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구판절판


오스왈드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했다. 약해 보이는 몸에서는 어딘지 탐미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행동은 정중했다. 처음 보면 유명한 건달이라기보다는 여왕의 시종 같았다. 그는 자신의 연애를 놓고 절대 다른 남자와 토론하지 않았으며,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저녁 내내 그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도 그 맑고 푸른 눈에서 기만의 흔적조차 찾아낼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불안해하는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 사람으로 선택할 만한 남자였다.
그러나 오스왈드를 여자, 그것도 그의 관심을 끌 만한 여자 옆에 앉혀놓아보라. 그의 눈은 바로 변한다. 여자를 바라보는 동공 한가운데에서 위험한 작은 불꽃이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는 대화로 여자를 공략하기 시작한다. 빠른 말투로 교묘하게,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재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것이 그가 가진 재능이었다. 아주 독특한 능력이었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말로 여자의 몸을 감싸고 부드러운 최면의 마법으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남자였다.

=>여자를 바라보는 동공 한가운데에서 위험한 작은 불꽃이 천천히 춤을 춘다는 말이 마음에 드네요.-손님쪽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옛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장소를 향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는 것! 세상에서 그보다 기?일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이란 얼마나 경멸스러운지! 미련한 여자와 함께 아주 작은 땅뙈기에 눌러앉아, 그 상태에서 죽을 때까지 번식하고 안달하고 썩어가는 사람들. 그것도 늘 똑같은 여자와! 양식 있는 남자가 매일, 매년 한 여자를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그들 가운데 일부는 결국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수많은 남자가 견디는 척한다.
나 자신은 한번도, 결단코 한번도 친밀한 관계가 열두 시간 이상 지속되는 것을 허용한 적이 없다. 열두 시간이 최대의 한계다. 그러나 사실 여덟 시간도 지루하다. 예를 들어 이사벨라에게 생긴 일을 보라. 우리가 피라미드 정상에 있을 때 그녀는 번득이는 재능이 돋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강아지처럼 유연하고 장난기가 넘쳤다. 만일 내가 아까 그곳에서 그녀를 세 아랍 자객의 손에 넘겼다면, 그냥 나 혼자 내려왔다면, 모든 게 아름답게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그녀를 버리지 못하고 그녀가 내려오도록 도와주었다. 그 결과 그 어여쁜 여자는 천박하게 악을 쓰는 매춘부로, 보기만 해도 역겨운 여자로 변해버렸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도 고맙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는가!-손님쪽

리처드 프랏은 유명한 미식가였다. 그는 '식도락가'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모임의 회장으로, 매달 혼자서 음식과 포도주에 관한 작은 책자를 만들어 회원들에게 돌렸다. 화려한 요리와 진귀한 포도주가 나오는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미각이 상할까봐 담배는 피우지 않았다. 포도주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런 묘한 습관은 약간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신한 포도주로군. 약간 수줍어하고 망설이는 듯하지만, 어쨌든 아주 조신해."
그런 식이었다. 또는,
"명랑한 포도주로구먼. 자비롭고 명랑해. 약간 외설적인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명랑해."

=>와인에 대한 평이 마음에 드네요.-맛쪽

"그럼 먼저, 보르도의 어느 지역에서 이 포도주가 나왔느냐? 그것은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소. 생테밀리옹이나 그라브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진한 맛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오. 이것은 메도크가 분명하오. 그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소.
자, 그럼 메도크 가운데 어느 코뮌에서 나왔느냐? 그것 역시 소거법에 의해 어렵지 않게 판단을 내릴 수 있소. 마르고냐? 아니오. 마르고일 리는 없소. 마르고 산 특유의 강렬한 향은 없소. 포이야크냐? 포이야크일 리도 없소. 포이야크라고 하기에는 너무 연약하오. 너무 상냥하고 수심에 차 있지. 포이야크의 포도주는 그 맛이 거의 오만하다 할 수 있거든. 게다가 내 입맛으로 느끼기에 포이야크에는 약간의 심이 들어 있소. 포도가 그 지역의 땅에서 얻는 묘한 맛, 뭔가 탁하면서도 힘찬 맛이 있지. 아냐, 아냐. 이건…… 이건 아주 상냥한 포도주야. 새침을 떨고 수줍어하는 첫 맛이야. 부끄럽게 등장하지. 하지만 두번째 맛은 아주 우아하거든. 두번째 맛에서는 약간의 교활함이 느껴져. 또 좀 짓궂지. 약간, 아주 약간의 타닌으로 혀를 놀려. 그리고 뒷맛은 유쾌해. 위로를 해주는 여성적인 맛이야. 이 약간 경솔하다 할 정도로 너그러운 기분, 이건 생쥘리앵 코뮌 밖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이건 틀림없이 생쥘리앵의 포도주요."-맛쪽

미국은 여자에게 기회의 땅이다. 이미 여자들이 국부의 85퍼센트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전부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혼은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가 되었다. 처리하기도 간단하고 쉽게 잊을 수 있다. 야망이 큰 여자들은 원하는 만큼 자주 그 일을 되풀이하여 수입을 천문학적 숫자로 부풀릴 수 있다. 남편의 죽음 역시 만족스러운 보답을 안겨주기 때문에, 어떤 여자들은 이 방법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기간이 지나치게 늘어나 안달을 하게 되는 일은 없다. 남편은 오래지 않아 과로와 지나친 긴장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한 손에는 벤제드린 또 한 손에는 진정제를 쥐고 책상에 앉은 채 죽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이혼과 죽음도 미국의 새로운 세대의 젊은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이혼율이 높아질수록 남자들은 더 열심이다. 젊은 남자는 쥐처럼 결혼 적령기도 되기 전에 결혼을 하며, 그들 다수는 서른여섯 살이 될 무렵이면 적어도 두 명의 전처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며 살아간다. 전처가 익숙한 방식 그대로 살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 위해 남자는 노예처럼 일을 해야 한다. 아니, 이들이야말로 다름아닌 노예다.

=>이혼하는 여자를 악녀로 모네요. ^^-.쪽

"멋진 저녁이로군요. 여기 자메이카의 저녁은 언제나 이렇게 멋지지요."
이탈리아 말투인지 스페인 말투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남아메리카 쪽 사람인 것만은 분명했다. 가까이서 보니 꽤 늙었다. 예순여덟, 아니 일흔은 되어 보였다.
"그래요. 참 멋진 곳이로군요."
내가 대꾸했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들은 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요? 이 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아닌데."
남자는 수영장 물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관생도들인 것 같은데요. 해군이 되려고 훈련 중인 미국인들 말입니다."
"물론 미국인이겠지. 달리 세상에 누가 저렇게 시끄럽게 떠들겠소? 선생은 미국인이 아니시겠지요?"
-.쪽

드리올리는 가만히 서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 저는 칸의 브리스톨 호텔의 주인입니다. 제 호텔로 오셔서 제 손님으로 평생 호화롭고 안락하게 사시지요."

(중략)

"제 말 좀 들으세요, 어르신. 우리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겠습니다. 제가 그 그림을 사겠습니다. 그리고 외과 의사를 불러 등에서 피부를 떼어내게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르신은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제가 드린 많은 돈을 원하는 대로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중략)

"이분은 피부 이식 같은 큰 수술을 하기에는 연세가 너무 많소. 그러다 돌아가실 거요. 그런 수술을 받으면 돌아가십니다."
"내가 죽는다고?"
"당연하지요.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그림만 떼어내고 끝날 겁니다."
"맙소사!"
드리올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뒤편 어딘가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혹시 알아? 돈만 충분히 주면 저 노인네가 이 자리에서 자살을 해주겠다고 할지도 모르잖아. 누가 알겠어?"
몇 사람이 킬킬거렸다. 화랑 주인은 불안해하며 발로 양탄자를 문지르고 있었다.

(중략)

몇 주 지나지 않아 수틴의 그림 한 점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그림 시장에 나타났다. 독특한 화풍으로 그린 여자의 얼굴이었다. 광택제를 잔뜩 바른 그림은 멋진 액자에 들어가 있었다. 그 소식을 듣자 몇몇 사람은 약간의 궁금증을 느끼면서 노인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칸에는 브리스톨이라는 이름의 호텔이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그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든 통통하고 매력적인 아가씨가 그의 손톱을 다듬어주고, 아침이면 하녀가 그의 침대로 아침식사를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빌게 되었다-스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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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6-3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둔지 좀 됐는데 아직 못 읽고 있네요. 어서 읽어야지..

보슬비 2006-06-3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단편마다 반전이 묘미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