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려 32년만에 사과를 받았다. 그것도 아주 얼떨결에.

사과란것을, 직접 받은 것도 아니고.. 전해 들어서 받은 것도 사과라고 친다면 말이다.

글쎄? 나는 오히려 무덤덤한 편이었는데. 이제와서 새삼 무엇이 달라질 것도 없지 않나 싶어서였다.

내가 굳이 시간을 32년이라고 잡은 건 대체 어디서부터 시간을 계산해야할지 애매모호했고, 그렇다면 내가 태어난 시점으로 잡는게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시간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것은 돌려서 받은 사과로 어떻게 달라질 성질의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배라도 들고 자야 하나? 싶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달라진것이  없고, 앞으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므로.

사과는,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 중 한 사람인 나의 아버지로부터의 사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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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6-04-2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 생각지도 못한 사과를 메일로 받았답니다. 받기전에는 언젠가 니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할때가 있을거다라고 속으로 생각만 했었는데, 막상 메일로 오니까 그 순간은 망치로 맞은 것 처럼 부드부들 떨렸답니다.

이리스 2006-04-24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 / 그.. 그렇죠? 저는 뭐 떨리지는 않고 아직까지 그냥 무덤덤해요. --;;
 

스스로 잘났다고 떠벌이는게 결코 미워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오히려,

짐짓 점잖은체 하고, 겸손의 미덕을 갖춘 척 하며 무게 잡지만 결국 나 잘났다는 것, 나는 니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인 찌질이보다 백배쯤 더 낫다.

차라리 솔직하게 대놓고 잘난척하는게 더 귀엽다.

아니면 나는 못났다고 하며 퍼질러 앉아 눈물콧물 흘리며 우는 용기라도 있으시던가.

고상한척 하며 잘난체하거나 말거나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자기랑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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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6-04-2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얘긴가 봐요. ^^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지나친 피해의식인가?

mannerist 2006-04-2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재주 좋은 매너, 나 잘났죠? 씨익 앤드 화알짝 ^_^o-

하늘바람 2006-04-2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잘난척하다보면 정말 잘나지지 않을까요

이리스 2006-04-2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비돌이님 / 님 이야기요??
매너군 /ㅋㅋ 으응, 잘났어~
하늘바람님 / ㅎㅎ
 

구체적으로 언제 그런 상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십대도 되기전 십대의 어느 한자락이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모르나 아이들을 넷이나 다섯 정도 낳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상상 속 미래의 내 모습에는 언제나 애들이 바글거렸다. -_-;;

아마 그 때의 상상대로라면 지금 최소한 둘 혹은 셋 정도의 아이가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커서 가수를 좋아할 나이가 되면 멋지게 콘서트 표를 사주고(친한 친구 두어명 것까지, 좋은 자리로), 엄마 너무 힘들어.. 하고 애들한테 되려 애교를 부리며 설겆이도 부탁해 보고, 내가 보던 책들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함께 마트에 가고, 아이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늦은 밤에도 전화해서 귀가를 채근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을 너무도 많이 상상하곤 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만들어둔 육아수첩과 키우면서 쓴 육아 일기, 매해 생일마다 찍어준 사진과 동영상등을 잘 보관해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애가 인생에서 장애물을 만날 때, 힘들어서 주저앉아 울때 살짝 꺼내서 그애 앞에 놔두는 상상..

늘 그 모든 상상의 끝에서 나는 그냥 혼자이고 싶다고  결론 맺었다. 상상이니까 그렇게 쿨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미래의 내 아이들에게 용돈을 달라고 하거나(그 돈이 없으면 불편할 정도의 삶이라서) 아니면 그들과 한 집에 산다거나 그런 상상은 해본적이 없다. 그렇게 되고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치 내가 정말 그랬다는 착각마저 든다. 정말이지 현실성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이야기지만 어디선가 내 아이들이 정말 그렇게 커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아이들이 다 큰 뒤에 어느 한적한 해변 같은데 앉아서 아이들이 어릴적 이야기를 하나둘 하면서 밤이 깊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는 상상까지.

아이가 많을거라는 상상은 아주 어릴때 했던 것이고 그 이후의 구체적인 상상은 나이가 더 든 후에 하게 된 것들이다. 지금은? 내 인생 살아가기도 벅차서 혼자 훌쩍거리며 울기도 하는..

삼십대는 이제 겨우 열렸다. 남은 삼십대를 어떻게 채워갈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상상은 어쩐지 점점 상상으로 굳어져 가는 것 같은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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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1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멋진 30대가 되시길

이리스 2006-04-17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 감사합니다.

해적오리 2006-04-1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십대 살만해요. 전 종종 생각하기를 삼십이되면서 제 스스로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는 생각을 해요.

비로그인 2006-04-18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년처럼 열렬히 소망해 본다--박완서님의 문장 중 한 가락. 그렇게 미친듯이 소망하다 보면, 혹은 상상하다 보면 실제로 살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리스 2006-04-1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님 / 네, 저도 이십대 보다는 삼십대가 여러면에서 더 나은것 같아요.
쥬드님 / 맞아요. 어떤 때는 무섭기까지 하다구요. --;

icaru 2006-04-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보던 책들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항상 꿈꿔 보는데~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으쩔런지..

이리스 2006-04-1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전부다는 아니어도 일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
 

봄밤,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보고 돌아오다. 공연을 보면서 웃고, 울고, 어깨를 들썩이며.. 나는 살아 있어, 이 감정을 누릴 수 있어, 행복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한 자리에 어울려 사진도 찍었다. 돌아오는 길, 많은 생각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으며 나는 그 몇몇을 잡아서 담으려 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다행히 나는 휴대폰을 꺼내 허튼 번호를 누르는 짓을 하지 않았다. 내가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용기가 아주 조금씩 생기고 있나보다. 그리고 그것은 조용해질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소란을 피우고 시끄러운 것은 무언가를 은밀히 감추기 위한 것, 마술사의 화려한 손짓 같은 것이다.

지나간 것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온다고 해도 그것은 새로운 것이지 예전의 그 것이 아니다. 꺼진 불꽃이 다시 타오를 수 없듯, 다시 타오른다면 그건 전혀 다른 새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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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1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뭔소릴까요. ^^
저도 뮤지컬보고프네요

이리스 2006-04-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 ^^
 

이번주 내내 씨네21을 들고 시간 날 때마다 펼쳐서 보는 중이다.

<굿바이 솔로>의 노희경 작가 인터뷰 기사 중 몇 마디를 기록에 남겨두련다.

예전에 <섹스&시티>를 잠시 보고 저 여자들은 왜 저렇게 섹스만 하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그러다 쉬는 동안 와 <섹스&시티> 등 외국 드라마를 챙겨 보면서 솔직히 충격에 휩싸였다. 그들은 연애를 하면서도 수사를 하면서도, 무인도에 떨어져서도 철학을 하고 있었다.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진지했다. 물론 드라마에 투자되는 자본의 규모가 다르지만 그 짧은 시간에 단지 상황이 아니라 이야기와 삶의 본질을 기막히게 비벼내더라. 저 작가에 저 감독에 저 배우에 저 시청자라니! 문화적 충격을 넘어 드라마가 쓰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자멸감에 빠졌다. 부들부들 떨면서 봤다.

'추리'라는 사고 전개는 결국 무언가 일어난 심연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 경우를 볼 때 성격이 고집불통에 교만해진 이유는 어린 시절 무시받았던 상처가 있었던 식으로. 그렇다면 나는 사건의 추리가 아니라 심리의 추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사랑은 처음이란 뜻밖에 없는 건데, 텔레비젼 보면 온통 첫사랑 때문에 목매는 거 비현실적이라 싫었거든. 두번, 세번 사랑한 사람들은 헤퍼 보이게 하잖아. 성숙해질 뿐인데. 지금 이 순간 너만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 미치게 사랑한다고 해야지, 왜 건방지게 '영원히'를 앞에 붙여들. - <굿바이 솔로> 영숙과 미리의 대화 중

내 덧붙임.

# 노희경 작가가 <위기의 주부들>을 봤는지 궁금하다.

#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는 나름의 상당한 철학을 갖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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