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무심히 들어넘기던 결혼 서약서의 어느 한 구절.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할 것이며.. 라는데. 흠, 그것도 싫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지. 아, 죽음이 갈라놓을 수 있다고 누가 그래? 라는 괜한 반발심이 들어서 피식 웃었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다고 믿는게, 사랑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영화보기전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커피 그란데 사이즈를 마신 탓인가 눈꺼풀은 무거운데 정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것 같은데. 빗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오는 밤에 내가 생각하는 건 저런 구절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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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6-05-0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저 말만 들으면 오싹... 예전 하이텔 섬머 게시판에서 읽은 동명의 단편 때문에.
유럽 여행 간 커플이 어느 집시 노파에게 끈 장식을 커플로 팔면서 저 주문을 외워요. 그런데 여자가 교통사고로 먼저 죽고나서 이 남자에게 계속 그 여자의 유령이 붙어서, 결국 이 남자 역시 못견디고 고속도로에 몸을 던져요. 이미 그 끈을 풀어버린 그 남자의 팔목에 끈처럼 피가 엉겨붙고... 휴우... 그때 김민준(하이텔 ID:pigkim)씨 뭐하실려나.

이리스 2006-05-0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군 / 거 참 분위기 딱딱 못맞추고 한참 로만띡인데 거기다 아주 피를 바께쓰로 붓는구나아.. ㅠ.ㅜ 미워잉.... (근데 김민준씨가 유명하신 분?)

mannerist 2006-05-0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실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였따. 쿨럭;;;
근데 나 원래 미워했잖어-_-;;;;

김민준씨 한때 하이텔 섬머 게시판에서 날리던 분인데 지금은 뭐하실라나... 포스트 이우혁(퇴마록)의 대표주자였거덩요. ㅎㅎ
 

인사동에서 점심 약속이 있어 그림 그리는 ## 선생을 만나 한정식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도 점심에 한정식집이더니 오늘도... 그러나 오늘의 한정식은 경기도 광주의 그 어설픈 곳보다 열배쯤 나았다. 몇 달만에 들렀던 인사동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 괴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바삐 그 동네를 빠져나와 붐비고, 정신없는 강남으로 이동하여 한 건의 회의를 해치우고 마른 목을 축이러 스타벅스에 들렀다. 아이스 타조 차이 톨 사이즈 하나로는 내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별 수 있나. 어차피 갈증이란 건 음료수 같은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또 다시 강북으로 이동, 이번에는 성북동이다. 거대한 저택들이 늘어선 조용하고 점잖은 듯 보이는 그 동네. 차를 대접 받고 떡을 먹으며 책 진행이 아니면 만나뵐 연도 없을만큼 높으신 양반들과 불편한 자리가 이어지다. 올해 프랑크푸르트에 출품할, 현재 진행중인 책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 도서전 부스안에서 벌일 이벤트 아이디어에 대한 러프한 초안들이 논의 되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다시 몇 통의 전화, 그렇게 비교적 순조롭게 마무리된 하루의 일과.

몇번의 문자가 오고가다. 이번 주말의 약속을 잡고, 영화를 예매해두다. 폭풍전야지만 그래도 한가로운 금요일 밤. 세탁기에서는 빨래가 돌아간다. 나의 시선은 자꾸만 와인을 향하는데.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손길이 사무치게 그리운 매 순간마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날카로운 몇몇 순간들이다. 그 날카로움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베이는 순간 베이는 줄도 모르는 그런 것이다. 나는 이렇게 오래 전에 단번에 잘려버린 마음, 시간을 두고 조금씩 잘려나간 마음들을 기억해 낸다. 마음이 스러진 자리에 피어나는 건 언제나 그리움이 먼저다. 그리고 아픔같은건 천천히 자라난다. 다시 아픔을 잘라내면 그 때는 오롯이 추억만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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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6-04-29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움과 추억이 떠오르는 금요일밤... 폭풍전야라도 일말의 한가함을 안겨주는 금요일밤...그래서 금요일밤은 특별한 거 같아요..^^

이리스 2006-04-29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라님 / 금요일밤은 너무 심하게 -.- 알차게 보냈더니 토요일 오전이 날아가 버렸어요. 으허허.. --;
 

피곤에 절어 집에 들어와 저녁도 먹지 못한 빈속에 이것저것 먹을것을 우겨 넣으며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이란 일본 드라마를 보았다. 젠장. 이 따위 우울한 드라마를 보는게 아니었다. 울컥, 우울과 울음이 동시에 목까지 차고 올라와서 사정없이 자판을 두드려대며 한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썼다. 일기를 자판 두드려가며 쓰는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라 쓰지 않았던 것인데...

쓰다보니 쓰기 전의 그 감정이 절정에 달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나는 그 때 문득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찾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단축 번호 1번을 눌렀다. 몇초의 기다림 끝에 연결. 휴, 살았다. 오늘도 이렇게 구원받는구나. 감사합니다..

전화통화가 끝난 이후의 나는 실컷 웃다 못해 배가 당기고 새롭게 배운 또 하나의 단어를 여기저기에 붙여 응용해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냉장고에 있던 상태 좋지 않은 방울 토마토를 과감하게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고 방정리를 할만큼 정상으로 돌아와 있다.

울다 웃다인지 웃다 울다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나란 인간이란 늘 이렇다. 그러니..

웃거나 울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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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04-2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영화가 문근영 주연으로 리메이크 된다니..걱정입니다.
원작의 맛을 못 살릴것 같아요.
 

푸핫.. 정말 재밌다.

즐찾에 대한 글을 올리면 반드시 즐찾이 줄어든다고 쓴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어제 79였던 즐찾은 아침에 80이 되어 있더니 오후에 81이 되었더랬다.

그러다가 그 글을 올리고 나자 여봐란듯 하나가 줄어들어 80이 되었다.

이제 이 글을 올리면 아마도 누가 또 슬쩍 뺄테고.. 그럼 다시 어제의 79가 되는건가?

즐찾에 대한 페이퍼를 올릴때 즐찾을 빼는 심리에 대해 궁금해졌다.

1. 뭐야, 이런 서재에 내가 즐찾을 해뒀네? 빼버리자.

2. 그래? 즐찾이 늘었다고? 그럼 내가 빼주마.

대충 이런게 아닐까 싶은데.. ㅎㅎㅎ

혹은, 즐찾이나 투데이 수에 연연하지 않고(아니면 않는척 하고) 있는 태도가 못마땅해서 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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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6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글쎄요 저는 즐찾에 대한 글을 올리면 늘던데요. 한두명^^

치유 2006-04-2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다른님들 투데 보며 너무나 놀라는데 님도 만만찮게 놀래게 하시네요...벌써이렇게나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고 그것도 즐찾으시는 분들이 그리 많으시다니..부럽사옵니다..

치유 2006-04-2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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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

바람님..여기 계셨어요??너무 방가/////////////


마태우스 2006-04-2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모에 비해 즐찾이 현저히 적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군요...부리랑 저는 님의 즐찾멤버입니다^^

라주미힌 2006-04-2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충성서약 하시기에요? 혼자서?
나도 충성~! ㅎㅎㅎ

이리스 2006-04-2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ㅋㅋ 그런가욤?
배꽃님 / 헙.. 뭐.. 부럽기는요.. -_-;;
마태님 / 하핫.. 그건 잘 모르겠고요. 투데이에 비해 즐찾이 현저하게 적은건 사실인것 같습니당...
라주미힌님 / 으흐흐.. 왜들 이러셔어요오옹~ ㅎㅎ

울보 2006-04-26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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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 으흐.. 이벤트 때문인지 오늘 투데이가 ^^

oldhand 2006-04-26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즐찾보다 훨씬 많은 Today가!
어쨌든 저도 낡은구두 님의 즐찾멤버입니다. ^^

이리스 2006-04-26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올드핸드님.. 오래만이어요오~~ *^^*

비로그인 2006-04-2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낡은구두님의 즐찾 멤버입니다.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마태우스 님께서 밝히신 마당에 그냥 한 번 따라...줏대없는 알라디너의 표본입니다. 하핫

이리스 2006-04-2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 으핫... 무슨 그런 말씀을.. ^^ 줏대는 어디다 쓰려구요.. ㅎㅎ 그런거 없어도 상관엄떠요. (앗 혀가.. 혀가.. 짧아지고 있떠여..) ㅋㅋ

실비 2006-04-2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다시 늘어났죠? 제가 방금 눌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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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꽈르릉하고 무너지고
생각도 않던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이곤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부릴 실마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바쳐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깨끗한 눈짓만을 남기고 모두 떠나가 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무디었고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아주 얼빠졌었고
나는 무척 쓸쓸했다

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

-이바라기 노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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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4-2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과거형이 아니라.. 젊음이 가득했던 이십대 초반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알게되기 시작한 삼십대 초반.. 지금인것 같다.

하늘바람 2006-04-2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낡은 구두님, 님 이야기 아니었어요?

Kitty 2006-04-2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예뻤을 때라고 하셔서 사진 올라온 줄 알고 얼른 뛰어왔잖아요 ^^;;;;

비로그인 2006-04-2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tty님 말씀에 동감하는지라, 위대한 시 앞에서 망측한 독자가 된 기분입니다.^^;;;

이매지 2006-04-2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쿨럭^^;;

gazzaa 2006-04-2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 재미나요오오. ㅋㅋ)

이리스 2006-04-2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헙.. ㅎㅎ
키티님 / 이런이런, 죄송합니다.. ^^
쥬드님 / 망측한 독자.. 라니.... 하핫.. 한참 웃었어요.
이매지님 / ㅋㅋㅋ
시에나님 / 재미있으면 추천을 하세요오오~

비연 2006-04-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시네요^^
사실, 저도 낡은구두님 '젤로 이뻤을 때 사진'이 있는 줄 알고 냉큼 왔지만^^;;;

이리스 2006-04-2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 앗.. ㅋㅋ 죄송해요.

프레이야 2006-04-26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가장 예뻤을때는... 단연 40대초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