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쓰기 쉽지 않다 생각하고 있지만, 시만큼은 진짜 쉽지 않은것 같아요.
그저 좋은 시 한편 읽은것만으로 그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시집 한권 읽지 않았던 제게 시집을 선물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참 좋네요. 덕분에 1년에 한권은 꼭 읽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도 시집 한권 구입해 친구에게 선물 할수 있었어요. 참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ㅎㅎ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사과꽃
비 맞는 꽃잎들 바라보면
맨몸으로 비를 견디며 알 품고 있는
어미 새 같다
인간힘도
고달픈 집념도 아닌 것으로
그저 살아서 거두어야 할 안팎이라는 듯
아득하게 빗물에 머리를 묻고
부리를 쉬는
흰 새
저 몸이 다 아파서 죽고 나야
무덤처럼 둥근 열매가
허공에 집을 얻는다.
환기
저녁에 과연 분꽃 피었다
다섯 살 아들이
방귀를 뀌얺고 헤헤 웃는다
( )
우주의 냄새가 조금 달라졌다
김광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월
모르지요
구름 없는 밤하늘
한가운데 환하게 떠 있는
둥그런 보름달보다
소나무 밤나무 감나무 가지들 헤치고
나뭇잎 사이로 수줍게 발돋움하는
초승달 일그러진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
모르지요
소리의 무게
추녀 끝에 매달린 종
바람 불 때마다 딩동댕동
맑게 울리는 풍경
조 아래 매달린 붕어를 떼어 달라고
돌계단 위에서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졸라대는 연이를 힘껏
들어 올렸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 끝이 붕어에 닳을락 말락
무거워졌구나 어느새 18킬로그램
할아버지가 풍경 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안 손주는
어느새 두 배나 컸구나
소리도 쌓이면 나이 들고
그 무게 늘어나는 듯
쪽방 할머니
며느리가 입던 재킷
팔소매 걷어 올리고
아들의 해어진 청바지
어덩이에 반쯤 걸치고
손녀가 신다가 버린 웅동화
뒤축 찌그려 신고
재활용 쓰레기터에서 주워 왔나 짝퉁
명품 핸드백을 목에 걸었네
가난에 찌들어 눈빛도 바랬고
온 얼굴 가득 주름살 오글쪼글
지하철 공짜로 타는 것 말고는 늙어서 받은 것 아무것도 없네
견딜 수 없이 무더운 한여름이나
한강이 얼어붙는 한ㄱ ㅕ울이면
홀로 사는 지하실 구석방을 나와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하루를
보내는 쪽방 할머니
땅에서 태어나 땅속으로 돌아다니는
우리의 외로운 조상
어디로 옮겨 가셨나
요즘은 보이지 않네
바다의 통곡
이리호 호반에서 혹시
존 메이너드를 만나보았나
디트로이트와 버팔로를 완복하는 페리선
조타수 존은 갑자기 화염에 휩싸인 배를
죽음 무릅쓰고 호반에 안착시켜 승객들
모두 구하고 자신은 조타실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그으이 몸은 백여 년 전에 연기로 사라졌으나
그의 혼은 지금도 청동 기념판 속에 살아 있다
치욕스럽구나 영혼을 잃고 육신만 남은 무리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침몰했을 때
3백여 승객 물결 사나운 맹골수로에 버려둔 채
자기들만 구명정 타고 육지로 도망친 선원 팀
승객의 귀중한 목숨보다 선주의 검은 돈을 위하여
선박의 평형수와 무게중심을 팔아먹고
가라앉는 배 속에 아이들 가두어 죽이고
침묵의 장막 뒤로 숨어버린 무리들
도저히 인간의 용납할 수 없어
분노와 절망이 온 땅을 뒤덮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 모두를 면목 없게 만든
그들이 우리의 동포가 아니라고
짐승만도 못한 어른들이라고
욕설만 퍼부을 수도 없지 않은가
목숨 잃은 어린 영혼들 너무 불쌍해
실종된 육신이라도 어서 돌아오라고 우리는
목메어 절규하는 수밖에 없는가
조금 사리 때맞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밀려왓다 물러가는 파도 앞에서
통곡하는 수밖에 없는가
김경원 지음 / 푸른길 / 2016년 10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은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은
공부 잘하고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은
배경 좋고 돈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은
걱정 근심 없이 잘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아름답게
빛을 내는 보석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당신입니다
그런 당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값진 보석입니다
서영식 지음 / 오퍼스프레스 / 2016년 5월
시집은 아니지만, 시인이 쓴 산문집이어서인지, '산문시' 같은 느낌에 같이 올렸습니다.
하루에 한두편씩, 머리 식히면서 읽고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하루살이의 충고
다 자란 하루살이에겐 입이 없다.
쓰지 않으면 퇴화하는 진화의 법칙에 따라
짧은 생에서 먹는 잎을 포기한 대가로
소화기관도, 입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하루살이에게
먹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이 무서이었을까?
사냥을 하고 먹이를 먹는 원초적인 일보다
더 귀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바로, 사랑이다.
성충이 된 하루살이는
남은 생을 필사적으로 사랑에 쏟아 붓고
아름다운 결혼 비행을 끝으로
짧은 생을 마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주 다투고
헤어지고 아파하는 연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안타까운 시간만 보내는 사람들에게
하루살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바보야, 사랑만 하기에도 생은 짧아!"
알라딘에 없는 책
참, 조용한 혁명
- 김욱진 -
거짓과 혼돈이 난무하는 세사, 참
꽃으로 뿌리내린 비슬산
사월의 민심은
아래서부터 위로
붉게 붉게 번져
천심을 사로잡았다
보이지 않는 손들의
참, 조용한 혁명이다
모든 마을의 주소는 바람이다
-신영조-
바람 속에는 유목민이 산다.
유목민의 기타 줄이 텐트에 기대어 산다. 텐트 속 날은 옷자락 마을이 햇살 아래 나이를 먹는 오후가 산다. 오후가 허밍음으로 손을 내미는 저녁 속에 먼 바다가 산다. 표류하지 않으려 파도를 돛 삼아 마음을 반쯤 잠그는 섬이 노을 옆에 옆드려 산다. 이런 내력을 적시는 파도마을에서 흠씬 온 몸을 피리로 부는 노을이 고개 숙이며 산다. 고개 들어 나를 보라고 손 내미는 별마을이 바늘귀 작은강 옆에 살그머니 산다.
강물의 발목을 끌어당긴 별은 잊지 못하여 녹을 수 없는 눈길 마을을 이루며 오래도록 산다. 차암 하얗게 헤어져 살다가 은하수는 제가 살아온 마을도 지우고 그 마을 속에 살아온 날들도 지운다. 마침내 제 몸도 지워버려 마침표로 생을 찍고 마는 모래마을 옆에 별똥별도 산다.
이 모든 마을의 주소는 바람이다.
남해 금산
- 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6년 7월
우연이 인연이 되는...
'희망을 노래하다' 선물 받았는데, 시를 읽다가 갑자기 친숙한 시 '남해 금산'
'남해 금산' 시집을 선물 받았는데, 시집 제목이라 기억했던것이 떠올라 찾아보고 빙그레 웃음이... 그리고 이어서 시집을 읽었어요.
아득한 것이 빗방울로
아득한 것이 빗방울로 얼굴을 스치다
아득한 것이 또 한번 빗겨내리며
그곳을 스치다
그래 나도 간다 몸져누운 사람들 손발을 밟고
머리 타넘어 나도 간다 반지처럼 빛나는 치욕의
긴 긴 사슬 끄을며
개를 만나면 개를 타고 간다 깨벌레를 만나면
깨벌레를 업혀 간다 아득한 것 살던 곳으로 간다
가서, 아득한 치욕 뿌리내릴까
지금은 빗물 고인 길바닥의 그림자로 간다
인형을 업은 한 아이를
인형을 업은 한 아이를 또 한 아이가 업고 갔다 희망고물상 옆 희망목욕탕, 좌판에 떡을 벌여놓은 여인은 시름없이 파리를 쫓았다
한 사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강가로 걸어갔다 물 속에서 빨리 해가 끓고 비누 거품에 엉킨 물고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내가 먼저 작은 아이를 물 속에 밀어넣었다 겁에 질린 큰 아이가 울면서 달아나다가 사내의 손에 잡혀 물 속으로 떨어졌다
아버지, 거짓말같이, 아버지......
신현림 엮음 / 판미동 / 2017년 3월
비처럼 내리는 시
나이 드는 법
- 메이 스웬슨
젊음은 쉽다. (처음엔 누구나 젊다)
쉽지 않은 건 나이 드는 일,
그 일엔 시간이 걸린다.
젊음은 주어지고, 나이 듦은 성취 되는 것.
나이 들기 위해
시간과 하나 되는 마술을 부려야 한다.
주어진 젊음을 옷장 속 인형처럼
넣어두었다가
휴일에만 꺼내어 놀아야 한다.
준비해둔 많은 인형 옷으
흠잡을 데 없이 입혀야 한다.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추기 위해)
그 인형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일상의 어둠속에서
그걸 기억하기 위해서,
날마다 거울 속에서 늙어가는
얼굴을 축하하기 위해서.
머잖아 우린 몹시 늙어버리고,
머잖아 우리 삶은 마무리 될 것이다.
그리고 머잖아, 머잖아 그 인형도
오래된 새것처럼 발견 되리라.
김미령 지음 / 민음사 / 2017년 2월
공이 흐르는 방향
내 말은 이미 굴러갔고 그 공이 흐르는 방향을 우리는 함께 지켜본다 고쳐 말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무엇을 쓰러뜨리는지 너의 상상이 툭툭 불거진다 내 몸 여기저기 돋아 난 이상한 뿔들
뿔들이 말한다 뿔들이 풀밭에서
뿔들이 장소를 옮기면서
스스로를 장식한다
나는 아니라고 해도 그가 나는 아니라고 한다 나는 아닌 것이 아니라고 해도 아닌 것이 아닌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쯤 되면 아닌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묻지 않아야 나는 아닌 것을 지킬 수 있다 이제 아닌 것이 아니리 아니리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증한다
진창에 빠진 공은 진창의 것
구하지 않는 눈빛은 눈빛의 것
미치지 않는 장소에 손이 있다
손이
얼고 있다
미처 미치지 않은 명랑한 발들이 공을 가지고 논다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당도하지 못한 의지를 차며 논다
어느 날
아닌 것과 아닌 것들이
모여 논다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슬픔
- 이시영
김포에서 갓 올라온 햇감자들이 방화시장 사거리 난전에서 '금이천원'이라는 가격표가 삐뚜루 박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겨 아직 덜 여문 머리통을 들이받으며 저희끼리 찧고 까불며 좋아하다가 "저런 오사럴 놈들, 가만히 좀 있덜 못혀!'하는 할머니의 역정에 금세 풀이 죽어 집 나온 아이들처럼 흙빛 얼굴로 먼 데 하능르 쳐다본다.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공진호 옮김, 황인찬 서문 / 아티초크 / 2014년 2월
울랄룸
근엄한 잿빛 하늘
나뭇잎 시들어
바삭바삭 마른
아늑한 옛날, 기억에서 거이 사라진
시월의 쓸쓸한 밤
어스레한 오베르 호수,
안개낀 위어의 한복판 험악한 날
몹시 습한 오베르 호수였다.
언젠가 나는 타이탄 같은 이곳 삼나무 숲 오솔길을
내 영혼과 함께 돌아다녔다.
이 삼나무 숲 속을 내 영혼 프시케와 함께,
그 시절 내 가슴은, 활화산 같았다.
출렁이는 암재의 강 같았고,
정처없이 굽이도는 용암,
북극의 끝 야넥산 아래로 흐르는
용암의 흐름,
북극의 야넥산 아래로 신음하며 굽이치는
용암 같았다.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