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이면을 보다 - 신용권의 역사기행
신용권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대마도, 영월 그리고 제주도, 『역사의 이면을 보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역사의 이면을 보다! 말그대로 역사의 다른 면을 보는 것이다.

책은 크게 '경계의 땅, 대마도를 찾아서', '영월의 역사기행', '제주 4·3을 말하다'로 나뉘어지는데, 세 파트를 쭉 읽고나면 대마도로, 영월로, 제주도로 찾아가 역사공부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이 세 군데의 지역에 대한 역사를 세세하게 다루어주어서 역사에 대해 깊이감을 느껴야만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같다.

실상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너무 단편적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면 분명 열에 하나는 '일본'이라 답할 것이다. 한일 관계를 일컬을 때 쓰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대마도에 더 맞춤인 말인 것 같다고 한다.

실제 대마도는 거리상으로만 봐도 일보보다 부산에서 훨씬 더 가깝다. 대마도는 지리적으로도 한국과 가까운 만큼 역사적으로도 한국과 가깝다.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을 가르는 '경계의 땅'이었던 대마도는 오랫동안 침략과 정벌을 거듭하는 곳이자 반대로 교류와 친선의 공간이기도 했다.

대마도는 조선 영토였으나 일본의 근대 국가 재편 과정에서 영토로 공식 편입되었다고 한다.

 

"칼같은 산들은 얽히고설켜 있고, 비단결 같은 냇물은 맑고 잔잔한 영월(寧越)" _고려 후기의 학자 정추

영월에 가보지 않았지만 충분히 이 대목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영월에는 어라연과 동강이 있고 단종과 김삿갓의 역사가 있으며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정선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5대 적멸보궁이라는 사자산 법흥사가 있고 별빛만큼 노을이 아름다운 천문대도 있다. 그윽한 풍류의 멋을 즐길 수 있는 정자가 있고 박물관도 있다.

영월에 가게 되면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다. 저자는 그곳이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고 한다.

단종이 묻힌 장릉도 있지만 경관이 빼어남에 있어서는 청령포에 못 미친다고 한다.

단종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처연함이라면, 그 처연함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곳은 바로 청령포이다.

 

수학여행의 인기여행지는 단연 제주도이다. 나 또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왔는데 당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친구들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쌓은 시간이었다.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젊은 땅, 정열의 땅으로, 지금으로부터 150만 년 전에 용암의 붓질로 태어난 우리의 귀한 땅이라고 한다.

용처럼 튀어 오르고 불꽃처럼 분출하는 화산의 흔적이 있으며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이 많고 땅에는 용 비늘처럼 새겨진 자국들이 있으며 용트림한 자국은 제주에서 귀양살이했던 추사 김정희의 역동적인 글씨인 추사체와 많이 닮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 제주에 관련된 전래동화 내용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제주의 옛 이름은 탐라국이며 깊고 먼 바다의 섬나라라는 뜻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에도 아픔은 있다. 바로 '제주 4·3 사건'이다.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의 몇 줄이 고작이여서 그렇게만 알고있었는데 그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다룬 다큐를 보고선 정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충격이었다.

강제적으로 입 다물게 하였다. 모두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제주 4·3 사건'이다.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도 지켜야 할 문화 유산이 굉장히 많다.

실제 우리나라는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세계 기록 유산을 보유한 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도는 전혀 높은 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세계기록유산으로 된 기록물들이 한문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은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여 좀 더 우리나라 국민들이 우리나라 유산에 대해 더 깊게, 자세하게 알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암, 바람의 노래 - 팔만대장경을 둘러싼 역사 무협 팩션
손선영 지음 / 트로이목마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왜구로부터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그의 이야기, 『소암, 바람의 노래』

 

 

 

 

 

『하나, 책과 마주하다』

 

바다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땅에는 소암대사가 있었다.

 

해인사하면 번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국보 제 32호인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절, 몽골군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만든 불교 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은 것을 말하며 경판(經板)의 수가 무려 8만 1258판에 이른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당시 왜구들은 조선을 침략한 동시에 소중한 문화재들까지 약탈해갔다.

그러나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예외였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조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땅에서는 소암 대사와 승병들이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소암, 바람의 노래』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팔만대장경을 어떻게든 손에 넣기 위해 가져오라 명한다.

임진왜란의 필두를 맡았던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카는 교섭 결렬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부산에 당도했고 빠르게 조선을 침략하기에 이른다. 부산성이 함락되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상인 출신이었던 그는 대마도 도주인 소 요시토시와 사돈 관계를 맺고 정권을 잡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고니시 유키나카는 1군, 가토 기요마사는 2군이었는데 2군의 병력은 무려 이만이천 명에 달했다. 그 둘의 목적은 바로 단 하나, 한양의 함락이었다.

제 1군은 조령을 거쳐 한양으로, 제 2군은 죽령을 거쳐 한양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전쟁이 발발한 지 이십 일만에 수도 한양이 왜군에게 함락되었다.

노략질하는 왜구의 습성에 따라 승리에 만취하여 이것저것을 주머니 속에 넣기 시작했다.

승리에 취한 기쁨을 만끽할 새 없이 고니시는 그림자 무사를 내세워 도요토미의 밀명을 이행하기 위해 따로 일만 명의 군사를 선박에 주둔시켰다.

카게무샤를 세우고 남하하던 고니시는 의지를 다졌다. 별동대가 해인사를 함락시킨다!

조선관군은 말그대로 추전박살이 났다. 일단 나라의 임금이 수도인 한양과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부터가 맥빠지게 하는 대목이었다.

임금의 도망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분노하여 노비 문서 등이 보관된 장례원을 제일 먼저 태웠다.

당시 임금이 도망쳤는데도 나라의 백성들은 항복하지 않았다.

일본의 전쟁은 성을 공격하면 공격받은 성주가 수성을 했기에 왕이 도망쳤는데도 나라가 항복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서경덕의 외아들인 서응기가 해인사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소암을 만나게 된다.

이전부터 아버지는 부모를 잃은 아이를 보면 언제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서응기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무렵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아이는 서응기를 형님이 아니라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렇다. 그 아이가 바로 소암이다.

"아니, 이게 뭔가?"

"팔만대장경입니다. 이 손 안에 있지요."

…… 밤을 샜던 게 분명했다. 손가락 하나하나에 대장경 판전의 글자를 느끼며 장경판을 지켰던 것이다.

"형님, 아직 성불하시려면 멀었습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러면 자네 손은 부처의 손인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부처의 손을 잡을 마음이 되었나 싶어서."

서응기는 소암의 손을 맞잡았다. 힘을 빼려던 소암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서응기가 소암대사와 담소를 나누던 중 그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중이던 승병들을 보게 된다.

자신만의 특기로, 무기로 훈련중인 승병들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별한 게 있다면 주작, 청룡, 백호, 현무가 등장한다.

대장경은, 상징이다. 그저 불교, 폄훼하기에는 다른 것이 도사렸다. 도사림 속에 사람이 들었고 소암이 섰으며 아이들이 커갔다. 보전하고 지켜야 했다. 내가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갈 보통을 위해, 서응기는 생각과 사찰, 과거와 사람을 아울렀다. 유도와 불도는 지금을 지킨다. 응축이 대장경이다. 미래는 모른다.

그렇게 감탄하는 와중에 멀리서 뿔나팔 소리가 울렸다. 뿔나팔 소리, 바로 침략이었다.

왜군의 침략을 알게 된 해인사에서는 주지스님부터 원로스님, 소암대사 그리고 서응기까지 어떻게든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대책을 세운다.

소암대사는 다짐한다. 팔만대장경은 꼭 지켜내겠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팔만대장경에 집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조선의 보이지 않는 심장은 해인사, 즉, 팔만대장경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암대사는 결국 팔만대장경을 지켜낸다.

일천 명의 병사를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게 한 자.

살수를 재현하여 아무렇지 않게 병사를 수장시켰던 자.

살수에 살수를 더해 병사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자.

가짜 일주문으로 유인해 가두고 불태웠던 자.

팔만대장경 판전을 불태우겠다 큰소리 치며 남은 병사의 사기를 꺾어버린 자.

고니시가 바라본 소암대사의 모습이었다. 그도 느낀 것이었다. 전쟁의 신이 있다면 바로 소암대사가 아닐까하는.

일본은 참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내 기준에서 가깝다는 것은 지리적인 것을 의미한다.

멀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인 것 같다. 과거 그들이 우리에게 한 짓들로 인해 깊어진 마음의 골.

징병·징용제, 위안부 문제부터 약탈된 문화재까지. 노략질한 것도 모자라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 일본인들의 만행을 곱씹어보면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건 당연하다.

사과의 기미는 커녕 군함도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것만 봐도 일본 정부는 스스로를 무개념 정부라고 각인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을 이끌고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조선을 지켰다면 땅에서는 소암 대사가 조선의 보이지 않는 심장인 팔만대장경을 지켰다.

임진왜란에 대해 공부했을 때 의병과 승병들이 목숨을 바쳐 전투에 임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읽으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되었다. 그래도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쓴 글이니 전부 허구적인 내용은 아니다.

아마 읽고나면 마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옛날 아주 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역사라 하면 대개 학교에서 배운 한국사, 근현대사가 전부일 것이다. 허나 그것은 너무 단편적이다.

생략하거나 축약한 내용이 참 많기에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역사 분야의 책과 다큐는 꾸준히 보고 읽는 게 좋지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 중국을 만든 음식, 중국을 바꾼 음식
윤덕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  재미있는 관점으로 중국사 훑어보기,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하나, 책과 마주하다』

 

한 나라의 문화·역사를 엿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장소, PLACE이며 그 외 또 다른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음식, FOOD이다.

시중에 역사책은 많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식이란 소재로 중국의 역사를 쭉 훑어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겠는가!

 

춘추전국시대에 귤 한 상자만 있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 만주의 귀족들이 푹 빠진 음식이 샥스핀이다?

양귀비가 죽기 전 먹은 음식이 호떡이다? 청나라 시절, 중국의 13억 인구 증가의 일등공신이 바로 고구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실일까?

 

홍콩, 광저우와 항저우 등지에서 사는 중국인들은 새해 춘절이나 중추절 명절에 귤과 유자를 먹는데 심지어 유자 껍질을 우려낸 물로 세수를 한다고 한다.

왜 껍질을 우려낸 물로 세수를 하고 유자 분재를 선물하는 것일까? 알다시피 중국은 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황금을 닮은 유자와 귤이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어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에서이다.

춘추 시대 이전에는 귤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과일이어서 중국에서 또한 남쪽 나라에서 나오는 귀한 과일이었던 귤은 최상의 과일이었다.

또한, 전국 시대 초나라에서만 자랐던 과일이라 드물고 귀했기에 귤은 천자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

감귤천수(柑橘千樹)라는 말이 있다. 후손을 위해 1000그루의 귤나무를 심었다는 뜻인데 「사기」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오나라 단양태수 이형이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귤나무 1000그루를 심어 남겼다고 한다. 당시 전란이 잦아 부자들은 재물을 뺏기고 목숨까지 잃었지만 이형의 후손들은 가진 재물이 없었기에 무사히 전쟁을 넘겼고 1000그루의 귤나무가 열매를 맺으면서 대대손손 부자로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대 중국에서 귤의 위상을 생각하면 귤나무 1000그루는 재벌 수준의 자산 가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당나라 무렵, 중국에서 호떡과 두부는 크게 퍼져 역사책이나 시문집을 보면 왕과 귀족부터 문인들까지 호떡 맛에 푹 빠졌음을 알 수 있다.

호떡과 두부가 당나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싶지만 당나라 때 실크로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호떡과 두부의 역사를 알면 중원과 서역의 관계뿐 아니라 음식 문화 교류의 역사 또한 알 수 있다.

양귀비 또한 예외없이 호떡을 좋아했는데 얼마나 좋아했으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움식 중 하나가 호떡이라고 한다.

안녹산과 반란군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급하게 피란길에 오른 현종과 양귀비 일행이 배고파하자 시장에서 호떡을 구해왔다는데 호화롭게 생활한 왕과 귀비의 마지막 식사가 호떡이라 초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이야 호떡은 길거리 음식에 속하지만 당시 호떡은 길거리 음식이 아니였기에 시장에서 호떡을 구해왔다는 것은 당나라 상류층의 음식 문화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음식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중국의 역사를 훑어보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다.

이 외에도 실크로드, 향신료 그리고 복숭아밭에서 도원결의를 한 이유 등 음식을 통한 시대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음식이 중국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중국사를 재미있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다면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5·18 우리가 알아야 할 진실, 『녹두서점의 오월』

 

 

 

 

 

『하나, 책과 마주하다』

 

5월 18일, 광주에서 큰 함성 소리가 들렸다.

 

책을 쓴 대표저자이자 녹두서점 주인인 김상윤, 그의 아내 정현애와 처제 정현순, 남동생 김상집과 여동생 김현주 그리고 김현주의 남편 엄태주까지 모두 5.18 항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5.18 유공자로 『녹두서점의 오월』은 당시 녹두서점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겪은 경험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녹두서점, 녹두. 자연스레 녹두장군, 전봉준이 연상된다. 그렇다. 전봉준의 별명인 녹두장군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하는데 당시 유신체제임을 고려하면 굉장히 도발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인 김상윤은 먹고 살기 위해 서점을 운영하는 것처럼 처신했지만 녹두서점을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74년 4월 '4·3 긴급조치 4호'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여기저기 교도소로 이감되어 복역하던 중에 형 집행 정지로 교도소에서 풀려나게 된다. 유신체제 아래에서 제대로 된 의식화 작업 없이는 사회적 모순을 깊게 인식할 수 없기에 학습조를 만들어 대학생들의 의식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1년 반이 지나자 정보기관에 그의 행적이 노출될 위험에 처하자 차라리 서점을 만들어 의식화 작업을 지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여 서점을 만들게 된 것이다.

광주에 고립된 시민들에게 수많은 대자보를 만들어 뿌렸으며 항쟁 방향을 두고 논의했던 회의실이자 상황실이었고 항쟁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배고픈 배를 채워주는 식당이기도 했다.

그렇게 녹두서점이 탄생하였다.

이렇듯 녹두서점은 의식화 작업을 지원하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으며 김상윤과 그의 아내 정현애를 이어준 매개체이기도 하다.

77년 10월경 젊은 여자 한 명이 서점으로 들어와 판매금지 된 「8억인과의 대화」라는 책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그 책을 건네주며 그들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12월 무렵 서점에 한 젊은 여자가 들어온다. 그는 대뜸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이제 왔습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아, 실례했군요. 당신을 보자마자 그냥 우리 집에서 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실례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녀는 몇 달 전 「8억인과의 대화」라는 책을 가져간 그녀였다. 중학교 교사인 정현애, 그녀에게 그는 그날 바로 결혼 신청을 했다.

물론 그의 용기와 대담함에 박수를 보내지만 이 얼마나 무모한 청혼인가. 그러나 운명은 운명인가보다. 그들은 78년 11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깐.

 

그와 그의 가족들이 겪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김상윤의 시점에서, 정현애의 시점에서, 김상집의 시점에서 읽다보면 몇 번이고 울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학창 시절 한국사라는 교과서를 통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우게 된다.

단, 자세히 배우지는 않는다. 단순히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배경, 과정, 결과를 단 몇 줄 읽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에게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고향이 광주인 아빠는 고등학교 때까지 광주에서 지내다 졸업한 이후에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아빠는 선도부장이었고 옆집에 살던 아빠 친구는 전교회장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학교에서 아빠와 아빠 친구를 급하게 불러 돈을 쥐어주며 도망치라고 했단다. 곧 잡으러 올 것 같다고.

그렇게 아빠와 아빠친구는 이 집 저 집 다락방에서 숨어 지냈다고 한다.

속된 말로 끌려가게 되면 죽어서 혹은 병신이 되서 나온다는 말이 있었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직접 겪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야말로 그 날의 생생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가 당시 구속되었던 상황과 구속된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어서이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딸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정말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나처럼, 당신처럼, 우리처럼 평범했다.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항쟁을 펼쳤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렇게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희생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데 제대로 처벌받는 이들이 없는 것 같아 울분이 터진다.

난 그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말 자체를 삭제했으면 좋겠다.

수많은 이들이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고 수많은 이들이 빗발치는 총탄에 맥없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는 커녕 두 발 뻗고 잔다는 사실이 더 기가 막힌다.

우리는 자세히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우리는 자세히 알아야 한다. 모든 사실을.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19 :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박찬승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우리가 알아야 할 그날의 진실, 『1919 :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하나, 책과 마주하다』

 

1918년 겨울은 매섭도록 추웠다. 연말에 접어들면서 계속 몰아닥치던 한파가 잠시 주춤하고 기온도 다소 올라갔지만,

여전히 서울의 기온은 영하 10도 안팎이었다. …… 그해 마지막 날은 그렇게 저물어갔다.

1919년 1월 1일, 해가 바뀌고 날이 밝았다. …… 오전 9시가 되자, 천황의 사진이 봉안된 총독실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조선 땅의 주인인 것처럼 연신 우쭐댔다. 그러나 적어도 1919년 기미년의 주인공은 그들이 아니었다.

그해 봄날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1919년 기미년 봄은 바로 이들이 흘릴 피땀과 우렁찬 함성으로 더없이 뜨겁고 찬란한 나날이 될 예정이었다.

 

지난 달, 3월 1일은 일본의 억압에 맞서 목놓아 부르던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한 목소리로 '독립'을 외쳤다.

그렇게 1945년 해방이 되던 그 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하여 왜곡되거나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1919』는 총 7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에서는 나라를 빼앗기고 무단통치가 시작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2장에서는 상하이와 도쿄에서 만세운동 준비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3장에서는 서울까지 전해진 유학생들의 움직임에 대한 과정을 다루었으며 4장은 독립선언서에 대한 내용을, 5장은 3.1 운동이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되었는지 다루고 있다. 6장은 전국 곳곳의 만세 시위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7장은 임시헌장에 담긴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되새기며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탄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여기서 6장과 7장을 중점적으로 보는 게 좋다. 특히, 6장의 경우는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이 세세하게 나와 유익할 수밖에 없다.

6장에서 만세 시위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고 언급했는데 크게 비폭력 원칙을 지키는 평화 시위 유형, 폭력에 당당히 맞서는 항의 시위 유형 그리고 일본의 통치를 전면 거부하는 공공기관 점거 및 공격 유형으로 나뉘었다.

평화시위유형은 대부분 기독교나 천도교 같은 종교인이 주도하거나 마을 단위에서 일어난 시위 형태이다.

항의 시위 유형은 평화 시위 도중 연행자나 사상자가 발생해 군중이 주재소에 몰려가 항의하는 시위 형태인데 경찰이 발포하거나 총검을 휘둘러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공공기관 점거 및 공격 유형은 말그대로 공공기관을 점거하고 공격하는 시위 형태였는데 항의 시위 유형처럼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실제 평화 시위 유형이 빈도수로 보면 많이 일어났고 세 번째 유형은 극히 드물었다.

즉, 3.1 운동은 평화 시위, 비폭력 시위라 할 수 있다.

 

진짜 임시정부의 수립 기념일에 대해 아는가?

1989년 12월, 대한민국 정부는 4월 13일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로 지정했는데 학계에서는 날짜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4월 13일은 단순히 김구 등 몇 명이 국내에서 상하이로 왔던 날에 불과했는데 일본 경찰이 『조선민족운동연감』을 만들 때 임시정부 인사들의 명단과 정부 성립 공포일을 한날에 일어난 일로 기록해버린 것이다. 후에 정부 또한 4월 13일을 임시정부 수립기념일로 잘못 지정하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임시정부 수립일이 오랫동안 잘못 기념되었는데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 날짜가 바로잡혔다고하니 정말 다행인 것 같다.

 

100년 전, 독립을 위해 울부짖던 그들의 함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듯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미래'가 다가올 수 있다.

자유, 평화, 정의 그리고 평등을 외쳤던 그분들의 정신에 따라 우리도 그들의 목소리에 답해야하지 않을까%ED%83%9C%EA%B7%B9%EA%B8%B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