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코의 질문 책읽는 가족 3
손연자 글, 이은천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3월
구판절판


엄마가 손을 벌리고 오라는 손짓을 하셨습니다. 승우가 다가가자 엄마는 저고리섶을 들치시고 가슴에다 승우의 두 손을 갖다 대셨습니다. 아직도 알알한 손바닥으로 뚝뚝 엄마의 심장 뛰는 소리가 전해 왔습니다. 승우는 피멍이 살살 풀리면서 아픔이 가시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는 승우의 머릿결을 가다듬어 주며 등을 토닥이셨습니다.
"승우야, 이담에 어른이 되거든 넌 시인이 되거라. 조선말 조선글로 가장 먼저 시를 쓴 시인이 되거라. 남을 밟고 올라서지 말고 남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시인이 되거라. 오늘부터 엄마가 글을 가르쳐 주마."
승우는 엄마 품에다 와락 얼굴을 묻었습니다. 오늘 엄마의 말씀이 왜 한숨처럼 들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오래도록 승우를 안고 계셨습니다.-.쪽

일본은 열세 살짜리 어린 날 속여 끌어다가 저희 군인들을 위안하라는구나.
저희 군인들을 위로하여 안심시키고 마음을 편하게 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부추기라는구나.
아, 부끄러워라!
조선의 남자들은 어쩌다가 제 나라 하나 지켜 내지 못하고, 풀잎 같은 딸들을 이토록 더럽히는지.
어떻게 했기에 한 떨기 꽃 같은 제 누이들을 이렇듯 욕보이며 천덕꾸러기로 만드는지.
못난 남자들을 한핏줄로 하여 태어난 죄를 아직 봉오리일 뿐인 난 온몸으로 겪어 내야 했단다.-.쪽

엄만 꾹꾹 쥐어짠 젖은 치마폭에다 젖먹이 안듯 날 싸안고는 조용히 자장가를 불렀어. 곰실곰실 파고드는 따사로운 햇살에 내 젖은 몸은 점점 말라 갔어. 난 엄마 가슴에다 얼굴을 묻었어. 이처럼 아늑한 품이 또 있을까. 난 눈을 꼬옥 감고 졸음 같은, 아득하고도 느긋한 느낌에 빠져들었지. 여덟 짝 대웅전 꽃살문이 스르르 열리더라. 그러더니 단청 고운 꽃살문의 연꽃 무늬들이 화르르 살아났어. 연꽃들은 한 쪽으로만 굽히며 한들한들 물결쳤어. 알 수 없는 향내를 풍기면서. 그 동안 난 꿈을 꾸었었구나. 한바탕의 신산스러운 꿈을 꾸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난 꽃밭에 묻혔어.
"잠들어라 새야."
부처님이 그러셨어.
"눈을 뜨면 너는 다시 새가 되리라."
그 순간 내 몸은 새가 되었어. 난 깊은 하늘 속으로 파닥거리며 날아올랐어. 종 모양의 풍경이 울렸어. 아주 얄따랗게. 그러자 새가 된 내 심장에서 방울방울 피가 솟았어. 솟은 피는 내 보드라운 가슴털을 물들이고, 여린 발가락을 적시고, 땅으로 떨어졌어.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심장을 후볐어. 아, 멈추지 않을 나의 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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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2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보았던 동화.. 위안부 이야기를 비롯해 가슴 먹먹한 이야기들이에요. 보슬비님 참 다양한 장르로 책을 보셔서 늘 존경스러워요^^ 동화에까지도 관심이 이리 많으시니까요..

보슬비 2006-08-2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읽는동안 참 마음이 아팠어요. 여태껏 동화를 읽으면 밝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번엔 참 무거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 동화였습니다. 여러장르의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저도 좀 치우쳐서 보는 편이예요. 신랑과 책을 같이 선택하다보면 저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신랑은 현실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해요. 저는 '봉순언니'를 재미없게 본 대신 신랑은 '봉순언니'를 재미있게 읽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