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약 6년 만에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 은 1980년 문예지에 발표했으나 책으로는 발간되지 않은 중편소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고쳐 쓴 작품으로 655페이지 분량에 총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다시 고쳐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번 단행본 후기에 이렇게 밝혔다.

1980년에 문예지 <문학계>에 발표 했던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은 중편 소설 (당시에 단편작보다 좀 늘려 쓴)이였습니다.

원고지 400자 분량을 가득 채워서 아마도 150매 분량에서 조금 넘게 썼던 작품이였습니다.

당시 잡지에 연재했던 작품으로 내용 면에서 어떻게든 납득 할 수 있는 결말로 나아가지 못해서 (여러가지 전후 사정이 있었는데 설익은 상태에서 세상에 내놓았다고 느꼈습니다)책으로 완성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만 서점 매대에 놓여 진 적도 없었고 일본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단 한 번도 출판된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저에게 있어서 왜 인지 몰라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고 제가 처음 집필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계속 유지 할 수 있게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그저 그 시절에 저는 완성 하는 걸 단념 해서 인지 그렇게 완전한 작품으로 쓰지 못할 필력이였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시절 소설가로 막 데뷔를 했기에 지금의 제 자신과 달리 무엇을 써야 할지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할지 충분할 정도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기 였습니다.


발표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일어 난다면 되돌릴 수 없었겠죠.

언제 생각해봐도 그 시절 그런 결정을 내렸던 건 당연했던 일이라고 주기적으로 생각했기에 차분하게 손을 대고 다시 써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게 제 안에 잠든 채 결국 끝 맺지 못했습니다.

이 작품을 쓸  당시 저는 도쿄에서 재즈 바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살아서 당시에 어리 벙벙한 상태로 생활을 이어나가면서 틈틈이 집필에 몰두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게 경영 하는 걸 그만두고 (음악을 좋아했고 가게도 꽤 성업 중이였지만) 소설을 몇 편 쓰고 나니 글을 쓰면서도 먹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강해져서 가게를 접고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허리를 졸라 매고서 쓴 첫 장편 소설 <양을 둘러싼 모험>을 발표했습니다.

1982년에 곧바로 쓰기 시작했던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대폭 수정해서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이야기가 장편 소설로 이어서 써나간다는 건 무리였기에 완전한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서 시점과 문체 색깔을 완전히 달리 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 해서 처음 발표 당시에 1부만 완성 했던 것을 2부와 3부를 추가해서 한 편의 장편으로 완성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전개는 두 가지 시간이 교차 진행됩니다.

따라서 두 가지 이야기로 전개되었던 것이 마지막에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게 제가 처음 부터 기획하고 썼기에 좀 조잡한 속셈으로 완성했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시점이 마지막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 질 수 있게 써나가는 동안 작가인 저 역시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전에는 이렇게 기획해도 딱 맞춰서 완성하지 못했기에 고집을 피우며 자유롭게 써나가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꽤 앞 뒤 생각 없이 살았던 이야기처럼 느껴지네요 그러니까 '자 뭐라도 써야겠지'라는 낙관적인 (그 시절 무서운 것도 몰랐던 나이) 기세만 있었지 마무리 짓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끝까지 쓰다 보면 점점 잘 써진다는 자신감 같은 것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예상 했던 것과 달리 마무리는 커녕 완결 하지도 못했으니 이제 두 가지 이야기로 벌려 놓고 하나의 이야기로 마무리 해버렸습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오고 가며 써나가다 보면 기나긴 터널 속으로 들어가 한가운데 불쑥 하나의 이야기로 관통해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제 경험 상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쓰는 동안 스릴을 느끼면서 썼기에 이번에도 그와 같은 걸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을 완성한 후 단행본 출판년도를 보니 1985년이라고 찍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저는 서른 여섯 살로 이런 저런 걸 꽤 경험하며 어떻게 든 전과는 다른 시대로 넘어갔었던 나이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서 작가가 되었고 글 쓰는 경험들이 쌓여 가면서 제법 출판된 책들의 무게 만큼의 나이를 먹고 나서야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이라는 미완성된 작품을 꺼내 보니 그 시절 작품을 숙성되지 않은 채로 매듭지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 랜드>는 두 가지 상반된 이야기로 진행 시켜나갔는데 이번에는 서로 다른 유형의 시간을 대응 시켜나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써나갔습니다.

'원고를 꺼내 놓고'가 아니라 미완성된 이야기를 뼈대로 세워두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갔습니다.

그렇게 쓰다 보니 '뭐 하나의 이야기를 더 대응 시켜 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문체의 색깔과 시점이 서서히 바뀌어 나갔고 서서히 이야기의 전체 서사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 작년 (2020년) 부터 쓰기 시작해서 현재 (2022년 12월)까지 이 작품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을 한번 더 마지막 마침표까지 찍을 때까지 완전하게 다시 쓸 수 있었습니다.

처음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제 스스로 글 쓰는 법을 배워나가다 보니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네요.

그 시절에 제 나이는 서른 한 살에서 현재 71세가 되었습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다가 작가의 길을 선택해서 그렇게 몇 년의 계절이 쌓여가니 전문 작가(그렇게 불려 지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만) 로 살고 있는 것에 의미를 크게 부여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소설을 쓴다'는 행위로 먹고 살고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애정을 덧붙여 말해본다면 그 정도로 대단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좀 더 덧붙여 본다면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 해로 제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던 3월 초 부터 조금씩 작품을 쓰기 시작해서 대략 3년의 시간 동안 완성 했습니다.

그 시기에 외출도 하지 못했고 장기 여행도 못했으니 그렇게 이상한 시기에 이 정도의 긴장감을 강하게 느꼈던 환경 속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중단 하고 냉각 시기까지 겹쳐서) 나날이 소설을 꾸준하게 이어서 쓸 수 있었습니다.(아마도 꿈속에서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던 오래된 꿈을 읽듯이)

이런 상황이 되니 무언가 의미 있는 해야 하지 않을 까 라며 이런 의미 있는 일을 했으니 이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집필하는 동안 온 몸으로 실감했습니다.

맨 처음 제 1부를 완성하고서 그렇게 처음 부터 지향했던 일을 완료 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이 정도만 쓰자' 라며 펜을 반 년 정도 놓아버린 채 원고를 그렇게 잠들게 해 놓고는 '역시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지 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끝나야 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2부를 썼고 제 3부까지 써버렸습니다.

이렇게 3부까지 쓰고 나니 그제서야 완전한 이야기로 완성했다는 생각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저로써는 (제가 작가가 되어서 작가라고 불리는 인간이여서)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잔꾀를 부린 것입니다.

이렇게 4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면서 새로운 책으로 고쳐 썼다는 건 이미 한번은 그 거리에 섰다가  돌아서서 그 시절에 끝까지 가지 못했다는 걸 통감하고 있습니다.

보르헤스가 말하기를 한 사람의 작가가 평생 동안 집필할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량이 한정되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한정된 여러 이야기의 모티브에서 손으로 모양을 변형 시키면서 다양한 형태로 글을 쓸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네요.

요약하자면 진실로 하나의 이야기로 정해지지 않은 채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시점이 바뀌고 이동하면 상반된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따라서 이야기라는 건 읽어나가면서 그 실체를 알아가는 묘미를 맛보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에 출간 된 한국어 번역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으로 제목이 수정 되었지만 원래 일본어 책 제목은 街とその不確かな壁으로  어느 날, 한 소년은 고교 에세이 대회에서 우연히 만난 한 소녀로 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진짜 나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그 도시에 살아.” 소년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소녀가 들려주는 도시 이야기에 빠져 들고 후에 성인으로 성장해서 직업도 잃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배회 하다 그 시절 그 소녀가 말했던 그 도시 그 거리를 찾아 간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 분리되는 그림자, 바늘 없는 시계탑, 그리고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그 거리에서 시작 되는 이야기

하루키가 기존에 자신의 작품에서 등장했던 인물들이 장소와 배경, 나이와 이름, 성별만 조금 바뀌어서 이번 신간에서 재생 반복 된다.

마치 재즈 연주단이 기존의 연주 되었던 명곡을 다시 무대에서 즉흥 변주 하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번 신간은 그가 발표 했던 역대 작품의 비슷한 연장 선에 있는 작품 중 하나다.

하루키의 명 단편을 프랑스 아트 디렉터 Jc 드브니가 총 아홉편을 각색해서 만화로 멋지게 그려서 출간 했다.

하루키가 창작한 이야기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영화-연극-그래픽 노블-만화로 재 각색 되어 재즈 섹션의 화려한 변주곡처럼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다.

[출판 산업 전체가 거리에 나앉았다. 편집자들은 “편집으로 어떻게 먹고 살란 말인가!”라는 푯말을 들고 길모퉁이에 서 있 다. 아트 디렉터들은 나무상자 위에 앉아서 통행인들을 모래언덕의 작은 벌레로 묘사한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다. 발행인들은 길모퉁이 사무실 창문에서 몸을 던져서 자신들을 보도 위에 흩뿌려진 시신의 한정판으로 만들어 출간하고 있다. 작가들은 어디 있느냐고? 눈치가 빠르면 돈을 꽤 벌고 있을 것이다.]

-존 스컬지의 슬기로운 작가 생활 중에서

1949년생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재 미국에 체류중으로 이번 2023년 9월에 열리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을 준비로 몸 만들기에 한참이다.

아마 이시기에는 하와이에서 몸 만들기에 돌입하며 뜨거운 태양이 내리 쬐는 오후 시간에는 현재 번역 마무리 단계에 있는 트루먼 카포티의 <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의 번역문을 다듬고 있을 것이다.

쉼없이 쓰고 달리고 번역하고 그리고 매달 도쿄 FM 라디오 진행과 원고 작성을 하고 모교 와세다 대학 국제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낭독회와 재즈 콘서트까지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인생에 마침표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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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8-28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마음 속에 늘 개운치 않게 남아 있던 초기 글을 40년만에 완성! 하루키는 이제 속이 시원하시려나요?ㅎㅎㅎ

2023-08-2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23-08-28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보고 싶은 마음에 손으로 들었다 놓기도 했지만 결국 이렇게 한글 번역본으로 주문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루키가 미국에 있군요. 2023년 보스톤 마라톤이라 해서 제가 잘못 읽은 줄 알고 다시 확인했네요. 믿어지지가 않네요. 그 연세에...역시 하루키는 하루키네요. 하루키가 아버지뻘인데 저는 지금 몸 만들어 나가라 해도 절대 못한다 할 듯한데...

scott 2023-08-28 16:52   좋아요 1 | URL
블랑카님 마음 하루키옹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ㅋㅋ
하루키옹은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 매회 하와이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해서 기록과 관련 없이 무사히 완주 했습니다
제가 투비에는 올렸지만 하루키옹 첫회 마라톤 출전 때부터 기록된 완주 시간이 있습니다
이제 곧 80대 인데
주변에 80대들 중에 온전하게 걷고 뛸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루키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밝혔습니다.

매일 손으로 쓰고 온몸으로 뛰며 살고 있는 하루키옹을 지켜 보면서
이분의 삶의 의지는 펜끝과 다리 힘에서 나온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ㅎㅎㅎ

일단 읽겠다고 마음 먹으셨다면 첫 문장이라도 사전을 찾아가며 스스로 해석 해보세요.
동기 부여가 됩니다.
블랑카님 일본어 정복
홧팅 ^^

blanca 2023-08-29 09:34   좋아요 1 | URL
와, 책이 출간되지도 않았는데 오늘 판매지수 보고 완전 놀랐네요. 베스트셀러 2위라니... 역시 하루키는 건재하군요. 당연히 초판한정 양장본이라 해서 따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는데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음, 일본어는 <후와후와>도 사전 없이 해석 1도 안되는 수준으로 안착했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8-28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달 보스톤 마라톤에 나가신다구요?????
쓰러지시면 어떡하실라구....
돌아가신 엄마와 동갑이신 하루키 님입니다.
와.....정말 대단한 작가세요.
그래도 마라톤은......

scott 2023-08-29 00:11   좋아요 1 | URL
하루키옹 이미 작년에도 참가 해서 완주를 ㅎㅎ
어무이가 100세를 가뿐하게 넘기셔서 하루키옹의 몸에 장수의 DNA가 ㅎㅎ

병원에 간 적 없을 정도로 타고난 체질이 건강 하다고 합니다
옹은 오래 살고 머니 걱정 없이 맘껏 뛰면 됨요 ^^

희선 2023-08-29 0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가려고 미국에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일본에 있다가 미국에 가서 바로 마라톤 하려면 더 힘드니... 그것뿐 아니라 다른 것도 여전히 하는군요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해서 건강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제대로 쓰지 못한 소설을 다시 시간을 들여서 써서 좋았겠습니다


희선

scott 2023-08-29 10:50   좋아요 1 | URL
하루키옹은 미국 시장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 합니다
대부분 영어판 번역을 토대로 이중 삼중 번역(일본어 번역가가 없는 국가들)하기 때문에 하루키 옹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인터뷰 하고 글 기고 하고 달리고 ㅎㅎ
눈만 좀 침침해졌지 신체 모든 기관이 튼튼 하다니
대단하죠

오래전 원고를 다듬어 낼 정도면 이제 자신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것들 차분하게 정리하고 세상 행복하게 살다 갈 것 같습니다
작가 중에 가장 행복한 분 중 한 명 ^^
 


“우리 삶이 얼마나 무력한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암초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인생의 너무 큰 몫을 출생이며 빈둥거리기, 수련 과정 따위에 할애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몽테뉴의 <에세> 중에서


연이어 터지는 흉폭한 사건과 묻지마 사건으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치솟고 있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행복과 기쁨 그리고 행운만 깃들 수 없지만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보호 받지 못한다는 것이 현재 2023년의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삶의 가르침이 되는 말은 어릴 때 부모님의 집에서 배웠다. 모두 엄격한 지혜였지만, 오래된 가재도구처럼 아름답고 단순할 뿐이었다. 그런 걸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경구는 항상 문장 하나로 표현되었고, 곧 마침표가 찍혔기 때문이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중에서

학교에서는 폭력과 욕설이 난무 하고 부모는 서로를 견제하고 헐뜯는 경쟁심으로 충만해서 10살 영재에게 근거 없는 비방과 협박 메일을 보내고 있다.

상처와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같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겨서 언제 어느 순간에 불쑥 튀어 나올지 모른다.

마치 주기적으로 감정의 높낮이가 오르락 내리락 하듯 하나의 상처와 폭행, 폭언으로 받은 상처가 어제는 견딜 만 했지만 오늘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어떤 보상과 위로로도 완전하게 치유 되지 않는다.

산다는 게 이토록 힘이 든다는 건 인간의 운명인 것인가?

인간의 삶에 밀물과 썰물이 있다면 밀려 오고 쓸려 내려가는 시기와 간격의 고리에서 잠시 멈춤이라는 건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속도에 얽매여 산다. 밤낮으로 빠르게 달리고, 다른 모든 일도 빠르게 처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우리를 둘러싼 네 벽이 고정돼 있는 것처럼 면도하고 밥 먹고 사랑하고 독서하고 업무를 본다. 섬뜩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 벽들이 움직이고,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지만 길고 굽은 더듬이처럼 벽의 레일이 계속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중에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죽은 딸,테니스 공에 맞아 즉사한 남동생, 세상에 둘도 없던 친구 라 보에시의 사망, 신장 결석증을 앓다 피를 쏟아 내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미셸 에켐 드 몽테뉴(1533-1592)는 38살이 되던 해 “남아 있는 삶이나마... 누구의 방해도 없이 지내다 죽겠노라' 다짐하고 조상 대대로 살았던 고향 프랑스 서남부의 페리고르로 귀향한다.

귀향 한 성 밖 너머 수시로 출몰하는 전쟁의 피 냄새가 끓어 올랐던 시기에 몽테뉴는 지름이 16보, 둘레가 50본 정도인 서재에서 칩거하며 1천 권 남짓의 책을 읽으며 종당 천장에 새겨 놓은 로마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시구를 지우고 이런 경구를 새겨 넣었다.


' 더 오래 살아도 새롭게 얻을 낙은 없다!'

-몽테뉴


그가 이 시기에 써낸 『에세』는 근대 시대로 넘어가 마르셀 프루스트, 로베르트 무질,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에세이>라는 장르를 탄생 시키며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적 사유의 글은 인간의 내적 삶이 결정적인 사유를 통해 추출해낸 단 하나의 변할 수 없는 형식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곧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또렷이 보일 때까지 계속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더 큰 생각은 무엇일까? 진정한 경험은? 진짜 주제는? 내게 중요한 것은 답을 찾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비비언 고닉의'상황과 이야기' 중에서


나는 매일 글을 쓰면서 세상을 탐구 하며 내 안의 나를 다양한 각도로 살펴 보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사회와 가정에서 소비 되고 허비 되고 끌려 다니는 '내가' 아닌 주체적인 '내가' 된다.

1월 12일부터 투비에 매일 글을 쓰고 있으니 나역시 몽테뉴, 비비언 고닉처럼 에세이를 쓰고 있는 것이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문학의 미래는 단지 책장에 책 몇 권을 덧붙이거나 위대한 여성 작가나 호메로스를 꼼꼼히 읽고 세련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에 관한 것이다. 나는 복수의 목소리와 복수의 관점을 담은 복잡한 소설들을 체험하는 것, 고통 받고 축하하고, 여행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오거나, 그저 방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기고, 친절하거나 잔인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이 상상의 인간들은 실제의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고 또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낯선 것이 친숙해진다. 소설 읽기는 우리 정치적 불행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 문제라면, 조직화, 적극적 저항, 더 강경한 수사가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야기들이, 좋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어머니의 기원 중에서

한국에서 알랭 보통의 에세이들이 날개 돋치게 팔리는 동안 나는 뉴욕에서 시리 허스트베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녀가 쓴 책들 기고한 에세이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그 시기에 뉴욕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폭행과 범죄가 날마다 실시간으로 발생했고 대낮에 거리에서 아시아계들이 흑인, 히스패닉 부랑자들에게 피가 터지게 폭행을 당했던 시기였다.

다민족 국가로 이방인과 이민자들, 불법 체류자들로 넘쳐 나는 미국 뉴욕은 그야말로 아시아계들에게는 정글 같은 곳이여서 그곳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매일 아침 문 밖을 나설 때 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디에서든 안심할 수 없는 곳이다.

'여성은 성적 대상이 아니다.'라는 표어를 크게 적은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해도 아시아계 여성들의 인권 보호는 지켜지지 않는 곳이 뉴욕이다.


그 시기에 시리 허스트베트는 '여자가 성적 대상이면 남성도 성적 대상이다'라며 남성들이 품고 있는 성적 감성을 문장으로 낱낱이 해부 하는 기고 글을 썼다.

미국의 페미니즘은 2016년에 터져 나온 미투 사건 이전에 청교도적인 사고가 깊이 자리 잡은 곳이였다.


'성적 자유와 에로티시즘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한 시리 허스트베트는 법적으로 해석되지 못하는 '성차별'의 문제, 여성의 인권에 대해 심리학적 사유와 과학적인 사고 방식으로 분석했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글은 인간의 기억과 상실, 차별과 혐오, 모성, 이민자들의 현실을 예술적인 언어로 문학·신경과학·정신분석·예술·사회 분야를 넘나들며 여성성과 남성성이 모두 뒤섞여 있는 독특한 매력으로 넘쳐 난다.

그녀의 글이 기고 되고 책으로 출간 될 때마다 찾아 읽고 구매하는 이유는 세상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파헤치는 작가 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유명 작가들이 펴낸 에세이 집에는 자기만의 이야기, 자기 만의 세상에 대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좁혀져서 실시간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세상을 손 안에 폰으로 볼 수 있음에도 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바라보는 시각은 점점 편협해져서 거짓과 진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미국 2세대 페미니스트인 80대 비비언 고닉은 여전히 길을 걸으며 세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며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70세를 앞둔 1955년생 시리 허스트베트도 사회에 고착된 죽은 언어, 여성 혐오, 차별,폭력, 폭언에 대해 맞서 싸우며 상투적인 언어가 아닌 논리와 설득의 아우라를 휘감고 오래고 영예로운 싸움의 선봉장에 서 있다.



불안한 시기에 두 권의 뛰어난 작가들의 책이 펀딩 되고 있다.

이미 나는 두 권을 읽었지만 모두 어려운 시기에 훌륭한 양서가 세상에 널리 읽혀지는 바램으로 펀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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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8-21 0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글 좋네요 저는 한권도 안 읽었는데ㅜㅜ 스콧님 소개 보고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근데 이 분 남편이 폴 오스터군요ㅎㅎㅎ

2023-08-21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시우행 2023-08-21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감사합니다.

scott 2023-08-21 09:56   좋아요 0 | URL
오늘도 무덥네요
호시우행님 한 주 시작 시원하게 ^^

건수하 2023-08-21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 허스트베트 전에 어딘가에서 보고 (스콧님이 언급하셨을까요) 이름이 어렵다고 생각하고서는 잊어버렸는데 오늘 이 글을 보니 급 관심이 생겨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요즘의 난무하는 범죄 때문인 것 같아요) 소개 감사합니다.

scott 2023-08-21 09:56   좋아요 1 | URL
네, 전에 제가 언급 했습니다

좋은 책 어려운 시기에 출간 결정한 출판사 칭찬하고 싶어서 올렸네요 ^^

희선 2023-08-22 0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은 벌써 읽으신 책이 한국말로 나오는군요 그런 거 보면 반갑겠습니다 요새 일어나는 일이 그리 좋지 않지만... 한국도 좀 멈춰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경제만 많이 생각했잖아요 한동안 저녁이 있는 삶을 살자 했지만 정말 그렇게 산 사람이 얼마나 될지... 세상은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겉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2023-08-22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억울한홍합 2023-08-27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에서부터 읽고 싶어집니다~~

scott 2023-08-27 20:59   좋아요 0 | URL
홍합님 9월 도서로 강추 ^^

어쩌다냥장판 2023-12-2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성 없는 남자의 리뷰를 보다가 리뷰 쓰신걸 늦게야 봤어요 에세는 추천해주셔서 구입해선 교훈서처럼 읽고 있어요 듣는걸로는 아까워서 눈으로 봐야할 책이라.. 역시나 여러책들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소중하고 상세한 리뷰 늘 감사합니다
 

첫 여성운동 물결의 국면을 1848년 세니커폴스 집회부터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한 1920년 제19차 헌법 개정안 시점까지 추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2의 물결을 떠올릴 수 있다. 혼란스럽고 소란하고 대단하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물결을. 우리는 이런 시각을 견지하면서 우리 모두 여전히 그 물결의 한가운데 있다고, 세상이 요동치는 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마음에 새긴다.'

                                                                                                      -여전히 미쳐 있는 중에서 

폭우를 뚫고 도착한 책, 읽자!읽자!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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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3-07-15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벌써 도착했네요!
저도 집에 가면 와있기를!

scott 2023-07-15 17:26   좋아요 1 | URL
펀드 참여자들은 오늘 배송 해 줄 것 같습니다
햇살님 댁에도 이미 와 있을것 같아요
여전히 미쳐 있는 ^^

거리의화가 2023-07-15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착했답니다 스콧님^^ 표지가 강렬하네요.

scott 2023-07-15 18:57   좋아요 1 | URL
다락방에 미친에 비하면 한 손에 잡히는 두께 ㅋㅋ

독서괭 2023-07-15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배송지연 문자 왔네요. 어차피 사무실로 시켜서 월요일에 오는 편이 나으니 다행이요 ㅎㅎ

scott 2023-07-15 18:58   좋아요 1 | URL
월요일,,,,
부디 비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택배 박스 모서리도 좀 젖었는데
다행히 책은 포송 포송 ^^

책읽는나무 2023-07-16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받았네요^^

2023-07-16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명과 인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글 단어 '삶'을 보면 흥미로운 자음이 보입니다.

ㅅ-ㄹ-ㅁ'

-문지혁의 중급 한국어 중에서


투비를 하고 부터 가끔씩 알라딘에 들어와 글쓰기 창을 열때면 여전히 불안, 불안하다.

쓰던 도중에 순식간에 백지 상태 글쓰기 창이 뜬다거나,올리고 싶은 사진이미지가 등록 되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빈번하기에 오늘도 글을 쓰면서 문득 내가 알라딘을 하면서 부터 이모티콘을 직접 그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댓글창에 사진이미지 등록이 안되니)

.

  ∧_-------∧ !

 (´💖ω゚💖')

_(_つ/ ̄ ̄ ̄/_

  \/   /

    ̄ ̄ ̄

투비컨티뉴드 글쓰기 기능에 익숙해진 지금, 이곳 알라딘 서재에 내가 원하는 날짜, 시간에 맞춘 예약 발행 기능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어색한 불편함이 한 가득...


' 빈센트가 그린 아름다운 밤하늘과 반짝이는 별들은 말한다.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되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희망은 별에 있지만 지구 역시 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보내는 이, 빈센트


┊┊┊╭━━━━━━━━━╮

┊┊┊┃이제 이곳엔 리뷰만 올려야 하놔 ㅎㅎㅎㅎㅎㅎ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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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06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아스키 아트군요. 키보드앱중에 지원하는 것도 있지만 직접 만드시는 분은 처음 봐요. 앞으로 예쁜 재미있는 그림 기대할께요. ^^

scott 2023-03-06 10:19   좋아요 1 | URL
이제 헬기도 그릴 수 있습니다 ㅎㅎㅎ

알라딘 서재 댓글 창에 사진이미지를 올리지 못해서

이런 기술을 나름 습득하게 되었네요

대디님 한 주 시작 멋지게 ^^

거리의화가 2023-03-06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비에 예약 발행 기능이 저도 참 좋더라구요.
사진 안 올라가는 건 진짜 빨리 해결이^^;;;
아... 월요일인데 일하기가 넘 싫습니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ㅠㅠ

scott 2023-03-06 10:20   좋아요 1 | URL
투비 글쓰기 기능에 익숙해져서
지금 댓글 쓰는 것도 적응이 안되능 ㅎㅎㅎ

3월 일더미 가득 ㅠ.ㅠ

화가님 미세먼지 가득찬 오늘 건강 잘 챙기세요 ^^

물감 2023-03-06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등록이 되긴 하는데 로딩이 좀 길어졌어요. 어째 점점 서재가 무너져가는 기분이 들죠 왜 ㅠ

2023-03-06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쎄인트saint 2023-03-06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되다...안 되다 하네요....

scott 2023-03-06 12:14   좋아요 0 | URL
그냥 어느 순간 서재글 모두 홀라당 날라갈것 같습니다
서브 용량 과부하를 더이상 못 버티는 듯,,,

바람돌이 2023-03-06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젠 되는거 아닌가요? 되던데요??? ㅎㅎ

scott 2023-03-08 10:47   좋아요 1 | URL
어느 날 갑자기 여기글 홀라당 날라 갈것 같아여 ㅎㅎㅎ
 

미국의 주요 아이비리그 대학의 창작 수업이 대략 90여개 정도로 1학년 생들의 필수 과목인 기초 라이팅 수업을 들으면 2학년으로 올라 가서는  각종 연구 보고서 쓰는 법, 기업 지원 이력서 작성법, 신문, 잡지 기사 작성법, 각종 메뉴얼 쓰기 수업까지  세부적이면서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다.

 각 대학 마다 분야 별 전문가 급 실무진 교수들과 초빙 강사들에게 수업 진행을 맡기는데 이들 대부분은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을 갖춘 작가들, 언론계 종사자들, 유명 저널리스트, 방송 진행자들로 일단 이들의 이름으로 개설된   수업은 단연 학생들에게 인기다.

특히 프린스턴 대학은 시러큐스 대학 재학 시절 부터 타고난 글쟁이로 이름을 날리며 세계적인 작가가 된 조이스 캐롤 오츠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창작 수업을 시작 하면서 여러 명의 유명 작가들을 배출 했다.

그 중 한 명인 조너선 사프런 포어는 조이스 캐롤 오츠가 강력 추천해서 첫 장편 <모든 것이 밝혀졌다> 출간과 함께 그가 출간하는 작품들이 전 세계로 번역 출간 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현재 조너선 샤프런 포어도 자신의 모교 프린스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퓰리처 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코로나 발발 시기에 문예창작 학부(루이스 센터 아트스쿨) 학과장이 되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은 중국계 작가 이윤 리까지 영입해서 막강한 교수진을 구성했다.

미국 대학 역사에서 가장 먼저 창작 클래스를 설립해서 창작 워크샵을 시작한 아이오와 대학은 10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이곳 창작 교육 프로그램을 거쳐간 작가들 중 상당수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중국계 이윤 리 작가도 이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받으면서 썼던 단편이 '뉴요커'에 실리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대학들이 글쓰기 수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유는 '쓰기'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최고의 도구이자 자신의 생각을 완성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문예창작을 석사(MFA in Creative Writing) 과정으로  개설해서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집중 교육하고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가장 강조하고 중점을 두는 건 어떻게 쓰는 법이 아닌 어떻게 읽고 분석해서 단어들을 문장의 어떤 매커니즘으로 연결 시켜 나가는지를  중점으로 세세하게 분석하는 글쓰기 훈련을 한다.

여러 인물들의 인과 관계를 엮어서 스토리의 구조를 짜려면 각각의 이야기에 맞는 배경지식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창작 수업에서는 어떤 수업 보다도 집중적으로 '읽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선택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아 선택했던 창작 수업에서 조이스 캐롤 오츠는 학생들을 돌아가면서 지목한 후 각자의 이야기를 큰 소리로 이야기 해보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조이스 캐롤 오츠가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던 이유는 단어들이 특정 단어들과 만났을 때 어떤 음조와 음률로 이어지는지 스스로 써 놓고 알지 못하기에 제 3자인 다른 이들이 듣고 어떤 이야기로 받아 들이는지, 스토리의 구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해서 첨삭 조언을 하기 위해서 였다.

조너선은 이 과정을 여러 차례 하는 동안 처음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껄였다가 수업 마지막에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작정하고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기말 시험으로 제출한 그의 이야기에 캐롤 오츠는 흥미롭다며 다음 이야기를 써보라고 격려했고 그 결과 그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아마도 조너선은 수업 내내 이야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학습해 나가면서 결국엔 스토리의 구조 속에 담긴 특정 사건과 인물의 시작과 끝 맺음을 어떻게 다듬어 나가는지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단기간 안에 글쓰기를 학습하고 훈련해서 누구에게나 읽혀지는 완성된 이야기를 뚝딱 창작 하기 힘들고 어떤 수업을 들었어도 글쓰기에 진전이 없을지도 모른다.

여기, 또 다른 한 명의 창작 클래스를 이끌고 있는 작가가 있다.


<바르도의 링컨>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조지 손더스(George Saunders1958-)는 미 대학 문예 창작 학부에서 가장 유명한 학교 중에 하나인 시러큐스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이끌고 있다.

그는 장편 <바르도의 링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  오 헨리 단편상을 수상하며 단편을 잘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시러큐스 대학의 창작 학부는  단  여섯 명의 신입생만 받기 때문에 이곳의 입학 관문을 뚫고 들어간 학생들은 이미 전문 작가의 궤도에 올랐을 정도로 미국 내 각종 글쓰기 대회에 이름을 수차례 올렸던 이들이다.(입학 평균 경쟁률이 7-800:1 정도라고 함)

이들은 입학과 함께 교수진들과 1;1 수업을 받으며 매 학기 마다 제출하는 과제물이 주요 문예지에 실리거나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라 갈 수 있을 정도로  강도 높은 글쓰기 훈련을 한다.

조지 손더스는 20여 년 동안 자신의 창작 수업에서 19세기 러시아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가르쳤는데 그 중심에는 <안톤 체홉>의 작품들로 기타 작가들 중에는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고골 뿐이다.

조지 손더스 뿐 만 아니라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의 창작 클래스에서 안톤 체홉의 주요 단편들은 항상 교재로 쓰이고 있다.

조지 손더스가 선택한 러시아 단편들의 공통점은 단순하면서 명료한 언어로 구성된 이야기로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 형식이 이 단편들 속에 모두 들어 있다.

안톤 체홉의 대부분의 단편들은 대단한 사건이나 인물이 나오지 않고 역사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영웅의 대서사시도 없다.

별 볼일 없는 인물들, 우리 주변에서 한 번 쯤 스쳐 지나갔던 이들의 모습에서 선한 삶을 살거나 그렇지 못한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참된 인간애를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담겨져 있다.

조지 손더스는 여기, 이 책에서' 19세기 러시아 단편 소설을 읽는 것은 '마치 젊은 작곡가가 바흐를 공부 하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언급하며 책 전반에 걸쳐 읽는 방식, 즉 우리 자신의 읽기를 지켜 보고 어떤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생각 해볼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한다.


그가 글을 쓰고 싶어서 이 책을 펼친 독자들을 위해 선택한 작품들은

-마차에서(안톤 체홉)

-기수들(이반 투르게네프)

-사랑스러운 사람(안톤 체홉)

-주인과 하인(레프 톨스토이)

-코(니콜라이 고골)

-구스베리(안톤 체홉)

-단지 알료샤(레프 톨스토이)


총 7개 단편들을 통해 각자 읽기 상태를 점검하고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에세이 형식으로 써보기를 제안한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읽거나 들었을 때 그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느낌, 즉, 무엇 때문에 끝까지 읽게 되었는지 어떤 내용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글로 써봐야 각각의 단편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작가 손더스는 문학적 언어가 아닌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서술 하면서 특정 이야기에서 저항심이나 혼란을 느꼈거나 짜증을 불러 일으켰던 것 까지 모조리 써본 후 도대체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법을 시도 해 볼 것을 조언한다.


그는 첫 번째 스토리 안톤 체홉의 <마차에서>를 한 장씩 보여 주면서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이 무엇에 중점을 두고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이어질 때 중심 인물의 감정의 선을 자르고 붙이며 시 공간을 뛰어넘는 작업을 한다.

맨 마지막 전체 스토리를 단 한 줄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이 방식은 실제 시러큐스 대학 수업에서 훈련 하는 방식과 똑같다고 한다.


우선, 손더스는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어떤 부분에서 주인공이 무엇을 했는지, 이전 스토리에서 알아 차리지 못했던 그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단계 별로 읽기 작업을 시도한 후 이런 질문을 던진다.


  1. 책장에서 눈을 들고 지금까지 알게 된 것을 요약하라. 한두 문장으로 해보라.

  2. 무엇에 호기심을 느끼는가?

  3. 이야기가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맨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작가라면 다음에 어떻게 하겠는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당신은 다른 무엇을 알고 싶은가?


우리는 쓰기가 아닌 읽기의 독자의 시선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분석 할 때 테마-플롯-인물 발전-구조 같은 용어를 사용 하지 않는다.

쓰기를 할 때도 이런 용어에 집착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글을 쓰게 되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면 서사 구조를 제대로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시러큐스 대학의 창작 워크샵 프로그램에서 소설 쓰기 방식은 일주일에 한 번 씩 학생 여섯 명이 서로 두 명씩 팀을 짜서 각자 쓴 작품을 읽고 토론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런 수업 방식은 다른 대학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 되는데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정을 한 후 , 담당 교수가 논평을 하는 걸로 마무리한다.

콜로라도 광업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 건설 현장에서 뛰어 다니다가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한 조지 손더스는 전형적인 글쓰기 수업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학생들을 자극한다.

별것 아닌 사건이 발생하는 지점의 문단을 뽑아내서 거기서 추출해 낸 특정 단어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동안 학생들, 또는 독자들이  위대한 작가의 불멸의 작품에서 버려도 되는 부분을 가져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완성해서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로 발전 시켜 나가게 이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야기를 쓰는 동안 19세기 러시아 농노 사회가 아닌 21세기 현대 사회의 노동자들의 삶으로 깊숙이 개입해서 나날이 축적 되고 있는 고통, 삶의 고단함, 과거 속의 그들의 삶을 역 추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아침 8시 반에 읍내에서 마차를 몰고 나왔다. 포장도로는 말랐고 찬란한 4월의 태양이 온기를 뿌렸지만 도랑과 숲에는 여전히 눈이 있었다. 겨울, 악하고 어둡고 긴 겨울은 바로 얼마 전에야 끝났고 갑자기 봄이 왔지만, 온기도, 봄의 숨에 따뜻해진 나른하고 투명한 숲도, 호수처럼 물이 괸 들판의 거대한 웅덩이들 위를 나는 검은 새 떼도, 다른 사람이라면 너무 좋아 뛰어들 것만 같은 이 경이롭고 가없이 깊은 하늘도, 마차에 앉은 마리야 바실리예브나에게는 전혀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그녀는 학교에서 13년을 가르쳤고 그 세월 내내 급여를 받으러 수도 없이 읍내에 다녀왔다. 지금 같은 봄이건 비 오는 가을 저녁이건 겨울이건 그녀가 늘 변함없이 갈망하는 것은 가능한 한 빨리 목적지에 닿는 것 뿐이었다. 이 지역에서 오래, 아주 오랫동안, 100년 동안 살아온 것 같았고 읍내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의 모드 돌멩이, 모든 나무를 아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그녀의 과거와 그녀의 현재가 있었으며, 그녀는 학교, 읍내까지 왕복 하는 길, 다시 학교, 다시 길 외에 다른 미래를 상상 할 수 없었다.]

-안톤 체홉의 <마차> 첫 페이지


이야기의 첫 시작에서 몇 가지 핵심 적인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알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이야기로 흘러 갈 지 아직 예측하지 못한다.

손더스는 이 작품 <마차>를 읽고, 쓰는 창작 수업에서 주요 인물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면 어떤 결말로 완성 할 수 있는지 창작 해보거나 체홉이 시도 하지 않았던 극적인 사건을 추가 해서 완성한 작품을 함께 읽으면서 어떤 스토리로 재 탄생 시킬 수 있는지 시도 하는 동안 완전하지 않은 이야기, 핵심 요소를 빼버린 이야기, 부분 부분, 싹둑 싹둑, 삭제하고 잘라 버린 이야기를 어떻게 완성된 구조로 만들어가는지 해체하는 작업에 중점을 둔다.

단편의 마법사, 안톤 체홉은 '저기 기차가 온다.'라는 첫 문장을 시작으로 철도 건너 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특정 시간대에 발생 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사소한 요소들을 배치 하고 기차가 달릴 때 창문 너머 보이는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의 불빛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한다.

여기엔 어떤 극적인 사건도 없고, 엄청난 슬픔도 없고 어떤 뚜렷한 행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꿈처럼 흐릿하고 모호하게 드러나는 유년 시절의 모습, 현재의 삶 속에서 한 때 행복 했던 가정, 사랑 받았던 순간이 언뜻 언뜻 스쳐 지나가다 결국엔 어떤 일도 일어 나지 않은 채 누군가가 기억하는 어떤 인물의 삶의 흔적만 남겨질 뿐이다.

여기서 손더스는 이런 논평을 한다.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고 늘 아무것도 아닌 존재 였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하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다가 어떤 기적적인 순간에 한때 우리도 무언가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더 행복한 이야기 일까 아니면 더 슬픈 이야기 일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 대부분 현재 내가 구상하고 쓰고 있는 글감이 과연 누군가에게 읽혀지는 이야기가 될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쓰고 싶은 이들도 과연 내 인생이 이야기로 쓸 수 있는 인생인지 , 이런 글감도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라는 생각과 고민을 하는 이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읽혀지는 이야기, 많은 이들의 공감을 갖는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각자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 하거나 대입 시켜 보며 현재의 삶 보다 더 나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무언의 메시지를 상상 해 볼 공간이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예술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어떤 문제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깨닫고 느끼게 하는 게 진정한 예술의 힘이다.'


조지 손더스는 실제로 여기 실려 있는 단편들 중 가장 분량이 짧은 것(대략 1200단어 정도)를 복사해서  약 200단어 분량으로 잘라서 각각의 장이 끝날 때마다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앞선 이야기에서 무엇이 궁금한지 묻고 이 이야기가 어떤 방식의 결말을 맺을지 토론 한 후 각자 학생들이 원하는 부분의 이야기를 잘라서 이야기로 완성하는 쓰기 작업을 통해 글쓰기 훈련을 지도 한다.


이 책을 단순히 작법서로 배우겠다고 집어 들었다면 책장을 덮어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첫 장 부터 차분하게 읽는 동안 작가 손더스가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종이를 펼쳐 놓고 쓰기 시작한다면 그동안 쓰기 위해서 읽었던 무수히 많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떤 치명적인 실수를 했는지, 무엇을 읽지 못하고 지나쳐 버렸는지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떻게 읽고 공부해야 어떤 글로 발전 시킬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어떤 글쓰기 법칙도 찾을 수 없다. 이야기의 진정성이 작동하는 방식, 어떤 이야기가 끝까지 읽게 만드는지 어떤 스토리가 시 공간을 너머 읽혀지는지 정확하게 읽는 훈련을 스스로 구축해서 현실에서 이야기를 찾는 법을 찾게 만든다.

무엇에 대해 쓸까?라는 구상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읽고 있는지 스스로 정의 해서 이야기 구조를 짜서 종이에 써 봐야 한다.


[이반 이바니치는 오두막에서 나와 빗속에서 첨벙 물로 뛰어들어 두 팔을 넓게 밀어내며 헤엄을 쳤다. 그가 일으키는 물결에 하얀 수련들이 흔들거렸다. 그는 강 한가운데까지 헤엄쳐 나가 물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다른 곳에서 올라와 계속 헤엄 치다가도 연신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 바닥에 손을 대려 했다. '어이쿠 하느님!' 그는 기뻐서 계속 소리쳤다. '어이쿠 하느님!' 그는 물방앗간까지 헤엄쳐 가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와 강 한가운데에 누워 얼굴을 비에 드러낸 채 둥둥 떠 있었다. 부르킨과 알료힌은 이미 옷을 입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계속 헤엄을 치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어이쿠 하느님!' 그는 계속 탄성을 질렀다.

'주여, 저에게 자비를.'

'그만하면 됐잖아!' 부르킨이 그에게 소리쳤다.]

-안톤 체홉 <구스베리> 중에서


이 책의 원제목은 < A swim in a pond in the rain>으로 체홉의 '구스베리'에서 주인공 이반이 비가 내리는데 웅덩이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가 헤엄을 치는 장면에서 따왔다.


1895년 8월 8알 안톤 체홉은 평소 자신이 존경했던 대 작가 톨스토이에게 초대를 받아 그의 영지 야스나야 폴라냐로 갔다.

당시 톨스토이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채 방금 전에 농사일을 마치기라도 한 듯 어깨에 커다란 수건을 걸친 상태로 땀으로 젖은 몸을 씻기 위해 강으로 향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처음 만난 체홉에게 대뜸 강으로 가자고 말했고 잔뜩 긴장했던 체홉은 톨스토이를 따라서 강으로 갔다.

강에 도착하자 마자 톨스토이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체홉도 뒤따라서 옷을 모두 벗고 뛰어 들었다.

톨스토이는 물 속에서 첨벙 첨벙 수영을 하면서 체홉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체홉도 함께 첨벙 첨벙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후에 체홉은 자신의 일기에 '강물 속에서 함께 수영 하는 동안 그가 대 작가라는 사실을 잊어 버렸다.'라고 썼다.

체홉은 톨스토이와 함께 수영 한 후 정확히 3년 뒤 1898년에 <구스베리> 단편을 완성한다.

안톤 체홉은 톨스토이를 만나기 전 그가 행하고 실천하는 삶에 진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바보 이반>이 현실에서는 작위를 가진 귀족이 드넓은 영지를 갖고 기득권을 위한 축제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체홉은 누구나 경외 하고 존경하는 영적 지도자 처럼 구는 톨스토이가 민중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과학적 진보를 부정하고 오로지 흙으로 돌아가라는 그의 삶 자체가 모순덩어리라며 톨스토이의 초청을 수차례 거절했었다.

하지만 함께 수영을 하고 돌아온 후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만일 톨스토이가 죽게 된다면 내 삶에 텅 빈 자리가 생길까 봐 그의 죽음이 두렵다.'라는 말을 했다.

1904년 체홉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가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전혀 몰랐다.'라고 말했다.

체홉은 한 순간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이렇게 한 편의 멋진 단편 <구스베리>로 완성했다.

후대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고 부분 부분 잘라서 자신들의 삶의 경험, 상상의 스토리 구조로 다시 재 편집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 시켜 나가고 있다.

한 편의 글을 쓰면 첫 번째 원고는 두 번째 읽을 때 전체를 뜯어 고칠 정도로 지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어떤 문단은 전체 삭제하고 다시 쓰게 된다.

그렇게 쓰면서 쉼표를 찍고, 각각의 문장 마다 어색하게 자리 잡은 단어들을 빼고, 모호한 문장을 삭제하고 앞 선 스토리에서 불분명하게 묘사된 부분을 고쳐서 전에 썼던 분량에서 반으로 줄이고 공간과 시간을 재배치 하면서 전체 스토리를 다듬어 나간다.

이런 과정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시로 톱질 하고 망치질 하는 걸로 마무리 한다고 표현했고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 이자크 바벨은 '어떤 강철 못도 적당한 자리에 찍힌 마침표 만큼 차갑게 인간 심장을 꿰뚫을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고 꼼꼼하게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야 비로소 읽혀지는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작가 손더스는 이 책에서 영화나 기타 영상 스토리의 시퀀스와 감독의 시선으로 편집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완성한 후에 어떤 방법으로 고쳐 쓰고 재 구성 해서 지지부진하게 늘어진 이야기를 어떻게 다듬어야 완결된 스토리로 만들 수 있는지 그 과정을 설명했다.


그 과정을 간략한 문장으로 써보면,

단 한 장의 텍스트를 읽고 자르고-확장하고- 다듬어서- 하나의 문장으로 응축 시켜나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건 작가 지망생들은 쓰기에 앞서서 철저하게 읽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관점, 세상을 읽고 글로 풀어 쓰는 능력을 키워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 내야 비로소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수업에서 가장 훌륭한 텍스트인 읽기 교재를 독자들에게 던져 놓고 글을 쓰고 싶다면 이야기 속으로 첨벙 뛰어 들어가서 스스로 밖으로 나오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수업은 다른 교수들의 창작 수업과 달리 수업 이름이 길다.

<읽기, 쓰기, 그리고 삶에 관한 러시아 작가의 마스터 클래스>

이것은 마치 프로 음악가가 학생들을 위해 연 마스터 클래스에서 함께 악보를 읽고 연습하며 각자의 삶의 모습을 실어 연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창작 수업은 단순히 작가가 되기 위해 쓰는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하는 수업이 아닌 '삶'을 알아가는 수업으로 세상을 어떻게 읽고 해석하는지 스스로 터득해나가게 만드는 수업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일단 각각의 이야기가 크게 재밌지도 않고 대단히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고 결말도 흐지부지 마무리 되는 스토리들이다.

21세기에 자극적인 영상과 스토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이 책에 들어간 이야기들은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 손더스가 던지는 질문을 생각하며 한 번 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왜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인물의 심리를 추적하며 작가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를 재 구성하게 된다.

매 단편이 끝날 때마다 그는 작품 설명과 글쓰기 작법 구성이 끝나면 개인적인 이야기, 자신의 인생 이야기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재구성 하며 '나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떤 목적을 갖고 , 어떤 의지로든 일단, 이 책을 펼쳐 드는 순간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읽기와 쓰기'는 서로 분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읽고 해석할 수 있을지 현실을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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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14 0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받은 메일에 이 책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가 있더군요 안톤 체호프를 읽으면 소설을 쓴다는 말도 있었던 것 같네요 이게 제목이었던가 메일을 보니 안톤 체호프뿐 아니라 러시아 작가 소설을 본다는 말이 있었어요 이 책 벌써 보시다니... scott 님은 이 책이 한국말로 나오기 전에 아셨군요 짧은 소설이어도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보겠습니다 그런 걸 하면 자신은 어떻게 쓸지 생각하기도 하겠네요


희선

scott 2023-02-14 10:53   좋아요 3 | URL
체홉의 글을 읽고 난 후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 하고 막상 써보면 그렇게 유려한 스토리가 얼마나 쓰기 힘든지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ㅋㅋ
알라딘 메일에도 이 책을 추천했었군요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되자 마자 불티 나게 팔렸던 드문 작법책입니다
아마도 저자의 독특한 글쓰기 강의(기존에는 이런 스타일의 작법서가 없었음) 때문이고
미국 시라큐스 대학은 그야말로 창작문학부 중에서 탑 스쿨 중에 탑 스쿨입니다
여기 입학 하는 날 부터 프로의 세계의 관문 바로 앞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짧은 스토리 아에 모든 삶이 응축 되어 있게 쓴 체홉이 진정한 글쓰기 스승이라는 거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희선님 날씨가 많이 포근하네요
오늘 하루 해피 발렌 타인 데이 ^^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2-14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중간중간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scott 2023-02-14 10:54   좋아요 2 | URL
다시 읽어 보니 오타와 비문이 넘쳐서
몇 몇 구절 수정 했습니다
즐라탄이 읽어주셔서 캄솨!

오늘 하루 멋지게 보내세요 ^^

거리의화가 2023-02-14 09: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고 분석하여 하나의 문장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네요. 체호프의 단편들이 읽고 싶어집니다^^
뭔가 특별하거나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글감으로 사용하더라도 이야기를 잘 배치하고 전개해나간다면 훌륭한 글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2023-02-14 10:55   좋아요 3 | URL
읽고 분석하는 건 모든 학문의 기초!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밑줄쫘악 할 정도로 강조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 작은 글감에서 출발!
화가님 오늘 하루 해피 발렌타인 데이 보내세요 ^^

물감 2023-02-14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이번 페이퍼는 진짜... 너무너무 흥미진진 합니다.
아아 손더스한테 수업받고 싶네요 진심 ㅎㅎㅎ
특히 요 부분,

-당신이 작가라면 다음에 어떻게 하겠는가?
-한 사람의 독자로서 당신은 다른 무엇을 알고 싶은가?

글쟁이로써 살을 파고드는 질문이에요.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글과 문장이 될지 늘 고민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scott 2023-02-14 11:53   좋아요 3 | URL
물감님 우리 이번 생애
꼬옥 함께 손더스옹에게 수업 받으러
시러큐스 대학에 입학 합시다! ㅎㅎㅎ
물감님은 프로 글쟁이여서
단번에 합격하실 것 같습니다

일단 전 읽기 부터 차근 차근 열심히 하기롱 ㅠ.ㅠ

2023-02-14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4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먼지 2023-02-14 1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라인업 무엇인가요.. 대체 어떻게 수업하는지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scott 2023-02-14 11:57   좋아요 3 | URL
물감님 하고 저하고 그리고 먼지님
이렇게 세명이서 저 대학
시러큐스 문창과 입구까지 가보기롱^.~

우끼 2023-02-14 12:37   좋아요 2 | URL
저도저도 끼워주세요~~

scott 2023-02-14 12:39   좋아요 2 | URL
우끼님 까지
네명 ^.~

책먼지 2023-02-14 12:51   좋아요 2 | URL
든든합니다..💕

은오 2023-02-14 1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목차 한번 읽어봤다가 담지는 않았는데.... 뭔가 소설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르네여. 작가지망생이 아니라면 지루하게 읽히겠죠? 그나저나 이 신간을 벌써 읽고 페이퍼까지 남겨주신 스콧님 ㅋㅋㅋㅋ 😮👍

scott 2023-02-14 12:40   좋아요 5 | URL
역쉬! 은오님 고수의 스멜이 ㅋㅋㅋ
목차만 봐도 다 알고 있는 거쥬 !ㅎㅎ

이책은 몇년전에 완독 했는데
정영목 교수님이
어찌 번역 하셨는지 귱금해서 냉큼 ^0^

어쩌다냥장판 2023-02-14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담이지만 전 모든것이 밝혀졌다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 이책이 더 좋더라고요 ㅎ 아마 십년도 더 전에 젊은 나이라 나았다 느껴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이제 책들ㄹ 장바구니에 담기 준비해야 할것 같은데요~~ 톨스토이와 체호프가 함께 수영하고 담소하는 모습을 시간여행을 통해 지켜본다는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요 ㅎㅎ
밤 바람이 찬데 건강 조심하세요~~
염증으로 안먹어 입원한 냥이 병문안 왔다갔다 정신 없네요 요즘
스캇님 건강 잘 챙기세요~~ 항상

2023-02-14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5 0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15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dollC 2023-02-14 2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페이퍼를 보면,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ㅎㅎ 지적 욕구를 마구마구 자극받고 있어요.(하지만 실행력은 제로;;;)
일단 양질의 페이퍼를 열심히 읽는 걸로 대신해 보렵니다😅

scott 2023-02-14 23:52   좋아요 2 | URL
저도 돌씨님 페이버 보고 읽고 싶어서 찜 👆^^한 책들 많습니다 ㅎㅎ

이책은 이렇게 써서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뒤돌아 서면 잊어버릴것 같아서 ㅎㅎㅎ

저도 글만 이리 길게 써 놓고는 실행력은 0 ^^

돌씨님 좋은밤, 굿!밤 (-‿◦☀)

2023-03-0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8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3-09 0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cott 님 축하합니다 이월은 갔지만, 지난달도 삼월에도 책을 별로 못 보다니... 제대로 못 봐도 보기라도 해야 할 텐데... 곧 삼월 삼분의 일이 가겠습니다


희선

2023-03-09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3-03-09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저 저번에 이 페이퍼 보고 저 책 샀답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ㅎㅎㅎ
스콧님 글은 늘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scott 2023-03-09 15:25   좋아요 1 | URL
요정님 이 책 무척 좋은 책입니다 ㅎㅎㅎ

요정님은 어떻게 읽는가
리뷰 기대 할께요 ^^

서니데이 2023-03-1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3-03-31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3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03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