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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주기적으로 책의 날이 있는 달이면 독서 인구층은 점점 줄어 들고 있고 1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섰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종이책, 전자책에 모두 포함해서 2024년은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세계적으로 독서 인구층이 점점 줄어 들고 있는 추세 속에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소멸과 독서 인구 소멸의 최상위 단계로 진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매달 베스트 상위를 차지 하고 있는 책들 상당수는 사는 것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책들로 작년 부터 시작된 쇼펜하우어 철학 열풍은 2024년 상반기 까지 이어지고 있다.











200년전 금수저 집안 출신의 깐깐한 독신남으로 살다 세상을 떠난 쇼펜하우어가 남긴 명언들이 2024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욕망)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능력)을 분별하는 자기 인식이 행복의 전제 조건이다.]

- 쇼펜하우어


태어 날 때부터 극한의 경쟁의 세상으로 내던져 지는 한국 사회에서 영어 유치원 열풍, 수학 영재, 의대 입시반, 각종 자격 시험을 향해 줄곧 달려서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은 교육비를 쏟아 부어서 사회로 나오는 순간 도살 될 차례를 기다리는 소떼, 돼지떼들 같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육체적 고통의 크기 만큼 견디기 힘든 건 정신적 고통으로 일상에서 일과 가정, 사회에서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느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쇼펜하우어는 애초에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질없다는 말을 남겼다.

따라서 인간적 동물의 삶이 비인간적인 동물의 삶보다 더 낫지도 않아서 결국 삶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 먹을 때 그 동물들 각각이 느끼는 바를 비교해보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만일 들판을 뛰어다니는 '나'라는 소가 저 멀리 지켜 보고 있는 도살자에게 선택 당하는 운명이라면 오늘 마음껏 발에 밟히는 데로 풀을 실컷 뜯어 먹어 버리고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도살자에게 잡혀 끌려갈 것이다.

이런 운명을 깨닫게 되는 순간. 현실의 안락함, 평안함, 명예, 부귀 심지어 어제 주문한 물건들에 대한 어떤 집착이나 아쉬움 조차 남아 있지 않는다.

어차피 지구 상 모든 생명체들은 언젠가는 이 땅에서 사라져 버릴 운명이다.

이런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오늘은 좋지 않아도 내일은 더 좋아 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온갖 어려움, 힘듦을 견딜 수 밖에 없다.

그러나 200년 전 쇼펜하우어는 이에 대해 이런 말로 일침을 가한다.


'오늘은 좋지 않고, 내일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리고 최악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럴 것이다.'


현재 세상 돌아가는 상황과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전쟁과 재난, 고통의 문제들이 내일 그리고 내년까지도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일하고 걱정하고 고통에 시달리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 단 몇 시간 동안 스마트 폰과 영상물, 이런 저런 소문과 뉴스 덩어리들의 조각글을 읽다 잠이 든다.

우리가 소망 하는 건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를 걱정 없이 해결 하기만 하면 된다.

의-식-주만 해결 된다면 대단한 행복을 맛보지 않아도 그럭 저럭 이런 세상에 살아 갈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쇼펜하우어는 이런 일침을 가한다.

삶을 그렇게 보는 시각에 익숙해지면 당신은 자신의 기대를 적당히 조절 할 것이며 모든 불쾌한 사건들을 이례적이거나 규칙을 벗어난 일로 보기를 그칠 것이다.

아니, 당신은 우리 각자가 고유의 특수한 방식으로 존재의 죗값을 치르는 세계에서 모든 것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대로 그러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이웃에게 관용을 베풀고 힘듦과 고통을 인내하고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순간 부터 평등하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세상에 떨어진다.


그렇다면 산다는 건 무엇일까? 생명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순간까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보다 좀 더 편안하게 조금은 덜 고통스럽게 죽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출발선에 서는 순간 부터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가는 것이다.행복하게 꿈꾸는 유년기를 지나 모든 것이 새로운 불만으로 가득 찬 청소년기를 지나 고생과 고난으로 가득 찬 성인기를 지나면 모두 다 비참한 노년, 온갖 잔병과 괴로움들이 한꺼번에 몸 밖으로 나오게 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 오지 않는다 해도 세상의 시작과 끝의 종착지는 단 하나 고통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분석은 기본적으로 옳은 말이다.


고통- 현재의 삶의 덧없음-확정된 죽음의 시간


이 모든 것이 삶의 의미를 방해하고 의미 있는 죽음을 방해 하고 있다면 애초에 태어나지도 말아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보여지는 나의 몸은 만져 볼 수 있고 어디에도 비춰지지만 내 안에 있는 마음, 정신의 세계는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다.

오늘 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품었으며 무엇에 화가 났고 무엇에 기뻐 했는지 자각 할 수 있지만 딱 여기까지다.

나의 앎은 여기서 끝이 나고 죽기 전까지도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 모른 상태로 끝이 나버릴 것이다.

'과거의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에 행복을 미루지 마라.'


2024년의 달력이 4장이 넘어 갔다.

앞선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의 시간들이 이전의 시간보다 좀 더 많이 주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무한하게 펼쳐지지도 않는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서 없고 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기에 현재의 내 코가 석자다.

무심코 틀어 놓은 화면에 익숙한 얼굴들이 나온다.

물론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들의 생활과 취미 그리고 어디로 여행을 가서 촬영했는지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시즌 별로 방송 하고 있다.

화면 속 스타들의 삶은 너무 쉽게 재밌게 유익하게 살아가고 있고 주변 사람들과 두루 두루 원만하게 행복하고 다정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재미로 하는 게임과 시합에서만 경쟁 하는 것 처럼 보이는 이들의 삶은 몇 편의 프로그램에서 먹고-놀고-여행하고- 그리고 몇 시간 수다를 떨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즐거운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는 동안 평범한 것들에서 행복과 기쁨,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타인의 모습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면 할 수록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삶은 우리가 바라는 걸 전부 주지 않는다.

욕망을 버리고 체념하며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한다 해도 마음의 상태는 쉽게 떨쳐 버리거나 지워 버릴 수 없다.

따라서 마음의 상태를 온전하게 유지 하려면 예술, 철학 그리고 음악을 통해 분노를 가라 앉히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보며 나와 다른 타인의 시선과 관점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여기 한 시인이 쓴 아이스크림의 황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이스크림의 황제  

월리스 스티븐스(1879~1955)

큰 시가 마는 사람을 불러

근육질인 사람으로, 그리고 휘젓게 해

부엌의 컵 속 색정적인 응유(凝乳)를 말이야.

처자들은 늘 입던 옷 그대로

꾸물거리게 내버려 둬, 소년들에게는

꽃을 지난 달 신문에 말아서 가져오라고 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것의 피날레가 되도록 해.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니까.

유리 손잡이가 세 개 빠진

전나무 경대에서 꺼내, 그 시트 말이야

한때 그녀가 공작비둘기 수놓았던 그것을 펼쳐서

그녀의 얼굴을 덮도록 해.

딱딱한 발이 삐져나온다면 그건

그녀가 얼마나 싸늘하고 또 묵묵한지를 보여주는 것이지.

램프의 빛줄기를 잘 고정 시켜 놓도록.

유일한 황제는 아이스크림의 황제니까.

* 시집 <하모니엄>(Harmonium, 1923) 중에서


이 시의 배경은 죽은 자를 기리고 추모하는 '장례식' 자리다

한 방에는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환락이 있고 다른 방에는 시신이 안치 되어 있다.

아이스크림을 향한 욕망은 식욕을 향한 욕망이고 싸늘한 시신은 죽음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삶과 죽음에 대해 할 수 있는 전부다.

동물적 삶은 존재하는 최선의 것이고 죽음 보다 더 낫다.

따라서 평범한 삶이 가장 비범한 삶이니 죽는 것 보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세상을 떠난 나의 조부들은 자손들 앞에 이런 말을 남겼다.

'하려고 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가장 후회스럽다.매 순간 열심히 살아라. 너의 앞에 있는 시간들을 소중히 여겨라.'

나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을 90세로 정해 놓고 자신의 아버지 처럼 100세를 앞두고 세상을 떠날 줄 아셨고 사회에서 완전히 은퇴 하신 후 남은 생애 해야 할 목록을 작성 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목록에 적힌 것들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이였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셨던 분이여서 은퇴 이후의 삶은 장 미빛으로만 빛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매 순간 매초 단위로 어느 누구도바도 바쁘게 사셨던 할아버지는 진정으로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는 등한 시 하셨다.

가끔 할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책들을 펼쳐보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서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가셨을까라는 슬픔에 잠긴다.









반지의 제왕 톨킨은 이런 말을 남겼다.

'두 차례 세계 전쟁을 겪는 동안 이 세상은 신도 없고 날개 달린 천사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신도 없는 세상에 괴물만 살지 않는다.

이토록 불완전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 지극히 평범한 것 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소설 속 영웅처럼 살 수도 없고 날개 달려서 비상하는 이카루스도 될 수 없다. '

-톨킨


누구나 한 번쯤은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는 이상 어떻게서든 살아가야 하고 그렇게 견뎌 내는 것 만으로도 그리 잘못된 인생이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사는 동안 늙음, 죽음을 인지 하지 못한다.

항상 이 사실을 인지 하고 있더라도 24시간 내내 늙고 죽는 문제에만 매달릴 수만은 없다.

그러니 지상의 모든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고 사는 게 힘들고 지치고 허무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일망의 행복과 기쁨, 희망을 찾기 위해 시간이 나는 데로 보고 느끼고 즐기고 맛보며 살아야 한다.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은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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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4-04-27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쇼펜하우어에서 시작해서 아이스크림까지 해주신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평범 속에서, 주변에서, 지금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깁니다.

꼬마요정 2024-04-27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삶이 가장 비범한 삶이다.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아이스크림은 달콤하니 녹기 전에 먹을 수 있는 부분은 후딱 먹어야겠어요. 그렇게 때론 달콤하게 때론 눅진하고 끈적하게 살아가는 게 삶인가 봅니다.
 



'랜섬은 보자마자 방금 그녀가 드러낸 유약함은 금세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몸을 바로 세웠고 황막함 속에서도 꿋꿋했다. 그녀 얼굴의 표정은 영원히 그와 함께 남을 터였다.'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 중에서


미시시피 출신의 변호사로 남북전쟁에 참전한 보수주의자인 베이질 랜섬은 자신의 먼 친척이자 여성 참정권 운동가 올리브 챈슬러의 초대를 받아 보스턴에 온다.

그는 이곳에서 여성의 고난에 대해 연설 하는 보스턴 시 캠브리지의 돌팔이 의사의 연약하면서 매혹적인 노예 폐지론을 주장하는 딸 버리나 타란트에게 한눈에 반한다.

버리나에게 반한 것은 랜섬만이 아니었다.

올리브 챈슬러 역시 '새로운 사상'과 비전을 보여주는 버리나의 말과 행동에 홀려버린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중심축은 여성 참정권 운동이 벌어졌던 19세기 보스턴을 배경으로 세 남녀의 삼각관계 속에서 야기되는 충돌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 이지만 서사 전체를 움직이는 건 남북전쟁 승리로 기세 등등한 북부인들과 굴욕적으로 패배한 남부인들 사이에 극한의 대립 속에서 여성과 남성의 가치관과 사상의 충돌,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며 사회 개혁을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변혁의 조류와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굳건하게 자신들이 살아 왔던 방식을 고집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끝도 없이 밀고 당기는 긴장감이다.


18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헨리 제임스의 가문 사람들은 끊임없이 전 세계를 유랑하며 새로운 시대의 사상과 조류를 쫓았던 사람들로 그의 아버지 헨리 1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시대의 변혁을 위한 사회 개혁과 새로운 사상을 불어 넣어 주었다.

헨리 1세는 보스턴의 보수주의자들 틈에서 가장 먼저 노예 해방을 주장하며 노예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모금 운동을 시작했고 흑인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학교 설립과 당시에는 존재 하지 않았던 남녀 공학 학제를 추진했다.

헨리 제임스의 형들 모두 남북 전쟁 당시 군에 입대해서 최초의 흑인 연대를 지휘한 로버트 굴드 쇼 연대장 부관으로 군복무를 했지만 심각한 중상으로 겨우 목숨을 구하고 살아 돌아 와 아버지의 지원으로 플로리다 주의 농장을 구입했다.

큰 아들은 백인 주인의 악랄한 폭력으로 도망간 노예들을 농장에 고용해서 미국 남부에서 처음으로 품삯을 지급했지만 경영능력이 미숙해서 사업에 실패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에 패배한 남부인들은  여전히 노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으로 노예들을 감금하고 노동을 시켰던 시대에 헨리 제임스 가문은 온갖 협박에 굴하지 않고 용감 하게도 노예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 해서 인간 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행동으로 실천했다.

시대 변혁의 중심에 있었던 제임스 가문 사람들은 심리와 철학 사상 뿐만 아니라 연금술과 심령술에도 심취해서 평생 동안 강신술을 신봉하며 채식 식단을 죽기 전까지 고집했을 정도로 양면성을 보였다.

제임스 가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냉철한 지성과 현실주의적 비관론자인 막내 헨리 제임스는 자신의 가문 사람들을 가장 뻔뻔하고 공허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1913년 일흔 살 생일을 2주 앞둔 헨리 제임스는 자신의 형수이자 일기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앨리스 제임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사실, 앉아서 잘 생각해 보면 케임브리지의 이상함은 그 메마른 황량함으로 요약되는 것 같군.'


헨리 제임스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 땅은 지적으로 메말라 있었고 마음은 공허 할 정도로 황량해서 온갖 새로운 사상의 조류에 휩쓸리며 세련된 외모와 좌중을 휘어 잡는 연설가들의 연설장을 따라다니며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열광하며 이들의 세력에 합류해서 여론 몰이로 정치적 선동에 앞장섰던 언론들이 쓰레기 같은 말들을 쏟아 냈던  시대였다.

헨리 제임스는 <보스턴 사람들> 이라는 작품에서 수도 워싱턴이 세워지기 이전에 미국 땅에 가장 먼저 둥지를 튼 보수주의자들의 정착지였던 뉴잉글랜드의 <보스턴> 지역을 중심으로 시대의 변화를 몰고 오는 사상이 어떻게 출판과 연설로 수익을 벌어 들여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미지와 상품으로 맞바꿔서 오로지 신문에 실리는 것이 행복한 삶, 안정된 미래를 보장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창조한 인물인 진보 사상가 올리브의 입과 버리나의 행동 그리고 이들의 사상을 글로 써서 이윤을 챙기는 랜섬의 모습을 주도 면밀하게 탐구 했다.

헨리 제임스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자유가 없었던 시대에 페미니즘 사상과 신분 해방, 물질 만능주의를 추구 하는 자본주의 사상을 <보스턴 사람들>을 통해 왜곡된 말과 사상이 인간의 현실을 어떻게 어지럽히고 착취하는지 이 연설자에게서 저 연설자로 떠다니며 구름 같이 모여든 대중의 시선에서 터져 나오는 죽은 구호 같은 메아리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뒤흔들어서 사회가 진보 했는지 당대 넘쳐 났던 거짓 사상가들과 선동가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펼쳐 보인다.



'랜섬은 북적거리는 찰나에도 환각을 보았다. 가시처럼 수많은 칼에 찔리거나 섬뜩한 불길에 휩싸여 그때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그녀 답게 , 여주인공 답게, 일말의 전율도 없이 달려나가 죽음을 맞았을 거라고.'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은 출판 당시에도 인기가 없었고 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판매량이 치솟았던 적은 없었다.

출간 당시 이 작품에 대한 여러 혹평이 쏟아졌지만 헨리 제임스는 기성의 관습과 고루한 사상을 고집하며 현란한 혀와 펜을 움직이는 평론가들의 비판에 어떤 상처도 받지 않고 꾸준히 자신이 추구하는 사상과 철학을 담은 소설과 평론을 썼다.

그의 희곡 작품 출간을 줄기차게 거절했던 어느 예술 협회 위원회는 말년에 접어든 헨리 제임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사람들은 귀하가 쓴 예술 작품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책을 통해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얻기를 바랄 뿐이지 귀하의 작품을 읽고 종교적, 정치적, 철학적 신념까지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니 귀하께서는 피상적이고 오도 할 가능성이 높은 글은 더 이상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은 헨리 제임스는 답장에 이렇게 썼다.


'나는 삶과 문학에 대한 관점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우리 문학의 형태가 훌륭해지는 건, 바로 그 범위와 다양성, 가소성과 거침없음, 개인적 행위자의 진지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믿을 뿐입니다. 삶을 만들고 흥미를 만들고 중요성을 만들어서 우리가 고려하고 적용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힘과 아름다움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없고 인간의 삶과 사상을 확장 시킬 수 있는 건 소설이 유일합니다.'

-헨리 제임스

1분 안팎의 짧게 편집 된 '숏폼' 영상의 미끼성 전략에 현혹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더 보고 싶은 욕망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700페이지 분량의 책을 몇 날 몇 일 씩 읽는 이들이 드물다.

국내 한 조사에 따르면, 1인당 숏폼 평균 시청 시간이 월평균 46시간 29분으로 조사 결과 4명 가운데 3명이 숏폼을 보고 있고, 시청 시간이 늘고 있다고 답한 경우도 응답자의 30%에 달했다.

이 조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도 우울해지고 힘들 때도 잠들기 전에도 출 퇴근 길에도 수시로 숏폼 영상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TV 채널을 1분마다 계속 돌리는 것처럼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가 무궁 무진한 숏폼에 중독되면 말과 행동에도 깊은 영향을 끼쳐서 영상을 보지 않으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다.


'신문에 실리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며 까다로운 사람들이나 그 특권에 따라붙는 단서를 따진다는 믿음이었다. 이 천진 난만한 시대의 아들들에게 인간과 예술가 사이의 모든 구분은 이미 존재 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작가는 사적이었고 인간은 신문팔이 소년을 위한 먹이였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참견할 문제 였다.'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 중에서


2024년 누군가 <서울 사람들> 이라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게 될까?

4월 총선거를 앞둔 현재 드라마, 영화보다 더 흥미진진한 현실이 우리 눈 앞에서 실시간 벌어지고 있다.

모호하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정치적 구호와 선전, 선동 그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파업과 투쟁을 일삼는 단체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진보하고 살고 있는 인종도 사람도 바뀌어도 결코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는 대비되는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며 이를 약간 갈았다. 이 폭신한 여성적 둥지에 앉아 있자니 자기는 집도 없고 잘 먹지도 못한 느낌이 들었다.'


암담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난 이상 희망을 져버릴 수 없기에 몇 세기 전의 지식인들이 쓴 책들을 읽으며 말의 홍수, 영상의 시대에 새로운 통찰력을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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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3-04 14: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헨리 제임스가 그렇게 지루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요 책도 그러한가요??

scott 2024-03-04 14:38   좋아요 2 | URL
저는 10대 때 헨리 제임스 책 읽다가 이렇게 지루 할 수 있을까?
했었는데..
사회 생활에 찌들려 보니
제임스옹은 선견 지명을 갖춘 예지적 능력의 작가 였음요 ^^

물감 2024-03-04 14:43   좋아요 2 | URL
아이고ㅋㅋㅋ 혹시나는 역시나군요... 책이 이뻐서 혹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겠슴다ㅋㅋㅋㅋ

북깨비 2024-03-05 00:40   좋아요 1 | URL
저는 그런 소문 들은 적은 없지만 이제 소문을 들었으니 다시 생각중이에요 ㅋㅋㅋㅋ 저도 표지가 예뻐서 북친님들 리뷰 검색중이었지요. 그럼 저는 좀 더 많은 리뷰를 기다려보는 걸로.

scott 2024-03-05 11:30   좋아요 3 | URL
물감님 취향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저는 전적으로 흥미 재미로 읽는 책도 있지만
고전은 쉽게 읽혀지지 않아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고 있습니다
헨리 제임스 책이 영미권 사람들에게도 큰 인기가 없는 건 문체와 어조 스토리 전개 방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 되지 않아서 이지만(때로는 설교처럼 읽혀짐)
오히려 현 시대에 문제와 갈등의 일어나고 있는 페미니즘, 동성애, 쇼비지니스, 쓰레기 기사로 도배되는 언론, 얇팍한 상술로 먹고 사는 나팔수들까지 현 시대를 예견 한 것 같은 사회 양상과 지식인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scott 2024-03-05 11:31   좋아요 1 | URL
네 다른 분들 리뷰 올라 오겠죠
깨비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북깨비 2024-03-09 18:05   좋아요 1 | URL
결국 사고야 말았습니다 ㅠㅠ

scott 2024-03-09 23:39   좋아요 1 | URL
깨비님 이 책은 고전으로 평가 받는 이유가 있고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 시대와 겹치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단 문장이 길고 장황해서 이 고비만 넘기면 ^^

희선 2024-03-05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지는 않았지만, 《나사의 회전》 이 소설 제목은 아는군요 헨리 제임스 소설이 그 시대에 읽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니, 그래도 헨리 제임스는 자기 글에 자신 있어 보입니다 소설이 사람한테 영향을 미치리라고 믿는 것 같네요

집안 사람이 열린 생각을 하고 있었네요 그러면서도 연금술이나 심령술 강신술을 믿은 사람도 있었다니... 사람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scott 2024-03-05 11:32   좋아요 1 | URL
나사의 회전도 시대를 앞서는 작품이죠
장르물 분야에서 영화 드라마에서도 많이 패러디 되고 있고
헨리 제임스는 분명 저 시대에 맞지 않는 지식인이자 지성인으로 동성애와 페미니즘에 큰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진보적 사상을 갖췄으면서도 보수적인 사고는 유지했던 독특한 금수저 ^^

호시우행 2024-03-05 0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들은 종종 도서를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럼에도 도전해서 완독한다면 뿌듯함을 느낄 듯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국, 미국 소설을 읽기에 앞서 두 나라의 역사를 먼저 이해하면 독서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는 죽기 1년 전에 영국으로 귀화했어요. 그들의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scott 2024-03-05 11:35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안 읽혀지는 고전은 동시대 사회 문화 언어 정치적 배경을 섭렵한 후에 다시 집어 듭니다
세기의 고전이라는 타이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의 지성인들은 현재도 영국을 사상적 정신적 뿌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헨리 제임스 시대는 참으로 모순적인 시대로 노예제를 반대했던 지식인들도 집안에 하인을 부릴 때 흑일을 고용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 까지 미국 백인들은 흑인과 함께 버스를 타는 것도 식당에서 한 자리에 앉아 먹는 것도 금기 된 주가 많았죠
 
















'무언가를 쓰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그저 머릿 속의 사그락거림에 불과하다.'

-이사벨 아옌데


칠레 출신의 작가 이사벨 아옌데는 매년 1월 8일 이면 새로운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플롯을 세우지도 않고 여러 날 동안 구상 했던 계획조차 없이 1월 8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 한 컵과 커피 한 잔을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린다.

한 참을 두드리고 나면 그녀의 앞에 여러 인물들의 삶이 펼쳐져 있고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면 자신의 저작권 에이전트에게 원고를 보낸다.

저음의 편종은 그의 외투

찢어진 그래서 빨간 글자로 고친

이 오랜 신은 헤어지고 닳은 채 일어서서

안개를 향해 박수 치고 주먹을 날리며

강림절의 종을 울린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중에서



투비컨티뉴드에 2023년 6월 9일 첫 창작 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https://tobe.aladin.co.kr/s/5871를 완성하고 나서 6개월이 지나서 2024년  두 번째 창작물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2월 1일부터 쓰기 시작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나의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을 채 넘지 않는다.

아침 출근 길에 나서자 마자 사회라는 챗바퀴 속으로 들어 가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트북의 전원을 켜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4시간 정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하게 24시간이다.

이 시간 안에 유충에서 번데기가 되어서 날개 짓을 펴고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고, 하루 반나절 동안 울어 대는 매미들도 8일 동안의 생을 다하기 위해 강렬한 태양 빛을 받으며 울어댄다.











'살기 위해 읽고 쓰고 번역하는 동안 나는 마흔 일곱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리디아 데이비스


이 세상에서 한 곳에 오랫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 중 하나는 창작이고 그 작업은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는 동안 한꺼번에 이것 저것을 향해 팔을 뻗을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다.

쓰는 동안엔 오로지 노트북 한 대를 마주 보며 쉼없이 양손을 움직여야 한다.

창작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망상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닌다.


-흥미로운 것들은 이미 다 책으로 나와 있으므로 내겐 독창적인 글감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글은 좀 더 나중에 시작할 것이다.

-언젠가는 쓸 것이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르한 파묵은  수개국어로 자신의 책이 널리  번역 출간 되고 나서도 지금까지 모눈지로 된 노트에 손으로 글을 쓰고 맞은편 페이지에는 수정할 사항을 적기 위해 비워둔다.

몇 년전 오랜 투병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 힐러리 맨텔은   맨 부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품 튜더시대 역사 소설 3부작을 집필하는 동안 수시로 떠오르는 것들을 메모해 놓은 종이가 천장 높이까지 가득 차있었다.

영국 작가 앤서니 트롤럽은 매일 5시에 눈을 뜨면 30분 후에 책상 앞에 앉아서 8시 30분까지 시계를 맞춰 놓고 15분당 250단어를 지속적으로 써서 살아 생전 동시대 소설가 중에 가장 많은 양의 작품과 분량을 완성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1화 '비밀의 사제관'

https://tobe.aladin.co.kr/n/149538

2화 이슈트반 저택의 이방인들

https://tobe.aladin.co.kr/n/152393

3화 토끼섬의 고아들

https://tobe.aladin.co.kr/n/155186


4화 불행의 씨앗

https://tobe.aladin.co.kr/n/158203


5화 황태자의 야간 특급 열차

https://tobe.aladin.co.kr/n/161200


1화 비밀의 사제관의 글자수는 총 6889자로 2화 이슈트반 저택의 이방인들의 글자수는 8716자를 넘겼고  3화 토끼섬의 고아들, 4화 불행의 씨앗, 5화 황태자의 야간 특급 열차까지 회당 평균 글자 수 8천자를 쓰고 있다.


2월 1일 부터 연재를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시대 배경은 1914년으로 격동의 20세기 유럽 전역을 뒤덮은 혁명과 반혁명의 조류의 풍랑 속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가문 이슈트반을 중심으로 역사의 수레바퀴와 맞물려 움직이는 이들의 삶과 운명을 대서사드라마를 펼쳐 볼 예정이다.



'독자의 관심을 즉각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면 열정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작가들은 종종 성공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열정 뿐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퓰리처 상을 비롯해 미국의 유수한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필립 로스는 살아 생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매일 새벽 5시에 깨서 잠이 오지 않고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러 나갑니다. 마치 의사가 응급실에 호출을 받고 구급차에서 실려 나온 환자상태를 보러 가는 것처럼 저는 쓰고 싶다는 어떤 의지에 이끌려서 불려 나가듯 서재로 건너가 책상 앞에 앉습니다.

응급 의사도 환자도 저 밖에 없으니 매일 새 하얀 종이를 채워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필립 로스




나는 지난 시절 케이블을 타고 부다 언덕에도 올라갔고 페스트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를 활보 하는 동안 어느 날 이 도시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게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고 언젠가 쓰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메모나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심장 속에서 머릿 속에서 꿈틀거리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을 글로 쓰지 않으면 어느 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 이야기는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쓸 수 없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투비컨티뉴드에 매일 글을 쓰면서 생각과 행동을 정리하며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혼돈의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글을 쓰면서 나는 이전 보다 더 의식을 또렷하게 하고 나만의 속도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글을 쓰는 법, 수업은 이 세상에 넘쳐 나고 영상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쓰는 법을 귀로 눈으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문장을 써나가는 건 귀로 눈으로 듣고 보고 터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쓰고 싶은 종류의 글을 읽고 공부 하면서 한 문장 씩 써나가는 것이 유일한 글쓰기 비법이다.

나는 이제 쓰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고 쓰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 보다  외국에서 살았던 시간이 더 많았던 나는 외국어 실력에 따라 삶의 많은 부분이 변할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기에 새롭게 헝가리어 공부를 시작했다.










2월 1일부터 쓰기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총 50화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50화가 끝나면 2024년 한 해가 끝이 난다.

영상물과 독백으로 넘쳐 나는 시대에 나는 더 이상 유툽이나 OTT 채널에 시간을 허비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고난의 산길이 있고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매 순간 고통과 고난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어느 누가 쓰라고 강요도 명령도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내 삶의 두 개의 채널 중 하나인 글쓰기 작업은 이제 내 삶의 소명으로 날마다 쓰면서 나의 경험, 기억, 추억을 하나의 문장, 한편의 글에 농축 시켜 나가고 있다.

그렇게 한 편 씩 완성한 이야기들 쓰기 위해서 매일 꿈을 꾸고 기억하고 상상하다 보면 어느 새 나만의 창작의 옷장 속에 빼곡하게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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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3-01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 끝나고 돌아가는대로 읽을겁니다~

2024-03-01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24-03-01 0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경합니다. scott님^^

2024-03-01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망고 2024-03-01 0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헝가리어까지👏👏👏👏아침에 눈뜨자마자 넷플릭스에서 영화 한편 때린 저는ㅠㅠ 공부하고 글쓰는 스콧님 존경스럽습니당

2024-03-01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망고 2024-03-01 12:08   좋아요 1 | URL
ㅠㅠ

희선 2024-03-03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해 동안 쓰실 거군요 대단합니다 계획을 세우고 해 나가면 끝이 나겠습니다 조급하게 여기지 않고 해야겠네요 scott 님 글을 쓰는 시간이 즐겁기를 바랍니다


희선

2024-03-03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4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3-04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다냥장판 2024-03-05 1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50화까지였군요 몰아볼 생각을 했더니 올라오는 데로 읽어야 겠어요 뒤가 넘 궁금해져서 연재는 급한 성격이라 몰아보는걸 선호하는데 틈틈이 읽어 볼께요
와 근데 영어에 일어에 이번엔 헝가리어 까지 진짜 대단하세요 전 냥이들 케어한다고 잠을 두세시간인데 ㅋㅋㅋㅋ
 




'산산이 부서진 담론, 파괴된 논설이라는 알리바이를 지니고 우리는 단상을 규칙적으로 연습하기에 이른다. 그러고는 단상으로부터 '일기'로 미끄러져 들어 간다.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일기'를 쓴다고 할 수 없는 지점은 어느 지점인가?'

-롤랑 바르트

매일 아침 스마트 폰의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뜨면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반 쯤 뜬 눈으로 여기 저기 화면을 터치 하면서 몇 분의 시간을 흘려 보낸다.



[뇌가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뇌는 서로 다른 두 기능 상태, 즉 깨어 있는 상태로 의식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잠든 상태로 정화하느냐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듯해 보입니다. ]

-요한 하리


매일 떠오르는 단상을 노트에 적어 나갔던 롤랑 바르트는 주제별로 단상들을 분류해서 신화-언어-사건-철학-사랑-편지-일기로 세분화 시켜서 마지막 강의로 자신의 삶의 연대기를 마무리 했다.

만일 그가 현 시대에 활동했다면 강의를 위해 영상 촬영과 편집을 했을 것이고 인기 철학 교수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 철학가여서 대중들을 위한 팟 캐스트도 진행 했을 것이다.

이렇게 쓰기의 영역에서 벗어난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어쩌면 롤랑 바르트는 수 많은 저작물을 쏟아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생전에 롤랑 바르트는 기술 시대가 인류의 삶의 질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를 질병의 상-중-하 상태로 표현했다.


'그것은 생겨나고,

진행되고 ,

고통을 유발하고,

그런 다음 사라진다.'

-롤랑 바르트


마치 사랑의 시작과 끝처럼,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모든 생활의 시작과 끝을 송두리채 좌지 우지 하고 있다는 건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실시간 검색하면서 전체가 아닌 내가 찾는 것, 원하는 것,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있는 동안 거대한 빅테크의 최첨단 알고리즘은 이 모든 검색의 키워드를 전부 수집해서 덫을 놓은 사냥꾼처럼 정교하게 시의 적절하게 우리 눈 앞에 배치 해 놓는다.

'이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인생 전체가 휙 하고 사라져요. 이 시간을 기후 위기 해결에 썼을 수도 있고, 가족과 함께 하거나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썼을 수도 있어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경기에서 엄청난 심리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1분 1초까지 흔들림 없는 강속구를 던져 일본의 우승을 이끈 오타니는 지난해 11월 발표된 BBWAA 아메리칸리그(AL) MVP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21년에 이어 최초로 두 번 이상 만장일치 MVP 수상 영광을 안은 선수가 됐다.

1994년생 오타니는 193㎝ 장신에, 투수와 타자를 병행 하면서 타자 부문에선 타율 0.435(23타수 10안타), 1홈런, 8타점, 9득점, 10볼넷을, 투수 부문에선 3경기 2승 1세이브 평균자 책점 1.86 등을 각각 기록하면서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베이브 루스의 실력과 맞먹을 정도로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다.

야구 선수로 최고의 이상적인 신체 조건을 타고난 오타니는 실력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마자 만다라트( マンダラチャート/목적달성의 틀) 계획표를 스스로 작성해서 자신이 최종적으로 이룰 목표인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최종 목표로 실행해야 할 9가지 세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매일 훈련과 학습,진행 상황을 점검하며 지금의 위치에 올라 섰다.

오타니 쇼헤이의 만다라트 목표 관리 계획표 작성 법은 다음과 같다.


1. 최종 핵심 목표를 표 한가운데 적어 놓는다.

2. 최종 목표를 달성 하기 위해 필요한 항목 8가지를 최종 목표 주변의 빈 칸을 채워 나간다.

3. 8가지 항목의 중요도에 따라 색깔을 다르게 칠해 놓고 진행 상황에 따라 색을 진하게 칠해 나간다.

4.다음 빈칸에는 2번 항목 목표에 필요한 하위 목표를 적어 나간다.

5. 수시로 달성 목표를 체크하며 최종목표를 위해 필요한 8가지 항목의 실행 상태를 체크해 나간다.

오타니 쇼헤이는 스스로 계획표를 세워 놓고 가장 큰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 성취의 방향을 원의 모양으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했고 지금 이순간도 그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자신의 만다라트 계획표를 작성하고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야기들이 자신들을 써 달라고 재촉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방법을 쓰기는 했다.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으면 자리에 앉아 떠오를 때까지 계속 생각했고, 얼마나 불편하고 강요받는 기분이 들든 간에,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게 전적으로 만족스럽지는 않을지라도, 그것을 썼다.]

-리디아 데이비스

1월 마지막 주부터 투비컨티뉴드에서 '띵작발굴단' 이벤트가 시작되었고 2024년 새로운 창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n/149538












두려움 없이 글을 쓰는 일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두 가지 습관을 상당히 부지불식간에 발전 시켜 온 것 같다.

-리디아 데이비스

뉴욕에 거주 할 때 항상 챙겨 들었던 문예지 <뉴요커>의 팟캐스트에 언젠가 리디아 데이비스가 나와서 자신이 현재 번역 중인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그의 편지를 읽어 주었다.


[오늘 나는 중대한 가르침 한 가지를 얻었는데. 그 가르침을 내게 준 사람은 우리 집 요리사였다. 요리사는 스물 다섯 살의 여성으로 프랑스인이다.

그녀에게 질문을 던진 나는 루이 필리프가 더 이상 프랑스 국왕이 아니며 프랑스는 이제 공화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 했다.]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리디아 데이비스는 자신이 고쳐 쓴 플로베르의 편지 중 한 단락이라며 원래의 편지글을 다시 읽어 주었다.

[오늘 내 요리사에게 중대한 가르침 한 가지를 얻었어요. 이 여성은 스물 다섯 살이고 프랑스인인데, 루이 필리프가 더 이상 프랑스 국왕이 아니고, 공화국이 생겨났고, 기타 등등을 알지 못했어요. 그 여자는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요.]

-귀스타프 플로베르


교수와 작가의 부모를 두었던 리디아 데이비스는 어린 시절부터 영국과 캐나다, 아르헨티나에 단기간 거주 하면서 여러 언어를 익힌 덕분에 첫 번째 남편이였던 폴 오스터와 무작정 떠난 프랑스에서 온갖 잡다한 번역 일을 하면서도 항상 옆에 노트를 두고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과 단상들을 적어 나갔다.

미국으로 돌아 와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양육과 가사일을 도맡아 하는 동안에도 리디아 데이비스는 번역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여러 대학에 출강 하면서 강의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항상 노트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다.

여기 저기 분류되지 않은 채 끄적였던 노트가 여러 개의 박스 안에 담겨지자  그녀는 비로소 이렇게 썼던 이야기의 문장을 다듬어서 고쳐쓰기 작업을 해나갔다.

이런 작업을 하는 중에도 그녀는 베게트, 플로베르, 프루스트의 작품을 번역했고 강의 했다.












'대단해' 한 여자가 말한다.

'진짜 대단해.' 다른 여자가 말한다.

-리디아 데이비스의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한 단어를 번갈아 사용한다> 중에서


리디아 데이비스의 파편적인 글쓰기 스타일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되어 오로지 리디아 데이비스만이 쓸 수 있는 새로운 창작 세계를 구축해 나갔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수차례 오르며, 2013년 맨부커 국제상을, 2020년 펜/말라무드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당신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찾는 사전을 항상 곁에 두고 수시로 펼쳐보라.'

-리디아 데이비스

글을 쓰다 보면 창작의 샘에서 단어들을 퍼 올리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문장력 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발견하게 된다.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 가장 먼저 부딪쳤던 어려움은 내 생각을 한국어로 표현하려 해도 이에 딱 맞는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 교육까지 받았음에도 오랜 세월 동안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어느 새 어휘력이 부족하게 되어 철자법과 띄어쓰기부터 다시 학습하며 외국어 공부를 하듯이 듣기-쓰기-말하기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백 이십 년쯤 된 오래된 사전을 갖고 있는데, 올해 내가 하고 있는데 올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위해 이 사전을 사용해야 한다. 사전의 페이지는 여백 부분이 누르스름하고 바스러질 것 같고 무척 크다. 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페이지가 찢길 위험을 무릅쓴다.]


나에게도 나만의 아주 오래된 사전이 있다.


학부시절 어느 교수님 책장에 꽂혀 있던 아주 오래된 사전을 본 적이 있다.

당시 그 교수님은 대학원에 들어가서 만난 사전이라며 '굉장히 사랑스럽고 고귀한 존재'라며 내 눈 앞에서 펼쳐 보였다.

페이지 모서리마다 손 때가 묻어 있었고 바스러져서 넘겨 보기 힘든 상태임에도 교수님은 자신의 모든 지식의 시작이 이 사전에서 시작되었다면 앞과 겉 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었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어서 그 날 부터 나 역시 나만의 사전을 만들었다.

겉 표지는 더 이상 붙어 있지 못한 상태가 되었고 페이지마다  떨어져 나갔고 모서리 부분은 헤질 때로 헤졌지만 나에게 어떤 책보다도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빛의 속도로 검색해주고 해석해주고 통역도 해주는 시대에 집중하는 시간 보다 무언가를 찾는 동안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프루스트가 남긴 방대한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번역에 매달렸던 리디아 데이비스는 번역과 동시에 창작 작업도 이어나가면서 번역에서 부족한 어휘를 자신의 창작 노트에서 꺼내 썼고, 번역한 문장에서 창작에 필요한 단어를 찾아 썼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2023년 1월부터 투비컨티뉴드에 다양한 시리즈를 발행하며 글을 쓰는 동안 익혀둔 외국어 실력을 써먹기 위해(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작가들의 인터뷰(창작에 관한, 작품에 관한)를 번역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s/2526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유명 작가들 모두 창작의 장벽, 소재의 고갈,무기력감에 시달리면서도 마치 매일 운동을 하듯, 매일 끼니를 챙겨 먹듯 글을 쓰고 또 쓰고 있다.


'대체로 독학하라. 프로그램, 강좌 그리고 글쓰기 선생님들로부터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평생 동안 어디든 당신에게 가장 유용해 보이는 출처로부터 새로운 것들을 혼자 힘으로 배우는 일에도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리디아 데이비스


학원과 과외 셔틀로 청소년 시절을 빠듯하게 보냈던 형제들과 달리 막둥이에게는 부모님이 무한의 자유를 주었고 어떤 결과물을 받아와도 관용의 시선으로 긍정의 언어를 쏟아 부었다.

흥미롭게도 내 친구들의 부모들은 학원을 경영했던 분들로 학교와 학원이외의 삶을 살지 못하는 친구들은 나의 자유분방한 삶을 부러워했다.

학원이나 기타 과외 수업을 받지 않았던 나는 스스로 무엇이든지 찾고 계획하고 실천하며 이 길이 맞는 것인지 헤매일 때마다 책의 지식과 멘토의 지침을 참고 해서 나의 삶의 방향을 정했다.

그리하여 나는 매번 어떤 문제에 봉착 할 때마다 큰 그림을 머릿 속으로 그려 놓고 지식의 창구를 찾아 다닌다.

그 창구가 구글의 검색 창 일 때도 있고 타인의 조언과 태도 일 때도 있고 삶의 경험에서 찾을 때도 있지만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건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새로운 흥미, 탐구하고 싶은 주제, 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할 때마다 나만의 독서 목록을 작성했다.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읽어라.

1년에 고전을 적어도 한 권 읽는 것으로 목표를 세우면 아마도 도움이 될 것이다.'

-리디아 데이비스


2023년 새해 첫날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완독 계획을 세웠고 3월 봄이 오기 전까지 완 독하고 재독 하면서 첫 창작 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를 썼다.

https://tobe.aladin.co.kr/s/5871


2024년 새해 첫날부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기 시작했다.


2월 1일부터 쓰기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플롯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대-장소-인물을 정해 놓고  이야기를 진행 시켜 나가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n/149538

[써야 하는 글이 무엇이든 그것을 쓰는데 필요한 영감이 부족하다면 글쓰기 연습을 하라. 필요하다면 여러 번 이어서 하라. 자신만의 연습문제를 만들어라. 스스로가 따분하고 상상력이 부족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문제를 풀어라. 거기서도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

-리디아 데이비스

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방송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먹고,여행하고, 물건을 팔고, 음식을 팔고, 게임을 하고 노래를 하는 타인의 삶을 보는데 시간을 소비 하지 않고 나의 삶에 충실하며 하루의 시간을 헛되이 허비 하지 않기 위해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바로 몇 주전에 한 해가 끝났고 또 다른 해가 시작 되어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삶의 어느 시점에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앤드류 포터의 '라인벡' 중에서


지난 시절 숱하게 여행하고 살아 본 도시의 추억은 수많은 사진으로 남겨져 있지만 사진 속의 나의 과거는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은 채 그 시간 속에서 멈춰버렸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조각가가 되어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현재의 시간 앞에 조각해 놓을 수 있다.

지금 내 앞에 진흙덩어리가 놓여 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1화 비밀의 사제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니 다음 편은 앞서 등장한 인물들과 앞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살아 숨 쉬며 움직여 줄 것이다.




'모든 것은 꿈일 뿐,

글로 기록된 것만이 진짜일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제임스 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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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2-01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새로운 소설 쓰고 계세요? 완결까지 화이팅👊

scott 2024-02-01 13: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망고 2024-02-01 1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아직 1회지만 클라이만이 매우 의심스럽습니다🤔맞죠? ㅋㅋㅋ

2024-02-01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4-02-01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평화>를 읽으시면서 쓰신다 하니, 갑자기 톨스토이가 잘 생기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급사시킨다는 게 떠올랐어요. 엘렌도 그냥 급사했잖아요. 그럼 스콧 님도.... ㅎㅎㅎ

망고 님 굉장해요. 저는 아직 아무도 모르겠어요. 그냥 마그다가 요셉한테 죽었는지, 요셉이 마그다한테 죽었는지 이 생각만 들어요. ㅎㅎㅎ

2024-02-01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1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2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2-02 0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구 선수 오타니 잘 모르지만, 2023년에 MVP가 됐군요 2021년에도 되고 두번이나 되다니 대단합니다 리디아 데이비스도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뭐든 열심히 해야 될 텐데... scott 님도 열심히 하시는군요 이번에 시작하신 소설 끝까지 즐겁게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4-02-02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4-02-02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비를 완전 까먹었었네요. 당장 달려갑니다

scott 2024-02-02 11:06   좋아요 0 | URL
프쉬케님이 읽어주신다면 영광입니다. ^^

새파랑 2024-02-04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오늘 롤랑바르트 책 주문했는데 여기서 보는군요~!! 오타니도 그렇고 스콧님도 그렇고 왠지 신계 느낌이 듭니다. 범접할수 없는? ㅋㅋ

2024년에 다시 읽는 전쟁과 평화군요. 스콧님의 새 작품은 전쟁과 평화 스케일일거 같습니다~!!

2024-02-06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7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8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속도는 기분을 좋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도에 빠지는 건 그게 좋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온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느끼고, 어느 주제에 관해 무엇이든 알아내고 배울 수 있다고 느끼게 되니까요.]

                                                   -요한 하리의 <도둑 맞은 집중력> 중에서


연수를 마치고 첫 발령을 받아 짐을 싸는 동안 노트북을 켜 놓은 채 실시간 흘러나오는 스트리밍 영상 뉴스를 틀어 놓고 또 다른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는 시리즈물 영상을 띄워 놓았다.

한 가득 채워 넣은 짐 가방 뚜껑을 닫고 나서 노트북에서 뉴스 화면을 종료 시켜 버리고 메일을 화면에 띄워 놓고 pdf파일을 클릭하고 다음날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시리즈 물을 정주행 하고 나서 음악 스트리밍을 켜 놓고 보내야 할 메일의 답장을 쓰는 동안 채팅 창을 띄워 놓은 채 동료들과 업무에 관한 것들 기타 등등에 관한 것들을 주고 받았다.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저글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 침대에 눕자 마자 다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주일 후에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작업을 시작했다.

두 세 시간 쯤 눈을 붙이고 나서 공항 가는 버스에 올라 타서 잠깐 눈을 붙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것들을 떠올렸다.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나서 출국장 대기실에 앉아서는 앞으로 내가 근무 하게 될 부서가 맡은 업무에 관한 것을 숙지 하느라 하마터면 비행 시간을 놓칠 뻔 했다.

첫 근무지에 도착하자 마자 짐 가방을 열기도 전에 노트북부터 충전을 시켜 놓고 급히 휴대폰으로 메일 답장을 쓰느라 정신없이 손으로 화면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짐 가방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물품들과 출근 할 때 입을 옷가지들만 꺼내 놓았다.

도착한 다음날 부터 출근을 시작한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업무에 적응 하기 위해 하루 20시간 동안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야 했다.

매 분기 바뀌는 법령을 완벽하게 숙지 해야 했고 변론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바람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부피의 법전은 일일이 찾아 보지 않아도 머릿 속에서 자동으로 떠올릴 정도로 통째로 집어 삼켜 버렸다.

이렇게 업무에 숙달하는데도 24시간이 모자를 지경인데 나의 상사들은 매일 여러 나라에서 발행 되는 주요 신문과 일간지들을 샅샅이 읽었고 주기적으로 콘서트와 각종 전시회를 돌아 다니며 수시로 출장을 떠나면서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갈고 닦은 악기나 그림, 노래, 춤등의 재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의미 있는 자리에서 펼쳐 보였다.

업무 회기가 끝나는 주에는 인근 나라까지 자전거를 타는 일주 여행을 떠나거나 알프스 산행으로 피로를 풀었다.


호반의 도시 제네바에서 첫 달을 보내는 동안 무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 해 볼 여유조차 없이 업무 이외에 어떤 것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마치 짐 가방에서 물건들을 전부 꺼내지 못한 상태처럼 나는 그날 그날 주어진 업무를 따라 가는데 급급했고 눈 앞에 떨어진 업무를 처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렸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눈을 감고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지 석 달의 시간이 흘러 섬머 타임이 시작 되는 달부터 더 이상 허둥지둥, 허겁지겁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나의 상사들은 맡은 업무를 하는 동안 엄청난 사건이 터지지 않은 이상 여러 개의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깊게 사색 했고 깊게 몰입해서 절도 있게 행동했고 간결하게 말했고 유려 하면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 일의 선봉장에서 움직였다.

학교를 갓 졸업한 내 눈엔 이들의 모습들이 게임 시뮬레이션처럼 정교하게 짜여진 알고리즘 프로그랭밍화 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첫 근무지에서 살아 남아야 했기에 어느 누구와도 눈이 마주쳐도 인사하고 말을 걸며 사방 팔방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재빨리 알아차려서 대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갔고 어디를 간다면 따라갔다.

매 분기 주요 의제가 끝나는 주에는 점심 식사 후에 갖는 티타임 시간에 각자 읽고 있는 책을 가져와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에 끼어들기 위해 집에서 가장 두툼한 책을 덥석 가져 왔다.


이 책을 들고 간 날 함께 모인 사람들과 티타임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열띤 토론에 불이 붙었고 그 다음날 티타임 부터 각자 읽은 페이지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업무에 치여도 이렇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티타임 시간이 있는 주에는 온 몸에 에너지가 솟았고 매일 잠들기 전에 노트북을 켜지 않고 책을 펼쳤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문장에서 출발한 토론이 그 날 저녁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고 누군가 연극표를 구해 와서 단체로 관람까지 하게 되었다.

그날 극장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국장은 나에게 

'스무 살 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하고 나서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지. 이전까진 어떤 책을 읽어도 그런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없었거든 전에는 감히 시도해보지 못했던 존재 마치 저 멀리 있었던 그 무엇에 다가간 것처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거야. 내 인생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기 전과 후로 나눠져.'라는 말을 했다.


나는 스무 살 이전인 중학생 때 읽고 이해를 하지 못해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두 번째로 집어 들었다. 그 때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해서 이제서야 읽는다는 말을 하니 그 국장은

'세 번째 읽고 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 꺼야'


마침 제네바의 한 미술관에 러시아 회화전이 열렸는데 카탈로그에 크람스코이 그림이 있어서 시간을 내서 전시장에 찾아갔다.

크람스코이 <관조자> 1876



[화가 크람스코이의 그림 중에 관조자라는 제목의 훌륭한 그림이 한 점 있다. 겨울의 숲이 묘사되어 있고, 숲 속 길에 다 헤진 카프탄을 입고 짚신을 신은 한 농부가 길을 잃은 채 아주 깊은 고독에 잠겨 홀로 서 있는데, 꼭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관조‘ 하고 있는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이 그림 앞에 서는 순간, 현재의 내 모습이 보였다.

매일 출근 할 때 마다 짐 가방에서 하나 씩 옷을 헤집어 꺼내 입었고 업무에서 해방되는 순간엔 눈부신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숫가 주변을 걷는 동안에도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시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책을 펼쳤다.



[그 즉시 정신을 차리긴 해도 그에게 이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분명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하지만 그 대신, 분명히 관조 하는 동안 받은 인상은 자기의 내부에 감춰 둘 것이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인상들이어서, 분명히 의식도 하지 못하면서 살금살금 인상들을 축적하고 있는 것인데─무엇을 위해서, 왜 그러는지도 물론 알지 못하며서 말이다. 어쩌면 수많은 세우러 동안 인상들을 축적한 뒤 갑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고서 편력 생활과 수도 생활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갑자기 고향 마을에 불을 질러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짐 가방은 전부 비워 버리고 옷가지들과 물건들을 옷장과 서랍에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는 라디오 앱을 켜 놓았고 영상물은 집 앞 길 건너 극장에서 보았다.

잠들기 전에 두툼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부터 신기하게 차츰 시간이 남기 시작했고 인근 도시로 하이킹을 가거나 전시장을 찾아 다녔고 요리 클래스에 등록해서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 차려 먹게 되었다.


'세상은 어리석음 위에 세워져 있고, 

그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하는 동안 1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는 동안에도 그 책을 항상 가방 속에 넣고 생각 날 때 마다 수시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었다.

어느 해 봄 런던으로 출장을 떠난 주에 팀장이 찾아왔다.

그 팀장도 출장 차 런던에 왔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 굳이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숙소가 있는 피카딜리 나이트 브리지 역에서 만났다.

팀장은 서둘러서 헤롯 백화점에서 가족들에게 선물할   물건을 구입하고 지인들과 노팅힐에서 식사를 한다며 서둘러 나와 작별 인사를 하자마자 정신없이 누군가 통화하기 위해 휴대폰과 태블릿을 양 손에 쥐고 사라졌다.

나는 그 팀장과 헤어지고 난 후 다른 층에서 행사 중인 제품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날 저녁,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팀장은 그날 헤롯 백화점 앞 길을 건너다 이층 버스에 부딪쳐서 큰 부상을 당해 인근 병원에 입원 중이였다.

그가 수술실에 있는 동안 나는 그 팀장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경찰 말에 의하면 신호불을 그 팀장이 바뀐지 모르고 뛰어가다 사고를 당했다며 필요한 신상 정보를 적어갔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이 일 저 일을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해요. 뇌가 그 사실을 가려서, 의식에서는 아주 매끄러운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작업 사이를 오가면서 순간 순간 뇌를 재 설정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고요.]


중환자 회복실에서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 팀장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현재 내 삶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언제 어떤 대가를 치루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보통 우리는 쉬운 길로 가고 싶어 해요. 

하지만 우리가 행복할 때는 약간 어려운 일을 할 때거든요.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늘 중요한 것보다는

 쉬운 것을 제안하는 물건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 거예요.


뉴욕 지사에 도착 한 달에 아이패드 신형이 출시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대기 하고 있어서 감히 신형을 구입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찰나에 우연히 **출판사가 홈페이지와 앱을 새롭게 단장 하면서 자사 SNS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 달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그 이벤트 1등 상품이 신형 아이패드 여서 노트북 화면을 켤 때 마다 그 이벤트가 눈에 아른 거렸다.

이벤트 날짜를 확인하고 회원 가입을 하고나서 이런 저런 책을 골라 담고 가입 비용을 내고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지어 놓고 장황하게 이름에 얽힌 사연을 적어 구글 폼에 채워 전송했다.

몇 주 후 믿을 수 없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벤트에 당첨 되어  **출판사 로고가 뙁 찍힌 신형 아이패드를 손에 넣었다.

매일 쓰다듬고 만지고 터치하며 이런 저런 앱을 깔아 놓고 아이패드에 필요한 부속 기기를 구입하며 이북 라이브러리에서 읽고 들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몸에 착붙템이 되었다.

아이패드로 주문하고 예약하고 전송하고 보고 듣는 동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아이패드 화면에서 보았던 것 위주로 찾아 보며 내 인생의 모든 시작과 출발이 이 기기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디자인과 눈부신 기능으로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나는 아이패드 충성 고객으로 날로 거듭났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종이 위의 단어를 향해

 관심을 바깥으로 돌립니다.

 동시에 그 내용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내면을 향해 엄청난 주의를 쏟습니다.˝


오랫 만에 찾아간 대학원에 학생들이 <안나 카레니나> 책을 전부 손에 들고 있었다.

조교수가 된 친구가 전공은 아니지만 함께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어보자라는 제의를 하자 다수의 학생들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싶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인생에 대해서 순진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 어린애는 그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그들의 도피의 정도를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 책을 이미 러시아어로도 완독 했다는 말을 흘리듯 내뱉자 그 친구는 가방에서 두툼한 안나 카레니나 책을 꺼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았다.

곧바로 다음 날 부터  학생들과 함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 나는 그동안 항상 안나가 기차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장면에서 책을 덮어 버리고 나머지 가족의 삶인 레빈과 키친이 나오는 끝 부분은 설렁 설렁 읽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온 것인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살아갈 수도 없다.

무한한 시간, 무한한 물질,

무한한 공간 속에 물거품과 같은 하나의 유기체가 창조 된다.

그리고 물거품은 잠시 동안 견디다가 이윽고 터져버린다.

그 물거품이 바로 나인 것이다.


1년 동안 <안나 카레니나>를 함께 읽는 학생들과 나, 그리고  내 친구까지 각자의 사연들이 있었다.

세상을 떠난 엄마가 가장 사랑했던 책, 영화로만 봐서 원작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할머니에게 물려 받은 책, 모스크바 여행을 기념해서 사온 책, 오프라 윈프리가 지정한 책, 내전 발발로 임시 난민처에 사는 동안 만난 유일한 책....


이렇게 각자의 사연을 품고 1년의 시간 동안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 한 이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는 더 이상 신형 아이패드가 나와도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행동을 바꾸게 되니 사고가 바뀌었고 수시로 화면을 응시하지 않게 되니 생각이 많아졌다.












“헛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칼 같은 아이들은 너처럼 강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강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 말이야. 나는 이 일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요즘 같은 세상에 기댈 곳을 잃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무언가 하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니?”

                                                                         -제이디 스미스의 <온 뷰티> 중에서


신간이 나올 때 마다 항상 구매 해서 읽는 작가들 중 한 명인 제이디 스미스 

그녀는 캠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부터 문학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며 첫 소설 <하얀 이빨>을 출간 하자마자  수 개국어로 번역 출간 되면서 단번에 문학 천재의 자리에 올라갔다.


눈부신 찬사에 뒤이어 발표한 두번째 작품 <온 뷰티>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양 극단에 위치한 두 중산층 지식인 가정의 모습을 통해 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모순적 상황을 지적이고 꿰뚫는 듯한 필체로 쓴 작품이다.

1975년생 제이디 스미스는 15살에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고 세상이 두 동강이 나버릴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어떤 신사들은 자신의 위대한 영혼이 실수로 빠져든 우주라는 따분한 덫에 대해 전반적인 불만을 표현함으로써 문학계에서 놀라운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자아와 하찮은 세계를 의식한다면 그 나름의 위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드게이트의 불만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은 사고와 효과적인 행동에서 위대한 존재가 자기 주위에 있는 반면 자신의 자아는 점점 협소해지면서 비참하게 고립된 이기적인 두려움에 빠져들고 그런 두려움을 줄여 줄 사건을 천박하게도 노심초사하며 바라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중에서


영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Middlemarch)』는 가상의 소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각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등장 시켜 결혼, 종교, 선거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같은 주제들을 둘러싼 풍부한 담론과 극적 사건들을 촘촘하게 엮어서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욕망, 나아가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 본성의 명암을 포괄적으로 고찰한 대 서사시이자 최고의 사회경제 교양서다.

문학 천재 제이디 스미스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 <하얀 이빨>에서 흑인, 갈색인, 여호와의 증인, 이슬람교도, 레즈비언, 동물보호주의자들을 총 출동 시켜서 인종,종교,젠더 갈등,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갈등, 이민 2세대의 정체성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현재 영국의 모습과 무자비하면서 광범위하게 개척하고 짓밟아버린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종횡무진하며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21세기 현 시대로 재현 시켜 놓았다.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디 스미스의 인생은 엄청난 양의 책을 탐독 하고 나서 형제들과 쓰는 말과 행동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미들마치>를 읽고 나서는 가족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미들마치>를 여러 번 읽는 동안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옥죄 였던 정치와 종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회를 변혁 시키고 자유를 쟁취하려고 노력했던 조지 엘리엇처럼 생각하고 말을 했고 글을 썼다.



'기회란 말이죠.”

몬티가 자만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권리입니다……. 선물이 아니죠.

권리는 노력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는 반드시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가치가 떨어집니다.”

-제이디 스미스의 <온 뷰티> 중에서


연달아 출간한 소설의 성공으로 제이디 스미스의 책은 출판 시장에서 흥행 보증 수표가 되었다.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 선  그녀는 현재 미국 뉴욕에 정착해서 뉴욕 대학 문예창작과 종신 교수가 되어 영국의 주요 일간지에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여전히 <미들마치> 책을 읽고 있다.



150주년 출간 기념으로 나온 특별판에 서문을 쓴 제이디 스미스는 이러 글을 서문에 남겼다.

[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동안 어떤 남성 교수도 어떤 여성 교수도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 나는 조지 엘리엇 처럼 혼자서 모든 걸 찾아 다녔고 도움이 되는 친구들로 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조지 엘리엇이 스펜서와 교류 하며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를 번역하듯 나는 나의 남편이 아일랜드 고유어로 시를 쓴 것을 현대 영어로 번역했고 그리고 영국 땅을 떠날 때 유일하게 가져 온 책은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였다.]

-제이디 스미스


나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스무 살에 읽고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서 여기저기서 자신의 인생 책이라는 소리를 듣고 설렁 설렁 읽다가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보고 스스로 완독 했다고 생각했다.

2022년부터 몇 장 씩 읽다가 2023년 1월 부터 완독을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완독 읽기 차트를 만들어 하루 읽은 페이지를 적어 나가며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완독은 17일 만에 끝났고 이후 10일에 걸쳐 두 번째 완독 하고 이후 부터는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페이지를 넘겼다.


2023년 6월 9일 첫 창작물 웹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를 투비에 연재 하기 시작해서 7월 26일까지 5주에 걸쳐 총 10편으로 완결 했다.

https://tobe.aladin.co.kr/s/5871


누적 조회수 4.6만을 기록해서 2023년 투비의 1년을 빛나게 해준 인기 작 12편 작품에 나의 첫 창작 웹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 작품이 들어갔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지 않았다면 아니 앞서 읽은 1년의 시간 동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생애 첫 창작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찾아간 극단에서 먹고 자며 단원 연습 생활을 했던 작가 유미리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무작정 필사 했다.

그녀는 <죄와벌>을 필사 하고 난 후 마음 속 어딘가에 글쓰는 근육이 생겨 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노트에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모조리 적기 시작했다.

가족의 이야기로 희곡상과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27살의 작가의 타이틀을 얻은 유미리가 만일 아이패드를 24시간 끼고 살았다면 창작물을 써서 상을 탈 수 있었을까?


https://tobe.aladin.co.kr/t/scott


나는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투비에 글을 하루에 두 편씩 올리면서 전보다 더 많이 읽고 있다.

수 많은 작가들, 예술가들,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창조적 영감이 내면의 뮤즈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들이 말하는 내면의 뮤즈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체험, 학습에서 이루어진 결정체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도 청년 시절 교구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앞선 선배 음악가들이  작곡한 작품들을 매일 필사 했고 천재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활을 쥐기 시작했던 4살 부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크 시대 작품 악보를 필사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씩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푸바오가 노는 모습을 잠깐 스쳐 지나가듯 보다가 푸바오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다음 영상으로 푸바오의 쌍둥이 여동생까지 찾아 본다.


그렇게 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어느 덧 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고 두 눈과 머릿 속은 온통 푸바오를 부르는 사육사 할부지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글을 쓰기 전엔 어떤 단어도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내 몸은 노트북 앞에 있지만 머릿속은 시 공간을 넘나들며 마치 그동안 잊혀졌던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둔 기억의 서랍장을 열어 젖히듯 전에는 쓰지 못했던 문장을 쓰게 되고 마침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우리 안의 각자의 뮤즈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일상적인 일과 생각으로 분주하게 어지럽혀 져 있어도 불굴의 뮤즈는 우리가 다시 찾아 올 때까지 마음 한 구석에 동면을 하고 있다.

무언가 읽고 부지런히 쓰는 동안 내 안의 뮤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한계는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인생의 단편이 아무리 전형적이더라도 일정한 거미집의 표본은 아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 있고, 

열성적인 시도가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잠재 된 힘이 오래 기다려 온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과거의 과오가 원대한 복구를 촉구할 수도 있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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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1-11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부임지가 제네바였다니...너무 낭만적이네요. 투비 소설 선정도 축하드립니다. 미들마치 원서로 읽어보려고 다운 받았었다 바로 접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 출간과 함께 다시 재도전해보려 합니다. 기대되네요. ‘도둑맞은 집중력‘ 상태라 저는 정신 좀 차려야 할 것 같아요. ^^;;

scott 2024-01-11 15:52   좋아요 2 | URL
사회라는 정글의 조직 생활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도시의 이름만으로 낭만을 떠올리신 블랑카님이 로맨티스트 성향이 ㅋㅋㅋ

blanca 2024-01-11 16:44   좋아요 1 | URL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scott 2024-01-12 11:04   좋아요 1 | URL
^ㅎ^

희선 2024-01-12 0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이디 스미스 모르지만, 열다섯살에 《미들마치》를 읽었군요 그리고 지금도 읽는다니... 그런 책이 하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님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중학생 때 처음 읽고 나중에 또 보기도 하셨군요 톨스토이도...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민음사에서 나왔군요


희선

2024-01-12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4-01-1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으로 안나카레니나 읽은 저는 하루 대부분을 아이패드에 띄운 pdf문제들 보며 책은 한 줄도 못 읽고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이것도 일시적인 삶의 형태겠지만요 ㅋㅋㅋ 스콧님 제 몫만큼 더 즐겁게 실컷 읽는 나날 계속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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