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는 기분을 좋게 해주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도에 빠지는 건 그게 좋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온 세상과 연결되었다고 느끼고, 어느 주제에 관해 무엇이든 알아내고 배울 수 있다고 느끼게 되니까요.]

                                                   -요한 하리의 <도둑 맞은 집중력> 중에서


연수를 마치고 첫 발령을 받아 짐을 싸는 동안 노트북을 켜 놓은 채 실시간 흘러나오는 스트리밍 영상 뉴스를 틀어 놓고 또 다른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는 시리즈물 영상을 띄워 놓았다.

한 가득 채워 넣은 짐 가방 뚜껑을 닫고 나서 노트북에서 뉴스 화면을 종료 시켜 버리고 메일을 화면에 띄워 놓고 pdf파일을 클릭하고 다음날에 필요한 서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시리즈 물을 정주행 하고 나서 음악 스트리밍을 켜 놓고 보내야 할 메일의 답장을 쓰는 동안 채팅 창을 띄워 놓은 채 동료들과 업무에 관한 것들 기타 등등에 관한 것들을 주고 받았다.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저글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 침대에 눕자 마자 다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주일 후에 발표할 프레젠테이션 작업을 시작했다.

두 세 시간 쯤 눈을 붙이고 나서 공항 가는 버스에 올라 타서 잠깐 눈을 붙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것들을 떠올렸다.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나서 출국장 대기실에 앉아서는 앞으로 내가 근무 하게 될 부서가 맡은 업무에 관한 것을 숙지 하느라 하마터면 비행 시간을 놓칠 뻔 했다.

첫 근무지에 도착하자 마자 짐 가방을 열기도 전에 노트북부터 충전을 시켜 놓고 급히 휴대폰으로 메일 답장을 쓰느라 정신없이 손으로 화면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짐 가방에서 지금 당장 필요한 물품들과 출근 할 때 입을 옷가지들만 꺼내 놓았다.

도착한 다음날 부터 출근을 시작한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업무에 적응 하기 위해 하루 20시간 동안 깨어 있는 상태로 살아야 했다.

매 분기 바뀌는 법령을 완벽하게 숙지 해야 했고 변론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바람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부피의 법전은 일일이 찾아 보지 않아도 머릿 속에서 자동으로 떠올릴 정도로 통째로 집어 삼켜 버렸다.

이렇게 업무에 숙달하는데도 24시간이 모자를 지경인데 나의 상사들은 매일 여러 나라에서 발행 되는 주요 신문과 일간지들을 샅샅이 읽었고 주기적으로 콘서트와 각종 전시회를 돌아 다니며 수시로 출장을 떠나면서도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갈고 닦은 악기나 그림, 노래, 춤등의 재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의미 있는 자리에서 펼쳐 보였다.

업무 회기가 끝나는 주에는 인근 나라까지 자전거를 타는 일주 여행을 떠나거나 알프스 산행으로 피로를 풀었다.


호반의 도시 제네바에서 첫 달을 보내는 동안 무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 해 볼 여유조차 없이 업무 이외에 어떤 것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마치 짐 가방에서 물건들을 전부 꺼내지 못한 상태처럼 나는 그날 그날 주어진 업무를 따라 가는데 급급했고 눈 앞에 떨어진 업무를 처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렸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눈을 감고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지 석 달의 시간이 흘러 섬머 타임이 시작 되는 달부터 더 이상 허둥지둥, 허겁지겁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 보기 시작했다.

나의 상사들은 맡은 업무를 하는 동안 엄청난 사건이 터지지 않은 이상 여러 개의 일을 한꺼번에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깊게 사색 했고 깊게 몰입해서 절도 있게 행동했고 간결하게 말했고 유려 하면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말과 글로 일의 선봉장에서 움직였다.

학교를 갓 졸업한 내 눈엔 이들의 모습들이 게임 시뮬레이션처럼 정교하게 짜여진 알고리즘 프로그랭밍화 된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첫 근무지에서 살아 남아야 했기에 어느 누구와도 눈이 마주쳐도 인사하고 말을 걸며 사방 팔방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즐기는지 재빨리 알아차려서 대화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갔고 어디를 간다면 따라갔다.

매 분기 주요 의제가 끝나는 주에는 점심 식사 후에 갖는 티타임 시간에 각자 읽고 있는 책을 가져와 자유롭게 토론하는 자리에 끼어들기 위해 집에서 가장 두툼한 책을 덥석 가져 왔다.


이 책을 들고 간 날 함께 모인 사람들과 티타임 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열띤 토론에 불이 붙었고 그 다음날 티타임 부터 각자 읽은 페이지에 대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업무에 치여도 이렇게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티타임 시간이 있는 주에는 온 몸에 에너지가 솟았고 매일 잠들기 전에 노트북을 켜지 않고 책을 펼쳤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문장에서 출발한 토론이 그 날 저녁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고 누군가 연극표를 구해 와서 단체로 관람까지 하게 되었다.

그날 극장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국장은 나에게 

'스무 살 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하고 나서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지. 이전까진 어떤 책을 읽어도 그런 감동을 느껴 본 적이 없었거든 전에는 감히 시도해보지 못했던 존재 마치 저 멀리 있었던 그 무엇에 다가간 것처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거야. 내 인생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기 전과 후로 나눠져.'라는 말을 했다.


나는 스무 살 이전인 중학생 때 읽고 이해를 하지 못해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두 번째로 집어 들었다. 그 때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해서 이제서야 읽는다는 말을 하니 그 국장은

'세 번째 읽고 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 꺼야'


마침 제네바의 한 미술관에 러시아 회화전이 열렸는데 카탈로그에 크람스코이 그림이 있어서 시간을 내서 전시장에 찾아갔다.

크람스코이 <관조자> 1876



[화가 크람스코이의 그림 중에 관조자라는 제목의 훌륭한 그림이 한 점 있다. 겨울의 숲이 묘사되어 있고, 숲 속 길에 다 헤진 카프탄을 입고 짚신을 신은 한 농부가 길을 잃은 채 아주 깊은 고독에 잠겨 홀로 서 있는데, 꼭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지만 실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관조‘ 하고 있는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이 그림 앞에 서는 순간, 현재의 내 모습이 보였다.

매일 출근 할 때 마다 짐 가방에서 하나 씩 옷을 헤집어 꺼내 입었고 업무에서 해방되는 순간엔 눈부신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숫가 주변을 걷는 동안에도 온갖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시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책을 펼쳤다.



[그 즉시 정신을 차리긴 해도 그에게 이렇게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분명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며, 하지만 그 대신, 분명히 관조 하는 동안 받은 인상은 자기의 내부에 감춰 둘 것이다. 그에게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인상들이어서, 분명히 의식도 하지 못하면서 살금살금 인상들을 축적하고 있는 것인데─무엇을 위해서, 왜 그러는지도 물론 알지 못하며서 말이다. 어쩌면 수많은 세우러 동안 인상들을 축적한 뒤 갑자기 모든 것을 내던지고서 편력 생활과 수도 생활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갑자기 고향 마을에 불을 질러 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 책을 읽는 동안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짐 가방은 전부 비워 버리고 옷가지들과 물건들을 옷장과 서랍에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는 라디오 앱을 켜 놓았고 영상물은 집 앞 길 건너 극장에서 보았다.

잠들기 전에 두툼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부터 신기하게 차츰 시간이 남기 시작했고 인근 도시로 하이킹을 가거나 전시장을 찾아 다녔고 요리 클래스에 등록해서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 차려 먹게 되었다.


'세상은 어리석음 위에 세워져 있고, 

그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몰라.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완독 하는 동안 1년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기차를 타고 다른 도시로 출장을 가는 동안에도 그 책을 항상 가방 속에 넣고 생각 날 때 마다 수시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었다.

어느 해 봄 런던으로 출장을 떠난 주에 팀장이 찾아왔다.

그 팀장도 출장 차 런던에 왔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 굳이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숙소가 있는 피카딜리 나이트 브리지 역에서 만났다.

팀장은 서둘러서 헤롯 백화점에서 가족들에게 선물할   물건을 구입하고 지인들과 노팅힐에서 식사를 한다며 서둘러 나와 작별 인사를 하자마자 정신없이 누군가 통화하기 위해 휴대폰과 태블릿을 양 손에 쥐고 사라졌다.

나는 그 팀장과 헤어지고 난 후 다른 층에서 행사 중인 제품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날 저녁,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팀장은 그날 헤롯 백화점 앞 길을 건너다 이층 버스에 부딪쳐서 큰 부상을 당해 인근 병원에 입원 중이였다.

그가 수술실에 있는 동안 나는 그 팀장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경찰 말에 의하면 신호불을 그 팀장이 바뀐지 모르고 뛰어가다 사고를 당했다며 필요한 신상 정보를 적어갔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자신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사람들은  ˝이 일 저 일을 전환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해요. 뇌가 그 사실을 가려서, 의식에서는 아주 매끄러운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작업 사이를 오가면서 순간 순간 뇌를 재 설정하고 있는 겁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르고요.]


중환자 회복실에서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 팀장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현재 내 삶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언제 어떤 대가를 치루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보통 우리는 쉬운 길로 가고 싶어 해요. 

하지만 우리가 행복할 때는 약간 어려운 일을 할 때거든요.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늘 중요한 것보다는

 쉬운 것을 제안하는 물건을 언제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게 된 거예요.


뉴욕 지사에 도착 한 달에 아이패드 신형이 출시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대기 하고 있어서 감히 신형을 구입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찰나에 우연히 **출판사가 홈페이지와 앱을 새롭게 단장 하면서 자사 SNS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 달라는 이벤트를 열었다.

그 이벤트 1등 상품이 신형 아이패드 여서 노트북 화면을 켤 때 마다 그 이벤트가 눈에 아른 거렸다.

이벤트 날짜를 확인하고 회원 가입을 하고나서 이런 저런 책을 골라 담고 가입 비용을 내고 무작정 떠오르는 대로 이름을 지어 놓고 장황하게 이름에 얽힌 사연을 적어 구글 폼에 채워 전송했다.

몇 주 후 믿을 수 없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벤트에 당첨 되어  **출판사 로고가 뙁 찍힌 신형 아이패드를 손에 넣었다.

매일 쓰다듬고 만지고 터치하며 이런 저런 앱을 깔아 놓고 아이패드에 필요한 부속 기기를 구입하며 이북 라이브러리에서 읽고 들으며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몸에 착붙템이 되었다.

아이패드로 주문하고 예약하고 전송하고 보고 듣는 동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아이패드 화면에서 보았던 것 위주로 찾아 보며 내 인생의 모든 시작과 출발이 이 기기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디자인과 눈부신 기능으로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나는 아이패드 충성 고객으로 날로 거듭났다.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종이 위의 단어를 향해

 관심을 바깥으로 돌립니다.

 동시에 그 내용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면서 

내면을 향해 엄청난 주의를 쏟습니다.˝


오랫 만에 찾아간 대학원에 학생들이 <안나 카레니나> 책을 전부 손에 들고 있었다.

조교수가 된 친구가 전공은 아니지만 함께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어보자라는 제의를 하자 다수의 학생들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싶다고 해서 읽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인생에 대해서 순진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 어린애는 그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그들의 도피의 정도를 가리키는 나침반이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 책을 이미 러시아어로도 완독 했다는 말을 흘리듯 내뱉자 그 친구는 가방에서 두툼한 안나 카레니나 책을 꺼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았다.

곧바로 다음 날 부터  학생들과 함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 나는 그동안 항상 안나가 기차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장면에서 책을 덮어 버리고 나머지 가족의 삶인 레빈과 키친이 나오는 끝 부분은 설렁 설렁 읽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온 것인가.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살아갈 수도 없다.

무한한 시간, 무한한 물질,

무한한 공간 속에 물거품과 같은 하나의 유기체가 창조 된다.

그리고 물거품은 잠시 동안 견디다가 이윽고 터져버린다.

그 물거품이 바로 나인 것이다.


1년 동안 <안나 카레니나>를 함께 읽는 학생들과 나, 그리고  내 친구까지 각자의 사연들이 있었다.

세상을 떠난 엄마가 가장 사랑했던 책, 영화로만 봐서 원작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할머니에게 물려 받은 책, 모스크바 여행을 기념해서 사온 책, 오프라 윈프리가 지정한 책, 내전 발발로 임시 난민처에 사는 동안 만난 유일한 책....


이렇게 각자의 사연을 품고 1년의 시간 동안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 한 이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는 더 이상 신형 아이패드가 나와도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행동을 바꾸게 되니 사고가 바뀌었고 수시로 화면을 응시하지 않게 되니 생각이 많아졌다.












“헛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칼 같은 아이들은 너처럼 강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해 강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 말이야. 나는 이 일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요즘 같은 세상에 기댈 곳을 잃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무언가 하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니?”

                                                                         -제이디 스미스의 <온 뷰티> 중에서


신간이 나올 때 마다 항상 구매 해서 읽는 작가들 중 한 명인 제이디 스미스 

그녀는 캠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부터 문학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며 첫 소설 <하얀 이빨>을 출간 하자마자  수 개국어로 번역 출간 되면서 단번에 문학 천재의 자리에 올라갔다.


눈부신 찬사에 뒤이어 발표한 두번째 작품 <온 뷰티>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보수와 진보라는 양 극단에 위치한 두 중산층 지식인 가정의 모습을 통해 현대 미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모순적 상황을 지적이고 꿰뚫는 듯한 필체로 쓴 작품이다.

1975년생 제이디 스미스는 15살에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고 세상이 두 동강이 나버릴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어떤 신사들은 자신의 위대한 영혼이 실수로 빠져든 우주라는 따분한 덫에 대해 전반적인 불만을 표현함으로써 문학계에서 놀라운 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자아와 하찮은 세계를 의식한다면 그 나름의 위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드게이트의 불만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은 사고와 효과적인 행동에서 위대한 존재가 자기 주위에 있는 반면 자신의 자아는 점점 협소해지면서 비참하게 고립된 이기적인 두려움에 빠져들고 그런 두려움을 줄여 줄 사건을 천박하게도 노심초사하며 바라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중에서


영문학사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Middlemarch)』는 가상의 소도시 미들마치를 배경으로 각 사회 계층을 대변하는 인물들을 등장 시켜 결혼, 종교, 선거권,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같은 주제들을 둘러싼 풍부한 담론과 극적 사건들을 촘촘하게 엮어서 빅토리아 시대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욕망, 나아가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인간 본성의 명암을 포괄적으로 고찰한 대 서사시이자 최고의 사회경제 교양서다.

문학 천재 제이디 스미스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 <하얀 이빨>에서 흑인, 갈색인, 여호와의 증인, 이슬람교도, 레즈비언, 동물보호주의자들을 총 출동 시켜서 인종,종교,젠더 갈등,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갈등, 이민 2세대의 정체성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현재 영국의 모습과 무자비하면서 광범위하게 개척하고 짓밟아버린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종횡무진하며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21세기 현 시대로 재현 시켜 놓았다.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이디 스미스의 인생은 엄청난 양의 책을 탐독 하고 나서 형제들과 쓰는 말과 행동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미들마치>를 읽고 나서는 가족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미들마치>를 여러 번 읽는 동안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의 삶을 단단하게 옥죄 였던 정치와 종교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회를 변혁 시키고 자유를 쟁취하려고 노력했던 조지 엘리엇처럼 생각하고 말을 했고 글을 썼다.



'기회란 말이죠.”

몬티가 자만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권리입니다……. 선물이 아니죠.

권리는 노력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는 반드시 정당한 방법으로 얻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가치가 떨어집니다.”

-제이디 스미스의 <온 뷰티> 중에서


연달아 출간한 소설의 성공으로 제이디 스미스의 책은 출판 시장에서 흥행 보증 수표가 되었다.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 선  그녀는 현재 미국 뉴욕에 정착해서 뉴욕 대학 문예창작과 종신 교수가 되어 영국의 주요 일간지에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여전히 <미들마치> 책을 읽고 있다.



150주년 출간 기념으로 나온 특별판에 서문을 쓴 제이디 스미스는 이러 글을 서문에 남겼다.

[ 케임브리지에 다니는 동안 어떤 남성 교수도 어떤 여성 교수도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 나는 조지 엘리엇 처럼 혼자서 모든 걸 찾아 다녔고 도움이 되는 친구들로 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조지 엘리엇이 스펜서와 교류 하며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를 번역하듯 나는 나의 남편이 아일랜드 고유어로 시를 쓴 것을 현대 영어로 번역했고 그리고 영국 땅을 떠날 때 유일하게 가져 온 책은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였다.]

-제이디 스미스


나는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스무 살에 읽고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서 여기저기서 자신의 인생 책이라는 소리를 듣고 설렁 설렁 읽다가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보고 스스로 완독 했다고 생각했다.

2022년부터 몇 장 씩 읽다가 2023년 1월 부터 완독을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완독 읽기 차트를 만들어 하루 읽은 페이지를 적어 나가며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완독은 17일 만에 끝났고 이후 10일에 걸쳐 두 번째 완독 하고 이후 부터는 수시로 생각날 때마다 페이지를 넘겼다.


2023년 6월 9일 첫 창작물 웹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를 투비에 연재 하기 시작해서 7월 26일까지 5주에 걸쳐 총 10편으로 완결 했다.

https://tobe.aladin.co.kr/s/5871


누적 조회수 4.6만을 기록해서 2023년 투비의 1년을 빛나게 해준 인기 작 12편 작품에 나의 첫 창작 웹소설 <그해 여름의 수수께끼> 작품이 들어갔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지 않았다면 아니 앞서 읽은 1년의 시간 동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 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생애 첫 창작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무작정 찾아간 극단에서 먹고 자며 단원 연습 생활을 했던 작가 유미리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무작정 필사 했다.

그녀는 <죄와벌>을 필사 하고 난 후 마음 속 어딘가에 글쓰는 근육이 생겨 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노트에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모조리 적기 시작했다.

가족의 이야기로 희곡상과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27살의 작가의 타이틀을 얻은 유미리가 만일 아이패드를 24시간 끼고 살았다면 창작물을 써서 상을 탈 수 있었을까?


https://tobe.aladin.co.kr/t/scott


나는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투비에 글을 하루에 두 편씩 올리면서 전보다 더 많이 읽고 있다.

수 많은 작가들, 예술가들,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창조적 영감이 내면의 뮤즈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이들이 말하는 내면의 뮤즈는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과 체험, 학습에서 이루어진 결정체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도 청년 시절 교구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앞선 선배 음악가들이  작곡한 작품들을 매일 필사 했고 천재 모차르트는 바이올린 활을 쥐기 시작했던 4살 부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크 시대 작품 악보를 필사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끔 씩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푸바오가 노는 모습을 잠깐 스쳐 지나가듯 보다가 푸바오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다음 영상으로 푸바오의 쌍둥이 여동생까지 찾아 본다.


그렇게 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어느 덧 두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고 두 눈과 머릿 속은 온통 푸바오를 부르는 사육사 할부지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글을 쓰기 전엔 어떤 단어도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내 몸은 노트북 앞에 있지만 머릿속은 시 공간을 넘나들며 마치 그동안 잊혀졌던 마음 속 깊은 곳에 넣어둔 기억의 서랍장을 열어 젖히듯 전에는 쓰지 못했던 문장을 쓰게 되고 마침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우리 안의 각자의 뮤즈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일상적인 일과 생각으로 분주하게 어지럽혀 져 있어도 불굴의 뮤즈는 우리가 다시 찾아 올 때까지 마음 한 구석에 동면을 하고 있다.

무언가 읽고 부지런히 쓰는 동안 내 안의 뮤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한계는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인생의 단편이 아무리 전형적이더라도 일정한 거미집의 표본은 아니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 있고, 

열성적인 시도가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잠재 된 힘이 오래 기다려 온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과거의 과오가 원대한 복구를 촉구할 수도 있다.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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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1-11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부임지가 제네바였다니...너무 낭만적이네요. 투비 소설 선정도 축하드립니다. 미들마치 원서로 읽어보려고 다운 받았었다 바로 접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 출간과 함께 다시 재도전해보려 합니다. 기대되네요. ‘도둑맞은 집중력‘ 상태라 저는 정신 좀 차려야 할 것 같아요. ^^;;

scott 2024-01-11 15:52   좋아요 2 | URL
사회라는 정글의 조직 생활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도시의 이름만으로 낭만을 떠올리신 블랑카님이 로맨티스트 성향이 ㅋㅋㅋ

blanca 2024-01-11 16:44   좋아요 1 | URL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scott 2024-01-12 11:04   좋아요 1 | URL
^ㅎ^

희선 2024-01-12 0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이디 스미스 모르지만, 열다섯살에 《미들마치》를 읽었군요 그리고 지금도 읽는다니... 그런 책이 하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님도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중학생 때 처음 읽고 나중에 또 보기도 하셨군요 톨스토이도...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민음사에서 나왔군요


희선

2024-01-12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4-01-14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으로 안나카레니나 읽은 저는 하루 대부분을 아이패드에 띄운 pdf문제들 보며 책은 한 줄도 못 읽고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이것도 일시적인 삶의 형태겠지만요 ㅋㅋㅋ 스콧님 제 몫만큼 더 즐겁게 실컷 읽는 나날 계속 보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