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두 여자다. 한 여자는 기쁨, 정열, 삶이 그녀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모험들을 맛보길 갈망하고, 다른 한 여자는 진부한 일상, 가족적인 삶, 계획하고 완수할 수 있는 자잘한 행위들의 노예가 되기를 갈망한다. 나는 한 몸 속에 살면서 서로 싸우는 주부이자 창녀다.(198쪽)

모험은 항상 위험하다. 새롭되 위험하지 않다면 모험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 위험은 정열이라는 파도를 만나 좌초당한다. 정열은 모험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라는 순풍을 제공한다. 그래서 도달하는 곳은 신세계다. 자신이 항상 꿈꾸어 오던 신세계. 비록 그곳이 생각만큼 안온하지 않더라도, 욕망을 좇아 끝내 도달한 곳이기에 아름답다. 

주인공 마리아는 브라질의 시골서 휴양지로 잠깐의 모험을 떠난다. 혼자이기에 두렵지만 이내 발걸음을 내디딘다.

원죄는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느낀 마음의 동요를 아담과 나누어 가지고 싶어한 데에 있다.(271쪽)

끝내 외로운 존재가 사람이다. 결국에 맞닥뜨려야 하는 것은 혼자다. 가정과 사회라는 안락한 품은 평온함과 안락함을 주지만 노예의 삶이기도 하다.(그러나 또한 얼마나 달콤한가?) 마리아는 자신에게 닥쳐온 유혹의 끈을 잡는다. 나이트클럽 댄서로 스위스로 날아가는 그녀. 그녀는 제네바에서 창녀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분명 선택이다. 어찌할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다. 그 생활 속에서 마리아는 사랑과 삶에 대해 하나둘 배워나간다. 남자들 또는 여자들의 하루라는 것이 단지 성생활에 소비되는 11분을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 속에서 세상을 깨우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중요한 모든것에 대한 포기라는 사실만 알아둬요. (262쪽)

이것은 그녀가 사랑하게 되는 화가 랄프의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책을 읽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누군가 때문에 또는 무엇 ‹š문에 라는 이유를 달고서 포기하는 것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현재요, 사람들의 현재가 아닐까?

욕망은,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예요.(209쪽)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상상한다는 것을. 상상마저 허락하지 않는 삶을 누가 강요했는가?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상상은 몽상이다. 상상은 실현되어질 수 있는 욕구의 극한점을 보여준다. 욕구에 충실한 삶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그 욕구들을 억압하는 사회에서 많은 이들은 주부로서의 삶을 택한다. 창녀는 손가락질 받는다. 손가락질 받는다는 것은 혼자 동떨어져 있음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선다. 당당한 창녀 선언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뭐, 그렇다고 문제될게 있겠는가마는..  아직도 우리 마음 속엔 두려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음을...) 그러나 간혹 욕구를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상상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외로워도 슬퍼도 상상의 나래는 꺽이지 않을 것임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는가! 때론 슬픈 주부가 아니라 아름다운 창녀이고 싶은게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

자, 슬슬 모험을 떠나보자. 이 커다란 세상에 오직 나 하나와 마주쳐보자. 나의 상상을 향해서 길을 그려보자. 그 길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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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5-04-22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삶을 주부와 창녀로 이분한 사람은 또한 남자가 아닐까요? 저도 이 책을 읽어봤지만 남자들의 삶은 그런 식의 이분법을 쓰지 않거든요. 그냥 남자일 뿐.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분화가 되지 못했는지만 느껴집니다. 현재의 이와 같은 이분법을 돌파할 수 있는 출구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성 스스로 이와 같은 이분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살이 2005-04-2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저는 성적인 개념에서 이 문장을 바라보진 않았는데, 그렇게도 보여지겠군요. 이분법은 그 경계의 명확한 구분을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만 여겨집니다. 꼭 그렇게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 세상에 어디있겠냐고 생각하면서도 사고의 편의성을 위해 그런 과감한 간략화의 잘못을 저지르곤 하죠. 주부와 창녀는 그냥 안주와 모험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걸 남자로 비유하자면 회사인과 백수, 아, 이건 어딘가 조금 모자란듯 하고, 글쎄 뭐가 좋을까요? 왕과 기사. 으~ 이것도 지금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고. 그러고 보니 남자라는 것이 여자를 모두 포함하는 그 무엇으로 지금껏 정의되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구, 쩝. 암튼 지안님의 속내를 잘 알아듣겠습니다.

클레어 2005-04-2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시비를 거는 글은 아니었습니다만 혹시나 언짢으셨으면 지안이 삐딱한 탓이라 여겨주십시오..(흐흐~ 어물쩡 넘어가기..^^;;) 요즘 아이들 책(동화도 그렇고 만화도 그렇고..)을 많이 읽고 있는데, 소년만화 속에 보이는 '성장'이라는 화두를 살펴보자면 세상과의 투쟁, 관계 맺기가 남자주인공을 주체로 세우면서 이루어지는데 비해, 여자아이들의 만화의 경우에는 남자친구에게 여성으로 어필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더군요. 그 속내를 좀 더 짚어보자면 여성은 남성을 이용해서 세상을 돌파하려는 경향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난 남성들에게 어필이 되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즉, 여자 아이들의 세상관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체득한 것이라기 보다는 남성을 통해 얻게 되는 식으로 되더군요. 하루살이님께서 지적하신 주부와 창녀에 대한 개념은 그런면에서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주부'와 '창녀'...안주와 모험... 여성들이 세상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그만큼 협소하다보니 '창녀'처럼 많은 남성들을 상대하는 여성들일수록 남성들로 많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얻게 되고 그와 같은 모험(?)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진다고 할 수 있겠고, '주부'의 경우는 한 남성에서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다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한정되는데 비해 세상으로부터의 비난 등으로 부터는 자신을 보호하면서 안전한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이 더 분화가 되고 남성들을 통해 뭔가를 얻는 대리만족 지향의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과 직접 소통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성장과정을 거친다면, '창녀'라는 이미지가 세상을 알아가기 위한 모험이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주부'가 '편안한 안주'라는 이미지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구요. 왜 하루살이님 서재에서 제가 이렇게나 긴 글을 쓰는 것일까요? 아마도 하루살이님이 좋아서 일겁니다. (또 놀러올께요..흐흐)

하루살이 2005-04-2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짢기는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아아~ 언어라는 것의 한계성을 절감합니다. 흑흑. 주부와 창녀라기 보다는 가족과 일탈 이렇게 정의할게요. 그리고 님의 말씀에 백번 동감합니다. 아마도 만화가나 동화작가의 대부분이 남성인 탓도 있을 겁니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 사회의 밑거름은 어렸을적 교육부터 주어진다고 봅니다. 장애인에 대한 대우 또한 마찬가지라고 보여지네요. 장애우들이 일반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이니... 성역할이나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포용력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곳이 학교였으면 좋겠습니다. 조기유학에 눈이 먼 현실이 안타까울뿐입니다.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가끔씩 세상은 운명처럼 돌아간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여기 이곳에 있는 이유가 운명때문이라고 말이다. 나의 의지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이곳에 앉아있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때면 이제부턴 소설 속 양치기 소년을 생각해보아야겠다. 자신의 마음 속 보물을 찾아 피라미드로 떠난 양치기 소년말이다.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214쪽)

하루중 나를 생각하며 지낸 시간은 얼마나 되던가? 나는 온데간데 없고, 항상 그 자리엔 일과 근심뿐이다. 행여나 마음 한 구석에 꿈이라는 보물을 아직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돈, 명예, 인간관계, 힘 따위의 핑계로 묻어버린다. 더군다나 그 꿈이 오직 자신의 신화이외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느껴질때엔 더욱 깊숙히 숨겨둔다.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거지.(49쪽)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보물을 찾아나서는 발목을 잡아채는 것은 두려움이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하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230쪽)

이상하게도 일이 꼬일때가 있다. 반면 이상하게도 무엇인가 자꾸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평소에 생각해왔던 그 무엇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 같은 그 무엇을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다. 이것을 소설은 표지라고 한다. 자신의 보물찾기를 도와주는 표지. 그것은 현실에 눈을 똑바로 떴을 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표지를 보았을때 두려움 없이 길을 나서야 한다.

비밀은 바로 현재에 있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있지.(172쪽)

표지를 보려면 현실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 나를 찾아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이지, 운명이 아님을 알아채야 한다. 책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당장에라도 배낭을 짊어지고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드는. 마음이 또 일렁인다.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는 이미 죽어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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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4-2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이지, 운명이 아니다....
저는 요즘 이게 헷갈린단 말입죠...

하루살이 2005-04-24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운명도 내가 있어야지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어찌할 수 없는 흐름속에 파묻힌다거나, 어쩌다보니 어떤 곳에 서 있는 저를 바라보면서 운명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 운명이라는 것, 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의지를 운명이라고 생각해보면 편하지 않을까요? 저도 잘은 못하지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 운명이 나의 의지다.
 
낭독의 발견
홍경수 기획.구성 / 샘터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만인가? 책을 소리내어 읽어 본 것은.

TV에서 보았던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책 속에 등장하는 시를 나는 소리내어 읽어본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어색하다. 그런데 계속해서 낭독을 하다보니 어느새 나의 목소리에도 감정이 배어져 있음을 알게된다. 억양이 변하고, 속도도 변하고, 톤도 변해간다. 그 시에 따라서. 

눈으로 보는 시와 입으로 읽는 시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실감한다. 소리가 갖는 매력을 나의 목을 통해 얻는다는 것이 행복하다. 버벅거려도 좋다. 다시 읽으면 된다. 숨쉴 곳을 찾지 못해 뜻이 변해도 좋다. 또 다시 읽으면 된다. 소리낸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지만 기쁘다는 것을 정말 예전엔 미처 몰랐다. 가끔씩 시 한수 소리내 읽어보는 재미에 빠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TV로 보지 못한 시의 낭독들을 책으로 통해서 만나니 그것 또한 새삼스럽다. 평상시 시를 잘 접하지 않는 나로서는 귀중한 기회였다. 그리고 소중한 만남이었다. 김혜자, 안성기, 도종환, 황지우 등등 낭독한 사람들의 억눌려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접한것도 행운이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 이 낭독을 관심있게 지벼보고 싶다.

이번 책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여러번 읽게 만들며 꼭 기억하고 싶은 시가 있다. 바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여기 전문을 싣는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길을 걷다 담쟁이를 마주칠 때면 이제 이 시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말없이 오르는 담쟁이. 혼자서 오르지 않고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담을 넘어서는 그 모습. 그저 벽을 파먹고 오른다고 생각한 나에게 있어 담쟁이는 도둑이었다. 하지만 시인의 눈엔 그는 영웅이다. 혼자 잘난 척하는 영웅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하는 민중의 영웅. 시인의 눈을 갖는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애정을 밑바탕으로 해야하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도둑과 영웅이라~ 내 마음 속 애정의 결핍을 느끼며, 가끔씩 걸음을 조금씩 늦춰봐야겠다. 내가 바라보는 사물에게 사랑의 시선을 뺏겨 시간을 잊어버리도록 가끔은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바삐 책을 읽지않고 가끔은 천천히 천천히 낭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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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샘 2005-04-2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 낭독해봅니다...좋은시에, 제 목소리에, 혼자 취하네요..^^

하루살이 2005-04-2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해야 산다고 보들레르가 말했던것 같네요. ^^

2005-04-28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 VS 사람 - 정혜신의 심리평전 2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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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착각하며 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수시로 착시현상에 시달리고, 잘못듣고, 착각하기 마련이지 않던가?  錯이란 뒤섞는다는 뜻이다. 원래의 순수한 것이 아닌 이것 저것이 뒤섞여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착이다.  경사진 도로에서 물을 떨어뜨렸더니 물이 위로 흐른다는 도깨비 도로도 실은 착시때문에 발생하는 착각일뿐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도 이런 사물들을 바라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사람의 진면목을 가리는 여러가지 착시현상들로 인하여 엉뚱한 평가를 내리곤한다. 특히 그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을때는 그 착각의 정도도 심해진다. 왕자병이니 공주병이니 하는 것도 일종의 착이 아니겠는가?

저자는 무의식같은 심층심리를 알아봄으로써 착에서 벗어나 사람의 진짜 모습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전편의 남자vs남자를 이어서 이 책 사람vs사람을 쓴 것도 바로 그런 희망하에 이루어진 듯하다. 그런데 이 책은 전편에 비해 훨씬 더 호와 불호가 뚜렷하다. 무척 다행인것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나의 호, 불호와 상당히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돋보기가 착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장담할순 없다. 그리고 그 해석의 과정에서 호와 불호로 인한 오해의 여지 또한 가볍게 넘길 순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얻어온 정보들과 상충되는 이야기들이 간혹 눈에 띠기때문에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삼기엔 조금 마음 한구석이 걸린다 . 더군다나 그렇게 상충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석적 결론은 비슷하다는 점에서 호와 불호라는 감정이 얼마나 사람을 평가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을것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아무튼 이런 저런 착을 넘어 진을 찾는 여행으로서 책이 갖는 장점은 크다. 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떠나 진짜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물론 자신의 진면목을 솔직하게 까발리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 진면목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진면목이 성장할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책 속의 이명박처럼 '나도 다 경험해봤어'하며 상대방의 구체적 조건과 상관없이 의지의 나약함만을 탓한적은 없었는지 반성하게 만들고, 또한 의지만을 내세워 나의 삶을 강박관념안에 갖혀 지내온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기도 한다. 시대를 희망하는 정치가 김근태씨가 현실의 정치풍토 속에서 그 희망의 끈을 얼마나 꽉 쥐고 살아갈 수 있을련지 계속 관심을 갖게 만들고, 품어안는 개성의 손석희가 정말로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견지할 수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나에게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김훈의 문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사색하게 만들며, 그렇다면 나의 문체는 어떤 특색을 지니고 있을 것인지 감히 상상해보기도 한다. 동문서답식 답변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지난 대선 당시의 정몽준을 떠올리며, 그것이 그의 개성임을 알려주는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돌이켜생각해보고, 현재의 인터뷰 기사들을 대하는 태도도 새로워진다.

어찌됐든 내가 가지고 있는 착각들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고민해보고, 진짜를 찾을 수 있을지 잘모르겠으나 하나 둘씩 그 錯한 껍질을 벗겨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물론 책 속 인물들에 대한 잘 몰랐던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 또한 흥밋거리로도 훌륭했다.

錯하게 살지말고 眞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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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4-2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면목을 솔직하게 까발리는 것은 괴로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 진면목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진면목이 성장할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
깨달음의 과정은 그래서 아픈 걸까요...
당장 책을 읽고 싶게 할 만큼 멋지고 책에 대한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리뷰네요~
게다가 작가의 호와 불호가 하루살이 님과 많이 일치했다 하니.... 하루살이 님의 생각들을 더 알고픈 사람이라면...읽을만 하겠습니다. 커커... !

하루살이 2005-04-2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 속내를 들키다가 투명인간 되는건 아니겠죠?
 
남자 vs 남자 - 정혜신의 심리평전 1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느끼는건대 유독 심리학은 발달단계에 대한 분류가 많은 것 같다. 에릭슨 피아제 프로이드 등등 잘 알지도 못하지만 또 무수히 많기에 접근하기도 겁나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우리앞에 내세우는건 일정한 분류기준이며 그것에 따른 발달과정인 것같다. 정혜신의 이 책 남자 대 남자는 21명의 인물을 내세우고 있는데, 마지막 이회창을 제외하면 모두 두명씩 짝을 이루고 있다.

그 짝의 앞 뒤로 나오는 인물들은 비슷한듯 보이지만 그 내부심리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대조를 통해 보여준다. 앞과 뒤는 말 그대로 앞과 뒤의 관계로 뒤에 나오는 인물들이 앞에 나온 인물에 비해 좀더 성숙된 심리상태에 있음을 주장한듯 여겨진다.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미성숙과 성숙의 문제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겉모습이 성인이라 하더라도 유아기적 성향을 띠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옆에서 발견할수 있듯이, 그 심리적 경향까지도 성숙된 모습으로 비쳐지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오히려 아직 미성숙한 모습들을 훔쳐볼 수 있다는데서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저자가 평전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과 개인적 접촉을 갖지 못한채(또는 않은채) 객관적이라고 표현되어지는 대중매체를 통해 밝혀진 모습과 그 인물들의 저작물 등만으로 심리를 해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이라고는 하지만 인터뷰라는 것이 인터뷰어라는 필터를 통해서 드러난것이 또한번 언론매체를 거쳐서 드러나는 것이고, 또한 솔직한 개인고백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책과 같은 대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을때는 뭔가 치장이 섞여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짙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까지 겹쳐지면 책 속의 인물들이 과연 진짜 그네들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책이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겉모습의 그네들을 전달하면서 호기심의 대상인 속마음을 추적하는 것이 매우 그럴싸하다는 것이다. 복잡한 이론을 내세우기보다 흔히 뒷다마라고 말하는 얘깃거리마냥 그네들의 속내를 친구들에게 과감히 뱉어내듯이 토해내는 글들 덕택에 마치 찻집에 앉아있는 마냥 편안하며 즐거운 기분을 갖게 해준다.

그 여유로운 기분의 뒷면에는 책 속 인물들의 유명세에 묻혀진 평범함을 찾을수 있는 쾌락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에게로 돌아오는 화살이라 아련한 통증을 가져오기도 한다. 나의 심리적 경향성이 이건희나 장세동과 닮은 듯 보이다가 유시민 강준만의 그것과도 닮아 있는듯 하면 순간순간 내가 이런 면도 있었구나라고 자각하게 된다. 내가 유명인과 닮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유명인도 평범한 사람의 심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통감하는 것과 함께, 책을 덮으면서 앞쪽의 인물군에 속한 것이 더 많았는지 뒤쪽의 인물군에 속한 것이 더 많았는지 셈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내가 뒤쪽 인물군에 속한 심리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내 또 한번 깨닫는 것은 대중가요 '가시나무새'의 가사마냥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앞과 뒤쪽의 경향성이 모두 섞여 있는 혼합체 바로 그 모습이 나인 것이다.

자, 이제 나의 실체를 알았으니 다음엔? 아마 책 속 인물들도 자신의 실체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심리를 어쩔 수 없이 그대로 행동으로 표현해낼 도리밖에 찾아내지 못한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일련지 모른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그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못마땅한 나를 밀어낼 수 있기를 거울 속의 나를 보며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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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4-2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거 같네요... 사실.....설령 뒷다마같은 것일지언정...우리가 아는(뭐, 이름밖에 아는 것이 없다해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귀를 간질이게 만드는 마력이...있는거 같고요...

2005-04-28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04-28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황송할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