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보름이 훌쩍 지나버렸다.

괜찮다가도 아프면 이렇게 잠수아닌 잠수를 탈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

보름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만 한 보따리다.




0.

이제야 얘기할 수 있지만,

작년 겨울에 하마터면 코로나에 걸려 죽을 뻔 했었다.

몸이 좋질 않아 백신을 맞지 못했었고 마침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으니 온종일 집에만 콕 박혀있었다.

평소 온갖 노력은 다 하고 있었기에 코로나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었다.

가족들 또한 나때문에 특히나 조심했었는데, 동생이 직장에서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행히 동생은 무증상이었지만 나는 고열, 폐렴까지 다 앓고 말았다.

크게 아프면 안색이 파리해지거나 새하얗게 질리곤 하는데, 안색이 새까맣게 변하는 건 처음이었다.

영상통화로 그런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끝내 울었고, 나도 울었었다.

심상치 않게 아팠었기에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외할머니만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전화를 받질 않으니 엄마에게 우연히 전화했다가 알게 되었는데 손녀 걱정에 보름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셨다고 한다.


결국 생일도 못 보냈었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면, 기억에 남는 생일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저 바램이었다.

당시 격리 기간은 2주였지만 보름 이상을 격리된 채 시간을 보냈었고 한 달은 목소리가 아예 나오질 않았었다.

한 달이 훌쩍 지나고서야 병원에 다니면서 폐 사진도 두어번 찍고 링거도 맞고, 그렇게 또 두어달을 보내게 되었다.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실제, 경험했던 일이다.

종일 누워 있는데도 기억이 끊길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꿈을 꿨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왔었는데 아직도 그 꿈이 선명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꿈에 나와주셨으니 이번이 두번째였다.

꿈의 마지막 부분을 살짝 얘기하자면,

(지금도 희한한데 외할아버지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휴대폰도 아닌 수화기를 들어 외할아버지 번호를 꾹 꾹 눌러 전화를 걸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전화를 안 받으셨다.

나 외에 5-6명 정도의 사람들도 휴대폰이 아닌 수화기를 들어 데리러 오라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차를 타고 하나 둘씩 떠나고 있었는데, 의자만 덩그러니 있는 이 공간에 나만 혼자 남을 것 같아 초조해졌었다.

외할아버지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었는데도 결국 전화를 받지 않으셨고 결국 모두 떠나버린 그 공간에 나홀로 의자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고개를 들어보니 길 건너편에 언제 오셨는지 외할아버지가 서 계셨었다.

나는 대뜸 "할아부지, 왜 전화를 안 받으셨어요?", "할아부지, 저 여기서 하루종일 기다렸어요.", "빨리 오셔서 저도 데려가요."라며 툴툴거렸는데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한껏 웃어주시더니 가라는 손짓을 보냈었다.

그리고선 그렇게 잠에서 깼는데 두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었다.

참 희한한 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희한하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가 어린 나이에 외할아버지께서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었기에 외할아버지와의 기억이 전혀 없다.

유일하게 딱 한 장면만 기억난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외할아버지께 서툴게 세배한 후에 외할아버지 무릎에 풀썩 앉아 고개를 들어보니 외할아버지께서 한껏 웃어주신 기억, 그 기억만이 유일하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기에 가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데 엄마는 들을 때마다 신기하다고 하신다.

그 때의 내 나이가 세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시 안방의 구조는 물론 분위기와 향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가끔씩 엄마랑 외할머니가 '사진으로 남겨줄 걸'이란 말을 종종 하신다.

외할아버지께서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셨었는데 당시 삼촌들은 결혼하지 않았었고 유일한 손녀가 나 뿐이었으니 더 아껴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엄마에게도, 외할머니께도 꿈 얘기를 했었는데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해주셨다.

"그렇게 생전에 손녀 예뻐하더니 지켜주고 싶었나보다."


심하게 앓았으니 후유증이라도 없었으면 좋겠거니 했지만, 심하게 앓으면 후유증도 심하게 온다고 한다.

병원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영양제까지 열심히 챙겨먹고 있으니 올해 정말 건강에 힘써야 할 것 같다.

지금은 경증에 가깝다고 하지만 워낙 심하게 앓아서인지 지금도 나는 예민하게 받아들여져 긴 외출은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4월 하순 쯤, 거의 반 년만에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셔봤으니;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곧장 미각과 후각을 잃었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 천천히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완벽하게 돌아오진 못했고 후각신경에 이상이 생겨 분명 집 안에 있는데도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나 숨을 못 쉴 때도 있다.

특히 어이없을 정도로 금세 피로감이 심해져 뭘 할 수가 없다.

병원 한 번 갔다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곧장 이불 속으로 뛰어드니 나가는 것도 자신이 없다.

스승의 날, 선생님과 만나려고 했지만 반나절 이상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다음으로 기약하고 선물만 따로 보내드리고선 통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요즘 내과, 안과, 피부과, 한의원 그리고 대학병원까지 나의 일주일, 나의 한달은 병원 가는 날로 가득하다.


올해 액땜 제대로 치뤘다고 웃어 넘기... 기에는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며 남은 반년은 웃음 가득하게 보내보자고 주문을 걸어본다.




1.

그간 주문했던 책들도 한가득이고, 받았던 책들도 한가득이다.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해 올리지 못한 포스팅이 이렇게 또 쌓여만 간다.

일단은 마무리만 하면 바로 올릴 수 있는 리뷰만 9개니, 얼른 마무리짓고선 하루에 1-2개씩 매일 매일 올리면 될 것 같다.

괜찮다가도 갑자기 심하게 아프면 일주일이든, 보름이든 잠수아닌 잠수를 탈 수밖에 없지만 최선을 다해 올려봐야겠다.

이렇게 나는 또 마감에 늦어지게 되고 동시에 마음의 짐 또한 더 얹혀지게 된다.




2.

가운데 책상을 기준으로 오른쪽 벽 한 면이 책장으로 쭉 둘러져 있고 바로 건너편에는 세 개의 칼림바, 피아노, 가야금, 하프 그리고 기타가 있다.


건반 위에 살포시 손을 올려 연주해보는 피아노, 명주실 위에 손을 얹어 한 줄, 한 줄씩 뜯어보는 가야금……에 이어 새롭게 배우고 있는 악기가 있다.

바로, 바로 하프와 기타이다.

물론 독학으로 나름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기타는 나중에 원데이클래스 한 번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쉬엄쉬엄 하다보니 진도가 전혀 나가질 않지만 악보보고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까지의 실력이 목표이다.


아! 가볍게 악기를 하나 배우고 싶다면 칼림바를 추천하고 싶다.

요령만 터득하면 칼림바는 전혀 어렵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다.

선물받은 칼림바를 받자마자 코드를 눈에 바로 익히니 연습없이도 처음부터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었는데 코드만 볼 줄 안다면 쉽게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새로운 악기를 배울 때면,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는 정도를 목표로 잡고 연습한다.

그래야 한동안 악기를 다루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 잡는다 해도 손이 저절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예 잊어버리면 너무 아깝기에, 아쉽기에.




3.

마당 한 켠에 옥외마루를 "하나의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실내에서 키우던 화분들을 밖으로 꺼낸 것밖에 없어 아직 꾸몄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키우는 식물과 다육이들이 꽤 많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고추랑 방울토마토도 심었는데 벌써 키가 많이 자랐다.

모종을 사면서 조그마한 식물도 세 개 데려왔는데 분갈이하기도 전에 며칠 지나고나니 이렇게 꽃이 활짝 폈다.

예쁘게 꾸미는 게 마무리되는 그 때, 살포시 완성된 공간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따스했던 계절 내내 피었던 꽃이 점점 져가고 잎마저 다 떨어지면 그 때 겨울이 온다.

잎이 지고 앙상한 나뭇대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물을 주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렇게 봄이 다가오니 한껏 반기듯이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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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9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의책장 2022-05-20 00:09   좋아요 1 | URL
집에서도 방역 철저히 했었는데.. 결국 걸리게 되더라고요ㅠ 오미크론도 아니고 델타에 걸려서 더 호되게 아팠었나봐요. 최고조로 아팠을 때, 실제로 파노라마처럼 막 지나가는데 뭔가 억울함이 앞서더라고요😭 그 때 두 주먹 꼭 쥐며 낫자고 마음먹었던 게 컸었던 것 같아요. 이제야 편하게 말할 수 있긴한데 아직도 제게 코로나는 마냥 무섭게만 느껴져요😱

mini74 2022-05-20 21: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고생하셨어요. 세상에 ㅠㅠ 외할아버님의 사랑이 뭉클합니다. 하나의 책장님 얼릉 건강해지시길 기원합니다.

하나의책장 2022-06-15 23:14   좋아요 1 | URL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