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장소의 이름을 하나 짓는다는 건, 그 이름이 속한언어 세계로 가는 길을 여는 일이다.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는 문이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는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할까? 그들이말하는 방식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까?
- P75

제 독자가 제 그릇에서 꺼내는 건 그 독자에게 필요한 뭔가이고, 본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저보다 본인이 잘 알죠. 저는 그릇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 뿐이에요. 제가 누구에게 설교를 하겠어요?
아무리 겸손한 정신으로 한다 해도 설교는 공격적인 행위인걸요.
- P96

하지만 여성의 지식을 숭배하고 우리는 남자들이 모르는걸 안다고 우쭐하고 여자들에겐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깊은 지혜가 있고 본능적으로 자연을 안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지금도 그러고 싶진 않아요. 그런 숭배는 대개 여자를 원시적이고 열등하다고 여기는 남성우월주의를 강화할 뿐이에요. 여자들의 지식은 기본적이고 원시적이고 언제나 어두운 뿌리를 따라 내려가는 반면, 남자들은빛 속으로 자라는 꽃과 곡물을 경작하고 소유한다는 거죠.
하지만 어째서 남자들은 성장하는데 여자들은 계속 유아어를 해야 하죠? 어째서 남자들은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무턱대고 느껴야 하죠?
- P156

저 대목에서 테나가 제 대신 말하고 있어요. 우린 어둠 속에 충분히 오래 살았어요. 우린 햇빛에 똑같은 권리가 있고, 이성과 과학과 예술과 나머지 모든 것을 배우고 가르칠 권리가 똑같이있어요. 여자들이여, 지하실과 부엌과 아이 방에서 나와요. 이 집전체가 우리 집이에요. 그리고 남자들이여, 그렇게나 무서워하는어두운 지하실에서나 부엌과 아이 방에서 사는 방법을 익힐 때가됐어요. 그러고 나면 우리 모두가 불가에 모여서, 우리가 공유하는 집의 거실에서 이야기를 해 봅시다. 우린 서로에게 할 말도 많고,
배울 것도 많아요.
- P158

울프는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마구 쌓이지도 않고 설명이붙지도 않는 정확하고 구체적이며 자세한 묘사가 비결이었다. 독자가 상상력으로 그림을 채워 넣어 선명하고 완전하게 보도록 북돋는, 고도로 선별한 선연하고 효과적인 심상이었다.
- P172

문학 소설을 장르소설과 대립시킬 때의 문제점은, 소설 종류의 합리적인 차이를 말하는 척하면서 비합리적인 가치 판단을숨긴다는 겁니다. 문학이 우월하고, 장르가 열등하다고 말이죠. 이건 편견에 불과해요. 우리는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지적인 토론을 해야 합니다. 많은 영문학과가 다가오는 우주선을 다 쏘아 떨어뜨려서 담쟁이 우거진 상아탑을 지키려는 시도를 그만뒀습니다.
많은 비평가가 많은 문학이 근대 리얼리즘의 성스러운 숲 바깥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문학과 장르의 대립은 남았고, 그게 남아 있는 한 잘못된 단정적 가치 판단도들러붙어 있을 겁니다.
이 지겨운 곤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한 가지 가설을 제안하죠.
 문학은 문자 예술의 현존체이다.
모든 소설은 문학에 속한다.
- P186

바로 그래서 저는 소설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지어 보라 격려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말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하죠. 말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자면 시간이 좀 걸려요. 연습이 필요하죠. 노력이, 그것도 몇 년의 노력이 필요하고요.
그러고 나서도 여러분이 쓴 글이 영영 출간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출간된다 해도 여러분이 생계를 꾸릴 정도로 팔리지 않을 게 거의확실해요. 하지만 그게 여러분이 원하는 거라면 그 무엇도, 세상그 무엇도 여러분에게 글쓰기보다 더 달콤한 보상을 줄 순 없어요.
글을 쓰는 일 자체도,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말을 제대로 하고 있으며 이야기를 만들고 진실하게 말했다는사실을 아는 것도 엄청난 보상이죠. 진실을 말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고, 희귀한 일이에요. 즐기세요!
- P196

책은 그냥 상품이 아닙니다. 이익 추구는 종종 예술의 지향과 갈등을 빚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고, 자본주의의 힘은 벗어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치면 왕들의 절대 권력도 그랬지요. 인간이 만들어 낸 권력이라면 인간이 저항하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저항과 변화는 예술에서 시작될 때가 많고, 그 중에서도 우리의 예술, 말의 예술일 때가 많아요.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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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행위가 이토록 우아하게 느껴질 수 있다니...
갑자기 책 읽는 나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작가님.
네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귀를 기울인다는 건 공간과 시간과 침묵이 필요한 공동체행위지요.
읽기는 귀 기울이기의 한 방법이고요.
읽기는 그냥 듣기나 보기처럼 수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행동이죠. 여러분이 하는 행동, 끊이지도 않고 알아들을 수도 없이 지껄이고 외쳐 대는 매체의 돌격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속도대로 읽는 겁니다. 여러분을 압도하고 통제하기 위해 빠르고 거세고 큰 소리로 밀어붙이는 내용이 아니라,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이고 싶은 내용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분이 어떤 당부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강매를 당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읽을 때는 보통 혼자라 해도 다른누군가의 정신과 교감하지요. 세뇌를 당하거나, 조작당하거나, 이용당하는 게 아니에요. 상상력의 현장에 함께한 거죠.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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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3-21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사람을 위한 문장이네요. 힘이 됩니다^^
(오늘 책을 별로 못봐서 아쉬운..)

바람돌이 2021-03-21 00:1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맞아!! 갑자기 책 읽는 내가 막 사랑스러워지는 문장이예요. 저는 어제 그저께 책을 제대로 못봐서 아쉬운.... ㅎㅎ그래도 뭐 그런 날도 있는거지요. ^^

희선 2021-03-21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저께 걷다가 책이 하는 말을 잘 들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네요 책은 언제나 같은 데 있으면서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 친구지 했습니다 작가가 이런 생각으로 한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희선

바람돌이 2021-03-21 01:28   좋아요 1 | URL
저도 르귄의 책이 처음이고 지금 이 책을 읽는것도 초반이라 작가가 정확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는 아직 몰라요. ㅎㅎ 그래도 책을 읽는다는 행위의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해주니 너무 좋네요. ^^
 

울프는 《제이콥의 방을 비롯한 소설에서 빈번하게 ‘틈‘과 ‘부재‘를 사건의 출현으로 그려낸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작가 자신의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울프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있다가 사라지는 순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부재‘가 곧 시간의 틈을 만들어내고, 울프는 거기에서자신의 죽음을 보곤 했을 것이다.
이 도저한 부정성의 세계가 곧 울프의 미학을 구성했다고 할수 있다. 소설은 결국 과거의 이야기다. 이 과거야말로 무엇인가사라진 흔적이다. 아무리 다시 기억해낸다고 해도 결국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울프가 소설을 통해 추구한 ‘의식의 흐름은 바로 이런 ‘부재‘와 ‘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노력이었다.
- P68

따라서 울프가 쓴 전기는 사실상 소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뒷날 그의 소설은 이런 전기적 요소를 자양분 삼아 세상으로 나온다. 울프에게 삶이란 이런 의미에서 소설의 언어로 다시정의되어야 하는 날것이다. 개인사를 소설로 다시 쓴다는 것은실제 삶 자체를 마치 울프 자신이 발명한 것처럼 여기는 과정인것이다. 울프의 소설을 읽고 자전적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울프의 소설이야말로 삶이었다는 사실을 이 지점에서 깨달을 수 있다. 그에게 삶은 실제의 차원을 갖고 있는 다른 무엇이아니라 소설에 담겨 있는 허구 자체였다.
- P75

울프는 삶이라는 날것의 재료를 가장 먼저 취급하고 거기에서전통적 글쓰기 형식으로 포섭할 수 없는 다양성을 발견해내는것이 전기 작가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실험하고자 한 당사자가 바로 울프였다. 그가 이론화하고자 한 ‘모던 픽션‘은 삶이 곧 소설이고 소설이 곧 삶인 글쓰기의경지를 지칭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정신은 19세기부터 시작된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핵심이기도 하다.
- P79

《자기만의 방이나 세 닢의 금화 Three Guineas에서 울프는 특유의 유물론을 드러내는데, 울프가 제시하는 ‘도시의 삶은 막연한환상이라기보다 물질 토대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단순하게 여성은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도시의 삶을 누릴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는 권리의 문제이고, 따라서여성의 인권은 울프에게 항상 원천적인 문제였다.
- P92

말년의 울프는 자신의 미학과 현실 참여 사이에서 동요하는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울프의 양가성은 그의 약점이라기보다 사실에 집착하는 것을 작가의 미덕으로 여긴 현실 참여적 지식인의 본질이었다. 울프에게 미학과 현실 참여는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울프는, 소설은 허구를 통해 진실을 전달하는 글쓰기의 형식이라고 믿었다.
- P96

울프의 글쓰기는 끊임없이 주체의 문제를 탐구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 지점에서 여성이라는 처지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물론 울프는 출발점을 떠나자마자 다른 사람이 규정하는 여성의범주를 용감하게 넘어가 버린다. 울프는 남성을 통해 규정되는여성이라는 범주 자체를 해체하고자 했다.
- P114

울프는 독자처럼 책을 읽지 말고 작가처럼 읽으라고 이야기한다.
재판정의 판사가 아니라 피고인석에 선 범인처럼 책을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한다.
- P121

울프가 생각한 바람직한 미래는 단순하게 여성도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남성처럼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문직 여성이라면 남성이 만들어놓은 폭력적인 세계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것이다. 이런 주장만 놓고 보더라도, 울프야말로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급진적인 사유를 한 지식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 P174

그러나 울프의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것은 글을 쓰기 위해 여성들이 참여하는 활동 전반이었다. 글을쓴다는 것은 그냥 자신의 내면에 침잠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모임에 참석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에세이를 집필하는 일련의 과정 모두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지적이고 예술적인 교류가 여성 작가의 의미였다. 말하자면 여성작가는 단순히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것만이 아니라,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 P185

울프에게 여성해방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인류사의 발전을 통해 다가오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문제는 이 해방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참된 여성의 자아를 ‘생성‘ 하는 것, 다시 말해서 여성 되기‘다. 지배 이데올로기가표현할 수 없는 ‘여성‘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참된 여성의 자아는 생성될 수 있다. 물론 이 자아는 고정된 정제성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지배 이데올로기의 구조를 벗어나는 됨devenir‘의 과정일 것이다.
- P189

말년의 울프는 평화주의자이자 반제국주의자였다. 이런 울프의 신념을 드러내는 말이 그 유명한 여성으로서 나에게 조국은없다. 라는 발언이다. 《세 닢의 금화》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울프의 정치를 이야기할 때 흔히 인용된다. 울프는 여성을 아웃사이더‘로 규정하면서 여성에게 조국은 세계 전체이지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가 아니라고 말한다. 한 국가의 아웃사이더인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 P217

울프는 어린 시절 오빠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그 상처를 직시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에 위치시키지 않았다.
그에게 글쓰기는 그 모든 상처를 넘어서는 냉철한 행동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여성의 차별을 보고, 평생토록 꿋꿋하게 여성의 처지에서 바라본 세상의 문제를 날카로운 산문으로직조했다. 그의 생애는 결코 가부장적 사회가 부여한 여성적인것‘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여성이라서 정규 교육을받지 못했던 부당한 차별에 맞서 그는 쉬지 않고 글을 읽고 썼다.
그에게 모더니즘은 단순한 문화 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공고하게 할 만한 논거이기도 했다.
- P253

울프는 난무하는 ‘나‘에 대한 신변잡기들이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소음이라고 생각했고, 그 나의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무수한 다른 형상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나는 특정 장소와 시간에 잡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약을 뛰어넘어 흐르는 것이었다. 과거와 미래는 언제나 현재의 시간성에 속해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과거를 말하고 미래를 말하지만, 항상 현재에 있다.
현재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를 살게 되고, 미래로 나아간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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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남성의 제국을어떻게 여성이라는 젠더의 균열을 통해 해체할 수 있을지 평생고민했다. 누구도 식민지를 이야기하지 않을 때, 여성이라는 존재에서 식민성의 기원을 발견했다. 이 차별의 구조를 바꾸는 일에 모든 열정을 바친 울프의 삶과 사상은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귀감이 된다.
- P7

울프는 인상파 화가들과 자신의 글쓰기를 나란히 놓고자 했다.
울프에게 ‘모던 픽션‘은 인상파의 그림처럼 삶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삶‘이란 약동하는 생명 자체를 말한다. 모던 픽션은 주관의 눈을 배제한 객관적인 대상의 움직임만을 포착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 객관적 대상화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의 주관마저 일종의 흐름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 P17

울프는 전통적인 소설 작법에 강력하게반발했다. 그에게 근대는 단단한 구조를 가진 소설로 담아낼 수없는 흐르는 세계였다. 급변하는 근대의 디테일을 잡아내려면 소설이 형식을 허물고 유연해져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울프는 에세이 곳곳에서 오래된 것과 단절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울프만큼 모더니즘의 이념을 비타협적으로 주장하고 실현해나간아방가르드 vant-garde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혁신적 예술을 주장한 예술 운동 또는 그 유파)도 드물 것이다.  - P23

레너드가 밝히고 있듯이, 울프의 일기는 마치 렘브란트의 ‘자화상‘ 처럼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태도 변화를 잘 보여준다. 그의일기는 방대한 양 때문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소설과 씨름한울프의 모습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기는 그의 글쓰기에서 부가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글쓰기를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일기는 울프의 글쓰기에서 대체보충 supplement 이지 않았을까.
- P30

그의 모더니즘은 전통의부정을 뜻한다기보다 글쓰기의 의미 자체를 재구성하는 쪽에 가까웠다는 진실 말이다.
그 재구성의 방향은 나의 의식‘을 중심에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이 나는 근대 부르주아 미학이 옹호한 ‘성숙한 자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으로서 글을 쓰는 울프에게 ‘성숙한 자아는 이미 남녀라는 균열을 은폐하고 있는 환상이다. 울프에게 글쓰기는 훨씬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기의 재구성‘을 지향한다고할 수 있다.
- P35

울프의 모더니즘은 ‘신여성‘이라는 남성적 시선의 대상화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여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재구성하려는시도였다. 여기에서 여성의 관점은 단순하게 남성과 형평성을 고려해서 여성의 역할을 재규정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더 나아가서 남녀라는 구분 이전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다.
사회에 진입해 남녀로 나뉘는 순간, 이미 차이는 존재에 깊숙하게 새겨진다. 이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사회제도가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래서 울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성을 여성이게 만드는 규범 자체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 P38

앞서 이야기했지만, 울프의 글은 일기와 소설, 에세이로 분류할 수 있다. 셋은 따로 존재한다기보다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일기는 자기 자신의 치유를, 소설은 수준 높은 미학을, 에세이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확장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에세이야말로 이런 울프의 참여 의식, 다시 말해 정치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증거물이라는 생각이다.
- P52

울프는 책을 잘 읽으려면 마치 자신이 그 책을 쓰는 것처럼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정에 앉아 있는 판관이 아니라 법정에선 피고인처럼 책을 읽으라는 말도 한다. 그러니까 피고인은 판관의 눈초리를 피해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 책을 수동적으로읽지 말고 능동적으로 읽으라는 뜻이다. 울프는 법정에 선 범인의 공모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 P54

울프는 민주국가라는 대의가 제국주의의 폭력을 넘어설 수 있을지 회의했다. 그러나 결국그 가능성의 주체도 바로 대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고민은 비단 울프의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시 울고를 읽어야 할 이유가 이렇게 또 하나 더해지는 것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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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3-1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버지니아 울프 책을 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희선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일러주는 것과 그 사람들이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 P28

짐 크로처럼 검둥이들을 계속 누르려고 하는 거대한힘이 있고, 엘우드 너를 계속 누르려고 하는 작은 힘이 있다. 이를테면주위의 다른 사람들, 이런 크고 작은 힘 앞에서 너는 꼿꼿이 일어서 너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백과사전은 안이 비어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너를 속여 텅 빈 것을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네게서 너의 자존감을 빼앗아가는 사람도 있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P39

시위행진에 참여했을 때의 꿈을 꾸는 덕분에 그는 매일 아침 병동에서 눈을 뜰 때마다 기운을 낼 수 있었다. 그의 정신은 아직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 P98

"그놈이 어디에서 맛이 가는지 넌 모르잖아. 다른 놈들이 어디에서맛이 가는지도 모르고, 밖은 밖이고, 여기는 여기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니클 사람들은 전부 다르다고 말이야. 여기 있다 보면 사람이 달라지니까. 스펜서랑 그 패거리도 마찬가지야. 어쩌면 바깥의 자유로운세상에서는 그들도 착한 사람일지 모르지. 잘 웃고, 자식들한테 잘하는 사람인지도." 그가 썩은 이를 입술로 빨 때처럼 입술에 힘을 주었다. "그랬는데 내가 한 번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여기에서 특별히 사람들이 변하는 게 아니야. 여기는 바깥이든 다 똑같아. 다만 여기서는아무도 가식을 떨지 않을 뿐이지."
- P107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써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 이렇게 도망지고 싶다는 생각을 금하는 것,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 같은 생각까지도 금하는 것은 곧 인간성을 죽이는 일이었다.
- P185

그를 망가뜨린 것은 스펜서가 아니었다. 2호실에서 잠들어 있는 새로운 적이나 감독관도 아니었다. 그가 싸움을 그만두었다는 점이문제였다. 소등 시간까지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 위해 고개를 수그리고조심스레 행동하면서 그는 자신이 이겼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자신이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니, 니클에 한 방 먹인 셈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이미 망가진 상태였다. 킹 목사가 옥중 편지에서 말한 검둥이들처럼 변해버렸다. 오랫동안 억압당한 끝에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멍해져서 그 현실을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침대로 여기고 잠드는 법을 터득한 검둥이.
- P196

하지만 그들은 평범한 삶이라는 소박한 즐거움조차 누릴 기회가없었다. 경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불구가 되어 절룩거리며, 정상이 되는 방법을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 P209

고통을 견디는 능력, 엘우드를 포함해서 니클의 아이들은 모두 이능력과 함께 살아갔다. 이 능력 속에서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꿈을꾸었다. 그것이 지금 그들의 삶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들은 스러졌을 것이다. 구타, 강간, 그들 시이에서 가차 없이 벌어지는 적자생존, 그들은 견뎠다. 히지만 그들을 망기뜨린 자들을 사랑하라고?
그게 가능할까? ‘우리는 당신들의 물리력에 영혼의 힘으로 맞설 겁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엘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 P216

백인들이 흑인을 짓밟는 데 얼마나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는지. 가물가물하던 기억이 어느 순간 한꺼번에 되돌아왔다. 아주 작은 일들이 계기가 되었다. 이를테면 택시를 잡으려고 길에 서 있을 때같은 것. 일상적으로 당하는 굴욕을 그녀는 5분 뒤면 잊어버렸다. 그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큰 일들도 계기가 되었다. 백인들이 기울인 그 엄청난 노력 때문에 불빛이 꺼지고 황폐해진 동네를 차를 몰고 지나가는 일, 아니면 어떤 소년이 또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 우리나라에서 우리는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어. 언제나 그랬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 모른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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