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시즌 1이 끝나고, 학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극중 동은(송혜교)이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도움을 아무에게도 받지 못한 상황은 현실에서 좀처럼 개선되어질 것 같지가 않다. 힘이 모여 협력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폭력을 용인하는 세상이 되어서일까. 학교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소위 '갑질'이란 바로 이런 힘이 폭력으로 작용하는 형태라 할 것이다. 혹여 갑질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갑이 되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더 많아서일련지도.......  


[더 글로리]는 고등학교 시절 고데기로 피부를 데이는 등의 가혹한 폭력에 시달리던 동은이 어디에 호소를 해도 문제를 풀 수 없게 되자, 스스로 이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꿈을 꾸고, 이를 실행해가는 이야기다. 무려 18년의 세월을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가는 동은의 측은함과 함께, 차곡차곡 복수를 위한 사전작업을 해 나가는 통쾌함을 동시에 느낌으로써 극의 재미가 폭발한다. 게다가 동은의 대사 하나하나가 갖는 날카로움은 무척이나 섬뜩하면서도 가엾다.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복수란 이런 것일 것이다. 너도 무너지고, 나 또한 무너지는 것. 그리고 그 무너진 나를 짊어지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래서 복수 대신 용서를 이야기한다. 복수의 결말을 알기에. 하지만 용서라는 것도 힘의 우위에 있어야 가능한 것은 아닐까. 나약한 이가 강한 이에게 용서를 할 수 있을까. 그건 그저 포기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래서 먼저 강해지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물론 강함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바둑을 빨리 배웠어. 목적이 분명했고 상대가 정성껏 지은 집을 빼앗으면 이기는 게임이라니... 아름답더라


승패가 있는 곳에서는 결국 상대를 제압해야지만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자신이 무너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승패만을 이야기하는 세상은 지옥에 가깝다. 한 번 패한 이가 다시는 승리하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승패를 견고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그것을 뒤엎고자 하는 것이 바로 복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은이 영광을 꿈꿀 수 없듯, 승패로만 가득한 세상은 지옥도다. 복수 대신 용서할 수 있는 곳이라면 승패보다 연대가 우선되는 세상이지 않을까. 


[더 글로리] 시즌2에서 동은의 복수는 이루어질련지, 아니면 용서로 가는 영광의 길을 찾을련지 궁금해진다. 부디 폭력없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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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이]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다. [정이]를 비판하는 목소리 중 '신파'라는 부분이 가장 커 보인다. 연상호 감독은 오히려 이런 신파적 요소를 SF장르에 녹인 것이라는 취지의 인터뷰(정확히는 "눈물 흘릴  수 있는 고전적 멜로에 SF를 가미")를 한 것으로 안다. 신파적 요소라는 것이 무엇인지, 신파가 꼭 비판받아야 하는지는 좀 더 많은 대화가 오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무튼 할리우드의 많은 작품들이 가족애를 다루지만 '신파라 별로다'라는 비판은 이제 벗어난 듯 보인다. 즉 신파라 하더라도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해 보이긴 하다. 최근 한국영화 [비상선언]의 경우에도 결말 부분이 신파적이라며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다. 신파적 감성을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영화의 성공과도 꽤나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가족애 중 하나라 할 수도 있는 모성애에 대한 천착이 유난히 크다할 수 있다.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글썽이는 사람들도 많다. 엄마의 자기 희생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야 엄마에 대한 요구가 예전과 조금씩 달라져 꼭 엄마와 자기 희생이 완벽하게 동의어이진 않지만 말이다. 물론 [82년생 김지영]은 이런 희생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무튼 [정이] 또한 이런 경향을 내비치고 있는 듯하다. "엄마, 이젠 더 이상 자신을 희생하지 말고,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요."라고 응원하는 영화처럼 읽힌다. 


[정이]의 이야기는 이렇게 엄마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일종의 오마주일련지, 짜깁기 일련지 혼란스럽다. 영화 초반부 액션은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를, 정이가 전투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것은 톰 크루즈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중후반 로봇들과 싸우는 장면은 윌 스미스의 [아이, 로봇]을 떠오르게 한다. 다만 이런 액션신의 CG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낸다. 반면 오히려 연구소장 김상훈(류경수)의 오버스러움과, 박사 윤서현(고 강수연)의 고풍스러움이 영화와 잘 녹아들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이런 부조화 속에서 김현주의 감정 묘사(로봇 얼굴을 통한 눈동자 만으로도)와 액션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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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극, 123분, 22년 12월 28일 개봉, 15세 관람가

감독 김경원 출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


범죄영화를 보면 크게 [범죄도시]처럼 액션의 짜릿함을 주는 류의 영화가 있는가 하면 [도둑들]처럼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류의 영화가 있는 듯하다. 


최근 본 [자백]을 비롯해 반전을 주는 영화들은 한 번의 반전에 그치지 않고, 최소 두 번의 반전을 노리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말이다. 


영화 [젠틀맨] 또한 두 번의 반전을 통해 극적 재미를 더하고자 한다. 이 반전은 보통 등장인물의 시선에 따른 반전인 경우가 많다. [자백]의 경우에도 소지섭과 김윤진의 관점에 따라 사건은 다른 양상을 띠고, 결국 진실이 밝혀지는 모양새다. [젠틀맨]도 주지훈과 최성은의 관점에 따라서 사건의 모습이 달리 보이고, 마지막에 이르러 실상이 밝혀진다. 


문제는 이 반전의 짜임새다.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처음의 시선과 마지막 시선과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고 있는지가 재미를 좌우한다고 보여진다. 그런 면에서 [젠틀맨]은 나름 시선의 격차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설득력을 얻기 위한 설정이 과도한 경우가 있다. 주인공이 사건의 모든 것을 예측하고, 그 예측에 맞추어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면, 오히려 그 재미가 반감될 수 있다. 이런 철저한 계산을 보여주는 시리즈 물로 [종이의 집]을 들 수 있겠는데, 시리즈가 거듭 되면서 너무나 잘 짜여진 각본이 말 그대로 각본처럼 느껴져 개인적으론 오히려 재미가 줄어들었다. 영화 [젠틀맨]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그 균형을 맞추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게다가 그 균형점이란 것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젠틀맨]이 재미있으면서도 개운한 맛을 주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인건 아닐까 싶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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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드라마 중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SBS [트롤리]이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무슨 뜻인 줄 몰랐다. 그러다 이것이 '그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의 그 트롤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트롤리란 일종의 기차라 할 수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롤리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 앞에 인부 5명이 있다. 선로의 방향을 바꾸면, 바뀐 선로에는 인부 1명이 있다. 과연 이럴 때 당신은 선로를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답에 대한 선택이 당신이 무엇을 중요 가치로 여기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인부 5명과 인부 1명 각각의 개인에 대한 소중함이 모두 같다는 전제가 깨질 경우(실제로 사람 1명의 목숨이 갖는 소중함이 무한하다면, 사람 1명이든 5명이든 모두 무한한 소중함이라는 등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즉 만약에 인부 1명이 자신의 가족이라든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택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1명 보다야 5명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더 '낫다'라는 공리적 판단은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드라마 [트롤리]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건들을 먼저 제시하고 있다. 혜주(김현주)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던 친구의 오빠를 경찰에 고발하자, 오빠가 자살을 하는 사건을 치른다. 혜주의 남편이자 국회의원인 중도(박희순)는 성폭행 가해자의 실명을 방송에서 거론하는데, 이 가해자가 자살을 하는 사건을 겪는다. 혜주와 중도는 (간접)살인자일까. 


이 두 사건 이후의 행동은 혜주와 중도가 서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트롤리 딜레마가 시작될 듯하다. 중도는 가해자의 자살로 재판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는 것을 막고자(이로 인해 사건의 피해자는 자신의 결백 또는 피해를 증명하지 못하고 계속 고통에 처할 수 있기에) 새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는데,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혜주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크다. 중도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자신의 선택을 위해 어떤 행동까지 감행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드라마 전개로 보여진다. 



영화 [데시벨]은 일정한 크기 이상의 소리가 발생했을 때 폭발하는 폭탄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폭탄이 향하는 대상은 침몰한 잠수함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 폭탄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 해군 부함장(김래원)은 이 침몰하는 잠수함에서 선원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사람이다. 구조대가 오기까지 견딜 수 있는 공기가 부족하기에 선원 중 일부를 제비뽑기를 통해 한 공간에 가두어 두고 죽음을 맞게 한 것이다. 최대한의 선원을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부함장의 선택은 옳은 일이었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런데 우리 뇌는 이 선택에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사소한 것에서 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뇌가 소진되면 나중엔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가 똑같은 옷을 입는 것도 선택의 상황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는 '썰'도 있다. 


아무튼 선택이란 에너지를 소모하는 '힘든'일로, 그렇기에 허투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자신의 가치가 반영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을 말해주는 것은 자신의 선택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오직 생존만을 위한 선택에 한정되지 않는 존재다. 바로 무엇인가에 가치를 만들어, 그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며, 바로 이 가치들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셈이다. 


드라마 [트롤리]와 영화 [데시벨]을 보며, 지금까지의 선택이 말해 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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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 미국 없는 세계에서 어떤 국가가 부상하고 어떤 국가가 몰락하는가
피터 자이한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앤김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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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세를 바라보는 관점 중의 하나로 지정학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한, 미, 일과 북, 중, 러 간의 해양과 대륙 세력 간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 지정학적 해석에 눈길이 쏠린다. 


이책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의 저자인 피터 자이한은 지정학 전략가이자 글로벌 에너지 및 안보 전문가이다. 그는 지극히 미국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이 책은 미국이 셰일가스를 발견하고 개발하게 되면서, 더이상 에너지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져, 세계 질서 또는 안보를 위해 힘쓸 필요가 없어졌다고 평한다. 즉 미국은 자국 내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 에너지, 식량을 비롯해 안보까지 갖추고 있어, 지구가 평평할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미국이 세계 곳곳의 갈등이 벌어지는 곳에서 점차 발을 떼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세계는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으로 들린다. 


그리고 각자도생을 위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먼저 식량확보가 가능한 기후, 그리고 자국 내 원활한 물류, 미래 경제를 가능케하는 인구구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에너지와 식량의 수출과 수입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해군의 힘을 꼽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정학적 조건을 바탕으로 미래에 떠오를 나라로, 프랑스, 터키, 일본, 아르헨티나 등을 꼽는다. 


개인적으론 세계가 현재와 같은 평화적 무역 체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항공모함 등)에 있다는 관점에 흥미가 간다. 우리는 가끔 해적에 나포된 선박으로 인해 인질 등을 구하기 위한 협상에 나서는 정부의 모습을 뉴스에서 접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하루에 수백, 수천 척의 배가 바다에 떠 있을텐데, 유조선을 포함, 다양한 선적들이 무사히 다닐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피터 자이한은 이런 평화적 무역이 바로 미군의 해군 덕분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굳이 이런 일을 도맡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판단하고, 대양에 있는 미국의 해군을 철수시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멀어지면서-셰일 가스 덕으로 석유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자- 벌어지고 있는 중동의 변화를 보더라도, 미국의 움직임으로 인한 세계 정세의 변화는 결코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한편으론 지금 우리의 시선은 미, 중 간의 대결구도에 쏠려 있는데, 피터 자이한은 머지않아 중국이 쇠퇴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지정학적 조건이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예측 근거이다. 이또한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게 된 해군세력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세계 2위의 해군을 보유한 일본은 앞날이 창창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항공모함(2022년까지 3척, 2035년까지 6척 운항 계획)과 운항능력과 경험이 부족한 중국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래가 어떨까. 피터 자이한이 말한 조건들을 살펴보면 식량자급률 20%대에,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으며, 걸음마 단계인 해군까지... 결코 앞날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정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라도, 정말 세상이 미국의 방임으로 흘러갈지, 또 설사 미국이 방임한다면 이후 어떤 새로운 질서가 나타날지 등등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들이 나타날 것이다. 다만 다양한 관점 중 지정학적 관점에서도 식량 자급률과 저출산 해결 등 우리가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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