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성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江)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길이는 570m, 너비는 128m이며,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聖)비투스대성당·성조지바실리카·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 중엽에 초기 고딕 양식이 첨가되고, 이어 14세기에는 프라하 출신인 카를 4세에 의해 왕궁과 성십자가교회 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이 때부터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뒤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 르네상스 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왕궁뿐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라하뿐 아니라 체코·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이며, 특히 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틴성당

프라하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교회로, 1365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변형을 가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물 양식이 가미되었다. 외관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고, 특히 80m 높이까지 치솟은 2개의 첨탑은 이 교회의 상징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부는 바로크양식으로 되어 있어 비교적 어두운 느낌을 준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시청사 동쪽 맞은편, 골즈 킨스키 궁전 바로 옆에 위치한다. 북쪽 벽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제단과 아름다운 동북쪽 출입문이 유명하며, 황금 성배(聖杯)를 녹여 부착한 첨탑의 성모마리아상(像), 고딕양식으로 조각된 실내의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그리스도상, 백랍으로 만든 세례 받침 등도 성당의 명물로 꼽힌다.

성당 안에는 루돌프 2세를 위해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브라헤(Tycho Brahe)가 묻혀 있다. 클래식 연주회가 열리기도 하며, 교회 바로 옆에는 《성(城)》의 작가 카프카(Franz Kafka)의 생가가 있다. 

카렐교

강 서쪽의 왕성(王城)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로 보헤미아왕 카를 4세 때(1346∼1378)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겼다. 후에 양쪽 난간부에 상인들의 석상을 세웠고, 다리 양쪽에는 탑이 있는데 그 사이의 다리 길이는 약 500m이다. 다리 서쪽은 칸파라고 하는 작은 운하가 있는 지구로 소(小)베네치아라고도 한다. 프라하의 관광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스트라호프 수도원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江) 맞은편 언덕에 있는 프라하성(城)에서 서쪽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스트라호프 광장(廣場)의 남쪽에 위치한다. 플라디슬라프 2세 때인 1140년에 건립되었으나, 그 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인해 소실되거나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의 건물은 17~18세기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따라서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건축 양식이 혼합된 복합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1783년 수도원 해체령이 내렸을 때는 학자들의 연구기관으로 지정되어 해를 면하였고, 이후 수도승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1951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폐쇄되었다가, 1953년 체코 국립문학박물관으로 바뀌었고, 1989년 사회주의 정권이 물러나면서 다시 수도원 기능을 회복하였다. 현재는 문학박물관이자 수도원으로서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수도원 내에는 1258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초기 고딕 양식으로 재건된 뒤, 17세기에 다시 바로크 양식이 가미된 성모마리아승천교회(성모교회)와 바로크 양식의 강당이 있다. 문학박물관에는 총 14만 권에 달하는 장서가 있는데, 종류에 따라 '철학의 방', '신학의 방' 등 2개의 고전 도서관과 고전주의 이후의 도서를 모아 놓은 근대 도서관으로 구분해 놓았다. 도서관은 일반에게도 개방되고 있다.

프라하국립미술관

프라하 흐라드차니에 있는 국립미술관으로, 1948년 개관하였다. 8개의 미술관이 프라하 시내에 흩어져 있는데, 프라하성(城) 밖의 정문 뒤에 있는 슈텐베르크궁전(성)이 본관 역할을 하고, 그 외에 나로드니미술관이 유명하다.

3층으로 이루어진 슈텐베르크궁전 미술관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풍스런 분위기가 풍기는 아담한 미술관이다. 다른 7개의 국립미술관 역시 수도원이나 성을 미술관으로 꾸민 것으로, 작품들은 이들 미술관에 분산 소장되어 있다. 8개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은 회화 1만 3000점, 소묘 4만 점, 조각 6,000점, 판화 30만 점 등이다.

이 가운데 본관인 슈텐베르크궁전 미술관의 소장품은 14~15세기의 이탈리아 회화, 14~18세기의 독일·오스트리아 회화, 15~16세기의 네덜란드 회화, 16~18세기의 이탈리아·프랑스·에스파냐 회화, 17세기 플랑드르 회화, 19~20세기 프랑스 회화, 20세기 유럽 회화 등 7개 테마로 나누어 전시된다.

작가별로는 독일 작가 뒤러(Albrecht Drer)의 《로자리오의 성모》와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아담과 이브》,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의 《서재의 학자》, 에스파냐 화가 리베라(Jos de Ribera)의 《고난의 인물상》, 프랑스 화가 루소(Henri Rousseau)의 《풍경》 외에 클림트(Gustav Klimt)의 《처녀들》, 뭉크(Edvard Munch)의 《강변에서의 춤》, 로랑생(Marie Laurencin)의 《소녀들이 있는 풍경》, 로트레트(Henri de Toulouse Lautrec)의 《물랭루즈》등 르네상스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화약탑

체코 수도 프라하에 있는 높이 65m의 고딕식 탑. 프라하역(驛)에서 남쪽으로 500m 지점에 프라하 국립박물관이 있고, 이 곳에서 다시 바츨라프 광장과 무스테크 광장을 지나면 오른쪽에 화약탑이 있다.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는 지점으로, 옆에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시민회관이 있다.

1475년 지금의 구시가지를 지키는 13개 성문 가운데 하나이자, 대포 요새로 건설되었다. 이후 총기 제작공이자 종(鐘) 주조공인 야로스(Tomas Jaros)의 거처 겸 작업실로 개축되었다가, 루돌프 2세 때인 17세기 초에 연금술사들의 화약창고 겸 연구실로 쓰이면서 화약탑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딕 양식의 탑으로, 높이는 65m이며, 총 186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라하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색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옛날에는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는 장소이자, 외국 사신들이 프라하성(城)으로 들어올 때는 꼭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이용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부터는 연금술이나 종 주조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약탑과 나란히 있는 길이 신시가지, 탑을 지나 서쪽 길이 구시가지가 각각 시작되는 곳이다. 인근에 프라하의 대표적인 유적지이자 관광지인 프라하성, 바실리카, 황금소로(黃金小路) 등이 있다.

구유대인공동묘지

프라하 구시가지 블타바강(江) 옆의 유대인지구(게토)에 있다. 1478년 처음으로 유대인 묘지로 조성된 이후 1787년 묘지가 폐쇄될 때까지 프라하에서 유일하게 유대인의 매장을 허용한 장소이다. 면적은 200여 평에 지나지 않지만, 1만 2000여 기에 달하는 비석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을 정도로 많은 유대인들이 매장되었다.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하는 유대인의 장례문화로 볼 때 이 좁은 공간에 많은 묘를 쓸 수는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묘 위에 다시 묘를 쓰는 방식으로 묘지를 관리하였다. 많게는 밑에서부터 12층까지 포개어 매장한 곳도 있어 실제로는 1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이 곳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묘비의 기록으로 볼 때 가장 오래된 묘비는 1439년에 죽은 시인 카라(Avigdor Kara)의 묘비이며, 가장 최근의 것은 1787년의 것이다. 이후에는 묘지가 폐쇄되는 바람에 매장된 사람이 없고, 대신 같은 유대인지구에 신(新) 유대인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성(城)》 《심판》 《변신》의 작가인 카프카(Franz Kafka)도 이 신 유대인공동묘지에 묻혔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공동묘지이다.

바츨라프 광장

길이는 750m, 너비는 60m이다. 프라하 제1의 번화가이며, 상업·교통·문화의 중심을 이룬다. 메이데이 등과 같은 축제의 회장으로 사용되며, 역사상으로는 자주 대사건의 무대를 이루기도 했다. 광장의 상부에 성(聖)바츨라프상(像)이 있는 것이 명칭의 유래이다.

프라하국립박물관

체코국립박물관이라고도 한다. 프라하 제1의 번화가인 바츨라프 광장 정면에 있는 박물관으로, 세계 10대 박물관의 하나로 꼽힌다. 체코의 재건을 상징하기 위해 1885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890년에 완공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건물 높이는 70m, 너비는 100m이며,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내부는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주로 광물학·인류학·고고학 등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한다. 사회주의 시기이던 1968년에는 포격을 당해 아직까지도 탄환 자국이 남아 있다.

유물은 층별로 나누어 테마별로 전시된다. 1층에는 체코 역대 인물들의 회화와 청동 흉상, 체코의 역사·고고학·화폐·연극·자연과학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은 2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체코의 문학·음악·희곡, 중세에 씌어진 원고, 시대별 인장, 제1·2차 세계대전과 공화국 수립 시기, 사회주의 시대의 투쟁 자료 및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역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토기·보석·도구와 무덤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는 선사시대관이다. 3층은 자연박물관으로 각종 해상·육상 동물들의 박제 견본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 가운데는 덴마크 천문학자 브라헤(Tycho brahe)의 관측기구인 육분의(六分儀)가 있고, 1961년에는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Franz Joseph Haydn)의 첼로 협주곡 제1번 C장조의 필사본 악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개관시간은 월요일·금요일은 09~16시, 기타 요일은 09~17시이며, 화요일은 휴관한다. 입장료는 어른은 20코루나, 학생은 10코루나이다.

황금소로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원래는 프라하성(城)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사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나, 루돌프 2세 때인 16세기 후반 연금술사와 금은세공사들이 살면서 황금소로라고 불리어졌다.

지금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는 프라하성의 일부로, 성의 입구를 지나면 좁은 골목길이 나오는데, 이 골목길이 황금소로이다.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1990년대 이후 프라하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하면서 이 골목 역시 프라하를 찾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찾는 명소가 되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기념품점이나 선물 상점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중세 때의 투구나 장신구 등을 전시하는 전시장도 있다.

그러나 이곳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성(城)》《변신》의 작가 카프카(Franz Kafka) 때문이다. 카프카는 1916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여동생이 집필활동을 위해 마련해 준 이 골목 22번지의 작은 집에서 매일 글을 쓰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하숙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프라하성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작품 《성》도 이때 완성한 것이다. 골목 위로 올라가면 장난감 박물관과 고딕양식으로 지은 높이 100m의 성(聖)비투스 대성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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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6-10-2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슬비 2006-10-2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에 올린것이 프라하에서 볼수있는 것들이예요. 솔직히 어떤건 가보고 실망하실수도 있겠지만 유럽이란것이..^^
 

영어·프랑스어로는 프라그(Prague), 독일어로는 프라크(Prag)라고 한다. 체코 중서부, 블타바강(江:몰다우강) 연변, 라베강(江:엘베강)과의 합류점 가까운 곳에 있다. 체코 최대의 경제·정치·문화의 중심도시이다. 시내를 흐르는 블타바강은 너비가 100~300m이며 몇 개의 강이 있다.

비교적 따뜻하며 습도가 낮고 연 강수량은 508mm이다. 프라하분지에는 BC 4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슬라브인(人)이 들어온 것은 5·6세기로 9세기 말에 성이 축조되었다.

11세기에는 구(舊)시내 광장에서 교역이 시작되었고 12세기에는 이미 중부유럽 최대의 도시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14세기에 이르자 카렐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시는 더욱 발전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며 당시의 인구는 4만으로 추정된다. 14~15세기에는 후스전쟁의 싸움터가 되었다.

15~16세기에는 고딕 건축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정치적인 의미는 상실하였다. 17세기에는 바로크 건축이 번성하였고 18세기 말부터 다시 수공업 등이 일어나 경제적으로 회복되어 인구도 8만을 헤아렸다. 그 후에도 인구는 늘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帝國)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하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한 이래 수도가 되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8년의 이른바 2월 사건, 1968년 1월의 ‘프라하의 봄’으로 부르는 자유화운동이 소련 등 바르샤바 조약군(軍)의 침입으로 짓밟힌 역사적인 사건의 무대가 되었다. 1993년 1월 1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어 체코의 수도가 되었다.

공업도시로서의 프라하에는 100여 개의 기업이 있고 전국 공업생산의 10% 가량을 생산한다. 주요한 것은 기계공업으로, 국영기업의 CKD(전기기관차 등)와 테슬라(모터·방송관계) 등이며 인쇄공업도 중요하다. 식품공업으로는 스미호프의 맥주, 프라하 햄이 유명하고, 그 밖에 의복·제지·화학(주로 타이어) 공업 등이 영위되고 있다. 유럽철도의 대중심지로, 유럽의 각국과 연결되며 하항(河港)이다. 근년에는 항공망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시는 10개의 구(區)로 나누어져 있으며 교외지역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시에는 대통령관저·정부·의회 등의 정부기관 및 국제적인 기관 등을 비롯해서 과학아카데미·프라하대학(1348)·음악대학·도서관·스트라호프 민족자료관(옛 수도원)·박물관·극장·천문대·스포츠시설 등이 집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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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유럽 중부
면적 : 7만 8866㎢
인구 : 1020만 2000명(2003)
인구밀도 : 129.4명/㎢(2003)
수도 : 프라하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체코어
통화 : 코루나(Koruna)
환율 : 29.62Koruna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5,310$(2003)
나라꽃 : 보리수

면적은 7만 8866㎢, 인구는 1020만 2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129.4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체코공화국(The Czech Republic)이다. 수도는 프라하이고 체코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 2개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함에 따라 탄생한 내륙국이다. 북쪽으로 독일·폴란드, 서쪽으로 독일, 남쪽으로 오스트리아, 동쪽으로 슬로바키아와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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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프라하시의 면적은 약 500 평방킬로미터로서 인구는 120만명 정도임.
위도상으로는 북위 50도이니까, 북만주와 몽고가 러시아 국경과 접한 지역과
같은 위도임. 프라하는 스메따나의 교향곡 "나의 조국 (Ma vlast)"에 나오는
블따바강 (독일명 "몰다우")이 S자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양쪽에
발달되어 있는 도시임.
로댕은 이 도시를 "북쪽의 로마" 라고 칭찬했다고 함. 프라하가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된 것은 9세기말 경으로서 수 많은 역사를 간직한 고도임.
아울러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및 바로크양식의 건축물이 모두 남아 있어 "100탑의 도시" 라고 불려지고 있음.
체코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2명을 들면, 챨스4세(챨스대제)와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라고 하겠음. 챨스4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프라하를 제국의 수도로 정하고, 프라하의 구시가지에 대학을
설립하였음. 1348년 설립된 챨스대학은 중부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그 당시의 건물이 아직도 대학본관으로 사용되고 있음. 챨스대학 및 챨스다리와 함께 프라하 성의 대부분도 챨스 4세때 축조된 것이며, 또한 그의 치세때 체코어가 공용어로 됨으로써 체코는 역사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음. (얀 후스는 구시가지 광장 설명 내용 참고)

2) 프라하 성 (Prague Castle)

프라하성은 9세기 후반부터 작은 성들이 건설되기 시작한 바,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333년 챨스4세(즉위전)의 지시로 재건축하기 시작한 때
부터임. 이 성은 역대 왕의 즉위식 거행장소와 왕궁으로서 역활을 해오다가,
16C말-18C중반까지 합스부르그가 지배 시대에는 왕궁이 구시가로 옮겨감에 따라
그 역할이 다소 떨어지기도했음. 그러나 체크 민족부흥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옛날의 화려한 자리를 다시 차지하게 되었으며,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한 이후 부터는 대통령실이 이곳에 위치하게 되었음.
성입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뾰족한 건물은 비투스 성당 (St. Vitus
Cathedral)으로서 10세기경부터 성당이 있었으나 1344년 챨스4세때 본격적으로 건축하기 시작하여 1929년 신고딕양식의 건물 서쪽부분이 완성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음. 즉, 약 1000년의 체코역사와 함께 건축된 것으로 성당의 역사는 서쪽입구 청동문에 묘사 되어 있음.
이 성당의 규모는 길이 124m, 최대폭 60m, 최고 탑높이가 100m 인 바,
체코예술가들의 1930년대 작품인 내부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돋보임. 지하에는 챨스4세를 비롯한 체코 역대왕들의 무덤이 있음.

(황금소로)
성모퉁이에 위치한 황금소로(Golden Lane)도 가능한한 꼭 한번 둘러 볼 필요가 있는 바, 이 거리는 황금세공사들과 성의 일꾼들이 거주한 지역으로서 소로 한쪽으로 들어서 있는 16개의 집들은 어느 것이나 작아 어른들은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임. 지금은 선물가게, 서점, 레코드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음.
그중 19번지는 하벨 대통령의 전부인(96.1 서거함)이 세운 "올가재단"에서
경영하는 선물가게이며, 22번지 집은 작가 "카프카"가 1916년 11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약 반년동안 매일 늦게까지 집필 활동을 했던 곳이기도 함. 그의 작품 "Castle"은 바로 프라하성을 모티브로 한 것이며 많은 단편도 이곳에서
집필했음. 키다리였던 카프카가 "살기에 는 많은 불편함이 있지만 내게는 딱
알맞는 집이다"라고 했다는데 더욱 정을 느끼게 하는 곳임.

3) 챨스다리 (Charles Bridge)와 국립극장

블따바강을 가로지르는 많은 다리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답고, 오래 되고,
유명한 다리가 바로 챨스다리임. 10세기초에 목제다리로 건설 했다가 12세기
중반에 석제다리로 개축했으나 그후 홍수로 유실되고, 지금있는 석제다리는
1357년 챨스4세때 착공하여 15세기 초반 (1402년)에 완성된 것임.
중부유럽에서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다리 다음으로 두번째 오래 된 석조 다리임.
길이 520m, 폭 10m로 다리 양끝에는 고딕양식의 tower가 있음. 구시가지에서 입구의 탑밑을 지나기 바로 전에 오른쪽에 보이는 동상은 챨스4세 동상인 바, 챨스대 설립 500주년을 기념하여 1848년에 세운 것임.
다리 좌우 양쪽에 각각 15개씩 줄지어 서있는 고딕 및 바로크양식의 30개
성자상은 모두 체코의 최고 조각가들이 제작한 것으로, 17C 후반 -20C 중반간 약 250년에 걸쳐 제작된 것임(그중 일부는 모조품으로서 원작품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
챨스다리에는 일년 내내 각종 기념품을 파는 상인과 악사 및 관광객으로
밤늦게까지 붐비며 챨스다리에서 바라보는 블따바강과 30개 성자상의 호위를 받고 있는 챨스다리, 그리고 구시가지 풍경도 일품이지만, 구시가지쪽 다리 입구에서 바라보는 챨스다리와 프라하 성 모습(특히 야경)은 한폭의 그림과 같음.
다리 중간의 난간에는 브론즈로 된 "쌍십자가" 플레이트가 박혀있는 바, 이
십자가에 손을 얹은채 가만히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성취된다는
이야기가 있음.
다리 한 가운데서 강을 거슬러 왼쪽에 있는 금색 테두리의 건물은
국립극장(Narodni Divadlo ; National Theater)인 바, 국민성금으로 19C 후반에 건립된 르네상스식 건물임. 건설 도중에 화재로 대파되어 약2년에 걸쳐 재건립,
1883년에 개관된 바, 현재는 체코 및 세계 유명 오페라가 1년내내 공연되고
있음. 내부장식에는 당시 체코 미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소위
"국립극장세대"를 탄생시켰음.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1977 년부터
무려 6 년동안 건물을 대폭 수리한 바 있음.

(구시가 광장)
* 구시가 광장은 11세기부터 주요 무역로의 교차 지점으로 시장이 형성 되었던
곳임.

1) 얀후스 동상
광장 중앙에 체코의 종교개혁자였던 얀 후스 (Jan Hus) 동상이 있는 바, 이는
얀 후스 처형 500주년이었던 1915년에 세워졌음.
얀후스는 1370년경 보헤미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402년에 챨스대 총장을 지냈으며, 카톨릭의 세속화, 면제부 발행 등을 비판함으로써
교황청으로부터 파문 당하고, 콘스탄틴 종교 재판으로 화형(1415년)에 처해진 순교자였음
마르틴 루터보다 백년 앞선 얀후스의 종교개혁 운동은 체코의 민족주의 이념과 결부되고 있었던 만큼, 얀후스는 체코 전민족의 순교자로서 숭앙을 받았으며
오늘날에도 얀 후스가 순교한 7. 6 일은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음.
2) 구시청사
구시청사는 얼핏 보기에는 무슨 교회건물 같이 보이나, 14세기에 건설된
고딕양식의 건물로서 그후 계속 확장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음.
구시가 광장에서 가장 명물은 역시 구시청사(Old Town Hall)의 천문시계임.
이 건물의 시계탑 전면은 상부의 천문시계와 하부의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천문시계는 시계공 미쿨라스 (Mikulas)가 1410년에 최초로 제작한 후 수차재건된 것임.
천문시계 한 가운데에는 푸른지구가 위치해 있고, 3개의 시계바늘축은 지구의 중심으로서 프라하를 가리키고 있음.
3개의 시계 바늘은 각기 바늘 끝에 달려있는 태양, 달, 별 모양이 암시하듯
태양시간, 달시간, 황도대를 각각 가리키고 있으며, 맨 외부 24 아라비아
숫자는 고대 보헤미아 시간을, 다음 안쪽 두쌍의 12 로마숫자는 중부 유럽의
낮·밤시간을, 맨 안쪽(푸른색 내)의 12 아라비아 숫자는 일출-일몰시까지의
낮시간을 나타내고 있음. 위의 푸른색은 하늘을, 밑의 갈색은 땅을 나타내며,
갈색안의 검은 색은 여명의 시간을 나타냄.
매시 정각 천문시계 옆에 있는 해골인형(죽음을 상징하며 시간의 유리잔을 들고 있음)이 움직이면서 종을 치면, 그 위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면서 그리스도 12제자 인형이 차례로 나타남. 이때 천문시계 왼쪽에 있는 거울을 보는
자(허영을 상징)와 돈지갑을 든 유태인 인형 (부를 상징)이 같이 움직이고,
아울러 오른 쪽의 터번을 쓴 터키인은 음악을 연주함.
천문시계는 "여명의 시간이 다가 오면 허영과 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매시마다 알리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재미있어 할 때,
종소리가 끝나고 닭이 울면서 새벽이 왔음을 알려줌.
하부에 있는 원형모양은 12달을 나타내는데, 한가운데에는 프라하 구시가지의 문장이, 다음 12개 작은 원과 큰 원에는 12달의 상징과 월별 전통관습을
나타내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바깥 가장 자리를 따라서 365일의 매일을
상징하는 성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음.
시간과 우주의 법칙은 한치 오차도 없이 지금 이 시각에도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좌측에는 철학자와 천사가, 우측에는 천문학자와
연대기 편자 인형이 말없이 서 있음.
청사건물 정문위 르네상스식 창문위에는 "Praha. Caput. Regni" 라는 문구가
있는 바, 이는 "프라하, 왕국의 수도"(Prague, Capital of the Kingdom)라는
의미임.

3) 틴교회
구 시청사의 동쪽 맞은 편에 우뚝 솟은 고딕식 쌍둥이탑 교회가 틴교회(Church of Our Lady before Tyn)인 바, 현재의 80m 높이 쌍둥이 탑은 1365년에 착공되어 15세기 후반경 완성되었음.

4) 킨스키 궁전
틴교회에 인접한 킨스키 궁전 (Kinsky Palace)은 프라하에서 보기 드문 로코코 양식의 건물임. 18세기에는 킨스키 백작의 저택이었으나 지금은 프라하
국립미술관의 일부로 판화코너가 되어 있음.
※ 구시청사 바로 옆 잔디밭은 1945년까지만해도 청사의 신고딕양식 건물이
있던 곳이었으나, 1945년 5월 소련군이 이곳 프라하에 입성하기 수일 전에
나치독일군이 밀어버려 지금도 빈터로 남아있음.

5) 성 니콜라스 교회
광장 잔디밭 옆의 교회는 바로크양식의 "성니콜라스" 교회 (Church of St.
Nicholas)인 바, 건축가 데젠호퍼 (Dietzenhofer)가 1732-35년간에 걸쳐 건축한 것임(동 건축가는 소지구(Mala Strana)에 동일한 이름의 교회도 건축하였음).

6) 바츨라프 광장 (Vaclavske namesti)과 그 부근
바츨라브 광장은 광장이라기보다는 파리의 샹젤리제처럼 "boulevard"를 이루고 있는 바, 이 광장은 길이 750m, 폭 60m의 대로로서 서울의 명동거리에 해당되는 번화가임
이 광장은 20세기초 까지만 해도 말시장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서 체코 역사의 전환기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장소임. 1918년에는 오-헝 제국의 몰락으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이곳에서 선포되었고, 1948 년에는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여 사회주의 공화국이 이곳에서 선언되었음. 1968년 "두브체크"로 대표는 개혁 공산주의자들이 시도한 '프라하의 봄'이 소련군 탱크부대의 침공으로 많은 체코국민들이 생명을 바친 곳으로도 유명하며, 1989년에 일어난 체코 민주화혁명도 바로 이곳이 중심지였음
광장의 동쪽 끝에 보이는 중앙청 모습의 건물이 이 나라의 국립박물관(1885-90에 건축된 신르네상스양식)인데, 그 폭이 100m이고 높이가
70m에 이름. 광물, 동.식물 표본등을 전시한 자연박물관으로서 천정과 1층
방에는 체코 역대 유명인사의 그림과 청동 흉상이 전시되어 있음.
국립박물관 앞에 세워진 높은 동상이 "성 바츨라프" 기마상 (1912-13년 건립)인 바, 그는 10세기경 인물로 국난이 닥치면 중부 보헤미아의 블라니크
산에서 깊은 잠에 빠진 기사들을 깨워 그들을 이끌고 적군을 격퇴시킬 것이라는 전설의 주인공으로 체코민족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었음. 기마상 앞 뒤에 있는 4명의 호위성인은 1920년대에 추가되었음.
한편, 동상 앞에는 1968년 프라하의 봄을 탄압하던 소련군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 (특히 21세의 나이로 분신 자살한 챨스대 학생 Palach) 과 1989년 혁명 당시를 기념하는 꽃과 촛불,사진들이 항상 놓여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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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입국 비자

   o  우리나라와 체코와는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비자없이 유효
한 여권만으로 90일까지 체류가능

   o  90일 이상 장기체류자는 주한체크대사관((02)-725-6765, 6766) 또는 재외체코대사관(영사관)에서 입국목적에 상응하는 장기체류비자를 득하여야 함.

   o  주재국은 2000년 1월 1일부터 외국인 거주법을 개정하여 체코에 입국하
는 외국인에 대하여 아래 사항을 확인하여 입국을 허가하도록 입국절차
를 강화하였음. (우리나라 국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아래사항이 해
당되지않으나 일부 출입국 심사관에 따라 요구하는 경우가 있음)
- 입국서류(Border Document) 2매 작성 제출
- 의료보험 가입증거서류 제시
- 재정능력 제시
- 거주증명제시(관광객의 경우 호텔예약 확인서류등)

   o  장기 체류자는 매 1년마다 체재기간 연장을 하여야 함(출생증명서,
무범죄사실증명서등의 서류를 구비하여 거주지 경찰서에 신청)

나. 세관 규정

    ο  1인당 포도주 2리터, 술 1리터, 담배 250개비까지는 허용

    ο  여행경비도 인정되는 범위 Kc200,000($5,700상당)의 외화는 신고없이
입국가능하며, 그 이상의 현금은 입국시 신고만 하면 출국시 반출에 문
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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