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중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SBS [트롤리]이다.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무슨 뜻인 줄 몰랐다. 그러다 이것이 '그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의 그 트롤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트롤리란 일종의 기차라 할 수 있는데,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롤리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 앞에 인부 5명이 있다. 선로의 방향을 바꾸면, 바뀐 선로에는 인부 1명이 있다. 과연 이럴 때 당신은 선로를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답에 대한 선택이 당신이 무엇을 중요 가치로 여기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인부 5명과 인부 1명 각각의 개인에 대한 소중함이 모두 같다는 전제가 깨질 경우(실제로 사람 1명의 목숨이 갖는 소중함이 무한하다면, 사람 1명이든 5명이든 모두 무한한 소중함이라는 등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즉 만약에 인부 1명이 자신의 가족이라든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택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1명 보다야 5명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더 '낫다'라는 공리적 판단은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드라마 [트롤리]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건들을 먼저 제시하고 있다. 혜주(김현주)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성추행하려 했던 친구의 오빠를 경찰에 고발하자, 오빠가 자살을 하는 사건을 치른다. 혜주의 남편이자 국회의원인 중도(박희순)는 성폭행 가해자의 실명을 방송에서 거론하는데, 이 가해자가 자살을 하는 사건을 겪는다. 혜주와 중도는 (간접)살인자일까. 


이 두 사건 이후의 행동은 혜주와 중도가 서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트롤리 딜레마가 시작될 듯하다. 중도는 가해자의 자살로 재판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는 것을 막고자(이로 인해 사건의 피해자는 자신의 결백 또는 피해를 증명하지 못하고 계속 고통에 처할 수 있기에) 새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는데,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혜주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이 크다. 중도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자신의 선택을 위해 어떤 행동까지 감행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드라마 전개로 보여진다. 



영화 [데시벨]은 일정한 크기 이상의 소리가 발생했을 때 폭발하는 폭탄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폭탄이 향하는 대상은 침몰한 잠수함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 폭탄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 해군 부함장(김래원)은 이 침몰하는 잠수함에서 선원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사람이다. 구조대가 오기까지 견딜 수 있는 공기가 부족하기에 선원 중 일부를 제비뽑기를 통해 한 공간에 가두어 두고 죽음을 맞게 한 것이다. 최대한의 선원을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부함장의 선택은 옳은 일이었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런데 우리 뇌는 이 선택에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사소한 것에서 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뇌가 소진되면 나중엔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가 똑같은 옷을 입는 것도 선택의 상황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라는 '썰'도 있다. 


아무튼 선택이란 에너지를 소모하는 '힘든'일로, 그렇기에 허투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자신의 가치가 반영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을 말해주는 것은 자신의 선택들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오직 생존만을 위한 선택에 한정되지 않는 존재다. 바로 무엇인가에 가치를 만들어, 그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며, 바로 이 가치들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셈이다. 


드라마 [트롤리]와 영화 [데시벨]을 보며, 지금까지의 선택이 말해 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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