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모처럼 듣는 소풍이라는 말이 참 좋다. ‘소풍’이라고 소리를 내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바람이 얼굴을 씻어주는 듯하다. 가까운 곳 어디라도 가고 싶다. 소설가 성석제<사진>는 그러라고 한다. 살짝 땀이 밸 정도로 걸어서 갈 거리면 좋고, 친구가 있으면 더욱 좋고, 좋은 음식을 동행한 친구와 나누면 더더욱 좋지 않겠냐고 부추긴다.

‘소풍’은 타고난 가출 기질에다 월급쟁이 생활을 반납하고 확보한 주체할 수 없는 시간 덕분에 인생의 태반을 길 위에서 사용하고 있는 작가가 이곳저곳 소풍을 다니며 맛본 음식 자랑이다. 그런데, 월든 호수에서 먹은 ‘소로 영감 김밥’ 이야기도 있던데 거기가 걸어서 살짝 땀이 밸 정도의 거리에 있단 말인가? 많이도 돌아다닌 모양이다.

그러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배 아파할 것도 아니다. 대개는 한반도의 남쪽, 그것도 경기도나 경상북도 내륙의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뭐 이렇다 할 특별한 음식을 맛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밥이고(김밥에 갱죽에 묵밥도 있다) 국수다(라면이나 냉면, 자장면도 있다). 배추고 홍시고 사과다. 막걸리다. 가끔 한정식에 너비아니나 떡갈비, 어란에다 가재 요리나 아이리시 흑맥주도 먹고 마신 모양인데 적지 않은 작가의 나이를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데 누구나 일용하는 그 밥이며 배추며 홍시 이야기에 소풍의 흥취가 은근하고 깊다. 대학 시절 고향에서 이웃 노인의 모내기를 도와주고 얻어먹은 겉절이 비빔밥. “함지의 반은 밥, 반은 겉절이였다. 할머니는 고추장을 한사발 함지에 퍼넣었다.

그러고는 물어보지도 않고 세상에 나온 지 80년 된 주름진 손으로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 밥의 맛을 “입속에 가득 차는 환희”였다고 말한다. 배가 아프다면 이런 대목이다. 늦은 밤 묵은 조선간장으로 비벼 먹는 제삿밥을 두고는 “온몸이 입이 된다. 혀가 삶이다.



한순간이 눈 내린 들판의 달빛처럼 환해진다”고 쓴다. 시다. 설날 새벽 청상으로 늙은 집안 할머니가 세뱃돈 대신 옷장 서랍에서 내어주시던 홍시의 시리게 다디단 맛도 역시 탄성 없이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오, 그 기다림과 은일(隱逸)의 향이라니.” 그러고보면 성석제의 ‘소풍’은 사라져가는 시간 속으로 떠나는 ‘소풍’이 아니겠는가. 작가가 깊은 속정으로 불러내고 있는 음식들은 그 시간의 환유였던 것. 그 소풍길의 환한 설렘 너머로 “서럽고 아련한 외로움”이 언뜻 언뜻 비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닭곰탕에 들어가는 닭고기는 ‘쭉쭉’ 찢어야 할까, ‘쪽쪽’ 찢어야 할까. 겉절이 비빔밥을 만들 때는 ‘싹싹’ 비벼야 할까, ‘썩썩’ 비벼야 할까. “요로콤 조로콤 말을 해싸봐도” ‘소풍’의 진미는 성석제가 비벼주는 한국어의 성찬인지 모른다. 그 성찬의 끝에 작가가 얹어주는 인생이라는 ‘고명’까지, 성석제의 ‘소풍’은 너무 푸짐한 밥상이다. 침이 홍수처럼 괸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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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2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더군요. 성석제가 비벼주는 한국어의 성찬..

보슬비 2006-05-24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읽고 싶어요. 이 책 때문에 신랑이랑 열무가 살짝 익으면 큰 그릇에 밥 모다놓고 참기름 고추장 넣어 비벼 먹기로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