안에 들어섰을때의 환함이 아직도 생각나요. 어찌된 영문인지 그날 처음본 궁궐은 기억에도 없네요 =.= 대학생때 유럽에 가서 신전안에 들어갔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역시 어린시절 만큼은 아니었어요..]

네꼬 2013-09-06 12:29   좋아요 0 | URL
저도 그 건물 기억해요.....예.. 예뻤어요... ㅠㅠ 슬픈 일이지만 매우 인상에 남는 건물이었어요. 흙. 저도 소풍으로 갔었는데!

전 도시에 살아야 한다면 아파트가 어쩜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에요. 그나마 모여 있고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자연에는 덜 해가 되지 않을까. (체념.)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도시나 도시 근처에 몰려 살려면 그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여튼 생각이 복잡했어요. 튀는 건물들에 대한 유감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저 서울시청만 해도.. 아아 그만할게요. 아아.. 아아..

마노아 2013-09-0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는 건축가 아주 인상 깊게 보았어요. 이 책도 같이 궁금해지네요. 사람이 먼저인 건축가, 참으로 아름다워요!

네꼬 2013-09-06 12:30   좋아요 0 | URL
응 마노아님도 그 다큐 보셨나 보네요. 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사실 책은 원래 사진이랑 캡션만 보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꽤 정독하게 됐어요. (저 같은 사람조차!) 마노아님이라면 더 꼼꼼히, 더 많은 감동 받으면서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moonnight 2013-09-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었어요. 면사무소 + 목욕탕 이야기 신문에서 읽었는데 이 분 이야기였군요. 이미 작고하셨다니 아쉽고 슬프네요. ㅠ_ㅠ

네꼬 2013-09-06 23:01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 나 아까 문나잇님 서재 갔었는데. 혹시 그새 새 페이퍼 쓰셨나 하고요! 아까는 새 글이 없어서 (-_-) 털레털레 돌아왔는데, 혹시 그새 쓰신 거예요? *_*

책 읽어봐 주세요. 감동이 있는 책이었어요. 마지막엔 글쎄 약간 울 뻔..;;

네꼬 2013-09-06 23:04   좋아요 0 | URL
엇... 가 보니 아직 새 페이퍼는 안 쓰셨네..... =_=

moonnight 2013-10-01 18:50   좋아요 0 | URL
앗 미안해요. ㅠ_ㅠ;;;;
 

예로부터 나는 도서관과 친하질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어떤 경로였는지 학교에서 보낸 바람에 구립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 캠프에 참여한 게 아마 나와 도서관의 첫 만남일 것이다. 그때만 해도(라고 쓰지만 수십년 전;; ) 책을 찾으려면 서랍 가득한 카드 목록을 뒤져야 했고, 서가에서는 눅눅하고 달달한 냄새가 났다. 한 일주일 정도 다니면서 책 찾는 법, 독후감 쓰는 법 같은 걸 배웠는데 참 재미가 없었다. 기억에 남는 인상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버스에서 내려 도서관 표지판을 보면서 도서관은 참 먼 데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한 것, 또 하나는 그곳 선생님이 (아마도 여러 종류의 글쓰기를 가르치다 그랬겠지) 편지 봉투에 주소 적는 법을 설명하면서 우체부 아저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쓰면 좋겠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때 선생님의 가무잡잡한 얼굴과 긴 퍼머 머리, 진지한 표정이 어제 본 것처럼 생각난다. 왜냐. 선생님이 "우체부 아저씨 감사합니다. 주소 대로 찾아오시면...(머뭇) 물이라도 한 잔 드릴게요." 라고 쓰라고 예를 들었는데 열한 살 네꼬의 생각에도 우체부 아저씨가 별로 좋아할 말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난해?)

 

중고등학교 도서실은 별로 인상에 없고, 대학시절에도 도서관이 내겐 썩 좋은 곳이 아니었다. 꽤 넓고 책도 많았는데도 수업 참고 도서는 언제나 자리에 없었다. 다만 전공과 관련 없이 어린이책 서가는 제법 자주 찾았다. 나의 퍼스나콘 고양이도 그 서가에서 알게 되었다. 동화책을 빌려 전공 시간에 몰래 읽은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다다. 도서관 앞 건물에서 '케찹 양파 볶음 얹음'인 스파게티를 거의 날마다 사 먹었고, 시험 기간이면 혼자 도서관 옆 계단에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대학시절 도서관은 그래서 그 바깥 풍경이 훨씬 선명하다.

 

*

 

지금 우리집 앞에 제법 큰 도서관이 있다. 걸어서 5분 거리. 거실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고개를 돌리면 도서관 간판(?)이 보인다. 이 집을 구했을 때 도서관이 가깝다는 게 남들한테 자랑거리였는데 사실 도서관에 간 적은 거의 없었다. 일을 그만두고는 곧잘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온다. 그림책을 쌓아 놓고 읽다 오는 날도 있고, 개 도감을 구경하다 오는 날도 있고, 필요할 땐 살짝 공부 비슷한 걸 하고 오기도 한다. 한참 더운 지난 며칠은 늘어져 있느라고 코앞 도서관에 갈 기운도 못 냈는데, 어제 오늘은 좀 다닐만 해서 공부하러 다녀왔다. 물론 나는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하기 싫으므로, 옆 자리에서 너무 저돌적으로 필기하며 공부하는 아가씨(책상이 울렸다) 때문에 신경 쓰여 자리를 옮겼다가, 역시 옆자리에서 땀냄새 풍기며 신문을 휙휙 넘겨 보는 아저씨 때문에 자리를 옮겼다가, 초집중해서 얌전히 공부하는 앞자리 학생 때문에 더이상 핑계댈 게 없어 시무룩했다가, 끝내는 공부하던 책을 덮고 서가 사이를 기웃거렸다. 한약에 대한 책들을 지나고 요가에 대한 책들을 지나고 회사원 매너에 대한 책들을 지나고 박물관에 대한 책들을 지나고 책에 대한 책들을 지나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방을 쌌다. 

 

나오는 길에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안경을 쓰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계셨다. 로비에서는 초등학생 여자애 너댓 명이 저희끼리 와서는 까치발을 하고 회원 카드를 작성하고  있었다. 안내하는 청년이 보일듯 말듯 웃으면서 여기에 주소를, 여기에 이름을 적으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햇볕을 조금이라도 덜 쬐려고(나는 소중하니까) 지하로 해서 도서관을 나서려는데, 여태 밖에서 뛰어놀았던 게 분명한 초등학교 5,6학년 쯤 되어 보이는 건달, 아니 남자 어린이들이 지하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 둘이 재잘거리면서, 손가락으로 긴 생머리를 경쟁적으로 빗어내리면서 지하를 통해(역시 소중하니까)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예로부터 도서관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이제 생각해본다. 도서관은 좋은 곳일까? 정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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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8-2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에~ 도서관은 좋은 곳 맞아요!^^
요즘은 마을마다 작은도서관까지 있으니 예전보다 많이 가까워져 친하게 지내기 좋아요.
네고님 페이퍼는 언제나 좋아요, 라고 쓰고 '옳아요'라고 읽어요!!!

네꼬 2013-08-23 17:19   좋아요 0 | URL
옳긴요 ㅎㅎ 그런 말은 저랑 어울리지 않아요!!
마을 도서관도 좋고, 저희 집 앞 공공도서관도 좋고 다 좋아요.
구경하면 더 좋고요. ㅋㅋ

세실 2013-08-2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대한 인식도, 수준도 많이 좋아졌지요^^
좋은 프로그램도 많이 한답니다.

네꼬 2013-08-23 17:20   좋아요 0 | URL
역시 세실님 ㅎㅎ
저희 집앞 도서관에도 좋은 프로그램이 많아요.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것도 좋고, 심지어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막 새벽에 모여서 토론하고 그래요. (이 열심들...)


게으른 건 저뿐인가 봐요. ㅠㅠ

다락방 2013-08-2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도서관을 가 본 일이 거의 없어요. 이 날까지 살면서 다섯 번쯤 갔으려나... 여튼, 대학시절에도 3학년때까지는 도서관 출입을 안하다가 4학년 때 친구와 한 번 학교 도서관 갔다가, 그 다음에 두번째는 혼자 갔거든요.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구경을 간 거였어요. 그런데....길을 잃었지 뭡니까!! 출구를 못찾겠는거에요. 출구가 안나와요. 꽥!!

결국 친구한테 전화하고 어떤 책들이 있는지 불러주고 나서 친구가 너 거기 꼼짝말고 있으라고 찾아가겠다고 해서 정말 거기 꼼짝않고 있었더랬어요. 하아-

난 도서관 이란 말만 들으면 그 기억이 자꾸 떠올라요. 휴..

네꼬 2013-08-23 17:22   좋아요 0 | URL
꽥! 출구가 안 나와! 정도가 되어야 도서관이죠. ㅎㅎ 도서관에서는 멀미 한번 해야 제맛. (뭐래.) 그 에피소드 재밌네요. 무슨 책 있는지를 보고 찾아 오는 친구 얘기.

서점은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도서관이라면 한숨이 나오는 당신이란 여자. ㅎㅎ

Mephistopheles 2013-08-2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가 책을 읽고 접하는 공간이라기 보다 수험생들이 득시글거리는 시기를 거쳐 왔기 때문에 사실 좋은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요즘은 많이 달라졌더군요. (그런데 개는 언제 나와요? 개요..개...!!)

네꼬 2013-08-23 17:27   좋아요 0 | URL
메피님, 요새 도서관도 수험생은 많은데, 그냥 저냥 책 보고 잡지 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재밌더라고요. 사람 구경하러 가는 것도 있어요.

글쎄 좀 기다려 보세요. 이번 주말에 개 한 마리 풀게요. (에헴..)

레와 2013-09-10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글은 신기해요.
단어를 따라 눈으로 걸어가면 마치 내가 네꼬님 곁에 있는 것 같아요. 히히히히


대학 다닐때 한동안은 학교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도서관 자리 잡기였어요. 네. 저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만 엎어져 잤던 시간이 더 많았어요. 도서관을 그렇게 다녔는데, 책을 읽었던 적은 거의 없어요. 맨날 숙제만했다는. 대학생이였는데!!ㅋㅋㅋㅋ

아, 우리 학교 도서관은 학교 꼭대기에 있었어요. 산행을 해야했어요. 그래서 중앙도서관엔 예비역들만 바글바글. ㅋㅋ 아침 일찍 올라가면 저기 바닷가에서 뱃고동 소리도 들렸어요. 계단을 다 올라가 뒤돌아 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여요. 참 좋았는데..
졸업할땐 중간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그 풍경 조져놨어요 아놔.... ㅡ.ㅜ

근데 나 왜 이렇게 말이 많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3-08-23 11:08   좋아요 0 | URL
조져놨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꼬 2013-08-23 17:26   좋아요 0 | URL
레와님, 잘 따라 오고 있어요? 내가 글자 깔아 놓을 테니 잘 밟고 따라 와요. ㅎㅎ 귀여운 레와님. 어찌 그렇소? 아이고. 이뻐.

맞아. 나도 자리 열심히 잡았는데. 근데 열심히 그래 노력은 했는데 잘 잡지는 못했어요. 게..게... 게을러 가지고. 그나저나 그 도서관은 멋지네요.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도서관이라니, 어머, 나 설레요..라고 쓰려 했는데... 풍경 조진 아파트...(다락님아, 조지다는 국어원에 등록된 말이라구. 웃지 마요. 웃지 마. 웃지 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3-08-23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은 시원하고, 요즘 어린이 도서관들을 좀 다녀보니 아늑하기까지 하더라구요.
아.. 저도 대학다닐때는 도서관에서 공부외에 다른건 많이 해봤는데 ㅋㄷㅋㄷ

네꼬 2013-08-23 17: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에어컨의 은혜를 입으러 가요, 저도. 간 김에 사람들 구경도 하고. 도서관에서 다른 거 뭐요? 저처럼 케찹 볶음 스파게티 먹는 거? 맥주 마시는 거? 낮잠? ㅎㅎ (난 어떻게 예나 지금이나 도서관에서 공부한 친구가 없어요. ㅋㅋㅋㅋ)

밤의숲 2013-08-2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아... 마음에 드는 도서관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우리 동네 도서관 역시 애새끼들이 시험공부하러 오는 데거나 주말에 마음붙일 곳 없는 아저씨들이 손으로 맨발 만지면서 신문 보는 데라 너무 싫어요. 최근에.. 이진아기념도서관이 좋다고 해서 꾸역꾸역 찾아가봤는데 거기도 생각보다 좁아서 탈락... (저 왜 이렇게 까다로움? ㅜㅜ) 제가 가본 도서관으로는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이 짱.
네꼬님, 글 좀 자주 올려주세용. ㅎㅎ

네꼬 2013-09-04 16:12   좋아요 0 | URL
으앗, 이 댓글을 못 봤네요. 동네 도서관은 아무래도 그렇죠. 저희 도서관도 그래요. ㅎㅎ (애들.. ㅋㅋㅋ) 근데 그래도 저는 구경 삼아 가니까 또 좋더라고요. 서강대 도서관은 너무 학구적이지 않나요? @_@ 밤의숲님 그런 분이시구나! ㅎㅎ

moonnight 2013-09-06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학교 다닐 때는 도서관은 책 읽는 곳이라기보다는 시험기간에 공부하는 곳이어서 좋은 기억이 없어요. ㅠ_ㅠ(사실 가 본 적도 몇 번 없;;;)

그러고보니 멋도 모르는 신입생 때 중간고사기간에 친구가 중앙도서관 자리맡아달라해서 맡아줬다가 건방지게 자리 맡아놨다고 뻔뻔스럽다 그랬던가 이기적이라 그랬던가 3학년이라는 여자분에게 엄청 혼났던 트라우마가 있네요. 늦게 온 친구는 자리 안 맡아놨다고 또 짜증냈다는 -_-;;;;;; 그 이후로 도서관과는 빠빠이했던 것 같아요. 흑. ㅠ_ㅠ

작고 예쁘고 조용한 도서관에서 실컷 재미있는 책 읽는 걸로 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어요. ㅎㅎ


네꼬 2013-09-06 23:03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문나잇님, 하하하 그래요그래 문나잇님이 옛날에도 문나잇님이었을 테니까.. 하하하하 웃어서 죄송하지만, 왠지 그때의 문나잇님이 지금이랑 겹쳐져서... 어유 착해라. 어유 순해라. 내가 그 친구도, 그 3학년도 만나면 혼쭐을 내줄게요! 트라우마는 나의 복수로 극복하세요!
 

초등학생이 엄마한테 뺨을 맞았다며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고, 뉴스와 신문에서 알렸다. 내가 먼저 본 건 뉴스였는데 논조랄 건 없었지만 아이가 엄마한테 욕을 해서 엄마가 뺨을 때렸다며 이상하게도 살짝 한쪽을 편드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곤 지나가듯이, 경찰이 본 아이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코피를. 엄마한테 뺨을 맞아서 코피를. 신문에는 좀더 어조가 있었다. 어느 신문에서 보면 아이가 아주 함부로인 것 같았다. 게임하고 있는데 밥 먹으랬다고 엄마한테 욕을 하고 맞았다고 신고를 하다니. 그런데 다른 신문을 보니 엄마가 술 문제로 가족 안팎으로 갈등이 많았고, 아이도 자주 때렸다고 한다. 아이는 열 살.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알콜중독과 상습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열 살. 그래도 그렇지 엄마한테 욕을 한 건 잘못이다, 라고 말하는 건 비겁한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신문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아이의 사정을 알아줄까? 스마트폰 게임에 중독된, 커서 뭐가 될지 걱정스러운 '요즘 것'이 아니라, 지금 처지가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어떤 꼬마로 그 아이를 기억해줄까.

 

*

 

공교롭게도, 미크의 아빠는 알콜중독자다. 언제나 숙취에 시달리거나 술에 취해 있거나 둘 다인 상태란 뜻이다. 미크에게는 지금 엄마가 없고 아주 멋지고 자상한 형이 있다. 수업이 끝나면 미크는 서둘러 집에 가는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집에 형이 먼저 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주 천천히 걷는다. 미크에게는 형이 전부다. 그런데 그 형은 점점 더 자주 집을 비우고, 미크는 아빠 옆에서 더욱 혼자가 된다. 미크의 사정을 알게 된 사회복지국에서 미크와 아빠를 격리하면서 미크는 한동안 시골 마을에서 혼자 사는 고모와 지내게 된다. 그 마을에서 미크는 고모에게 사랑을 받고, 괴팍하고 꼭 그만큼 푸근한 이웃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곳을 사랑하게 된다.

 

절망에 늪에 있던 미크는 새 가족과 이웃을 얻었다. 어린이가 겪기에는 이미 충분한 절망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이야기의 겨우 절반이다. 발버둥치며 거부했는데도 미크는 법에 의해서 위탁가정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은 상상 이상의 학대가 기다리고 있는 지옥이다. 탈출 계획은 좌절되고, 보복이 가미된 학대가 미크를 덮친다. 사회복지국 직원들은 미크의 말을 믿지 않는다. 마침내 탈출에서 성공했을 때 미크는 고모를 찾아가서 말한다. 무덤에서 나왔다고.

 

이제 고모도 있고 마을 사람들도 있으니, 미크를 학대한 사람들은 벌을 받고 미크는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사회복지국에서는 탈옥수를 찾듯 미크를 쫓고, 미크는 친구들과 함께 탈출 계획도 세우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저 홀로 오로지 홀로 법에 맞선다. 목숨을 걸고.

 

절망 다음에 희망이 왔는데, 어떻게 다시 절망이 찾아올까. 그것이 분해 운 날이 나에게도 많았다. 미크도 그랬을 것이다. 늪이 지났는데 왜 다시 늪이 나오는 거지. 무덤에서 나왔는데 왜 지옥이 있는 거지. 절망은 단순히 겹겹이 있지 않고, 절망 다음 희망 다음 절망 다음 희망으로 겹쳐 있다. 죽음 다시 삶 다시 죽음 다시 삶으로 겹쳐 있는 낭기열라, 낭길리마처럼.

 

*

 

미크가 절망을 견딜 때 가슴에 새긴 이야기는『사자왕 형제의 모험』이었다. 미크 자신은 스코르빤이었고, 형은 요나탄이었다. 그를 품어준 시골 마을은 낭기열라, 벚나무 골짜기였을 것이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병약한 스코르빤과 근사한 형 요나탄이 죽음 뒤에 도착한 낭기열라에서 겪는 모험 이야기다. 죽음은 절망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낭기열라는 거대한 절망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런데 이 세계는 오히려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해, 스코르빤의 병은 치유되어 있고 요나탄은 영웅이 되어 있다. 여기서 펼치는 그들의 모험은 다시 한번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두렵고 절박한 것이다. 이들은 슬프거나 두려워서 또는 절망 때문에 미치지 않으려고 모험의 한가운데서 직진으로 달리고 마침내 또 한번의 죽음 끝에 더욱 빛나는 다음 세계, 낭길리마의 문을 연다. 물론 다음에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죽음이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은 삶이 한 번이 아니라는 뜻이다. 절망과 희망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지금 살아 있는 것, 목숨을 걸고 나아가는 것이다.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는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바쳐진 작품이면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준 아름다고 위대한 판타지를 현실에서 격렬하게, 처절하게 실현해낸 이야기다. 두 작품은 공히 말한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두려울 때 피하지 않는 것이 용기라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된다고.

 

*

 

그 열 살이 언젠가 이런 작품들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속 편한 먹물의 소리가 될 것이다. 다만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는 그 열 살이, 이 사실만은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팩트를 전한답시고 "엄마 욕하다 뺨 맞은 초등학생, 경찰에 신고" 같은 헤드를 뽑은 기사들, 싹수가 어떻다는 댓글들은 용기와 상관 없이 그냥 쓰레기다. 구겨서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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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8-0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어도 얼어도 비틀거려도] 읽을래요. 네꼬님이 써준 저 글만으로도 어쩐지 울 것 같아. ㅠㅠ

네꼬 2013-08-09 15:37   좋아요 0 | URL
다락님 울 텐데. ㅠㅠ 책 소개에는 유머도 있다고 하는데, 유머도 약간 슬퍼요. ㅠㅠ 그렇지만 훌륭한 소설.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복사해서 붙인 거 아니에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왕창 축하해요!

다락방 2013-08-09 15:53   좋아요 0 | URL
어므낫. 고마워요!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아 네꼬님이 이렇게 페이퍼 써주니까 난 진짜 넘흐 좋아!! >.<

moonnight 2013-08-10 12:59   좋아요 0 | URL
어멋 다락방님 생일이구나. 축하드려요. ^^ (울다가 웃었어요. ㅠ_ㅠ;;;)

네꼬 2013-08-13 12:22   좋아요 0 | URL
다락님 아직 생일 주간이죠? ㅎㅎ

moonnight 2013-08-1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를 어쩌나. 마음이 너무 아파요. ㅠ_ㅠ;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는데 그 귀한 아이를... 네꼬님 말씀대로 그런 처지가 된 건 아이의 잘못이 아닌데. ㅠ_ㅠ;;;; 두 권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눈물바다 될 것 같아요. 우엉. ㅠ_ㅠ;;

네꼬 2013-08-13 12:22   좋아요 0 | URL
우엉. 눈물바다 보증하죠. 그런데 읽고 나면 이상하게 기운이 좀 나요. 문나잇님은 착해서 더 울지도..? =_=

moonnight 2013-08-1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글 너무 좋아요. 훌쩍. -_ㅠ;

네꼬 2013-08-13 12:23   좋아요 0 | URL
꽥꽥. 부끄러워서 오늘은 오리 소리를 내 보았어요.

비로그인 2013-08-10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용기가 안나서 못 읽고 있어요 ㅠㅠ

먹물 하시니 찰스 부코스키가 생각나요^^

네꼬 2013-08-13 12:26   좋아요 0 | URL
아른님, 저 찰스 부코스키 찾아봤잖아요. ㅎㅎ 진짜 먹물인 거잖아요. ㅎㅎㅎ

"얼어도 멀어도 비틀거려도"는 저도 어쩐지 미루다가 읽었어요. 엄두가 안 났거든요. 근데 걱정만큼 슬프지 않고(?) 따뜻하고 유머도 있어요. 아른님 독후감도 기대 되어요!

서니데이 2013-08-14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자왕 형제의 모험>, 저 샀어요.^^ 두 권 중에서는 그 책부터 읽어야 할 것 같아서요.

네꼬 2013-08-22 20:14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제가 댓글을 늦게 봤네요! 재밌게 읽으셨나 모르겠네요. 울지 말고 끝까지 읽으시길!
 
유아/어린이/가정/실용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지난주 수요일부터 네꼬남 휴가였다. 같이 실컷 바닷가를 누비고 놀고 먹는 휴가를 보내고 어제는 마무리로 "설국열차"까지 봤다. 그러자 어젯밤부터 약간 우울하다. 휴가가 끝났는데 나는 갈 데가 없어. 남편은 출근했는데, 나는 뭐 하지? 뭐하긴, 관심 신간 페이퍼 쓰지.

 

*

 

어린이책 중 관심 가는 신간.

 

 

김선정 작가의 "최기봉을 찾아라!"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엔 이 작가가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한다. 우왕. 때도 적절하게 방학에 읽는 "방학 탐구 생활", 재밌을 것 같다. 제목과 표지, 책 소개 등에서 기대하게 하는 대로(목차 봐라 ㅎㅎ),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어린이들을 재밌게 놀게 하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게, 나도 그게 참 궁금했다. 세 나라는 늘 싸우기만 했을까? 학교 다닐 때 배운 역사 속에서 세 나라는 싸운 얘기, 아니면 우리가 문물을 전해준 얘기밖에 없었다. 어디 멀리 가기도 어려운 조건에서 가까운 나라들과는 아기자기한 교류도 있었을 법한데. 목차를 보니 나한테도 공부가 꽤(보다 많이) 될 것 같아 궁금하다.

 

 

 

 

 

 

김기정 작가가 백석의 시「박각시 오는 저녁」을 모티프로 한 동화를 냈단다. 시를 찾아 보니 시작이 이렇다. "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박각시와 주락시는 곤충 이름이란다. 이상하지 백석이 당콩밥 가지 냉국, 이런 말을 하면 어째서 금방 서늘해지는지. 김기정 작가의 오랜 사랑도 궁금하고, 장경혜 화가의 그림도 궁금하다.

 

 

 

 

 

 

 

가정/요리/뷰티에서도 한 권 골라 봤다.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왜 과일 책을 골랐느냐... 하면, 이 시리즈로 나온 "고기 수첩"이라는 책에 깊이 감명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살펴본 바 이 시리즈(구르메 수첩)의 필자들은 대개 믿음이 간다. 그리고 "고기 수첩"은 본문 편집도 보기 좋고 설명도 간결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미리보기로 보니 이 책도 좋을 것 같다.

 

 

 

 

 

 

 

 

이어서 여행 분야에서 또 한 권.

 

한겨레 신문에서 이 책 소개를 보고 좀 궁금했다. 기사에도 제인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을 카피로 뽑았던 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이 구절은 백석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나도 통영 여행 때 그 시를 떠올렸으니, 어쩌면 이젠 일상적인 표현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왠지 백석이 한 말이라는 게 표지 어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그냥 나의 좁은 속 때문이겠지? 책이 궁금해서, 처음 느꼈던 어딘가 삐딱했던 마음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

 

그나저나 여수-순천은 맛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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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8-05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가를 즐기고 오셨군요. 부러워라~~~@@
저는 고3 엄마고, 인천으로 간 남편이 뭘 가지러 다시 내와서 그냥 방콕했습니다~ ㅠㅠ
그래도 '우왕~ 추천신간 2권이 겹쳐~헤헤~ ' 웃고 갑니다!

네꼬 2013-08-09 15:44   좋아요 0 | URL
네! 휴가 완전 잘 먹고 잘 놀고 왔어요. 으왓, 누구랑 겹칠까 봐 일부러 남의 페이퍼는 안 보고 썼는데 두 권이나 겹치는군요. ㅎㅎㅎ 화이팅(응?)

BRINY 2013-08-05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가 끝나고 갈데가 없어서 서운하신가요?
전 부럽기만 한걸요. 딱3일 여행 다녀오고나서는, 그냥 3일간 집에서 먹고 자고 할걸 그랬나하고 후회했다죠.

네꼬 2013-08-09 15:45   좋아요 0 | URL
BRINY님 근데 저도요, 막 놀고 왔는데 그래도 집이 좋더라고요. 놀 때도 좋았는데.. 아.. 나는 집에서도 노니까 그런 건가..? (저는 요사 날마다 집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예요. ㅠㅠ)

moonnight 2013-08-0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소녀는 여행 중에도 시를 떠올리시는군요. 오오. 멋지다. +_+; (그 구절이 백석시인의 시에서 따온 거로군요. 평전까지 읽었는데 생소한 일인. 시무룩. -_-;)

참, 네꼬님이 추천해주신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샀어요. 오늘 도착했는데, 와, 생각이상으로 좋았어요. 내용도 충실하고, 게다가 그림도 예쁘구요! >.< 잠깐 살펴보면서도 침이 꼴깍꼴깍 @_@;;; 좋은 책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

네꼬 2013-08-09 15:46   좋아요 0 | URL
허허허. 소녀일 땐 아니었지만. 허허허. 얘기가 어떻게 그렇게.. 허허.

오 그쵸,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그림이 고전적이고 예뻐요. 심지어 면지도 예쁘죠.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에헴, 저 잘했네요. 에헴.

서니데이 2013-08-06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다녀오셨군요. (아~~ 부러워라.)
첫번째, 두번째 책은 제목만 보고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요. ^^ (댓글쓰다 궁금해서 미리보기 빨리 보고 왔어요.)

네꼬 2013-08-09 15:47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안녕하세요? 저도 찾다 보니 다 궁금했어요. 리뷰 대상 도서로 안 주면 결국 사야 될지도. ㅠㅠ 신간평가단이라고는 하지만 어쩐지 앞으로 책만 더 많이 사게 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