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초창기 짜지앙미엔은 공화춘과 같은 식당이 아니라 손수레를끌거나 지게를 짊어진 장사꾼들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음식이었다. 조선으로 건너온 화교들 대부분이 님성이라는 점도 이런 음식들을판매하게 만들었다. 가족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밖에서 시켜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 조신 사람들이 짜장면만을 접했던 것은 아니었다. 산둥 지역의 요리인 노채魯菜가 모두 바다를 건너와서 이 땅에 선보였다. 오늘날우리에게 짜장면만큼이나 익숙한 라조기와 깐풍기, 팔보채 같은 것들이바로 산둥의 요리들이다.  - P72

그럼에도 조선으로 넘어오는 화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청일전쟁의 패배로 잠시 주춤했던 화교들의 조선 진출은 다음해부터 재개되었다. 청일전쟁 패전 이후 일어난 의화단의 난으로 인해 산둥 지방이 큰 피해를 입었고, 여기에 흉년까지 거듭되면서 많은 중국인들이 살길을 찾아조선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면서 경성과 인천의 화교들이 급증했다.
- P73

일본은 조선에 사는 화교들을 탄압했을 뿐만 아니라 교묘하게 조선인들을 선동해서 갈등을 일으켰다. 1931년 7월에 벌어진 만보산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국 지린성 만보산에서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 사이에충돌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 흥분한 조선인들이경성과 평양, 원산의 화교들을 공격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수많은 요릿집과 상점들이 불타고 백여 명이 넘는 화교들이 숨졌다. 총독부는 폭동을 수수방관하면서 양측의 갈등에 더욱 불을 지폈다.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화교들의 고난은 더욱 심해져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따라서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조선인뿐만 아니라 화교들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 P76

1962년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화교들을 겨냥한화폐개혁을 실시했다. 아울러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시켰다. 당시대한민국에 외국 국적사의 대부분이 화교라는 섬을 감인하면 명백하게그들을 노린 조치였다. 덕분에 화교들에게는 큰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연회와 혼례 등을 치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작은 규모로 쪼그라들면서 한 때 외식의 꽃이었던 청요릿집들은 이제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집‘이 되었다.
- P78

짜장면이 우리 음식이 되기까지는 앞서 소개한 대로 슬프고 잔혹한근대사를 거쳐야만 했다. 임오군란이 없었다면 산등의 전통요리인 짜지앙미엔이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조선총독부가 화교들을 집요하게 탄압해 요릿집만 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서 결과적으로 산둥요리의 대중화에 부채질을 했다.
- P81

돈까스는 서구문명을 받아들여서 그들과 같아지겠다는 근대 일본의야망이 밑바탕에 깔린 음식이다. 천 년 넘게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국가를 서양처럼 발전시키겠다는 대의명분 아래 육식을 시작했다. 그렇게 돈까스는 우리의 짱장면처럼 일본에서 일상이 되었다. - P104

일본에서 카레라이스가 뿌리를 내리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것은 바로 군대와 학교의 급식이었다. 사실 일본이 외친 서구화와 문명화는 강력한 군대의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잘 먹이는 것이 필수였다.
- P155

엄청난 피해를 입은 다음 일본 육군도 뒤늦게 식단을 바꾸고 라이스카레를 도입했다. 이렇게 영국과 일본이 커리를 받아들인 것은 맛있어서가 아니라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영국 해군의 경우사망 원인 1위가 전투가 아니라 각기병이었고, 그 비율도 압도적이었다.
일본 해군 역시 각기병으로 인해 병사들을 제대로 훈련시킬 수 없게 되면서 전력 운용에 차질을 빚었다. 커리와 카레는 제국에서 병력 손실에대한 해결책으로 나왔으며, 필요에 의해서 섭취했던 음식이었다.
- P158

이처럼 빵의 역사는 전쟁과 사무라이, 서구화와 문명화의 그늘에서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단팥빵을 먹으면서 제국주의를 실현시켰고, 조선은 뜻하지 않은 근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 P189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은 영원할 것 같았던 이즈모야전성기의 막을 내리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군산으로 건너온 히로세 켄이치와 그의 자식들에게 조선은 삶의 터전이자 고향이었다. 당시 한반도에 살던 수십만 명의 일본인들 또한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에 미군정이추방 명령을 내리기 전까지 어떻게든 한국에 남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추방 명령이 떨어지자 히로세 켄이치와 그 가족들은 일본으로 떠나야만 했다.
- P193

여전히 얼음과 과일 시럽으로 만드는 일본의 카키코오리와는 달리 한국의 빙수는 단팥이 잔뜩 올라간 팥빙수로변신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문화사나 생활사전문가들은 씹는 맛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민족 특유의 입맛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단팥은 달콤하기도 하고 씹는 감촉을 충족시켜줄 수 있기 때문에 차츰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과일 시럽을 대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P250

식민지로 상징되는 우리의 근대에는 수탈과 침략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흡수해우리의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근대의 맛이 쓴맛이 아니라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 P253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이 시기에 가정에서 가마솥이 사라지는 현상과 맞물리면서 커피의 소비량이 늘었다고 얘기한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아궁이에 걸어놓은 가마솥은 그고 무거워서 따로 빼서 씻을수 없었기 때문에 물을 붓고 끓이는 방법으로 세척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숭능을 식사 후에 차처럼 마셨다. 한국의 전통 밥상은 코스별로 요리가 나오지 않고 반찬부터 입가심까지 한꺼번에 한 밥상에 모두 놓고 먹기 때문에 디저트라는 개념이 따로 없었다. 구수한 숭늉은 식후에 마시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경제가 발전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마솥대신 압력밥솥이나 전기밥솥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정에서는 더 이상숭늉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대체해야 할 만한 식사 후 마실 것을 찾아야 했다. 여러 가지 음료들 중에서 낙점된 것이 가장 대중적인 음료인 커피다. 때마침 국내에서 생산이 되면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물에 타서 바로 먹을 수 있었고, 다방이나 회사에서 자주 마서왔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다. 식사 후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 P280

진한 원두커피는 물론 인스턴트 믹스커피에서조차 느낄 수 있는 그정체불명의 쓴 맛에는 서구 열강을 좇고자 했던 ‘모던 뽀이‘ 들의 욕망과,
잦은 야근에도 정신을 붙들어야 했던 노동자들의 고단함과, 다방에서 얼굴을 붉히며 토론했던 장발 대학생들의 열기와, 여전히 남아 있는 서구에 대한 희미한 동경을 담은 낭만이 모두 녹아 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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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연설에서 사라마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충분히 이들과 동화했는지 잘 알 수 없는 유일한 지점은그 여자들과 남자들이 그런 가혹한 경험에서 얻은 미덕, 바로삶에 대한 당연하다는 듯 소박한 태도입니다…… 저는 매일제 정신에 울리는 끈질긴 호출처럼 그 교훈을 느낍니다. 저는 광활한 알렌테주 평원에서 제게 주어졌던 존엄의 예시와같은 위대함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잃지 않았어요. 시간이 이를 말해 줄 겁니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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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가쿠나에 박사와 스즈키 사부로스케 사장이 손을 잡고 만들어낸 아지노모도는 단순히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니라 서구화를 이루고자 하는 꿈의 상징이었다. 서구의 과학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이기도 했으며, 위생적이고 영양이 풍부했다는 섬에서도 서구화로 가는 길이라고 믿겼다. 메이지유신 이후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던 일본에서 서구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의 영양과 체력 문제, 그리고 병사들에게 줄영양가 있는 식품문제를 해결해야 했다는 점도 아지노모도의 탄생에 한몫했다. - P36

사람이 가지는 까다로운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를 뒤집어 얘기하자면 일단 한 번 입맛으로 자리 잡게 되면 깊숙하게 뿌리를 내려 새로운 전통이 된다는 의미도 된다. 덕분에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철수한 이후에도 일제가 손을 뻗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아지노모도가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다. 정치가 음식의 전파와 이용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아보라면 바로 아지노모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 P50

아지노모도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밀수품으로, 미원과 미풍 그리고 다시다라는 이름을 가지고 대한민국에 계속 남았고, 이윽고 우리의 입맛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본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맛의 제국은 이제 우리의것이 되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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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많은SF는 미래와 아무 상관도 없고, H. G. 웰스의 『우주 전쟁 War of theMarid 』 이나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 Martian Chronieles』처럼재미있거나 진지한 사고 실험일 뿐이다. 사고 실험은 소설을 이용하여 현실의 여러 측면을 재결합하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도가 아니라 가능성에 마음을 열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믿음‘을 다루지 않는다.
- P228

어떤 독자들에게는 이것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제일수도 있다. 이 책이 대놓고 제기하는 역설적인 질문들, 그 밀도 높고경이로운 이미지로 우리를 괴롭히며 모든 정보를 불신하도록 자극하고, 우리가 환각을 뚫고 어쩌면 이 또한 착각일 수 있는 통찰에 이르게 하는 질문들보다 더 말이다. 반드시 물어야 하지만 답은 없는질문들을 묻는 것, 잊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이미지들을 창조하는 것…… 이거야말로 가장 대담한 예술가들의 특권이다.
- P242

침묵당한 이들을 위해 말하는 일과,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들여 화자의 목소리로 묻어 버리는 일은 다르다. 후자와 같은 잘못을 너무나 오랜 기간 저질렀기에, 어쩌면 정직한 선의와 선행을 아무리 쌓는다 해도 인디언에 대해 쓰는 백인 소설가(또는 회고록 저자.
또는 인류학자)가 또 강탈하겠구나 하는 의심을 완전히 씻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인디언과 백인이 관계를 맺은 역사 전체에서 죄의식은 피할 수가 없다.
- P253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길을 알려 주는 신호라고는 쉼표밖에 없는 빽빽한 덤불 같은 사라마구의 한 페이지는 나에게 힘든 독서였고, 나는 분개하기 직전까지 갔다.
- P265

그 신념이란 거의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는 또렷한 윤리 체계에 기반하는데, 한 문장이기는 해도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영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그건 바로 ‘너보다 약한 사람들을해치는 건 잘못이다.‘ 라는 문장이다.
- P272

이성의 꿈과 정의의 희망이 끝없이 좌절될 때,
냉소주의는 쉬운 출구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농민 사라마구는 그쉬운 출구를 택하지 않는다.
- P274

SF는 어떤 현실 상황에 대한 상상 속의 전복에나 기꺼이 힘을 빌려준다. 상상력을 기르지 못하는 관료들과 정치가들은 SF 소설이란 다 레이저총이나 나오는 헛소리이고,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SF 작가가 검열을 당하려면 우리들의 자먀찐처럼 대놓고 유토피아를 비판하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노골적이지 않았고, (내 좁은 지식으로는) 정부 정책을 대놓고 비판한 적도 없다. 그때도 제일 감탄했고 지금도 감탄하는 점은, 그들은 이념에 무관심한 듯이 글을 썼다는 점이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우리 작가들도 힘들어하는 일이건만, 그들은 자유로운 사람처럼 썼다.
- P289

과학소설은 인간이(또는 딱 인간처럼 행동하는 신이나 동물이나외계인이 지배하지 않는 세계를 정말로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이야기다. 가끔 한 번씩 눈을 들어 인간의 행동이 아무 의미도 없고 인간의 관심사가 대수롭지도 않은 영역을, 무한한 우주를 바라보면루크레티우스 가 말했던 "빛의 해안이 잠시나마 위로를 넘어서는자유를 언뜻 비춰 줄지 모른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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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를 읽는 시간
이택광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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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올해 버지니아 울프를 읽기로 했어.

좀 어렵기는 했지만 그녀의 소설 <등대로>가 너무 좋았거든.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좀 어려운 것 같아.

글을 따라가는데 숨이 좀 가빴어.

이 장면인가 하면 저 장면이고, 배경도 휙휙 바뀌고, 인물도 예고 없이 휙휙 바뀌고, 생각은 더 휙휙 바뀌고....

심지어 배경이란게 인물과 거의 혼연일체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아서, 아 뭔가 이 바람에는 의미심장한 것이 들어있지 않나? 이 햇살은? 아니야 마당에 꽃들도 뭔가 있는 것 같아.... 아 정말 머리 터져 죽는줄 알았어.

의식의 흐름이란 기법이 이런거야? 하면서 보지만 친절하지 않은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을 읽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았지뭐야?

아 내가 제대로 읽고 있긴 한거야?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했으니까....

 

그래 이럴 때 선생님이 필요한거야.

누군가 좀 친절하게 알려주면 난 버지니아 울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야

좋아하게 된 사람을 더 알고 싶은건 너무나 당연한 연애의 대전제잖아?

역시 책에 정답이 있을거라니까.

이왕이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소개서가 좋겠지. 아무래도 알아듣기가 좀 편할테니까.

거기다 이 책의 목차를 봐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들을 친절하게 소제목에 넣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해뒀잖아.

어떻게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의 책에서 뭘 중점적으로 봐야하는지 친절하게 내게 알려주실거야.

 

그래 이게 이 책을 읽기전 내 생각이었어.

그런데 첫 챕터를 읽자마자 이게 뭐야? 아니 난 이런걸 원한게 아니었다고 하면서 비명을 지르게 되었어.

<제이콥의 방>이 챕터 제목이고, 삶을 표현하는 글쓰기라는 부제가 붙었으면 이 소설에서 삶이 어떻게 표현되고 독자가 그걸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구구절절히 친절하게 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책 이야기는 거의 없고, 온갖 철학자들의 이론이 막 쏟아져 나오다니...

이분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책을 쓰는건가?

내 예상과 너무도 다른 책이잖아.

아 읽어 말어?

하지만 일단 잡은 책은 왠만하면 다 읽고야 끝내는(왜냐하면 읽은 부분이 아까워서) 나의 책에 대한 집념이 계속 책을 붙들고 있게 했어.

아 그런 나를 칭찬하고 싶어.

3장쯤 가면 이분이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 알것 같은 느낌이 오거든.

뒤로 갈수록 그건 더 확실해지지.

이분은 버지니아 울프를 작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의 삶과 작품을 전체로 얘기하고 싶었던 거였어.

따라서 제목만 분리되어 있을 뿐, 아무데서나 버지니아씨의 일기, 에세이, 소설 그리고 삶의 장면들을 막막 꺼내.

그래야만 온전히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 위대한 작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근대의 도래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한 작가. 무엇이 새로운 것이고 무엇이 낡은 것인지 날카롭게 갈라친 비평가. 존재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시대의 질문에 사력을 다해 답한 사상가. 글쓰기 이외에 삶의 다른 가치를 찾아내지 못한 생활인. 응접실에 인쇄기를 설치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찍어낸 독립 출판인.

 

이 책의 저자로 하여금 이런 헌사를 남기게 한 버지니아 울프!

작가-비평가-사상가로서의 글쓰기 전체를 그녀의 삶과 연결해야만 제대로 버지니아 울프를 이해 할 수 있다는 거 맞죠?

 

자 이제 작가님의 의도는 알겠어.

그럼 우리 하나하나 따져보자구.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이 근대소설의 한계를 뚫고 현대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는거죠?

근대 리얼리즘 소설들이 가지고 있던 '소설 구조의 견고함'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서 급변하는 근대의 디테일을 잡아내기 위해 소설이 형식을 허물고 유연해져야 했다는 것(23쪽)

그 실험적 시도가 바로 의식의 흐름 기법이고, 이것은 자크 데리다의 '대체보충'개념과 잇닿아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쓰는 글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글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정확한 정보전달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군.

따라서 글쓰기라는 것이 기억을 전달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므로 견고한 소설구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취사 선택되어진 인간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고, 더 정확하게는 '자기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버지니아씨의 소설의 핵심과제였다고 나는 이해했어.

그런데 이 '자기의 재구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강제되어지는 사회적 규율과 규범 자체를 재구성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를 들면 버지니아 울프가 맞닥뜨린 여성을 여성이게 강제하는 사회적 규범 자체를 재구성(38쪽)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한 인간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설 수 있게 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등대로>에서 보았던 등장인물들의 현란한 생각의 흐름이 이해 될 것도 같아.

인간이 하나의 신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은 겉으로 볼 때는 아주 단순한 결과로만 던져지지만 실제 인간의 내면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온갖 이율배반적인 생각들이 소용돌이 치고 난 이후에야 제대로 된 인식에 이르는 거잖아.

그건 과정에서 만들어진 의식이야말로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인지하게 하고, 그속에서 나와 세계의 관계를 더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

만약에 내가 제대로 이해한게 아니라면?

나는 앞으로 계속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을거고, 그러면 또 다르게 생각하는 계기들이 생길테니까 상관없어.

지금의 내 생각은 여기까지고 앞으로 나는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테니......

 

두번째로 나아가서는 주체의 재구성을 고민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당대의 현실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을 가져오는 것 같아.

여기에 당대의 문제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으로 대응한 진정한 모더니스트로서의 버지니아 울프가 자리매김하게 되는 거지.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고(185쪽) 기존의 남성중심의 세계가 강조한 참된 여성의 자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이며, 들뢰즈와 가타리(악!!!!!)가 말한 여성-되기로 남성의 세계 자체를 빠져나가는 '소수자성'의 영역으로 자신의 자리를 매김하게 돼. (나에게 들뢰즈와 가타리는 내가 무식하다는걸 너무나도 절절하게 깨닫게 해준 철학자이므로 난 이 사람들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쩔줄을 모르고 공포에 질리게 돼)

소수자는 항상 배제된 사람이야.

굳이 들뢰즈와 가타리를 말하지 않아도 소수자성 자체에서 저항은 예정된 운명일 수밖에 없어.

버지니아 울프가 그토록 글쓰기를 통한 여성 자신의 재구성과 여성들간의 연대를 강조하고, <보통의 독자>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독서 교육과 글쓰기 교육을 강조한 것은 저 소수자들에 대한 배제를 확 깨트려버릴 수 있는 본질적인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거지.

그것은 말년의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으로서 나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진짜 멋진 말을 하며 평화주의자와 반제국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이는데로까지 나아가.

우와 완전 멋있어.

오늘의 명언이야.

'여성으로서 나에게 조국은 없다'라니 밑줄 쫙쫙 그어가며 내 인생의 명문과 가르침으로 기억해야지.

 

이 책은 또 버지니아 울프를 제대로 읽는 방법도 가르쳐줘. 좀 불친절하긴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동안 일기를 쓴 작가였대.

버지니아 울프 전집에 일기가 따로 한권으로 있는 걸 봤으니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난 이 일기는 안 읽을 생각이었거든.

항상 일기는 좀 지나치게 내밀하달까 그래서인지 그 형식 자체가 가진 한계로 인해 항상 공감하기가 힘들더라고.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는 그녀의 삶과 소설과 에세이를 이끄는 지도서 같은거래.

그녀의 일기를 같이 볼때 그녀의 작품이 온전히 이해된다는 거지.

아 정말 이런 말을 하면 진짜 일기도 읽을 수밖에 없잖아.

 

사실 이 책은 별 다섯 개를 줄 수 밖에 없지만 그건 유보적인 거야.

내가 버지니아 울프를 다 읽고 나면 이 책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수 없는거니까.

하지만 앞으로 읽을 책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는데서 선생님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는 책이었어.

이 책을 먼저 선택한 나를 또 한번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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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1-03-21 2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신선한 리뷰인데요. 울프를 다시 펼쳐야 하는데 하고 딴 책만 읽는 저를 혼내주고 다시 펼쳐야겠습니다. 굿밤 보내세요 바람돌이님!

바람돌이 2021-03-21 23:22   좋아요 2 | URL
우리 같이 읽어요. 버지니아 울프는 혼자서 읽기 벅차요. 수연님 글 읽으면서 저도 으쌰 으쌰 힘내고 싶네요. ^^ 수연님도 굿밤 보내세요. 월요일 또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데 늦잠 안자야 할텐데 말이죠. ㅎㅎ

미미 2021-03-21 23: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두었는데 이런건줄 모르고 울프언니의 책을 다 읽고 보려고 했네요. 빨리 읽어보고 싶어요~* 울프일기 생각날때마다 조금씩 읽는 중인데 아주아주 훌륭합니다~ㅎㅎ♡

바람돌이 2021-03-21 23:23   좋아요 2 | URL
제 생각엔 읽기 전에 읽으면 더 좋을듯합니다. ㅎㅎ 울프일기 사러 가야해요. 이 책 작가님 말로님 일기 펼쳐놓고 소설 펼쳐놓고 같이 읽어야 한대요. ㅎㅎ

scott 2021-03-21 2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바람돌이님 이 리뷰는 마치 바람돌이님이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인덱스를 붙여가며 머릿속으로 대화하고 계신다는 상상으로 읽게 되는데요.

╭ ◜◝ ͡ ◜◝ ͡ ◜◝ ╮
내 예상과 너무도
다른 책이잖아.

아 읽어 말어?
╰ ◟◞ ͜ ◟ ͜ ◟◞ ╯ O °.바람돌이님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은 ㅎㅎ

울프 여사 일기 까지 읽었지만 이책의 저자가 해석한 울프 여사의 작품세계가 굉장히 명료하고 간결해서 좋네요 ㅎㅎ

울프여사는 [응접실에 인쇄기를 설치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찍어낸 독립 출판인.]이고
전 오늘 커피 내리는 동안 오븐에 빵넣었다가 불 낼뻔함 ^ㅎ^

바람돌이 2021-03-21 23:58   좋아요 1 | URL
이 책 한 챕터를 거의 2번씩 읽게 만들더라구요. 어 이말을 왜하지??? 이러면서요. 그래서 리뷰도 궁시렁 궁시렁 제가 속으로 했던 말을 하는 식으로 쓰게 되네요. ㅎㅎ 항상 scott 님의 저 이모티콘이랄까 하여튼 저 부호들에서 감탄하게 되네요. 와 정말 scott님의 댓글이야말로 옆에서 같이 이야기하는 느낌이에요. ^^

아니 근데 오븐에 빵을 넣는데 어떻게 하면 불 낼뻔하는지 이해가 안가는데요? 오븐은 딱 시간 맞춰놓으면 땡하고 꺼지잖아요. ㅎㅎ

그레이스 2021-03-21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데 구매해야 할까봐요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오책 첫 장 읽어보고 좋으면 책을 덮어버리거든요.
사서 제 책으로 읽어야겠다고 하고
이 리뷰 보니까 그럴 가능성이...!

바람돌이 2021-03-22 00:00   좋아요 2 | URL
음 이 책은 3장까지 정도는 읽어야 아 좋구나 하는 느낌이 오던데요. 1장 읽고는 읽을까 말까 고민했어요. ㅎㅎ
양이 많은 책은 아니니까 3장 정도는 뭐.... ^^

희선 2021-03-22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지니아 울프 책 제목이 있는 글이 있어서 그 소설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 말해줄까 했는데, 그걸 바로 알려주지는 않는군요 본래 그런 거기는 하겠습니다 그래도 이 책을 보면 버지니아 울프 소설뿐 아니라 일기도 보고 싶어지겠습니다 일기가 소설과 상관있기도 하다니...


희선

바람돌이 2021-03-22 00:20   좋아요 1 | URL
네 일기 읽는거 싫은데 읽어야 할 거 같아요. ^^
그것도 같이 펼쳐놓고요. ㅎㅎ 버지니아 울프가 소설을 쓰게 되는 과정, 생각의 변화 이런것들을 같이 서술해놨다 하더라구요. ^^

겨울호랑이 2021-03-22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하는 즐거운 한 해 되세요! ^^:)

바람돌이 2021-03-22 06:41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읽고 계신 개념사전에 비하겠습니까. ㅎㅎ

mini74 2021-03-22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평소 억양과 달리 아주 터프하시고 멋있음 ㅎㅎㅎ 저는 등대로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ㅠㅠ 꼭 나 혼자 또 오독하며 깊은 뜻은 모른체 읽은게 아닌지 ㅠㅠ 고민이 마구마구 됩니다.

바람돌이 2021-03-23 00:51   좋아요 1 | URL
앗 터프했나요? 저는 약간 절박하게 알고싶다는 마음을 막막 표현한건데요. ㅎㅎ
등대로 저도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진짜 이게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하는건지 많이 헷갈리더라구요. 뭐 근데 또 결국 어떤 책이든 내가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는거고, 내가 생각하는 만큼 느낄 수가 있는거니 어떤 경우든 오독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scott 2021-04-09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정말 울프 여사님의 전작들 완독에 속도가 붙으실것 같아요.
울프 여사님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물 주심
축하 합니다. ^ㅎ^

바람돌이 2021-04-09 23: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더불어 scott님도 축하드려요. ^^
울프 여사님 덕분에 좋은 일이 자꾸 생긴걸 자축하며, 다시 울프여사의 일기를 구매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