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살 더 먹을때마다 확신이라는 이 단어 하나에 한없이 작아진다. 

어릴때는 무수히 많은 확신을 품고 있었다. 

난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나라면 이러지 않아(심지어 절대!)  

이런 말들을 한 건 몰라서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니까. 

확신이 하나 둘 처참하게 부서져 내리는 걸  인생을 통해 경험하고 난 뒤부터는 감히 절대라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어졌다. 어이없는 황당한 상황을 겪고 나서도 그저 그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며 미루어 짐작하고 덮어줄 아량도 아주 조금은 생겨났다. 그게 다 나 역시 그렇고 그런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또 딜레마에 빠져 있다. 

꽤 오랫동안 끌어온, 이제는 정말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 당당하게 결론을 내렸는데 그 확신이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 또? 다시? 

이건 온전히 나 자신과의 독대를 통해 답을 내야만 하는 일인데 좀처럼 그 망할,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이건 단지 부츠 컬러를 선택하는 수준의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어쩌면 좋을꼬. 

상황이 이러니 속에선 차라리 무식한게 나을거 같다는 푸념도 들린다. 무식해서 용감했을 시절에 벌려놓은, 그 엄청난 확신에 찬 결정으로 인생이 만싱창이 비슷하게 망가졌었는데도 여전히 이러는 걸 보면 아직 멀긴 멀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째깍째깍.. 내가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날이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혼돈 그 자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10-11-30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 문제라면 아마도....답은 없을 듯...합니다만....(아님 말고)

이리스 2010-12-04 03:32   좋아요 0 | URL
답은 있어요 ^__^
 

비염 치료 때문에 찾은 이비인후과는 전에 한번 갔다가 의사가 굉장히 친절해서 기억에 남아 부러 다시 찾아간 곳이다. 단순히 친절하다는 것 뿐 아니라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고 또 존중하는 느낌.  

난 거의 몇 주째 코 안이 말라서 피딱지가 앉고 염증이 생겨 괴로워하고 있는 중이었다. 피와 화농이 엉겨서 말라 붙어 딱지로 붙어 있는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 코안에서 제거되어야 마땅한 것이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쉽게 말해서 코를 팠다는 이야기다. -_-;; 손톱이 길어서 이럴땐 요긴했다. 휴지를 적셔서 살짝 대었다가 뜯어내면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끔찍하게 아팠지만 딱지가 떨어져 나가 후련하고 시원했다. 

오늘 의사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이 상태를 덧나게 하고 안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의사는 면봉으로 연고를 코 안에 정성스레 골고루 발라주었다. 그리고 불편해도 좀 참고 절대 뜯어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고를 발라주고 기다려주는 것 만으로 다 나을 증상이라는거다. 

나는 그걸 못참고 뜯어내고 또 생기고 뜯어내고를 반복했으니.. 

내 코가 이런 증상을 보인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 봄에도 이랬다. 그때도 너무 아파서 눈물을 찔끔 거리면서도 기어이 딱지를 뜯어내고 피를 보곤 했다. 그때 찾아갔던 병원의 의사는 오늘 그 의사보다 수십배쯤 잘생겼는데 태도는 정말 영 아니올시다였다. 

약간의 조롱이 섞인 어투로. 코 파셨죠? 보면 알아요. 코파시지 마세요. 라고 씨익 웃기까지 했다. 거기다 우월함을 바탕으로 한 그 태도. 이 무식한 것아 이걸 왜 자꾸 건드려서 안낫게 하냐. 쯧쯧.. 하는 속내가 표정에 다 드러나는 것이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어쩜 저렇게 비교하기 좋게 다르냐 싶을만큼 참 그러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의사의 잘생긴 비주얼이 순식간에 역겨워졌음은 물론이다.

내가 오늘 깨달은 것은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딱지가 앉고 그 딱지가 충분한 시간을 거쳐 저절로 떨어져 나갈때 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어쩌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가렵고 불편하다고 확 뜯어내봤자 흉터가 남거나, 상처가 덧나거나, 더디 아물게 될 뿐이다.  

나는 이런 물리적인 상처 뿐 아니라 내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아무렇지 않게 탁탁 털고 일어나 웃으며 달리고 달렸다. 그럴수록 속이 더 아파서 문드러질 것 같은 것은 자명한 이치. 아프다 보면 별별 원망이 다 생겨나고 끝내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리고 좌절하곤 했었다.  

이제는 상처를 덮고 있는 딱지에게 미움보다는 고마움을 느끼며 그것이 내 살과 섞여 잘 지내다가 알아서 떠나갈 그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련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불편할 것이고 빨리 뜯어내려는 마음을 억누르느라 이를 악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참아 보련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10-11-1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코 파는 그림을 그려보고 있어요..음...음.....음....흐흐흐흐

이리스 2010-11-16 23:00   좋아요 0 | URL
메..메피님!!!! ㅡㅡ; 크헝헝 ㅜㅜ

무스탕 2010-11-1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스님. 오랜만이세요~~~
제가 며칠 바빴던동안 컴백하셨더라구요. 웰컴이지요 ^^
잠깐 페이퍼 돌아보니 정말 몇 년만에 두희 사진도 보여주시궁.. 두희도 반갑다~ :D

이리스 2010-11-17 12:23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부비부비(엄훠~)이제 자주 뵈어용~
두희도 인사 전해요. *^^*

세실 2010-11-1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저두 코 한번 잘 못파서 몇주째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젠 절대 안파야지 하고 다짐하고 있는중이어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돼 그쵸? ㅋㅋ

이리스 2010-11-17 13:3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가만 두기가 쉽지 않죠? 오죽하면 병원엘 다 갔겠습니까. -_-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읭?)
건강하세욜~ ^^
 

 

 

 

 

 

 

 

하루키의 국내 출간 도서는 모두 다 읽었다고 하는 내 말을 듣고 당시의 신간이었던 이 책을 누군가 내게 건넸다. 농담반으로 책은 빌려주면 못받는데? 라고 하자 그냥 읽고 가져도 상관없다며 웃어보였다. 휘리릭 빠르게 설레는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하루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을 읽은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의 농담은 현실이 되어 여전히 이 책은 내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이 책이 다시 눈에 들어온건 하루키의 신작을 예약구매하려다 불쑥, 그러니까 정말 불쑥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 그 마라톤.. 하루키의 달리기 책.. 그게 어딨었지? 책은 거실 책꽂이도 아닌 내 방 책꽂이 중에서도 최근에 증설(?)한 눈에 잘 띄는 곳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었다. 늘 거기 있었건만 못봤던 셈.  

달리기, 라고 해봐야 아주 최근에 KTX 놓칠까봐 눈썹 휘날리며 달린것 빼고는 이렇다할 기억이 없다. 걷기도 아주 가끔씩 했던지라 달리기와는 정말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어려서는 천식 때문에 늘 오래달리기를 기권했고 아무리 기록이 늦어도 완주하는 아이들이 부러웠었다. 중학교때는 한번 무리해서 달렸는데 얼굴은 시뻘개지고 목에서는 쇳소리가 나고 혀 끝에서는 피맛이 나는 등 아주 난리였다. 그나마 기록은 차마 기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완주도 달려서 완주가 거의 걸어서 들어왔던 기억이 있다.  

달리기, 특히 오래 달리기는 나와는 거리가 멀고도 먼 그런 단어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데 새삼 하루키의 책을 다시 집어들고 보니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오래 달려본 거리는 3000 미터가 조금 넘는게 전부다. 대학생 때 친구가 4.19 마라톤 대회 나간다고 연습하는데 옆에서 따라서 뛰다가 최장기록을 세운게 마지막이었다.  

그러니 내 도전이라고 해봐야 그 시작은 참 민망한 길이부터여야 할 것 같다. 날도 쌀쌀하고 점점 더 바빠질텐데 언제 달리나 싶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달려볼 생각이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가능한 오래. 조금씩 늘려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놀랄 거리를 달릴 수 있으리라 믿으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11-1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라고 해봐야 아주 최근에 KTX 놓칠까봐 눈썹 휘날리며 달린것 빼고는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달리기 중의 하나이지요.

이리스 2010-11-15 11:16   좋아요 0 | URL
전 제가 그렇게 힘이 넘치는 줄 몰랐습니다. -_-;;

Mephistopheles 2010-11-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더이상 신호등 깜빡일때 달리지 않습니다. '뭐 다음 신호에 건너지...' 억지로라도 일상에 여유를 끼워넣는 일종의 절박함일지도 모르지만요...^^

이리스 2010-11-15 11:1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사실 숨차서 ㅎㅎ) 메피님 근황 보니 참 뭐랄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당~
 

 

눈만 사로잡혔던가요,  

마음도 사로잡혔던가요,  

고개 돌리면 잊혀질 것이던가요,  

눈 감고 도리질해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던가요.  

화려한 것은 독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해요.  

팔아버린 한 눈이 멀고  

나머지 한 눈 마저 멀지 않게.  

이리와요, 내 사랑.  

 

* 한달쯤 전에 우연히 '한눈'에 대해 끄적여본 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0-03-1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향가가 떠올랐어요.

이리스 2010-03-16 15:14   좋아요 0 | URL
앗.. 춘향가... :)
 

 

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은 어쩌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말하는 대로 행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정도로는 이미지에 갇힌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할 수 있다. 자의로 만든 것이건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건 간에 보여 지는 이미지란 또 하나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가치관과는 별개로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가 상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무섭다고 하거나 화난 사람 같다 

고 해요, 사실은 되게 밝고 상냥한 사람인데.” 가끔 듣게 되는 말이다.

보이는 것과 현저히 다른 성격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건 기대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더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인 걸까, 만화 <엔젤 전설>을 보며 거의 울면서 웃어댔던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조금 위악적으로 이미지 놀이란 걸 할 때가 있었고, 지금도 가끔은 그렇다. 실리를 좇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순전히 유희로서 그렇기도 했는데 이제는 슬슬 좀 지쳐간다. 그따위 것 다 집어치우고 얼굴로 치자면 눈썹도 도망 가버린 초 쌩얼 정도의, 리얼리티 쇼가 아니라 리얼 라이프로서의 그 무엇을 보이고 싶다.  


자기 합리화에 오래도록 갇혀 이미지 놀이나 하고 지내다 보니 사는 게 참 구차스러워져서 문득, 적어놓는다. 칼을 손에 들긴 했는데 들고만 있다 보니 칼도 녹이 슬어 더 이상 칼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되어간다.  


이제, 새 칼을 들어야 할 때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9-06-1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갈아요오~

이리스 2009-06-19 15:37   좋아요 0 | URL
한방에 보내버리시는 메피님하...

2009-06-22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8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6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