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도시 페름. 노동자의 가없는 실존적 투쟁만이 남은 곳, 페름에와서야 수라는 살아온 세월이 전쟁처럼 느껴졌다. 전쟁은 지상에서한 번도 끊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꽃은 피어나고 계절은바뀐다. 강은 흐르고 산은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고단함 속의작은 평화, 인생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수라는 늘 패배한 쪽에 속했다. 마르크와의 결혼이 그랬고 오 신부와의 짧은 사랑이 그랬다. 왜체와 보리스는 패배의 상처 속에서 피어난 꽃이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동청철도 변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이미 패배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 P213

"시인과 혁명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시인의 예언자적인 정서가 소시민적이고 생기 없는 세계에 활기를 불어넣듯 혁명가 또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식의 소유자이지요. 시인이 데카당의 추상적인언사를 못 견뎌하듯 혁명가도 자본가의 허위와 부정을 못 견뎌합니다.
저는 사회주의혁명만이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적 모순을 치유할 수 있다.
고 믿어요.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는 물론 세계의 모든 프롤레타리아는지금 절망의 심연 속에서 신음합니다. 프롤레타리아의 인격을 매장하는모든 체제는 붕괴돼야 해요. 미래에 있을 위대한 변화들을 기대하면서요. 저는 어떤 주의主義를 믿기보다는 인간 현상을 관찰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선이 사회적 우위에 설 그날을 위해 씨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우랄 페름에서 싸우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뒤를 이어 미래에 무엇이 와야만 하는지를 보여주어야만 해요."
- P257

"한인 정탐들은 기호파 출신이 많은데, 이들은 러시아 헌병대의 힘을빌려 서도파나 서북파 인사를 탄압한 사건에 깊게 관련됐고, 이 때문에기호파 수령 격인 이상설이 이주 한인 사회의 비난을 받아왔어요. 이동휘 선생의 체포도 이들 기호파 정탐들이 러시아 정보 당국에 은밀히 고발한 결과랍니다. 결국 이동휘 선생의 체포는 제정러시아와 일본의 동맹 관계를 활용한 일본 관헌의 언론 조작과 연해주 한인 사회의 이동휘반대파의 파당적 음해의 소산이라오.."

<실제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주도권 다툼은 치열했다. 어떤 경우 이 싸움은 독립운동 전체의 방향을 둘러싼 양보할수 없는 논쟁이기도 했으나, 많은 경우 단순한 영향력 내지는 주도권을 위한 출신 지역싸움이기도 했다. 그 어려운 독립운동이라는 상황속에서도 쥐뿔만한 권력에의 욕망들을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가 차고 한편으로는 절망적이다> - P291

"그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러시아어를 배워 일상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그들을 의심해선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연대의식이에요. 볼셰비기를 돕겠다는 연대 의식 말입니다. 그들 역시 그들나라에서는 무산계급이었지요. 그래서 우리 볼셰비키를 돕겠다는 것입니다. 국제주의로 뭉친 합동민족적위군이야말로 총알 하나보다 더 힘이셉니다."
- P299

상조회 대표는 의병대를 무장시켜 일본군을 물리쳐달라며 군자금을건네면서, 곡괭이질은 자기들이 할 터이니 한시바삐 총을 사 들고 만주로 돌아가라더군요. 보다이보 금광뿐 아니라 니콜라엡스크 어장에도한인 노동자들이 있으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의연금을 모금하라고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두어 달 동안 금광이며 어장을 돌아다니며1000루블가량을 모금했지요. 우리는 이만으로 나와서 러시아 신식 보총과 베리단 5연발 총을 한 자루에 탄환 100개씩 끼워 9루블을 주고 사서 중국 밀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독립군들이 그토록 참혹한 환경에서도 계속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때문이었을 것이다.> - P333

 조선 독립은 국제 관계를 잘 이용해 외교를 통해 달성해야 합니다. 조선 독립은 혁명가들이 외국의 정당인 볼셰비키와 연계해 사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민족 단체인 광의단을 중심으로 전개하되 소비에트로부터는 물질적인 방조만 받고 이념적인 도움은 받을 일이 없습니다. 무식한 노동자나 농민이 어찌 혁명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겠습니까? 민스크 전선에서 참호를 파던 사람들, 우랄산에서 목재나 자르던 사람들, 담배말이를 하던 사람들은 돈을 벌기위해 갔을 뿐이지, 독립운동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3.1운동 이전 명망가 중심의 독립운동이 아직이었던 시절, 그들의 대중운동과 대중에 대한 사고 수준은 실제로 딱 이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 P337

한인사회당은 민족 해방과 사회주의혁명을 목표로 창당한 한인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한인사회당이 설립 초기부터 군사부를 둔데에는 일제에 대한 무장투쟁을 주장한 급진적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당은 정치투쟁과 대중투쟁에 중점을 두는 조직이다. 그런데도 굳이 군사부를 두어 무장 부대를 조직하고자 한 점은 한인사회당의 궁극적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P348

"전쟁 포로들 가운데는 소비에트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얼마든지 있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전쟁터로 끌려와 부르주아를 위해 전투를 하다가 포로가 됐으나 소비에트 공민이 되면 개인 재능에 맞는 직업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렵니다. 소비에트체제는 민족 간 경계를 허물고 계층 간 차별이 없는 평등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 P353

하바롭스크 철도국 총회에 참석했다. 회의에서 볼세비기를 지지한다.
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인간이 스스로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능을 갖지 못하면 자유마저도 성가신 부담이 된다. 개인적 책임이 선하다.
면 그들이 소속된 사회적 책임 또한 선할 것이다. 볼셰비키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을 증오할 수 있을까. 그들은 역사 위에서 개인적책임을 회피하는 게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르 병사니 가사크 아타만 그리고 백위군 병사들은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를 알지 못할 뿐이다. 명령에 따라행동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관에게 기만당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상관 역시 자신이 지시한 일의 역사적 결과를 예측이나 할수 있을까.


<1918년 1월 25일 알렉산드라의 일기> - P379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할 근거가 약할수록 자신의 국가나 종교, 인종의 우월성을 내세운다.
- P382

 그녀는 두건을 거부했다.
"나는 두 눈으로 내 죽음을 똑똑히 볼 것이오."
무거운 침묵이 공원을 짓눌렀다. 알렉산드라는 주위를 전전히 둘러보았다. 풀잎 하나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 건 없었다.  -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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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3-15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그래픽 노블로 읽었는데 그림이랑 그녀의 인생이 아주 딱 맞아 떨어지더라구요. 선 굵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알렉산드라 이야기를 조금 더 알고 싶네요.

바람돌이 2021-03-16 11:08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까 그래픽 노블도 있네요. 다봤는데 이 시절의 얘기들은 보고 나면 항상 가슴이 답답합니다. 정말 대단한 여성이고 운동가인데 그 주변 상황이나 당시의 우리 독립운동 내의 상황들을 같이 읽어나가다 보니 고구마 먹다 멕힌 것처럼 또 답답해지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