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보름이 훌쩍 지나버렸다.

괜찮다가도 아프면 이렇게 잠수아닌 잠수를 탈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

보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만 한 보따리다.




0.

이제야 얘기할 수 있지만,

작년 겨울에 하마터면 코로나에 걸려 죽을 뻔 했었다.

몸이 좋질 않아 백신을 맞지 못했었고 마침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으니 온종일 집에만 콕 박혀있었다.

평소 온갖 노력은 다 하고 있었기에 코로나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었다.

가족들 또한 나때문에 특히나 조심했었는데, 동생이 직장에서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행히 동생은 무증상이었지만 나는 고열, 폐렴까지 다 앓고 말았다.

크게 아프면 안색이 파리해지거나 새하얗게 질리곤 하는데, 안색이 새까맣게 변하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통화로 그런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끝내 울었고, 나도 울었었다.

심상치 않게 아팠었기에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외할머니만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전화를 받질 않으니 엄마에게 우연히 전화했다가 알게 되었는데 손녀 걱정에 보름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셨다고 한다.


결국 생일도 못 보냈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면, 기억에 남는 생일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저 바램이었다.

당시 격리 기간은 2주였지만 보름 이상을 격리된 채 시간을 보냈었고 한 달은 목소리가 아예 나오질 않았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고서야 병원에 다니면서 폐 사진도 두어번 찍고 링거도 맞고, 그렇게 또 두어달을 보내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실제, 경험했던 일이다.

종일 누워 있는데도 기억이 끊길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꿈을 꿨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왔었는데 아직도 그 꿈이 선명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꿈에 나와주셨으니 이번이 두번째였다.

꿈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얘기하자면,

(지금도 희한한데 외할아버지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휴대폰도 아닌 수화기를 들어 외할아버지 번호를 꾹 꾹 눌러 전화를 걸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전화를 안 받으셨다.

나 외에 5-6명 정도의 사람들도 휴대폰이 아닌 수화기를 들어 데리러 오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차를 타고 하나 둘씩 떠나고 있었는데,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이 공간에 나만 혼자 남을 것 같아 초조해졌었다.

외할아버지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는데도 결국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결국 모두 떠나버린 그 공간에 나홀로 의자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고개를 들어보니 길 건너편에 언제 오셨는지 외할아버지가 서 계셨었다.

나는 대뜸 "할아부지, 왜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 "할아부지, 저 여기서 하루종일 기다렸어요.", "빨리 오셔서 저도 데려가요."라며 툴툴거렸는데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한껏 웃어주시더니 가라는 손짓을 보냈었다.

그리고선 그렇게 잠에서 깼는데 두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었다.

참 희한한 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희한하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가 어린 나이에 외할아버지께서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었기에 외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전혀 없다.

유일하게 딱 한 장면만 기억난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외할아버지께 서툴게 세배한 후에 외할아버지 무릎에 풀썩 앉아 고개를 들어보니 외할아버지께서 한껏 웃어주신 기억, 그 기억만이 유일하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기에 가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엄마는 들을 때마다 신기하다고 하신다.

그 때의 내 나이가 세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안방의 구조는 물론 분위기와 향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가끔씩 엄마랑 외할머니가 '사진으로 남겨줄 걸'이란 말을 종종 하신다.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셨었는데 당시 삼촌들은 결혼하지 않았었고 유일한 손녀가 나 뿐이었으니 더 아껴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엄마에게도, 외할머니께도 꿈 얘기를 했었는데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해주셨다.

"그렇게 생전에 손녀 예뻐하더니 지켜주고 싶었나보다."


심하게 앓았으니 후유증이라도 없었으면 좋겠거니 했지만, 심하게 앓으면 후유증도 심하게 온다고 한다.

병원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영양제까지 열심히 챙겨먹고 있으니 올해 정말 건강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경증에 가깝다고 하지만 워낙 심하게 앓아서인지 지금도 나는 예민하게 받아들여져 긴 외출은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4월 하순 쯤, 거의 반 년만에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셔봤으니;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곧장 미각과 후각을 잃었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천천히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완벽하게 돌아오진 못했고 후각신경에 이상이 생겨 분명 집 안에 있는데도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나 숨을 못 쉴 때도 있다.

특히 어이없을 정도로 금세 피로감이 심해져 뭘 할 수가 없다.

병원 한 번 갔다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곧장 이불 속으로 뛰어드니 나가는 것도 자신이 없다.

스승의 날, 선생님과 만나려고 했지만 반나절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다음으로 기약하고 선물만 따로 보내드리고선 통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요즘 내과, 안과, 피부과, 한의원 그리고 대학병원까지 나의 일주일, 나의 한달은 병원 가는 날로 가득하다.


올해 액땜 제대로 치뤘다고 웃어 넘기... 기에는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며 남은 반년은 웃음 가득하게 보내보자고 주문을 걸어본다.




1.

그간 주문했던 책들도 한가득이고, 받았던 책들도 한가득이다.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해 올리지 못한 포스팅이 이렇게 또 쌓여만 간다.

일단은 마무리만 하면 바로 올릴 수 있는 리뷰만 9개니, 얼른 마무리짓고선 하루에 1-2개씩 매일 매일 올리면 될 것 같다.

괜찮다가도 갑자기 심하게 아프면 일주일이든, 보름이든 잠수아닌 잠수를 탈 수밖에 없지만 최선을 다해 올려봐야겠다.

이렇게 나는 또 마감에 늦어지게 되고 동시에 마음의 짐 또한 더 얹혀지게 된다.




2.

가운데 책상을 기준으로 오른쪽 벽 한 면이 책장으로 쭉 둘러져 있고 바로 건너편에는 세 개의 칼림바, 피아노, 가야금, 하프 그리고 기타가 있다.


건반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 연주해보는 피아노, 명주실 위에 손을 얹어 한 줄, 한 줄씩 뜯어보는 가야금……에 이어 새롭게 배우고 있는 악기가 있다.

바로, 바로 하프와 기타이다.

물론 독학으로 나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기타는 나중에 원데이클래스 한 번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쉬엄쉬엄 하다보니 진도가 전혀 나가질 않지만 악보보고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까지의 실력이 목표이다.


아! 가볍게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다면 칼림바를 추천하고 싶다.

요령만 터득하면 칼림바는 전혀 어렵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다.

선물받은 칼림바를 받자마자 코드를 눈에 바로 익히니 연습없이도 처음부터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었는데 코드만 볼 줄 안다면 쉽게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악기를 배울 때면,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는 정도를 목표로 잡고 연습한다.

그래야 한동안 악기를 다루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잡는다 해도 손이 저절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예 잊어버리면 너무 아깝기에, 아쉽기에.




3.

마당 한 켠에 옥외마루를 "하나의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실내에서 키우던 화분들을 밖으로 꺼낸 것밖에 없어 아직 꾸몄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키우는 식물과 다육이들이 꽤 많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고추랑 방울토마토도 심었는데 벌써 키가 많이 자랐다.

모종을 사면서 조그마한 식물도 세 개 데려왔는데 분갈이하기도 전에 며칠 지나고나니 이렇게 꽃이 활짝 폈다.

예쁘게 꾸미는 게 마무리되는 그 때, 살포시 완성된 공간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따스했던 계절 내내 피었던 꽃이 점점 져가고 잎마저 다 떨어지면 그 때 겨울이 온다.

잎이 지고 앙상한 나뭇대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물을 주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렇게 봄이 다가오니 한껏 반기듯이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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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의책장 2022-05-20 00:09   좋아요 1 | URL
집에서도 방역 철저히 했었는데.. 결국 걸리게 되더라고요ㅠ 오미크론도 아니고 델타에 걸려서 더 호되게 아팠었나봐요. 최고조로 아팠을 때, 실제로 파노라마처럼 막 지나가는데 뭔가 억울함이 앞서더라고요😭 그 때 두 주먹 꼭 쥐며 낫자고 마음먹었던 게 컸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편하게 말할 수 있긴한데 아직도 제게 코로나는 마냥 무섭게만 느껴져요😱

mini74 2022-05-20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고생하셨어요. 세상에 ㅠㅠ 외할아버님의 사랑이 뭉클합니다. 하나의 책장님 얼릉 건강해지시길 기원합니다.

하나의책장 2022-06-15 23:14   좋아요 1 | URL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어요😢
 
골목길 역사산책 : 한국사편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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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나를 찾아 역사를 걷는다.

한반도를 걷는다.

한국인의 혼을 걷는다.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님, K-POP, BTS 그리고 오징어 게임 - 전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전세계인들에게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각인시켰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을 때였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적인 명소도 좋지만,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 몇 군데는 제대로 알아둬야 하지 않을까?


저자, 최석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레저관광사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 대학교에서 유산관광을 전공하고 문화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과 서울신학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관광세계화·문명화과정·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UN 여가 관련 자문을 맡고 있는 World Leisure Organization의 학술지『World Leisure Journal』국제편집자문위원, 중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World Hotel Association 부회장, 한국문화사회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장을 역임했다.




Ⅰ 남촌 대한민국길 산책


계획적으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한 걸음씩 발로 밟아서 다진 동네다. 그래서 한양은 남촌 사람 동네고 조선은 남촌이다. 외세가 쳐들어와서 나라를 빼앗는다면 되찾을 때까지 다툴 것이다. 남촌 사람들은 독립 전쟁 선봉에 선다. 되찾은 나라를 독재로 얼룩지게 한다면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까지 싸울 것이다. 남촌길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길이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제국주의 도시체제로 변화하게 된다.

일제는 구리를 황금으로 바꾸고 동을 정으로 바꿔 중심으로 삼아 수도를 뜻하는 글자 경과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여섯 방향으로 길을 낸다.

남산 예장자락에 통감부를 짓고 남산 회현 자락에 조선신궁을 짓는다.

'신성하게 높이 솟은 울' 서울은 빼앗기고 이내 경성이 되어, 남촌은 식민통치의 수도가 되고 만다.

이후 광복을 되찾고도 1년이 지난 뒤에야 경성은 다시 서울이 된다.

덧붙이자면, 당시 서울시를 우남시로 하자는 사람들의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우남시? 뜬금없이 왜 우남시가 나온 것일까? 바로 우남은 이승만의 호이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서울역에는 역사가 두 개나 있다.

서울종합민자역사는 KTX개통과 함께 만들어졌고 구 서울역사는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1925년에 지어졌다.

이때, 일제는 일본 시모노세키와 조선 부산을 부관페리로 연결하고 부산에서 만주까지 철도를 부설한다.


서울역의 생김새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일본 중앙역인 동경역으로, 경성역은 조선과 만주의 중앙역이다.

동경역사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사를 본떠 만들었는데 서울역사는 동경역사를 본뜨게 되었다.

르네상스풍 절충주의 양식으로 근대와 전통이 섞어져 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철골과 벽돌 쌓은 것은 근대적이고 돔과 첨탑은 고전적이다.

즉, 서구적 기준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실 서울역 앞에서 버스를 타거나 서울역에서 열차를 탔기에 딱히 둘러볼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었다.

서울역에는 동상 하나가 있다고 한다.

바로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네 남매 중 남매로 태어나 친형에게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고 한다.

애국운동에 관여하면서 신변에 문제가 생기자 송원 중심가 남문거리에서 잡화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다른 상인들에게 돈을 꿔 주기도 하고 예컨대 이동휘 선생이 함경도를 순회할 때면 그의 집에서 종종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경술국치를 당하자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고 전해진다.

북간도 근방으로 이주하여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교회를 세웠고 이후 북만주로 이주하여 동포마을인 신흥동을 개척하여 러시아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 단체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광동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장을 맡아 조선인 자제를 교육하는데 전념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에게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일제는 오히려 강우규 의사의 사형을 집행한 뒤 불어 닥칠 후폭풍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판사마저 처음에는 피고라고 부르다 선생님 또는 영감님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지니깐.

이후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짤막한 시를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셨다고 한다.




Ⅱ 운주사 고려길 산책


운주사 하늘에 별은 빛나고 그 아래 땅은 아름답다. 누구든 운주사에 들어가면 고려 신선이 된다. 고려 하늘을 날아 빛나는 별과 아름다운 땅을 내려다보며 노닌다. 서울에 북악 스카이웨이(하늘길)가 있다. 화순에는 고려 스카이웨이가 있다.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려길을 걷는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운주사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운주사는 아마 생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불교와 아무 관련 없는 이름이다.

운주사 앞 주차장에 내려 경내로 들어서면 일주문이 사람을 맞이한다. 희한한 것은 불이문도, 사천왕문도 없다고 한다.

본래 사찰이라면 일주문 뒤에 불이문이나 사천왕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애초에 운주사는 불교 사원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중앙정권과 지방토호 간에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면서 빚어낸 도관(도교사원) 중 하나이다.


"운주사 : 천불산에 있다. 사찰의 오른쪽 왼쪽 산등성이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천 개가 있다. 또한 석실에 석불 두 개가 서로 등지고 앉았다." _《신증동국여지승람》


"운주사 : 천불산 서쪽에 있는데 사찰이 오래전에 폐해졌다. 그 왼쪽 오른쪽 산기슭에 석불과 석탑이 크고 작은 것이 심히 많아 이를 천불천탑이라 부르며, 또한 한 석실이 있는데 그 안에 두 개의 석불이 벽을 격하여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다. 백성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시대 때 조영한 것이라 한다. 혹은 고려 승려 혜명이 따르는 이들 수천 명으로 하여금 만들었다고 한다." _《동국여지지》




Ⅲ 강릉 조선길 산책


…… 변치 않는 것도 많다. 오죽헌·율곡기념관·선교장·경포대……. 신사임당 그림 그리던 곳이다. 율곡 선생 나신 곳이다. 허초희 시를 짓던 곳이다. 허균 젊은 시절 기억이 서린 곳이다. 효령대군 후손들이 정착한 곳이다. 강릉에서 변치 않는 것은 한결같이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모두 조선 시대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강릉에서 걷는 길은 조선길이다.


강릉은 본래 예국 땅으로 고구려는 하서량 또는 하슬라주라고 불렀다.

신라 지증왕때, 하슬라주 군주가 된 내물왕 4대손 이사부가 꾀를 내어 우산국을 합쳤다.

우산국 사람들은 쉽게 항복받기 어려울 정도로 사나워 계략으로 복속시키기 위해 나무로 가짜 사자를 많이 만들었었다고 전해진다.


강릉에서 사는 사람들은 좀상날 달과 좀생이별 사이 거리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한다.

좀생이별이 달을 바짝 따라가면 흉년이 들고 떨어져서 따라가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었던 것이다.

(여기서 달은 밥통이고 좀생이는 밥을 얻어먹으려고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뜻한다.)

"강릉 사람이 이처럼 별자리에 밝았던 것은 하늘 자손이기 때문이리라."


'강릉'하면 역시 '오죽헌'이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이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오죽헌에서 용꿈을 태몽으로 꿨었다고 한다.

효심이 지극했던 율곡은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하고선 금강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된다.

이후 21살 되던 해에 율곡은 한성시에 급제하고 다음해에 정3품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인 곡산 노씨와 결혼하게 된다.

그 이후 장인을 찾았다가 예안 도산서원에 들려 퇴계를 만나게 된다.

퇴계는 율곡의 사람됨과 똑똑함에 만힝 놀랐다고 한다.

"노력하고 공부하여 날로 새로워지자"라고 당부할 정도였으니깐.

율곡은 을사삭훈을 통해 왜곡된 정치를 바로잡고 개혁을 통해 백성을 편안케 하고 동서분당을 조제보합함으로써 그 폐해를 막고 변방을 튼튼하게 지켜 오랑캐가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서울시에서 친일매국 조각가 김경승이 만든 안중구 의사 동상을 철거했었다.

이어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설치된 도산 안창호 선생 동상, 국회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정읍시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 등 김경승이 만든 동상 철거 및 교체가 줄을 잇고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강릉시에서는 친일매국노가 그린 영정을 교체했으면 하는 저자의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율곡 선생께서 살아계신다면 친일매국 화가에게 당신을 그리라고 하지 않았을 테니깐.




Ⅳ 경주 신라길 산책


알타이 적석목곽분으로 웅대한 역사를 말한다. 한혈마를 타고 드넓은 스텝루트를 달린다. 동아시아 바다를 장악한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두루 잇는다. 당나라에 신라마을을 경영한다. 페르시아 사람이 춤을 춘다. 박트리아 황금비도가 빛을 발한다. 로마와 시리아 유리로 아름답게 장식한다. 경주가 아니라 신라 왕경이다. 가장 약한 나라가 아니라 삼한일통 대업을 달성한 동아시아 최강국이다. 신라는 왕도에서 세계를 경영한다. 신라에서 우리는 세계를 걷는다. 세계로 가는 신라길!


태종무열왕인 김춘추는 곧장 왕위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인맥을 두텁게 하여 신뢰를 쌓고 적국인 고구려로 가 친구를 사귀었다.

이후 선덕왕과 진덕왕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후에야 왕위에 올랐으니 그 기간이 무려 43년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도 문화도 군사력도 오래 갈고 닦은 것만 같았다.

로마 유리와 페르시아 유리를 응용하여 신라 유리를 만들었으니 신라황금과 합금강철은 신라가 어떤 나라인지 신라인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난리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을 살게 해주기도 했다.

서역 사람이 원성왕 괘릉을 지켰고 아랍 사람이 왕 앞에서 나와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세계 문화인들이 함께 했던 것이다.

신라는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준비했었다.

온 세상을 한 곳에 모아 놓았으니 경주는 세계 문화도시이며, 세계 문화도시 중에서도 최고여서 황금도시라 할 수 있겠다.

즉, 경주는 세계 문화인이 만든 황금도시이다.


대릉원은 신라 최대 무덤군으로 천마도를 발굴한 제155호 천마총과 남분 및 북분으로 쌍북을 이룬 제98호분 황남대총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던 발굴조사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는다.

일제가 천마총 꼭대기에 대공초소를 설치했었는데 1971년까지 그대로 있었기에 이를 제거하고 나니 자갈층이 드러나게 된다.

신라 고분은 고구려나 백제 고분보다 도굴이 덜 됐었다.

그렇게 파고 보니 자갈층 밑으로 굳게 다진 점토층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무덤방이 나타나게 된다.

유리구슬, 큰고리귀걸이, 작은고리귀걸이, 나비모양금관꾸미개 등을 발굴하게 되면서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게 된다.

우리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국보급 부장품들이 끝도 없이 쏟아졌고 그렇게 끝인가 싶었는데, 끝이 아니었다.

세상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부장품 상자 안에서 나오게 된다.

아열대 고동 껍질로 만든 말띠 꾸미개, 대나무로 장식한 금동판 말다래, 코발트색 유리잔 및 녹색 유리잔, 청동 다리미 등과 함께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천마도 말다래와 새그림판을 발굴한 것이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것이 바로 '천마도'이다.

사실 금동판 말다래를 보존 처리하기 위해 뿌린 약품 때문에 하마터면 천마도를 못 볼 뻔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천마도 말다래가 두 장이어서 아래쪽에 있는 말다래 천마도를 무사히 수습했던 것이다.

제128분에서 금관이 나왔으므로 금관총, 제129호분에서 봉황으로 장식한 금관이 나왔으므로 서봉총이라 하였고 천마도가 나왔으니 제155호분은 천마총이다.

천마총에서 발굴한 천마도의 시원형은 고구려 덕흥리 벽화고분 북쪽 천장 천마도이다.

천마총 천마도는 갈기와 꼬리털이 수평을 이루며 날리고 있기 때문에 무용총 천마도와 가장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마치 내가 걷고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이 있었던가.


산책과 드라이브를 좋아해 장소 하나 딱 정해놓고 그 근방을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곤 한다.

코로나 터지기 전 그 해 여름날, 엄마와 함께 강릉에 갔다왔었다.

가족들과 함께 지난 해에 강릉에 다녀온 기억이 선해 엄마와 함께 시간을 맞춰 단둘이 KTX를 타고 조금 먼 산책에 나섰었다.

바다 한 번 보다가 신선한 해산물로 요기하고, 바다 한 번 보다가 커피 한 잔씩 시켜놓고……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고 또 걸었다.

하루를 꼬박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살 그리고 바다 내음과 함께 보냈었다.


미국에서 잠깐 아카데미에 다닐 때 선생님께 일대일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내게 말하셨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대해 들어봤어요. 다만 김치 정도밖에 모른다는 게 참 아쉬워요.'

'대한민국에도 유명한 명소가 있나요?'


만약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는다면 어디를 소개시켜 줄 것인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현대적인 명소도 물론 좋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를 흠뻑 느낄 수 있는 명소도 절대 빠뜨려선 안 된다.


그 때, 나는 여러 장소 중 가장 처음 입을 열었던 장소가 바로 '고궁'이었다.

국어, 영어, 한국사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었기에, 고궁 곳곳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하며 사진도 보여줬었는데 다채로운 색감은 물론 미국에선 볼 수 없는 문화재에 선생님이 감탄하셨던 기억이 선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버릴 것 없는 내용이라 꼭 읽어봤으면 한다.

요새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고궁 나들이는 물론 강릉과 경주에도 한 번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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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를 위한 변론 - 지속가능한 지구생태계와 윤리적 육식에 관하여
니콜렛 한 니먼 지음, 이재경 옮김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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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풀을 밟고 뜯는 것은 본질적으로 환경에 손상을 가한다는 점, 한 지역에 소의 개체수가 많아질수록 생테계의 피해가 심각해진다는 점이 소의 혐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틀린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러한 잘못된 추정들을 짚어보며 다양한 소고기 비판론을 다뤄보려고 한다.


저자, 니콜렛 한 니먼은 환경보호단체 워터키퍼 얼라이언스의 수석변호사로 일했으며, 가축의 공장식 사육을 혁파하기 위한 캠페인을 주도했다. 최근 지속가능한 식량 생산과 가축 복지 향상의 옹호자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타임》, 《오 매거진》, 《팔레오 매거진》 등 유수의 잡지에 활약상이 소개됐고, 〈PBS 뉴스아워〉, 〈닥터 오즈 쇼〉, 〈다이앤 렘 쇼〉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예일, 스탠퍼드, UC 버클리를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강연하였다. 2016년에는 식품을 주제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위크 다이얼로그’에 전 세계 23명의 초청연설자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전작으로 《돼지가 사는 공장》이 있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LA타임스〉, 〈허핑턴 포스트〉, 〈디 애틀랜틱〉 등 많은 보도매체에 글을 썼다. 캘리포니아주 볼리나스의 목장에서 남편 빌 니먼, 두 아들 마일스와 니콜라스와 함께 소들을 키우고 있다.




Ⅰ 소와 지구


"소들은 우물대는 입과 어슬렁대는 발굽으로 미국 서부를 비롯한 지구의 광활한 대지를 무차별 초토화했다. 소들은 수로를 훼손하고, 초지를 벌거벗겨 침식시키고, 야생생물 개체수를 줄인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그 결과 사막이 세계 곳곳에서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과잉방목이 환경을 해친다는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풀을 밟고 뜯는 것은 본질적으로 환경에 손상을 가한다는 점, 한 지역에 소의 개체수가 많아질수록 생테계의 피해가 심각해진다는 점이 소의 혐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틀린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러한 잘못된 추정들을 짚어보며 다양한 소고기 비판론을 다뤄보려고 한다.


기후 변화는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환경 위기이다.

'지구온난화가 인간활동이 초래한 위기라는 말은 하나의 정치적 음모에 불과하다'라는 회의론이 팽배할 정도로 미국인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었었다.

현재 이 음모론은 수그러들고 있는 추세이긴 하다.


"어떤 것이 기후변화에 더 나쁜가? 햄버거를 먹는 것? 아니면 사륜구동 대형 차량을 모는 것?"

햄버거가 더 나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환경을 위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보다 소고기를 끊는 것이 더 좋다는 제언으로 끝맺는 오늘날의 기사는 은근한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농업이 야기하는 세가지 주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이다.

특히 이산화탄소는 미국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82%를 차지할 정도인데 온난화 효과는 수십만 년이나 지속된다.

수십만 년, 즉,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덧붙여, 미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연간 인공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15%에 달할 정도이니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 셈이다.

이 중 92%는 화석연료 사용에서 나온다고 하니 비행기가 가장 오염 집약적이다.

교통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58%는 개인 차량에서 나오는데 미국인만큼 운전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농업은 다른 경제 부문보다 이산화탄소를 훨씬 적게 배출한다는 것이다.

현재 농업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의 14%가 이산화탄소이다.


"물론 소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이 시나리오의 일부가 될 필요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소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사람들의 구매 비용이 삼림 파괴, 대규모 단일작물 재배, 유독성 살충제와 제초제 사용 같은 파괴적 농법으로 흘러들 가능성이 더 높다.


…… 가축 방목이 야기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다. 방목에는 기계화 설비가 거의 필요 없고, 사료를 따로 재배하거나 구매할 필요도 없다. 소 사육, 특히 소 방목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미미하다.




Ⅱ 소고기와 사람


소고기는 어쩌다 건강의 적이 된 것일까?


마이클 폴란이 말했다. "과학자들은 최선의 의도를 내세우고 최고의 도구로 무장하고서, 우리가 먹는 기쁨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렇지만 건강에는 거의 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음식을 바라보게끔 만들었다."

20세기 동안 미국의 육류 소비는 등락을 거듭하게 된다. 동물성지방과 적색육 소비가 늘어난 나라는 아니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미국인이 동물성 지방을 식물성 기름으로 널리 대체해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의사와 영양학자가 적색육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했다.

그럼 또 사람들은 충직하게도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를 버리고 닭고기, 칠면조고기, 생선으로 갈아타게 되는 것이다.

적색육이 문제고 생선같은 것이 건강에 좋았다면 백색육은 많이 먹고 유지방, 적색육 섭취는 줄어들었는데 어째서 대표적인 식이 관련 질병들이 악화되는 것일까?

우리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은 왜 고기를 좋아할까?


식품과학자 해럴드 맥기는 이렇게 답변한다.

고기를 향한 깊은 우리의 갈망은 아마도 본능과 생리작용에서 온다. 우리가 문화적 동물이 되기 전부터 '영양 지혜'가 우리의 감각기 기관, 혀의 맛봉오리, 코의 냄새 수용체, 그리고 뇌에 내장됐다. 특히 혀의 맛봉오리는 중요한 영양소를 알아보고 쫓아가기 위해 진화했다. 즉 우리에게는 필수 염분, 열량 높은 당분, 단백질의 재료인 아미노산, 뉴클레오티드라고 불리는 핵산 구성 물질을 잡아내는 수용체들이 있다. 날고기는 이 모든 맛을 촉발한다. 근육세포(고기)는 상대적으로 연하면서 생화학적으로 매우 활동적이기 때문이다. (…) 그래서 고기에는 식물성 식품은 내지 못하는 감칠맛이 난다. 고기 요리의 풍미는 이 같은 생화학적 복잡성에서 나온다.


우리 몸은 무엇을 먹도록 진화했는가? 그것을 먹어야 한다.




Ⅲ 현실 그리고 미래


소와 관련해 제기된 문제는 소와 토지가 관리되는 방식, 소에게 먹이는 물질, 성장 촉진을 위해 투여하는 호르몬과 약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관행들, 자원 낭비, 살아 있는 가축의 장거리 운송, 도살장에서의 취급 방식, 달리 말해 소 관련 문제들은 토지 관리, 자원 낭비, 오염, 동물복지, 식품 안정성으로 정리된다.


모든 자구책의 첫 단계는 자기반성과 자기인정이다.

업계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고 부인만 난무한다.

비판을 공정하고 평가하고 문제 해결에 힘을 써야 하는데 그저 방어 태세로만 일관하니 나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인의 소고기 소비량은 30년 동안 급감했고 산업화된 세계 전반에서도 이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업계의 막무가내 태도에 소비 하락의 부분적인 책임도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위해서, 저자는 이러한 실행안을 내놓았다.

1. 방목 관리를 개선한다. 방목이 적절한 계획과 감독 없이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관리형방목은 환경에 유익한 정도라 아니라 생태계가 제 기능을 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잘 관리되지 못한 방목은 오히려 해가 된다. 모든 농부와 목장주들이 동참할 필요가 있다.

2. 일차포식자에 대한 살상을 멈춘다. 포식자는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존재다. 그리고 목장주는 인간사회의 그 누구보다 건강한 생태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없어선 안 될 동물들에 대한 포획을 멈추고 그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3. 가축에게 더는 약물을 주입하지 않는다. 항생제와 베타아고니스트를 비롯한 충격적이고 입맛 떨어지는 각종 약물과 각종 부산물이 비육장에서 소에게 일상적으로 공급된다. 이는 건강하지 않은 가축을 만들고, 이들은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는 식품이 되며,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은 강과 하천을 오염시킨다. 동물이 자연 상태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순수한 사료 외에는 어떤 것도 소에게 먹이면 안 된다. 곡물이 소에게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에게 곡물을 먹이는 것은 자원 낭비이자 수질오염과 대기오염을 거드는 일이기에 나는 곡물사료는 드물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소는 최대한 자기가 직접 먹이를 찾아 먹어야 한다.

4. 호르몬 사용을 중단한다. 젖소나 육우에게 어떠한 성장호르몬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배타아고니스트와 마찬가지로 호르몬 사용은 소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협하고, 인간에게도 위험한 식품을 낳는다. 이를 경계하는 소비자들이 늘어간다. 또한 이 관행은 시장에서 미국산 소고기의 입지를 제한한다. 유럽연합은 1981년에 가축에 대한 호르몬 사용을 금지했다. 성장호르몬 사용은 즉시 전면 중단되어야 한다.

5. 송아지를 비육장에 넣지 않는다. 소를 기르는 최상의 방법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풀을 뜯게 하는 것이다. 설사 비육장을 허용해도 어린 소에게는 적용해선 안 된다. 같은 건강과 복지 문제도 어린 소에게는 더 증폭된다. 소를 불가피하게 비육장에 보낸다 해도 적어도 생후 일 년, 가급적 생후 18개월 이전에는 보내지 말아야 한다.

6. 어린 소를 도살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생후 2년 미만의) 어린 소를 도축하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관행이다. 사육 기간 단축은 베타아고니스트, 호르몬, 고농축 사료의 사용(모두 중단해야 할 관행이며 고농축 사료의 경우는 최소화해야 한다.)에 따른 결과다. 소는 완전한 성체로 키운 다음에(최소한 생후 2년에) 도축해야 한다. 그것이 자원 낭비를 줄이고 질 좋은 고기를 생산하는 방법이다.

7. 장거리 운송을 중단한다. 목장주라고 모두 알겠지만, 소들은 트럭 운송 중에 눕지 않는다. 누우면 짓밟혀 죽는다. 이것이 소의 운송거리를 반드시 줄여야 하는 이유다. 동물복지인증 기준에 따르면 소 수송은 절대 여덟 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소들이 더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장거리 수송은 비인도적이다.

8. 도축 관행을 개서난다. 소는 인도적으로 도축되어야 한다. 인도적 도축은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뿐 아니라 고기의 질과 안전성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동물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소가 친밀함을 느끼는 소유주가 직접 다루는 것이다. 이것이 동물이 평온을 유지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아울러 모든 동물이 항시 인도적 취급을 받는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서 모든 도축장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야 한다.




저자의 주관적인 견해가 주를 이루다보니 아무래도 비판의식으로 인해 너무 편향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개개인마다 천차만별이긴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전에 도축과 관련된 외국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찾아보려 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결국 실패했지만 책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어렸을 때, 외가집에 들어가면 집 바로 오른쪽으로는 밭과 닭장이 있고 왼쪽으로는 밭과 외양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소는 내게 참 친숙하다.

음메에- 묵직한 울림이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여물이 소의 주된 밥이긴 했지만 할머니는 이따금 풀을 잔뜩 따다 주기도 하셨다.

그 때는 몰랐었는데, 할머니께서는 말씀해주셨던 게 문득 떠오른다.

"들판이 있으면 풀 뜯어 먹으며 살아야 하는데 여기는 넓은 들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주는 거란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라면 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일까? 그야 당연한 것이기에 생각해 보지 않는 것이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먹는 것이기에 알고 먹어야 하는 것이 맞다.

예컨대, 항생제를 주입당한 소들을 우리가 계속 먹게 되면 우리 몸에는 그렇게 미세한 양의 항생제가 계속해서 쌓이는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해를 입는 것은 바로 우리다.


가축과 관련된 인문서를 연달아 읽다보니 이전에 읽었던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가 문득 떠올랐는데 연관되어 읽기에 참 좋다.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동물들에 관하여』 ▶ https://blog.naver.com/shn2213/222561269433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니 벌써 5월 첫째날이 되었다.

난 왜이렇게 몸이 안 좋은 것인가.

가뜩이나 아픈 몸에 후유증까지 겹치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다.

일정이 계속 밀리니 마음은 조급하고,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니 마음 편히 쉴 수도 없는 것 같다.

따스한 5월, 따스하게 보내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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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5-02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궁금했는데, 잘 정리해주셔서 아하 그렇구나 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하나의책장 2022-05-03 22:59   좋아요 0 | URL
저자가 미국인인지라 미국 기준으로 글을 작성한거라 누군가에게는 조금 지루하게 다가올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다큐멘터리 한 편 본 것 같아서 전 굉장히 많이 배운 느낌이였어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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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나, 책과 마주하다』


현실이었다.

그녀에게 닥친 모든 일은 현실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손 내밀어 준 것은 바로 책이었다.

어떤 책이 그녀를 구렁텅이에서 꺼내준 것이었을까?


저자, 전안나는 19년 차 직장인이자 『1천 권 독서법』, 『기적을 만드는 엄마의 책 공부』, 『초등 하루 한 권 책밥 독서법』, 『쉽게 배워 바로 쓰는 사회복지글쓰기』, 『초등 6년, 읽기 쓰기가 공부다』 등을 쓴 작가이고, 전국을 다니며 독서법을 강의하는 강사이다. 아동 학대 트라우마를 벗어나려 노력하다 보니 아동·청소년 담당 사회 복지사가 되었고, 가정 폭력 전문 상담사가 되었고, 아동 인권 강사가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오랫동안 몸 바쳐온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 등이 겹치면서 우울증과 식욕 부진, 불면증에 시달렸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던 중 기적처럼 독서의 기쁨을 알게 되어 하루 한 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100권을 읽자 불면증이 사라졌고, 300권을 읽자 미웠던 남편과 시어머니가 이해되고 관계도 좋아졌다. 500권을 읽자 삶에 대한 의욕이 다시 타올랐고, 800권을 읽자 책이 쓰고 싶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1천 권을 읽자 『1천 권 독서법』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Ⅰ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다치바나 다카시


자기 역사를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즉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해서이다.


전안나

생년월일 1982년 2월 24일

출생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출생 신고일 1987년 12월 21일.

출처 입력


최초 공식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만 이름도 생년월일도 모두 다르다.

저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처럼 태어난지 5년이 지나서야 양부모님 집으로 가게 된다.

바깥세상과 분리되어 존재 없는 아이들, 태어나서 죄송한 아이들이 대규모로 수용되었던 고아원은 1980년대부터 소규모 가정집 형태의 그룹홈으로 변해갔으며 한참 한국에서는 고아원이 번창하던 시기였다.

한편으론 마음 아픈 일이다. 그 시기가 대규모 입양 아동 수출이 이루어진 시기였으니깐.


무한도전에서 해외프로젝트 중 미국으로 입양된 딸과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의 만남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당시 엄마는 아이를 낳았는지조차 몰랐고 집안 어른들은 또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핏줄을 버렸던 것이었다.

다행히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 훌륭하게 컸지만 이유가 참 황당할 수가 없었다.

실제 다른 입양 프로그램들을 보면 그 시기에 아이를 버린 이유가 참 어처구니가 없다.

고아원에 버렸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모두 해외입양을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또한 해외입양을 간다해도 모두가 안정적인 가정으로 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미국에서 아이를 입양할 시에 지원하는 보조금이 있어 이를 악용하여 아이를 마구잡이로 입양해놓고 방치하며 학대한 선례도 분명 있다.

버려진 이들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 분명 버린 이들의 잘못인데, 그렇게 고아원에 버려진 이들은 오히려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짙은 남색에 둥근 아치형 철문으로 된 고아원 출입문이 생각난다.

안에는 생활관이 있었고, 교회가 있었고, 어린이집이 있었다. 그곳에는 수십 명의 여자아이가 살았고, 수용실처럼 널찍한 방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들 십여 명이 함께 지냈다. 언니부터 동생까지 여러 명이 한방을 썼는데, 자다가 밤 12시쯤 되면 선생님이 우리를 깨우곤 했다. 이불에 오줌 싸지 말라고 일부러 깨워서 화장실에 보내는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긴 복도를 따라 줄을 서서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비몽사몽 잠을 자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언니들에게는 책상이 한 개씩 배정되었다. 나는 고작 다섯 살뿐이었지만 자기 책상을 가진 언니들이 부러워서 일부러 올라가서 앉아 보던 기억 조각이 있다.


어느 날은 어린이집 준비물이 우유갑이라 담당 보육 선생님에게 준비물을 말하니 마침 책상 위에 있던 우유 한 팩이 있었는데 이를 주욱 들이키더니 빈 우유갑을 그녀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게 참 먹고 싶어 스스로 애처롭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말한다.

"대개의 사람들의 최초 기억에는 강한 희로애락의 감정이 동반되어 있다.


저자의 최초의 기억은 '먹을 것'에 대한 슬픈 기억일까? 어린이의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한 '어른의 무심함'에 대한 분노의 기억일까? 지금도 남아 있는 '식탐'인 것일까?




Ⅱ 하염없이 작아지는 밤 | 「보통의 언어들」, 김이나


유난스러운 자들이여,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특별함을 지키자.


화가 날 때 표현하지 않고 꾹 꾹 참는다는 저자.

간혹 그녀의 화가 겉으로 드러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라고 한다.

그렇게 참고 참는 그녀가 2009년 5월 5일 태어나서 가장 분노했던 날이라고 한다.

그 날은 양어머니와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된 날이었다.

집안일을 해야만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었으며 대학 학비 내준 적도 없고 용돈도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근로 장학을 하고 총학생회 활동으로 봉사 장학금을 받다가 저녁에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를 하고 주말에는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등록금을 충당하고 양어머니에게 생활비도 매달 주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게 되었는데 양어머니가 급여 통장을 본인 명의 통장으로 바꾸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규정 상 그렇게 안 된다고 선을 긋고 급여 명세서도 보여주질 않으니 보란듯이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돈을 주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고 폭력을 썼다고 하니 어렸을 때는 얼마나 심했을지 눈에 훤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결혼할 때 준다고 얼버무렸지만 돈이 적다며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6000만원이었다. 가져다 준 돈이 무려 6000만원이었지만 결국 저자는 3개월 할부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엄청난 욕과 함께 생활비를 요구했고 저자는 결국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보지 않고 전화를 차단하는, 소극적 저항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저자에게는 충분했다.

이렇게 양어머니를 해결하고 나니 이제 시어머니가 문제였다.

뜬금없이 불쑥불쑥 내는 화로 인해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병원에 데리고 가니 '화병'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시어머니 본인이 받았었던 시집살이의 울분을 주체할 수 없으니 애꿎은 며느리들에게 화살이 간 것이었다.

다행히 약을 먹고 치료를 하고 나니 고부갈등이 언제 있었냐는 듯 관계는 좋아졌다고 한다.


저자의 어린 시절을 낱낱이 듣지 않아도 눈에 훤할 정도이다.

그간 얼마나 힘들고 고되었을지 추측하기도 힘들다.

저자야말로 진즉 화병에 걸렸을 것이다.

미국 임상 심리학자 타라 브랙이 「받아들임」에서 말한다.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의 경계는 우리 자유의 경계"라고.


마음의 분노와 화를 잘 다루어 '자신 안에 있는 화와 분노가 있음'도 수용한다면 분명 꽉 차 있던 분노가 조금씩 사그러지지 않을까?


그냥 살아남으면 돼.

그게 다야.


그렇지만 살아남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보통 큰일이 아니다.

대단한 일이다.




Ⅲ 살기 위해 읽다 |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조너선 콧


엄청난 양을 읽었는데 상당 부분은 무념무상으로 읽었죠.

전 사람들이 TV를 보듯이 책 읽기를 즐겨요.

읽다가 잠들기도 하고요.

우울할 때 책을 한 권 집어 들면 기분이 좋아져요.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교통사고로 한 달간 입원했을 때 양아버지가 사다준 위인전을 계기로 저자의 생존독서가 시작되었다.

부모가 없다는 것, 입양되었다는 것, 학대를 받았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손을 뻗은 유일한 것이 책이었다.

그렇게 독서는 유일한 취미이자 친구가 된 셈이었다.


신실한 신자였던 양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가고 금요 철야 예배를 드리고 매일 성경을 읽고 성가대를 하고 전도를 하면서 수많은 영혼을 살렸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남편과 입양딸에게는 폭력과 폭언을 일상화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화되는 법은 없다.

저자는 양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성경까지 읽어봤지만 그것은 양어머니의 인성 문제였을 뿐이었다.


나는 충전기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배터리처럼 살았다.

사랑스러운 아이도, 직장도, 남편도 충전기가 되어 주지 못했다. 술도, 쇼핑도, 종교도 충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자, 책은 곧바로 충전기가 되어주었다. 마음속에 에너지가 살아났다. 오랫동안 방전된 핸드폰을 잠시 충전기에 꽂는다고 바로 100% 충전이 되지 않듯이, 처음에는 책 한 권 읽으면 5% 충전이 되었다가, 다시 책을 덮고 육아와 회사 일을 하다 보면 1%로 떨어지기를 무한 반복했다. …… 책은 나에게 충전기였다.




그간 버틴 것이 대단하다는 말도,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의 마음이 들었다.

저자에게 책은 충전기와도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지 감히 예상해보지만 마음 속 생채기가 심할 것이라 생각한다.

참 희한한 게,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억지로 지우고 싶어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어제 일인 것 마냥 선명하게 그려진다.


나에게 있어서, 책은 안식처이자 도피처이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것이라는 이정표나 다름없다.

글쓰기 노트에 쌓여져만 가는 책들 중 나의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이 나의 기록물이자 하나의 역사인가보다.

하루가 너무 아까울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데 나는 정작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모르겠다.


책 읽는 내내, 저자와 커피 한 잔씩 놓고 그녀의 지난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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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Schatten 2022-04-25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그 아이가 보육원 아이인 걸 몰랐지만 고아원에 초대받아 친구네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에서 고아라는 티를 내지 않던 다른 아이들도 만나게 되어 그 아이들이 당황해해서 무척 놀랐던 적이 생각나요. 그 이후로는 누가 집에 오는 것도 싫고 제가 초대받아 가는 것도 좀 싫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또 친구네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고아원이어도 별 생각도 충격도 없이 그냥 고아원 동생들이랑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ㅋㅋ
버팀목이 없을 때 책만큼 위로가 되고 든든한 존재가 없는 거 같네요.
(물론 고아도 기아도 탁아도 있고 탁아의 비중이 높아 싸잡아 고아라고 말하면 좀 뭣하지만 요건 좀 봐주세요. ^^;;)

하나의책장 2022-05-03 23:05   좋아요 1 | URL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사람한테서 위로받고 격려받으면 그만한 힘도 없긴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 그러니깐 가족이나 친구 등 모두가 나에 대해 온전히 이해해준다고 할 순 없으니 온전하게 위로받고 격려받으려면 사실 책만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정말 힘들 때 책장에서 책부터 마구마구 집어들어요ㅎ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보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 응원받고 격려받는 게 더 큰 힘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항상 응원할게요, persona님^^

새파랑 2022-05-07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축하드려요 ㅋ 몸도 괜찮아지시고 좋은 날씨 5월을 즐겁게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

하나의책장 2022-05-19 23: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5-07 0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하나의책장 2022-05-19 23: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5-07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2-05-19 23:5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굿밤되세요⭐️

서니데이 2022-05-07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2-05-19 23:5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 2022-05-08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ㅎㅎ 책은 충전기 ㅎㅎ 공감합니다 ㅎ 읽을땐 충전되는데 리뷰쓸땐 배터리 떨어지는건 저 뿐이겠죠? ㅠ ㅎㅎㅎ 하나의 책장님 리뷰도 사진도 넘나 예뻐서 참 좋아요 ㅎㅎ 항상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하나의책장 2022-05-20 00:04   좋아요 0 | URL
앗! 러블리땡님도?ㅎㅎ 전 정말 마무리짓지 못한 리뷰가 너무 많아요. 중반부까지 쭈욱 써놨으니 마무리만 지으면 되는데 쉽지 않네요ㅠ 항상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굿밤되세요❤️
 
유튜브 활용 실용영어 체득의 정석 - 유튜브의 영어 콘텐츠와 학습지원 기능 활용 3단계 의사소통 훈련 노하우
김신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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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핵심만 담았기에, 시간 제약이 있는 이들에게 더 적합한 『유튜브 활용 실용영어 체득의 정석』!

제목부터 자연스레 눈길을 끌고 있는데, 실제 영어 왕초보자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 김신호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 시골에서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생업에 종사하며 검정고시, 9급 및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야간 대학교(성균관대)를 졸업하였다. 그래서 영어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어서 어느 시험에서나 평균을 끌어내리는 주범이었다. 급기야 휴직까지 해 가며 준비한 행정 고시에서 영어 과락의 수모를 당하고 이후 영어를 아예 잊고 지냈다. 그런데 복직 후 7년여 세월이 흘러 나이도 40대 중반이 돼 가던 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서 토익시험 성적을 승진에 반영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특히, 경험조차 전무했던 리스닝 학습방법을 몰라 헤매다가, 인터넷의 영어방송 등을 활용, 학습하여 단기간에 승진 상위 가산점 점수를 획득하여 조기 승진하였다.

그런 경험 과정과 관련 정보를 담은 『e 리스닝 그게 뭐지?』(NE능률, 2002)도 출간하고, 이전엔 꿈도 못 꿨던 국비 장기연수 시험에도 도전, 합격하여 유학도 다녀왔다.

이후 ‘New 공짜로 영어 귀뚫기’ 카페(한때 회원 5만여 명)를 개설하여 링크된 라이브, VOD 등 영어방송을 무작정 듣기 위주로 학습하였는데 별무성과였다.

그러다가 스마트폰 등장 이후 유튜브의 다양한 수준 및 유형의 학습 강좌, 네이티브 영어채널 및 학습지원 기능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을 유기적으로 활용, 학습 및 습득하여 UN 산하 국제기구 주재관에 선발되어 파견근무도 하였다.




◆ 영어공부에 처음 또는 재도전하려는데, 무엇에 대하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

◆ 섀도잉 방법이 최고라고 해서 시도하다가,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헷갈려서 포기한 분.

◆ BTS(방탄소년단) RM처럼 미드로 영어공부를 시도하다가, 모르는 어휘나 어구도 많고 아는 단어조차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좌절한 분.

◆ 좋다는 영어학습 유튜브 채널 몇 개를 열심히 수강하고는 있는데, 향후 로드맵도 없고 성공에 대한 확신도 없는 분.

◆ 실용영어를 습득하려면 무엇보다 이해 가능한 인풋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었는데, 활용할 만한 콘텐츠 및 도구나 구체적 방법을 몰라서 실행하지 못하는 분.

◆ 회화책으로 학습하거나 학원 강의를 수강하여 원어민과 기본적인 몇 마디까지는 대화가 가능한데 그 이상은 안 되는 분.

◆ 문법, 단어, 독해 공부는 했는데, 듣고 말하고 쓰기는 어떻게 익혀야 할지 모르는 분.

◆ 토익, 토플 등 시험 점수가 어느 정도는 나오는데, 그 이상은 아무리 해도 오르지 않는 분.

◆ 원어민 강사가 하는 말은 그럭저럭 알아듣겠는데, 본토 방송, 드라마, 영화, 원어민 간 대화 등은 거의 또는 아예 안 들리는 분.

◆ 국제회의 등에서 발표, 토론, 인터뷰 등을 제대로 하고 싶거나, 업무상 영문 이메일, 보고서 등 작성 때문에 걱정이신 직장인. 영문 자소서, 학업 계획서, 리포트, 에세이 등을 직접 작성하고 싶은 학생.


이렇게 열거한 대상 중 하나에 속해있다면, 분명 이 책에서 단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은 영어공부를 학습과 습득으로 구분한다.

학습은 학교, 학원에서 문법 등을 배우고 이를 적용하여 독해하고 발음 방법을 배워 낭독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습득은 이러한 학습 과정없이 이해 가능한 영어를 상당 기간 듣다 보면 영어를 알아듣고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책은 1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1부에서는 실용영어 체득 방법의 이론적 기반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실용영어 체득 3단계와 단계별 유튜브 채널 그리고 각종 학습지원 기능 세팅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실용영어 체득 방법 및 프로세스를 제시한다.

2부에서는 저자의 영어공부 관련 인생 여정과 저자의 방법으로 연습하여 미국에 무난히 안착한 지인의 영어 학습 및 습득 내용 등에 대해 나온다.




알다시피 우리는 잘 짜여진 커리큘럼에 맞춰 영어를 공부한다.

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실제 영어를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 닥치면 식은 땀부터 나게 된다.

고등학교 때 잠시 갔다온 미국에서 뼈저리게 느꼈으니깐.


초등학교 때, 처음 배우는 영어가 참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였고 무엇보다 '한글'이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언어와 관련된 과목은 항상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는데 초등학교때 처음 접했던 영어도 그랬다.

고모부가 외국인이셔서 큰고모가 미국에서 살고 계시는데 잠깐잠깐 영어로 짤막하게나마 통화하면 그렇게나 신이 났다.

그러다 타이밍이 맞아 미국에서 잠시 머물 기회가 생겼었다.

항상 영어와 관련된 과목은 100점 아니면 한 두개 틀린 게 전부였으니 틀에 맞춰진 영어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외국에 나가려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쫄보라고 할 수 있는 내가 경유까지 해서 가야 하는 먼 길이기에, 급한 대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영어회화를 더 외워갔었다.


인천공항을 떠나 LA에 착륙했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영단어 암기를 시작으로 문법, 독해 등을 배웠는데 막상 가보니 우물 안 개구리인 것만 같았다.

당시 한국교회에도 한 달여간 다니면서 한 남매와도 친해졌었다.

누나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동생은 5살이었는데 이민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영어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남동생은 5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고 있었는데 누나는 참 힘들었다고 한다.

겨우 영어가 입에 붙었을 때는 오히려 한국어가 떠오르지도 않았고 어떤 때에는 영어, 한국어가 너무 헷갈려 힘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알고있던 영어는 잠시 제쳐두고 나 스스로 어린 아이라 생각하며 두 달 정도 처음 배우는 언어처럼 습득하며 지냈었다.

놀랍게도 한 달 딱 지나고나니 나도 모르게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었다.

그 때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역시 영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영어권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여의치 못하다면 실용 영어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미드나 영화를 자주 보고 있는데, 특히 영어권 뉴스를 접할 때는 잡지나 유튜브를 보곤 한다.

요새는 영어권에서 살고 있는 유튜버들이 일상 브이로그를 많이 올리고 있는데 실제 이런 영상들을 공부삼아 보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유튜브를 활용하여 실용영어를 체득할 수 있는 방법이 가득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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