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신뢰‘라 함은 스탈린 공포정치하의 억압을 반영하는 말이다. 스탈린 시대는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는 불신의 시대였다. 불신을극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님에게 들려주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는 스탈린 체제가 모든 소련 국민에게 침투되어 있었다. 스탈린 체제는 남몰래 당국에 고자질하거나 귓속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고자질과 귓속밀이 대숙청의 단초가 되었기에 사람들은 쉽사리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 P452

한인사회당에서 적위군에 조선 부대를 편성한다는 사실이 우리《자유종》과 선포문(삐라)에 발표되자 조선인 토호 에세르들로 조직되었던 악명 높은 전로한족총회 (3·1운동 후에는 대한 국민의회)는 발악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기관지 《청구신보》(주필 윤해, 부주필 오창환)에는 조선 인민들은 "러시아 정변에 참가할 것이 아니라 중립하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대한 독립은 다만 파리에서 열리는 평화회의에서 미국 윌슨 대통령이 지적한 민족자결주의에 있다"고 하였다.
이를 반대하여 한인사회당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를 포함한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던 미국 영국 기타 승전 국가들이 모두 세계 식민지를 다시 분할하는 ‘양의 고기를 판다고 현관에 써 붙이고 개고기 파는 회의‘에 가서 빌 것이 아니라 소비에트 영역에 몰염치하게 침입한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기타 무장 간섭자들에개 반항하고 소비에트 주권을 옹호하는 적위군에 참가하는 것으로 우리는 조선 해방전쟁을 무력 합동민족 군사력으로 개시한다고 선언하였다 - P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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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3-16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
이 헌신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픽 노블로 어디선가 살짝 본 것
같은데, 책으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바람돌이 2021-03-16 15:16   좋아요 2 | URL
이분에 대해서는 사실상 국내 연구자가 지금 저 책의 작가인 분밖에 없기 때문에 아마도 모든 책들이 정철훈 작가의 책을 기본으로 하지 싶습니다. 그래픽 노블로는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는데 역시 정철훈작가의 책을 원본으로 하고 있구요.

이런 책을 보면 물론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의 헌신이 감사하고 너무 대단하다 싶기도 하지만 요즘은 알면 알수록 독립운동 세력 내의 분열, 비방, 대립 같은 것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마음이 많이 답답합니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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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미쳤다는 걸 아는건 너무 쉽다.

그냥 오늘자 기사 검색만 해보면 미친 짓이 도르르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비단 정치만 그런게 아니다. 그냥 선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은 일반인들도 자신의 작은 불편이 걸리기만 해도 얼마나 이상한 미친듯한 사람들로 변하는지....

2주째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로 인해 계단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택배 노동자들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어떤 아파트 주민들을 생각하며 또 욕을 퍼붓는다. 사람들이 말이야 미친게 아니고서야 짐들고 이걸 오르라고 한다고???

연일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는 이게 도대체 사람이 맞긴 한건가라며 같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자괴감을 가지게도 하고....

미친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매일 하는 나날들이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이란 제목의 원제는 <파페 사탄 알라페>,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말이라는데 사실 아무도 그 뜻을 모르고 그저 세상의 온갖 나쁜 짓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고 책 소개에 나와있다.

책을 읽고난 지금 한글 제목과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의 시작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사회> 개념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종교나 신, 국가, 공동체 등 거대 서사가 사라진 인간 존재의 불안의 시대-이 시대의 전형적 특징은 분노를 동반한 항의운동인데 문제는 그 운동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는 알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는데 있다는 것이 에코의 일침이다. 또한 우리가 이런 유동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런 사회를 이해하고 극복하려면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면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16쪽) 

그 새로운 수단은 무엇일까?

그 전에 지금의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고 바뀌어야 하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던져준다.

 

나무랄 게 없으면 자기 일을 잘 해낸 사람이다. 나는 좋은 교황이라든지 정직한 자카니니 라든지 하는 말을 들으면 항상 마음이 좀 불편하다. 그런 표현은 다른 교황은 모두 나쁘고 다른 정치인은 정직하지 않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23세와 자카니니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고, 그래서 그들이 특별히 칭찬받아야 할 이유는없다. - P22

 

어떻게 보면 세상을 제대로 사는것이 딱히 어렵지는 않은 것이 자신이 할일을 모두가 성실하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치인이 모략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성실하게 해내고,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해가는 삶.

그런데 역사와 실제 사회는 한번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동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기를 쓰고 사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모습을 포장해 어떡해든 눈에 띄기 위해 온갖 엉뚱하고도 바보같은 일들을 저지르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듯이 살고 있다.

타인의 고통의 현장에서도 그를 구하거나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대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그것을 알림으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것에 집착하는 세상이 올 줄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알았을까?

심지어 마피아 조차도 배신자의 입에 돌 대신 핸드폰을 박아넣는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에 대해 에코는 누군가가 <야, 어제 너 텔레지번에 나온거 봤어!>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라고 일침을 놓는다.

 

유럽 곳곳에서 이슬람들에 의해 일어나는 테러를 보는 시각은 거장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소위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타 종교와 그 지도자들을 지나치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희화화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백인 유럽인으로서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결과로 이슬람들의 끔찍한 보복살해가 있어 먼저 누가 잘못했는가는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더 큰 범죄가 큰 무례와 모욕을 엎은 형국이다.

이슬람의 테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하지만 에코는 그것을 유발하는 백인들의 타 인종과 종교에 대한 무례함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다고 모두가 서로의 종교에 대해서 말하지 않거나 비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분명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교육에서는 모든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있어야 하고, 모욕과 유머, 문학적 표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해야 한다.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는 방법에 대해 에코는 부단히 질문하고 대답한다.

 

신문에 기고한 짧은 에세이라는 글의 성격상 심도있는 논의를 펼칠 수는 없지만 그의 짧은 글에서도 인간과 역사에 대한 애정, 불합리를 날카로운 유머로 통찰해내는 에코의 시선은 절묘하다.

이 책을 한 권 읽는다고 이 미친 세상을 단번에 이해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하나 하나 짚어가다보면 그래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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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1-03-15 09: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상식과 예의를 넘은 풍자는 비판이라 할 수 없어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이를 옹호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언급해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자유’라는 단어를 오용하고 남용해요.

바람돌이 2021-03-15 15:08   좋아요 1 | URL
맞아요. 다른 사람을 짓밟는게 풍자나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에코가 말하는 것도 그것이고요.
요즘은 풍자가 아니라 원색적인 비난과 쌍욕이 너무 많아서 좀 욕도 품격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mini74 2021-03-15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짓과 선동의 기사가 많은 이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도 한 몫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에코의 시선과 이야기가 더 고마운지도. 살포시 장바구니에 넣어봅니다 *^^*

바람돌이 2021-03-15 15:10   좋아요 2 | URL
신문기사 같은 건 정말 조금만 신경 써서 보면 이상한데가 한두군데가 아니예요. 얘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기사를 썼지 싶은..... 에코 돌아가셔서 이제는 이런 글을 더이상 못본다고 생각하니 아쉽네요.

희선 2021-03-16 0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뉴스에는 안 좋은 일이 나오지만 그런 데 나오지 않는 좋은 일도 있겠지요 그렇다고 믿고 싶기는 한데... 뉴스는 거의 안 좋은 일만 알려줘서 이 세상이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좋은 것만 말하는 것도 안 좋을 듯하네요 세상을 잘 보려고 저마다 스스로 애써야겠군요 자신이 맡은 일만 잘해도 좋을 텐데...


희선

바람돌이 2021-03-16 11:04   좋아요 2 | URL
주변을 둘러보면 또 그렇게 나쁜 사람은 없어요. 그게 더 진실에 가까운거겠죠? 그래서 이 세상이 안 망하고 유지되는 거구요. 오늘 하루도 화이팅하세요. 희선님.

파이버 2021-03-16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친구가 정치사회 뉴스를 잘 안본다는 말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저도 잘 안보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부단히 질문하고 대답한다는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져요...

바람돌이 2021-03-17 10:47   좋아요 1 | URL
정치 사회 뉴스 볼때마다 혈압만 오르죠.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나아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걸 부정할 수 없으니까 화가 더 나는 것 같아요.

감은빛 2021-03-16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 이 떠오르게 하는 책이네요. 왠지 비슷할 것 같은 느낌이예요.

바람돌이 2021-03-17 10:48   좋아요 0 | URL
이 책 세상의 바보들에게와 같은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거예요. 세상의 바보들 이후 신문 연재한 칼럼들이예요.
 

공장 도시 페름. 노동자의 가없는 실존적 투쟁만이 남은 곳, 페름에와서야 수라는 살아온 세월이 전쟁처럼 느껴졌다. 전쟁은 지상에서한 번도 끊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꽃은 피어나고 계절은바뀐다. 강은 흐르고 산은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고단함 속의작은 평화, 인생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수라는 늘 패배한 쪽에 속했다. 마르크와의 결혼이 그랬고 오 신부와의 짧은 사랑이 그랬다. 왜체와 보리스는 패배의 상처 속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동청철도 변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이미 패배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 P213

"시인과 혁명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시인의 예언자적인 정서가 소시민적이고 생기 없는 세계에 활기를 불어넣듯 혁명가 또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식의 소유자이지요. 시인이 데카당의 추상적인언사를 못 견뎌하듯 혁명가도 자본가의 허위와 부정을 못 견뎌합니다.
저는 사회주의혁명만이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적 모순을 치유할 수 있다.
고 믿어요.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는 물론 세계의 모든 프롤레타리아는지금 절망의 심연 속에서 신음합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인격을 매장하는모든 체제는 붕괴돼야 해요. 미래에 있을 위대한 변화들을 기대하면서요. 저는 어떤 주의主義를 믿기보다는 인간 현상을 관찰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선이 사회적 우위에 설 그날을 위해 씨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우랄 페름에서 싸우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뒤를 이어 미래에 무엇이 와야만 하는지를 보여주어야만 해요."
- P257

"한인 정탐들은 기호파 출신이 많은데, 이들은 러시아 헌병대의 힘을빌려 서도파나 서북파 인사를 탄압한 사건에 깊게 관련됐고, 이 때문에기호파 수령 격인 이상설이 이주 한인 사회의 비난을 받아왔어요. 이동휘 선생의 체포도 이들 기호파 정탐들이 러시아 정보 당국에 은밀히 고발한 결과랍니다. 결국 이동휘 선생의 체포는 제정러시아와 일본의 동맹 관계를 활용한 일본 관헌의 언론 조작과 연해주 한인 사회의 이동휘반대파의 파당적 음해의 소산이라오.."

<실제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주도권 다툼은 치열했다. 어떤 경우 이 싸움은 독립운동 전체의 방향을 둘러싼 양보할수 없는 논쟁이기도 했으나, 많은 경우 단순한 영향력 내지는 주도권을 위한 출신 지역싸움이기도 했다. 그 어려운 독립운동이라는 상황속에서도 쥐뿔만한 권력에의 욕망들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가 차고 한편으로는 절망적이다> - P291

"그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러시아어를 배워 일상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그들을 의심해선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연대의식이에요. 볼셰비기를 돕겠다는 연대 의식 말입니다. 그들 역시 그들나라에서는 무산계급이었지요. 그래서 우리 볼셰비키를 돕겠다는 것입니다. 국제주의로 뭉친 합동민족적위군이야말로 총알 하나보다 더 힘이셉니다."
- P299

상조회 대표는 의병대를 무장시켜 일본군을 물리쳐달라며 군자금을건네면서, 곡괭이질은 자기들이 할 터이니 한시바삐 총을 사 들고 만주로 돌아가라더군요. 보다이보 금광뿐 아니라 니콜라엡스크 어장에도한인 노동자들이 있으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의연금을 모금하라고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어 달 동안 금광이며 어장을 돌아다니며1000루블가량을 모금했지요. 우리는 이만으로 나와서 러시아 신식 보총과 베리단 5연발 총을 한 자루에 탄환 100개씩 끼워 9루블을 주고 사서 중국 밀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독립군들이 그토록 참혹한 환경에서도 계속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때문이었을 것이다.> - P333

 조선 독립은 국제 관계를 잘 이용해 외교를 통해 달성해야 합니다. 조선 독립은 혁명가들이 외국의 정당인 볼셰비키와 연계해 사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민족 단체인 광의단을 중심으로 전개하되 소비에트로부터는 물질적인 방조만 받고 이념적인 도움은 받을 일이 없습니다. 무식한 노동자나 농민이 어찌 혁명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겠습니까? 민스크 전선에서 참호를 파던 사람들, 우랄산에서 목재나 자르던 사람들, 담배말이를 하던 사람들은 돈을 벌기위해 갔을 뿐이지, 독립운동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3.1운동 이전 명망가 중심의 독립운동이 아직이었던 시절, 그들의 대중운동과 대중에 대한 사고 수준은 실제로 딱 이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 P337

한인사회당은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혁명을 목표로 창당한 한인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한인사회당이 설립 초기부터 군사부를 둔데에는 일제에 대한 무장투쟁을 주장한 급진적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당은 정치투쟁과 대중투쟁에 중점을 두는 조직이다. 그런데도 굳이 군사부를 두어 무장 부대를 조직하고자 한 점은 한인사회당의 궁극적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P348

"전쟁 포로들 가운데는 소비에트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얼마든지 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전쟁터로 끌려와 부르주아를 위해 전투를 하다가 포로가 됐으나 소비에트 공민이 되면 개인 재능에 맞는 직업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렵니다. 소비에트체제는 민족 간 경계를 허물고 계층 간 차별이 없는 평등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 P353

하바롭스크 철도국 총회에 참석했다. 회의에서 볼세비기를 지지한다.
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인간이 스스로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능을 갖지 못하면 자유마저도 성가신 부담이 된다. 개인적 책임이 선하다.
면 그들이 소속된 사회적 책임 또한 선할 것이다. 볼셰비키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을 증오할 수 있을까. 그들은 역사 위에서 개인적책임을 회피하는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르 병사니 가사크 아타만 그리고 백위군 병사들은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를 알지 못할 뿐이다. 명령에 따라행동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관에게 기만당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상관 역시 자신이 지시한 일의 역사적 결과를 예측이나 할수 있을까.


<1918년 1월 25일 알렉산드라의 일기> - P379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할 근거가 약할수록 자신의 국가나 종교, 인종의 우월성을 내세운다.
- P382

 그녀는 두건을 거부했다.
"나는 두 눈으로 내 죽음을 똑똑히 볼 것이오."
무거운 침묵이 공원을 짓눌렀다. 알렉산드라는 주위를 전전히 둘러보았다. 풀잎 하나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 건 없었다.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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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3-15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그래픽 노블로 읽었는데 그림이랑 그녀의 인생이 아주 딱 맞아 떨어지더라구요. 선 굵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알렉산드라 이야기를 조금 더 알고 싶네요.

바람돌이 2021-03-16 11:08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까 그래픽 노블도 있네요. 다봤는데 이 시절의 얘기들은 보고 나면 항상 가슴이 답답합니다. 정말 대단한 여성이고 운동가인데 그 주변 상황이나 당시의 우리 독립운동 내의 상황들을 같이 읽어나가다 보니 고구마 먹다 멕힌 것처럼 또 답답해지네요. ㅠ.ㅠ
 

 

 

 

 

 

 

 

 

 

 

 

 

 

 

 

2019년 1월 당시 중3졸업을 앞두고 있던 둘째 딸과 단 둘이서 떠났던 도쿄 여행은 운이 좀 좋은 편이었다.

(이 해 봄에 No Japan이 시작되었으니 하마터면 오래도록 못갈뻔..... )

하여튼 여행에서는 나는 항상 운이 좋은 편이다. 감사하게도....

 

당시 도쿄에서는 각종 거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뭉크, 베르메르, 루벤스 전이 한꺼번에 열리고 있었고, 심지어 전시회가 열리는 미술관이 우에노 공원 안에 다 모여 있다는 것 역시 행운이었다.

저 전시회들 중에서도 최고 화제였던 것이 바로 뭉크 전시회였다.

이 책에서 몇 번 언급되는데 당시 노르웨이의 국립미술관이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이 들어가는 바람에 뭉크의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이 없어지면서 대규모의 해외 전시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인데 일본이 그 기회를 낚아챘던 것 같다.

덕분에 평소라면 나라 바깥으로 한꺼번에 나오는건 꿈꾸지도 못할 뭉크의 대표작들 대부분이 한꺼번에 전시되어 뭉크의 진면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물론 머나먼 노르웨이를 직접 방문하는 것은 빼고 말이다.

 

정말 큰 기대를 품고 전시장에 갖고, 이 책에 나오는 뭉크의 대표작들을 포함하여 그의 초기부터 말년까지 정말 꽉 찬 컬렉션이었는데....

아 전시회를 감상하는건 작품의 질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다.

전시 공간은 그리 넓지 않은데 아니 사람이 무슨....

심지어 그 유명한 <절규>앞에선 방 입구부터 3줄 겹으로 줄서서 한발짝씩 한발작씩 움직이며 그림의 영접을 기다려야 했고, 정작 그림앞에선 1분도 채 머무르지 못했다.

일본 사람들이 서양화에 관심이 많다더니 이건 무슨 돗대기 시장같은 꼴이다.

사람 많다는 얘기는 들어서 평일 아침 미술관 문 열자마자 갔음에도 이 꼴이다.

 

뭉크는 <절규>의 화가이고 그의 그림 대부분이 우울과 절망과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끌려가는 사람들의 비극성에 맞춰져 있다.

그런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대충 분위기는 맞춰야 하는데 이건 무슨....

내 마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꾸역꾸역 전시회를 보고 나오니 딸이 엄마 토할 것 같아.....

마음이 토할 것 같은게 아니고 진짜 토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절규>의 감흥은 '아 이 유명한 작품을 드디어 봤어'라는 정도 외에는 딱히 없었다.

뭔가 특별한 감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제 작품에 대한 약간의 신비감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지나치게 알려지고 온갖 재인용으로 이용되어 져서 그림 속 주인공의 비명을 느끼기에는 너무 다른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버린 것이다.

심지어 <절규>속 주인공을 보면 영화 <스크림>의 가면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만으로 작품의 이미지는 반쯤 날아가버리니 말이다.

지나친 상업적 인용의 폐해라고나 할까?

 

이 노트를 읽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다. 뭉크의 노트에 ‘절규‘라는 말은 없다는 점이다. 절규. 누가 처음 한국어로 번역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르웨이어 스크리크skrik 는 있는 힘을다하여 부르짖는 ‘절규‘보다는 너무 놀라 지르는 외마디 소리인 ‘비명‘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절하다. 이 그림을 더 정화히 이해하는 데도 ‘비명‘이라는 단어가 도움이 된다. - P57

 

그리고 제목인 절규 역시 항상 뭔가 안맞다 싶었는데 그래도 별 생각없이 그냥 절규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위화감을 겨우 알아챘다.

<절규>가 아니라 <비명>이라는 것을.....

제목 하나 다르게 보는데 그림이 새롭게 보인다.

그의 내면의 우울과 절망이 온 하늘을 흔들리게 하는 순간이 훅 다가오는듯하다.

 

그래 뭉크는 한번도 제대로 희망차거나 마음껏 행복해본적이 없는 사람이었던듯 했다.

그의 그림들이 대부분 그러했는데 이 책을 통해 만난 뭉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고난 기질이 그러했고, 어릴 적 맞이한 어머니와 여동생의 죽음, 그리고 유부녀와의 비밀스런 첫사랑과 밀회, 그리고 헤어짐....

그의 평생을 지배하는 이 이미지들에서 그는 한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고, 백야와 긴 겨울이 지배하는 노르웨이의 자연환경 역시 그의 이런 성향을 강화시켰던 듯하다.

평생 마음속에 비명을 안고 사는 사람의 삶이랄까?

 

여성을 그린 그림들은 <마돈나>를 비롯하여 모두 팜므파탈의 이미지가 강하고, 아예 대놓고 벰파이어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았다.

평생 혼자였고, 그것 때문에 괴로웠으나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또 괴로움이었던 화가랄까?

그런 그의 외로움이 걸작들을 만들어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뭉크에게는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워낙 은둔형의 인간이라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화가 자체에 대한 특별한 감상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그의 그림들 역시 어려운 해석이 필요없이 당대의 불안과 개인의 불안이 중첩되어 한 인간을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이게 하는지 애잔한 마음으로만 보게 된다.

 

그런 것들 때문인지 실제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감동을 준 것은 그 자신의 다양한 자화상들이었다.

특히나 죽기 직전에 그렸던 말년의 뭉크

 

 

자신의 방에 우두커니 서있는 노년의 뭉크는 이제 막 여행을 떠나려는 듯한 느낌이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여행.

책에서는 그림속 상징들에 대해 이것 저것 얘기해놓았지만 그건 다 필요없는 얘기인듯 하다.

오랜 시간을 외롭게 보내고 그 고단한 인생을 이제는 접어놓으려는 듯, 지친듯하지만 평온하기만 하던 저 표정은 이제서야 길고 힘들었던 삶이라는 여행을 마칠 수 있구나, 또한 여전히 나는 혼자이구나라는 소리없는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온 하늘이 붉게 요동치고 사방이 그림속 주인공을 향해 압박하던 <절규>속 비명은, 노년에 이르러 모든 것이 단정하게 제자리를 지키지만 어느 것도 애착 가는 것이 없는 조용한 <비명>으로 보인다.

그렇게 하나의 작은 삶이 끝났다.

뭉크의 마지막 저 손에 아주 작은 무엇 하나라도 쥐어주고 싶다.

그 죽음이 외롭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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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14 1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바람돌이님 2019년 뭉크 전시회 정말 좋은 기회였네요.
일본이 시스템(전시) 많이 뒤떨어져요.
예약제 도입도 않아고 마냥 기다리게 하고 줄세우고 미어터지게 만들고,,,

따님 말씀처럼 뭉크 그림 넘 오래 보고 있으면 우울에 늪에 빠져버리는,,,





바람돌이 2021-03-14 18:03   좋아요 3 | URL
맞아요. 시스템은 진짜 후짐요. 다른 미술관 갔을 땐 홈페이지에서 쉬는 날을 아예 잘못공지해놔서 못봤다는... 그림도 전체적으로 다 우울한데 전시환경도 우울했어요. ㅠ.ㅠ
아니면 우울함을 확 느껴보라고 일부러 그렇게 만든걸까요? ㅎㅎ

새파랑 2021-03-14 18: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그때 당시의 절규가 보입니다ㅎㅎ 리뷰 읽고 자화상 그림을 다시 보니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바람돌이 2021-03-14 18:04   좋아요 4 | URL
뭉크 자화상은 젊었을 때것도 딱히 다르지 않아요. 조금 더 명민해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울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뭉크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 싶기도 하네요. 아 나보다 우울한 사람 여기 있구나 같은 대리 충족? ㅎㅎ

그레이스 2021-03-14 18: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리를 걷다가 어디선가 비명소리를 듣고 공포에 휩싸였다는 고백을 보고,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는 극단의 실존체험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세계가 낯설고 차라리 죽음이 편할 것 같은 현기증을 느끼는...
싸르트르의 구토와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바람돌이 2021-03-14 22:56   좋아요 3 | URL
저는 사실 성격이 좀 덜렁덜렁해서 그런지 그런 체험은 실감을 잘 못하겠더라구요. 그저 막연히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은 정도랄까? 앞으로도 그런 극단적인 체험은 안하고 싶으니 예술가는 글러먹은 것이겠지요. ㅎㅎ

미미 2021-03-14 18: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사건 전에 친구랑 나가사키에 다녀왔어요. 🥲
아르테 시리즈에 <뭉크>도 있었군요~♡ 오늘 책주문 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한 권으로 정함요👍

바람돌이 2021-03-14 22:58   좋아요 2 | URL
오 나가사키 카스테라 먹고싶네요. ㅎㅎ 아르테 시리즈는 책마다 저자가 다르고 다루는 인물도 워낙 다양해서 편차가 좀 있더라구요. 뭉크는 그림으로 보는게 더 좋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

페넬로페 2021-03-14 2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국에서 연 뭉크 전시회에 갔었는데 ‘절규‘‘앞에서 바람돌이님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오히려 올려주신 저 자화상 앞에서 한참 서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바람돌이 2021-03-14 23:00   좋아요 3 | URL
아 같은 느낌을 받다니 좋네요. 사람마다 그림에서 받는 느낌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통성은 있는 것 같아요. 절규가 진짜를 봤을 때 감흥을 크게 못주는건 너무 많은 인용들에 의해서 생긴 선입관이 많이 작용하는거 같고요.

겨울호랑이 2021-03-14 2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뭉크의 자화상을 보니 정말 떠나는 듯한 느낌을 받네요... 수많은 해설보다 말씀처럼 직관적으로 받는 느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바람돌이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좋은 작품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3-15 00:05   좋아요 1 | URL
그래도 해설을 보면 그 직관이 더 풍부해지는 경우도 있다죠. ㅎㅎ 그림마다 다 다른것도 같고, 그림이나 책을 볼 때의 나의 마음과 상황에 따라서도 다 다른 것 같아요.

cyrus 2021-03-15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뭉크도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에 속하는데, <절규>가 그의 대표작으로 인식된 탓인지 뭉크의 자화상 작품들이 덜 주목받는 편이에요.

바람돌이 2021-03-15 15: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자화상을 많이 그렸더라구요. 근데 하나같이 어찌나 심각해보이는지.... 안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화상들이 다 마음이 많이 가더라구요. 다른 유명한 그림들보다 훨씬 더요. 그 때 제 마음이 좀 우울했을까요? ㅎㅎ

mini74 2021-03-15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음과 관련된 그림들이 참 좋았어요. 평생 죽음이란 그림자와 함께 했구나 라는
아이들은 본인 이야기같아서인지 사춘기란 그림 좋아하더라고요. ~

바람돌이 2021-03-15 15:06   좋아요 1 | URL
사춘기의 그 수줍으면서도 대담한 느낌 기억나네요. 아이들이 이 그림에서 동류의 감흥을 느끼는군요. 저희 집 딸은 그 그림은 스치던데.... ㅎㅎ

syo 2021-03-15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규 걔가 소리를 빽 지르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들려온 비명에 깜짝 놀라는 마음을 표현한 표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그림 속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고 저 혼자 듣는 어떤 절규소리 때문에 ‘으아아아아ㅅㅂ깜짝이야이거뭐야!‘ 하는 거라고....

바람돌이 2021-03-15 15: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주변에서 절규가 들려와 얘가 미치려고 하는거요. 이 책의 해석도 그렇고, 실제 뭉크가 한말도 그게 맞아요. 근데 왜 제목이 절규가 되었는지는 저도 참 궁금.... ^^

희선 2021-03-16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뭉크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사람이 아주 많았다니... 일본 사람도 그걸 알고 많이 그림을 보러 왔나 보네요 다른 전시회는 어땠는지... 책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제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뭉크 그림은 다른 데 써서 다른 걸 더 떠올리기도 했군요


희선

바람돌이 2021-03-16 11:06   좋아요 1 | URL
일본의 경우 서양미술에 대한 관심이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되게 높다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큰 미술관이 우에노 공원 안에만 5개인가가 몰렸있고, 굵직굵직한 전시회가 끊이지 않는다더군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림도 책만큼 좋은 것도, 안좋은것도 있더라구요. 아니면 책과 비교살 수 없게 좋은 것도 있구요. 저는 이걸 사진빨이라고 하는데 사람처럼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것도 사진빨 잘 받는 애들은 따로 있더라구요. ^^
 

수라는 검은 눈동자를 깜박이며 세 국가를 떠올렸다. 조선, 중국,
러시아, 한복과 치파오와 루바슈카, 수라는 세 국가에 대한 환영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 하나의 조국이 있다면 원시림의 바다인 시베리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23

"이주 한인 사회가 반목이 심해 서로 원수가 되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요? 러시아 국적을 취득해 땅을 분배받은 ‘원호인‘은그들의 땅을 부치는 소작인을 ‘여호인人‘이라고 부르며 조선 시대 양반처럼 살고 있어요. 원호인은 여호인과 서로 혼인하지 않을뿐더러 여호인과 한자리에 앉는 것조차 수치로 여기지요. 여호인의 치지는 더욱비참해지고 있어요. 여호인은 ‘아재비‘나 ‘보토재(고아)‘로 낮춰 불리며 천대를 받아요. 원호인과 여호인 사이에 계급적 모순이 생겨난 것이지요.
- P61

더 큰 문제는 조선의 정치 망명자들이 러시아에 들어와 항일운동 자금 모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주 계층에게 접근하는 모순된 현상이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그들은 조선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공동 목표가 있지만 노동자, 농민의 존재를 잊고 있지요. 그들의 이상은 독립된 조국이지만 봉건 체제의 존속, 즉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할수 있는 체제를 지향하고 있어요."
- P62

당시 철도를 건설하는 데 노동자들이 사용하던 유일한 기구는곡괭이와 삽(광창우), 운반 기구는 밀차(타지카) 인데 흙이나 돌을 가득 싣고 밀고 다니다가 자칫 엎어지면 발목을 삐는 것은 물론 심하면 평생 불구가 되는 일이 허다했다. 또 큰 돌을 깨어내는 기구로는 정과 망치가 전부였기에 노동자들의 손은 손톱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험악한 지경에 이르렀고 돌산을 허물어내기 위해 화약을장치해 터뜨릴 때면 떨어지는 돌 뭉치에 맞아 죽거나 꼽추가 되는일이 자주 발생했다.
- P117

"러시아 이주 한인 사회의 갈등은 한인 봉건 세력과 신흥 토호 세력이기득권을 확산하려는 데서 빚어졌어요. 먼저 연해주로 넘어온 함경도,
평안도의 평민 내지 머슴 계급은 러시아로 이주해 와서도 다시 한인 토호 세력의 지배와 천대를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됐으니 이게 바로 계급적모순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여기에 차르 러시아와 일본과의 외교적 입장을 교묘하게 이용해 기득권을 보장받으려는 이기주의자와 각종 이해관계가 얽힌 망명 세력이 혼합된 형국이니 연해주 이주 한인 사회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도가니인 셈이에요."
- P141

수라는 ‘미래의 감정‘이라는 대목에 밑줄을 쳤다. 누구나 블로크의시를 사랑하고 암송했으나 수라는 블로크의 시가 자신을 위해 써졌다.
고 믿고 싶었다. 시인의 길과 혁명의 길은 다르지 않았다.
블로크 시집은 수라에게 희망의 거처이자 삶을 지탱하는 어휘 사전이었다. 집회, 토론, 늦은 바람, 바람은 씽씽거린다! 오, 심장이여, 너는 얼마나 사랑했던가! 오, 이성이여, 너는 얼마나 불타올랐던가! 이모든 어휘가 가정과 거리에서 동시에 솟아올랐다.
- P188

아이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도 가슴 아팠다. 보리스는이제 다섯 살, 왜체는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됐다.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엄마 없이 지낼 아이들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한편으론 지금이야말로 공상의 조용한 피란처를 버리고 세상 속으로뛰어들어야 할 때였다. 혁명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혁명을 마중하기 위해서라도 서쪽으로 가야 했다.
- P193

세계대전이 발발해 극동에 거주하던 조 중 노동자들은 군수품을 제조하는 우랄 공장 지대의 노동자로 팔려 가는 신세가되었어요. 이들을 우랄로 소개해준 자들은 다름 아닌 한인 부르주아 계층이에요. 그들은 같은 민족의 노동을 싸게 공급해 차르 정부의 환심을사려고 혈안이지요. 이주 한인 사회는 무엇보다도 내부의 적 때문에 붕괴되고 있어요. 우랄 지방에는 전쟁 발발로 인해 유럽 전선에 나가는 러시아 군대에 무기와 군수품을 조달하거나 목재를 공급하는 군수공장이밀집돼 있어요. 그 가운데 우랄 페름 공장 지대는 극동 노동자들이 대거송출되는 곳이에요. 한인 노동자들만 해도 페름 지역에 수천 명이 고용돼 있는 실정이지요."
- P199

기차는 동틀 무렵 다시 멈췄다. 차량에서 노동자들이 눈을 부비며 내렸다. 이번에는 화목이 떨이졌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차량 사령이 나눠준 긴 톱, 짧은 톱을 받아들고 눈에 묻혀 얼어붙은 나무를잘라 기관차 화목을 장만해야 했다.
청년들은 톱을 메고 산으로 올랐다. 잎갈나무, 잣나무, 소나무가 연이어 쓰러졌다. 나뭇가지를 따는 청년, 나무꼭지를 자르는 청년, 슬렁슬렁 톱질 소리에 나무가 뭉텅뭉텅 토막이 돼 썰려나갔다.
"나무통 내려간다!"
위에서는 나무통을 잘라 굴리고 밑에서는 나무통을 받아 톱 틀에올려놓고 화목을 자르느라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졌다.
"하나 둘 셋, 들어라, 올려라!"
화차에 화목을 그득 채우고도 객차의 남은 공간에까지 무던하게 실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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