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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봄 ㅣ 핵없는 세상을 위한 탈핵 만화
엠마뉘엘 르파주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은걸까?
체르노빌 = 죽음, 어두움, 슬픔....
봄 = 생명, 밝음, 기쁨....
상반되는 두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체르노빌의 봄'이라는 제목과 봄을 연상케하는 표지를 보면서 어쩜 저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클릭을 하면 그림을 크게 볼수 있답니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접하는 내용은 저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만화이고 페이지가 짧았음에도 천천히 나눠서 책장을 넘겼던것 같아요.
그림 하나 하나, 글 하나 하나, 생명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기위해서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그중에서 고르고 골랐는데도, 처음으로 포토리뷰에 올리는 사진이 최대치를 넘기는 상황이 되었네요.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공화국 수도 키예프시 남방 130km 지점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제4호 원자로가 폭팔하는 사고였습니다. 20세기 최악의 사고입니다.
초기에 방사능의 위험성을 모르고 용감하게 초기진화에 나섰던 소방관분들은 전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후 마스크와 방독면에 목숨을 의지한 '처리반'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분들 역시 방사능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습니다.
원전사고가 아니었다면 우크라이나의 작은 도시 '체르노빌'을 알았을까?
체르노빌 그곳은 생명이 있는것이나 없는것이나.. 모든것의 무덤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그린 화가는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과 중압감 탓인지 체르노빌로 가기전에 근육이상 증상으로 그림을 그리기가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체르노빌에 도착하면서부터 근육이상 증상은 더 이상 그에게 시련이 되지 않습니다.
'처리반'에서 일했던 분을 만났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방사능으로 인한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바시아 역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방사능이라는 핵을 안고 살아가지요.
바시아의 모습에서 처리반의 모습을 떠오르는 화가를 보면서 역시 화가의 눈이라 그런지 보는 사물도 다르다는것을 느낍니다. 글로 표현하는것보다 이 한 장면이 더 제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네요.
피폭된 곳으로 들어갈때는 꼭 방사능으로부터 보호해야하는 장비를 착용합니다. 하지만, 저 장비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보호해 줄까요? 생명을 운에 맡기는 셈입니다.
방사능 수치를 재는 기계에 의존을 하며 그림을 그립니다.
방사능수치가 올라갈수록 기계에서 소릭 납니다. 책에서 표현했듯이 피터팬에서 등장하는 후크의 팔과 함께 시계를 먹은 악어처럼 말이지요.
'틱 틱 틱탁 틱탁' 죽음에서 가까워지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에 쫒기듯 도망치는 일행들...
자신의 초상화의 가슴에 원자로를 그려달라는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요..
화가는 어릴적 핵전쟁에 관한 만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어릴적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자신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우월감등으로 그렸겠지만...
체르노빌에 와서야 그런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깨닫게 되지요.
지금은 더 이상 생명이 살지 않는다고 생각햇던곳에 그래도 생명은 존재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고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그림속에 저 꽃은 그림이 아니라 실제 꽃을 말린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르노빌 지역에서 가져온 꽃일까요?
숲이 아스팔트 도로보다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잘 씻겨지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네요.
방사능오염으로 인한 기형 생물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이 만화에서 유일하게 뒤틀려진 그림인것 같아요. 원래 체르노빌에 관한 글을 만나면 피폭으로 인한 기형적인 신체변형, 돌연변이등이 많이 등장하며 혐오감과 공포를 주었는데...
이 책은 다른 시각으로 체르노빌을 바라봐서 좋았던것 같아요.
오염되고, 변형되고, 튀틀려진것은 생명이 아닐까요?
단 한순간을 살거나, 짧은 시간밖에 존재 할수 없는것도 생명이 아닐까요?
왠지 인간이 숲을 방치하는것이 아니라, 숲이 인간을 추방한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 역시 저 그림도구를 줍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자신의 그리던 장소가 단순히 숲속의 일부라 생각했던 공간이 예전에는 도로였다는 것을 아는 순간....
체르노빌에 오기전까지 화가도 저도 잿빛 체르노빌을 예상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생명이 자라나고 숨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책 초반이 오히려 체르노빌을 연상케하는 분위기와 비슷했던것 같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책 초반에는 볼수 없었던 색감을 접하며, 조금 무거운 마음을 덜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보여진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
고향을 떠나려 하지 않고 남아있으려는 사람들...
단 한순간을 살더라도 고향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이방인으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다리위에서 앉아 있는 연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랍니다.
이런 모습을 만나 잠시 혼란스러워하지만....
지금의 풍경을 간직할수 있었던것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것입니다.
지금은..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않아요.
그러한 희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가야하는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책을 다 읽고나서 책을 읽기전에 기대했던 내용과는 달랐지만..
체르노빌 원전사고에만 집중되지 않고, 그후의 삶을 그렸기에 그래서 더 좋았던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었을때 가슴이 더 뭉클했던것 같아요.
책 속의 그대로의 모습을 한 화가의 사진.
사실 책 뒤편에 책속에 연주를 하던 필립 올리비에의 연주를 듣기위해 홈페이지를 찾아갔는데... 글을 몰라서 못 찾겠어요. ㅠ.ㅠ 하지만 그의 다른 연주곡을 들으며 그 중 한곡이겠지..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