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매한 식견에서 보자면 당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한 심리 연구자입니다’라고 프로이트는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프로이트의 동시대인으로서 그와 같이 비엔나를 무대로 살았던 슈니츨러의 문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과론적 과학만능주의의 그늘에 가려 있던 여러 금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혀내고 있다. 슈니츨러의 문학에는 성적인 충동과 같은 인간 무의식의 측면들이 이성의 제어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당신이 여기를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아직은 남아 있어요. 당신은 이런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으로 유명한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에서 호기심에 집단 혼음의식에 잠입한 의사 프리돌린에게 가면을 쓴 낯선 여인은 이렇게 탈출을 종용한다. 프리돌린은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체가 발칵될 처지에 놓이고 그 낯선 여인의 희생으로 그 곳을 가까스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서구 문학사에서는 이러한 집단 혼음의식의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때로는 그것이 사실적이 아니라 몽환적으로 묘사되어 지기도 하고 때로는―근자에는 ‘다빈치 코드’에서 암시되어지듯이―종교적인 의식의 일환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꿈의 노벨레’(1926)에서는 이러한 성적 금기의 문제가 남편인 프리돌린에게는 실제의 일로서, 부인인 알베르티네에게서는 꿈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종교사적 배경을 모른다 손 치더라도 ‘꿈의 노벨레’에서 이야기되어지는 상황은 평범한 시민의 사회 규범에서 보자면 더 이상 들춰내고 싶지 않은 금기의 영역에 속한다. 헛된 발걸음으로 자칫 침범하지 말아야할 영역을 넘어 갔다고 한다면 짐짓 놀란 눈빛으로 발걸음을 되돌리면 그만일 수 있는 금기의 영역이지만 어느 누구도 한번 깨트린 금기를 되돌릴 수 없어 보이는 것이 보다 인간적이랄까.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세기말의 비엔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여겨진다. 비엔나의 전통적인 부르조아 사회가 물려준 사회규범들 사이에서 꽃 피울 수 있었던 리버럴한 문화적 풍토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시대적 진단은 슈니츨러 문학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슈니츨러의 문학적 형상들은 특유의 회의적인 아이러니와 심리학적 엄밀성으로 말미암아 동시대의 전형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오마이뉴스 정아은 기자] 돈 많은 부모는 자식에게 얼마만큼의 재산을 물려주어야 할까. 절반? 십분의 일? 아니면 전부 다? 자식이 여러 명일 경우엔 얼마만큼의 비율로 물려주어야 할까. 전부 다 같은 비율로 공평하게 똑같이? 아니 그건 너무 억울하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더 효도했던 자식에게 좀 더 나누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 <낙타> 겉그림
ⓒ2006 문이당
<낙타>는 시아버지의 돈을 둘러싼 가족의 해프닝의 한가운데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며느리 '고야목'의 이야기이다. 야목의 남편은 야목이 첫 아이를 낳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때 승려가 되기 위해 집을 나간다. 남편이 멀쩡히 살아 있으면서도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린 며느리를 가엾게 여긴 시아버지는 야목을 위해 커다란 레스토랑을 하나 차려주고, 아버지의 풍요로운 재산을 눈독들이던 큰 아들 '민석'은 이를 못마땅해 한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려하는 시아버지가 자신에게만은 예외적으로 큰 재산을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야목. 그녀는 나머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재산이 많은 부모는 자식에게 그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민석과 시누이가 파렴치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인생의 끝자락에 근접한 시아버지에게 사랑이 나타난다. 인생의 마지막 선물처럼. 그는 남은 인생을 최대한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고, 늘그막에 만난 귀한 인연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식들의 반응은 냉정하고 야멸차다. 오직 아버지 사후의 재산이 갑자기 나타난 여인에게 넘어간다는 사실과, 남은 여인이 짐스러울 것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자식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합시다. 막말로 아버지가 살면 얼마나 사시겠어요. 그러고 나면 최소 20년 이상 그 여자를 어머니로 모셔야 하잖아요. 제수씨나 나나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답디까. 낳아 준 부모도 귀찮아서 갖다 버리는 세상인데, 이 좁은 바닥에서 명색이 어머니라고 자리 차지하고 있으면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요. 혹시 알아요? 아직도 임신할 수 있는 상탠지. 그러면 정말 절망이에요. 막말로 나야 어렵다면 어려운 사이가 될 수 있지만, 제수씨는 혼자인 데다 같은 여자라서 편하다는 이유로 이쪽으로 빌붙을 확률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자신 없어요, 이러면 안 된다니까요. 혹 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매달려도 될까 말까 한 일이에요. 노인네 고집이 엔간해야지요"...

생활자금과 정치자금으로 아버지의 재산 상당부분을 억지로 뜯어내고도 늘 더 받지 못해 불만이었던 시아주버니 민석은 아버지의 결혼발표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야목에게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런 그가 쏟아내는 타산적인 말에 야목은 실소를 금치 못할 뿐이다.

야목은 이해한다. 사랑에 빠진 늙은 노인의 마음을, 그의 인생 말기에 피어난 꽃 같은 사랑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를. 이에 가족들은 야목이 큰 재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시아버지를 싸고돈다고 공격한다. 그러나 야목은 시아버지를 단지 이해할 뿐이다. 그의 노년을. 홀로 사는 이의 외로움을. 역시 홀로 남겨진 자로서 야목은 시아버지를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고, 그리고 솔직히는 너무나 부럽다.

육신이 멀쩡한 남편이 야목을 영원히 떠나버린 것은 순전히 그의 정신세계 때문이었다. 허공의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남편의 눈빛. 부재를 예감하며 느꼈던 사랑. 세상에는 떠나게 되어 있는 자에게서만 나오는 정취 같은 게 있는 법이다. 야목은 '동반자의 부재'를 운명처럼 대물림하는 자신의 인생을 쓸쓸하게 관조하며 사랑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시아버지의 당당한 모습을 남몰래 부러워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식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가. 흔히 말해지듯 부모는 자식의 인생의 반을 이미 결정한다. 그렇다면 자식은 어떤가. 자식도 부모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지 않는가. 부모자식간의 돈관계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의 재산은 반쯤은 자식의 것이나 마찬가지인가.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다른 이에게 주거나 사회에 환원한다면 자식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자식에게도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혹자는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만일 자신의 이야기라고 가정해 본다면 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100% 확신할 수 있을까. 부모가 내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나는 서운하지 않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좋은 일에 쓰시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렇듯, '재화에 대한 욕망'은 부모 자식 관계에 있어서도 복잡한 그물망을 형성한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끈적끈적한 욕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성욕보다도 더한.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 깊게 사유하는 기회를 주는 이 책은 그러나 다른 주제로 옮겨가면 금방 구성적 한계를 드러낸다. 야목이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상황설정이나 육체적으로만 사랑을 나누는 K의 이야기는 구성이 너무 엉성해서 전형적인 통속소설의 이미지를 준다. 또한 중이 되기 위해 돌도 안 된 딸아이를 두고 가출하는 남편이라는 인물의 성격은 너무 추상적이고 개연성이 없어 이야기 자체에 전혀 울림을 주지 않는다.

야목이 자신 본연의 목소리에 충실하고 싶어할 때마다 나타난다는 짐승의 실체가 낙타라는 설정도 너무 엉성해서 이야기로 그럴싸하게 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 낙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해서 소설의 제목이 '낙타'가 되었는지가 소설 전체를 통해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채 그저 중간 중간 '털갈이하는 짐승'의 이미지로 모호하게 나타날 뿐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라는 관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여 부모 자식간의 여러 문제, 특히 금전 문제에 관한 근본적 의문을 이야기로 형상화해낸 것은 이 소설이 갖고 있는 특별한 미덕이다. 그러나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 밖의 여러 화두들은 결국 이야기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결국 큰 줄기의 이야기마저 훼손하고 있다. 중간 중간 나타나는 작가의 감각 있는 문장들을 생각해볼 때 자꾸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쉬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른바 '오타쿠 문화'(또는 '폐인문화')에 빠져 지내는 현대 젊은이들의 감성적 문화코드를 유쾌하게 그려낸 일본의 나오키상 수상작가 이시다 이라의 신작소설 '도쿄 아키하바라'(이가서ㆍ전2권)가 번역돼 나왔다.

소설의 배경은 서울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한 도쿄의 아키하바라. 최신식 기기가 눈 깜짝할 새에 구식이 돼버리고 무언가에 한없이 빠져 지내는 '폐인'들이 넘쳐나는 뒷골목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풍부한 지식을 가진 페이지. 뛰어난 음감과 리듬감을 타고난 다이코. 법대를 졸업한 달마. 최고의 격투기 소녀 아키라. 어떤 프로그램도 해킹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즈무. 인터넷 고민상담 사이트 운영자 유이.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위 '폐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또한 가슴 속 깊숙이 자신만의 고민을 가진 외로운 인물들이기도 하다.

페이지는 심한 말더듬이며 다이코는 여성공포증이 있고 달마는 은둔형 외톨이다. 아키라는 뛰어난 미모 때문에 오히려 콤플렉스가 있고, 유이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유이가 운영하는 인터넷 고민상담소를 통해 우연히 한데 모인 이들은 아키라의 아이돌 사이트를 개설한 뒤 인공지능 검색엔진 크루크를 개발해 인터넷 유저들의 폭발적 인기를 끌어낸다.

이들의 욕심은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정도의 돈을 버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없다. 검색엔진 크루크도 모두가 무료로 자유롭게 쓰길 바란다. 이것이 '폐인'들의 순수함이다.

그러나 거액을 제시하며 크루크 매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디지캐피 사의 나카고미가 페이지 일행 사무실을 습격해 크루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훔쳐가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6인의 '폐인'들은 크루크 탈환을 위한 깜찍한 테러를 계획하는데….

은둔형 외톨이, 오타쿠, 이종격투기, 인터넷 댓글문화, 플래시몹 등 기성세대가 우려의 눈길로만 바라보던 새로운 시대의 감성코드를 작가는 긍정적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준삼 기자 =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동화를 환상적인 그림책으로 엮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그림책' 시리즈(이상의 날개 펴냄)가 번역, 출간됐다.

인생과 철학이 깃든 노벨상 작가들의 단편 동화를 엄선하고 장단편 소설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1차로 1-3권이 출간됐으며 연말까지는 모두 10권까지 출간될 예정이다.



▲우리집에 온 파도 = 마크 뷰너 그림. 노경실 옮김. 파도와 소년의 우정을 담은 동화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멕시코 작가 옥타비오 파스의 작품이다.

어느날 바다를 떠나 자신을 따라오는 파도를 만난 소년은 파도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며 우정을 쌓아가지만 가족들은 길들이기 힘든 파도를 자꾸 바다로 돌려보내려 한다.



▲낙타는 왜 혹이 달렸을까 = 리스벳 츠베르거 그림. 노경실 옮김.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낙타 혹에 옛 이야기. 영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의 동화.

모든 동물들이 부지런히 일하는데 유독 혼자서만 빈둥거리는 낙타를 사막의 신이 버릇을 고쳐준다는 교훈적 이야기로 각 장면장면에 그윽한 황토빛 사막 풍경을 담아 환상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세상에서 가장 큰 꽃 = 주앙 카에타노 그림. 공경희 옮김. 고향을 떠난 한 소년이 낯선 길에서 겪는 삶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철학동화.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 작품이다.

낯선 길을 떠난 소년은 길에서 곧 시들어 버린 꽃 한송이를 만나지만 황무지에는 꽃을 살릴 물 한 방울 없다. 그러나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물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라의 시간여행

지구상에 처음으로 생명체가 태어난 때부터 지금까지를 1년으로 환산하면 인간은 태어난 지 23분밖에 안 됐다고 한다. 첫 생명체가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해 364일 23시간37분 동안 살아온 모습은 어떨까.

이 책은 지구의 긴 역사를 따라 내려오며 어린이 ‘마라’를 주인공으로 진화론을 설명해 준다. 부제는 ‘생명의 역사를 찾아서’. 마라의 여행은 이모네 집에서 놀다가 엽록체를 만나고부터 시작된다. 마라와 엽록체는 35억년 전의 지구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이때의 지구에서는 화산이 폭발하고 공기 중에는 유독가스와 인체에 해로운 자외선으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 자외선은 ‘화살 광선’이다. 보이지 않는 자외선이지만 화살처럼 위험하다는 비유로 쓰인 말이다.

엽록체는 마라의 친절한 선생님이자 안내자 역할을 한다. 어려운 생물학 설명이 쉽게 전달되고 마라는 이를 직접 체험하며 이해한다. 고등학교 수준의 생물학 지식도 엽록체와 마라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책을 감수한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책에 담긴 내용과 정보가 일반 교양서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록 알차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마라가 느끼는 삶과 죽음의 문제, 친구를 사귀는 문제, 성에 대한 고민 등이 생명의 진화 과정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해결된다. 또 인간은 지구를 지배하는 종이지만 다른 생명들과도 뗄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깨달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