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주문까지 넣어가며 이 책을 구입한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여행지였던 시칠리를 다룬 여행기인데다가 그곳을 찾아간 사연이 본질적으로 나와 동일해서 안사고 배길수가 없었다.
이런 배경을 제외하고 책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자의 문제라기 보다는 기획이나 편집에서의 아쉬움이었다. 좀더 맛있게 버무렸더라면 하는 여러가지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지만 그것에 앞서 내 추억의 가뭄에 해갈을 가져다주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지금도 꿈처럼 아스라히 떠오르는 건 내가 머물렀던 p와 p의 친구 집의 풍경이다. 싸우는것처럼 큰 목소리로 귀가 아플 정도로 왁자지껄하던 식사 시간. 또다른 가족이었던 두 마리의 개, 그리고 고양이들. 커피 내리는 소리와 고소한 음식 냄새가 가득했던, 언제나 가족과 친지들로 북적거리는 부엌. 바비큐 파티를 열던 정원, 오로지 나만 물어대던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독한 모기, 근사한 와인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찾아 들어간 허름한 상점의 환상적인 젤라또.
내가 시칠리에 간다고 했을때 지인들은 걱정을 먼저했다. 마피아들이 득실거리는 무서운 곳이라는 염려를 너무나도 당연히 얹어서. 나 역시 낯선 초대에 응하는데 용기가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만약 그 때 내가 주저하고 마음을 접었다면 나는 이 꿈처럼 아름다운 추억을 결코 갖지 못했을 것이며 아마 시칠리에 갈 일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건 시칠리에 온다면 우리집에서 머물러. 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일까? 여행은 여행지의 사람과 공유하는 추억으로 기억된다. 어떤 식으로든. 홀로 하는 여행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문득 생각나서 예전 사진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