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 그림 그리는 ## 선생을 만나 한정식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도 점심에 한정식집이더니 오늘도... 그러나 오늘의 한정식은 경기도 광주의 그 어설픈 곳보다 열배쯤 나았다. 몇 달만에 들렀던 인사동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 괴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바삐 그 동네를 빠져나와 붐비고, 정신없는 강남으로 이동하여 한 건의 회의를 해치우고 마른 목을 축이러 스타벅스에 들렀다. 아이스 타조 차이 톨 사이즈 하나로는 내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별 수 있나. 어차피 갈증이란 건 음료수 같은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또 다시 강북으로 이동, 이번에는 성북동이다. 거대한 저택들이 늘어선 조용하고 점잖은 듯 보이는 그 동네. 차를 대접 받고 떡을 먹으며 책 진행이 아니면 만나뵐 연도 없을만큼 높으신 양반들과 불편한 자리가 이어지다. 올해 프랑크푸르트에 출품할, 현재 진행중인 책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 도서전 부스안에서 벌일 이벤트 아이디어에 대한 러프한 초안들이 논의 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시 몇 통의 전화, 그렇게 비교적 순조롭게 마무리된 하루의 일과.
몇번의 문자가 오고가다. 이번 주말의 약속을 잡고, 영화를 예매해두다. 폭풍전야지만 그래도 한가로운 금요일 밤. 세탁기에서는 빨래가 돌아간다. 나의 시선은 자꾸만 와인을 향하는데.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손길이 사무치게 그리운 매 순간마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날카로운 몇몇 순간들이다. 그 날카로움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베이는 순간 베이는 줄도 모르는 그런 것이다. 나는 이렇게 오래 전에 단번에 잘려버린 마음, 시간을 두고 조금씩 잘려나간 마음들을 기억해 낸다. 마음이 스러진 자리에 피어나는 건 언제나 그리움이 먼저다. 그리고 아픔같은건 천천히 자라난다. 다시 아픔을 잘라내면 그 때는 오롯이 추억만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