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영중인 영화라서 잘못하다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지라 될 수 있으면

영화의 내용보다 느낌을 중심으로 감상문을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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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뭘까?

살아가다보면 내가 중심이 되어서 움직여 가던 세상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고 나의 영향력이 예전만큼 힘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직장인의 역활,부모의 역활로 숨가쁘게 세상을 굴리던 내 자신이 어느덧 모든 책임과 역활들을 젊은 사람에게 넘기고는  변두리에 서있음을 느끼게 되었을 때, 내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잘만 굴러가고 있음을 두눈으로 보게 되는 경험을 싫든 좋든 하게 되면서 나이가 들어감을 체감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젊었을 때는 그 무거운 삶의 무게로 허덕거리며 한 순간이라도 그 짐을 내려 놓고 싶어 안달이 났었는데 막상 짐을 내려놓고 나니 내 존재마져도 희미해져 버리는 아이러니!!!

 

근데, 한발자국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보면 그 속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세상이 잘 보이는거다.

훌륭한 스펙과 첨단 기기들로 중무장한 젊은 친구들처럼 빠릿빠릿하게 새로운 세상에 적응을

하지는 못하지만, 4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나하나 만들었던 내 속의 성실함과 사회경험들이

첨단 GPS기기보다 지름길을 더 잘 찾게 하고, 사람들 사이의 마음결을 잘 헤아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으며, 우는 여자를 위해 손수건을 미리 준비하는 배려의 마음을 갖출 수 있도록  나이 든 나에게 새로운 스펙이 되어 주었다.  이 정도의 스펙이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과 파트너가 되어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족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물론, 가끔 서글픈 생각이 들긴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을 힘겹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들에게 따스한

위로의 포옹을 전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욕심은 허락되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텔레비젼의 뮤지컬 '남태평양'의 세레나데는 전쟁을 일으킨 군인들과 식민지 아가씨들과의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것은 한낯 미화된 허구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멋있게 나이 먹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매일 면도를 하고 옷매무새를 정갈하게 하고 조금은 여유있게 타인을 대할 수 있으면서도

선을 지킬 줄 아는 지혜를 갖춘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남은 삶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 말이다.

 

반짝거리던 젊음이 시들고 난 후에야 성숙이라는 귀중한 경험을  선사해주는 삶의 경이로움.

이런 것이 숨겨져 있어서 산다는 것이, 나이 먹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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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식을 나눕시다

우유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토요일자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 가장 눈길을 끈 기사/칼럼은 이광일 논설위원이 쓴 '지식을 나눕시다'('정보'가 아니라 '지식'이다). 세계 수위를 다투는 인터넷강국이지만 우리의 인터넷은 '지식의 바다'라고 하기엔 아직 쑥스러운 수준이다. 오늘 아침에도 '마샬 버만'과 '들뢰즈의 영화론'에 관한 자료들을 좀 찾아보려다가 뭔가 그럴 듯한 게 눈에 띄지 않아 혀를 차고 있던 참이었다(물론 영어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 명문대학들에서는 자신들의 강의를 무료로 공개한다고 하고(한국의 대학은 등록금 천만원시대를 감당할 만한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가?), 구글에서는 수백만권의 책을 영인해서 인터넷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지식사회로 진입해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의 관심이나 대처는 너무 고답적이고 너무 한가해 보인다(내용도 없는 리포트/논문들이 몇 천원씩 '거래'되는 게 '한국적 지식'의 현주소인가?). 문제의식이 좀 확산될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07. 02. 17) 지식을 나눕시다

가히 인터넷 세상이다. 하다 못해 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나도 인터넷에 들어가 “우리 집 번호는?”하고 칠 정도다. 모든 게 인터넷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한글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별 게 없다. 거의 잡담 수준의 정보가 올라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 깊이 있는 정보가 있겠다 싶으면 예외 없이‘전문자료’라고 해서 돈을 내고 사야 한다. 심지어 30쪽짜리 논문 한 편이 7,000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영어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온갖 지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history(역사)를 쳐 보라. 한 두 사이트만 들어가면 세계사에 관한 개요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관심 분야에 따라 거기에 연결된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면 지역별, 시대별로 아주 전문적인 수준까지도 공부할 수 있다.

이처럼 한글 인터넷과 영어 인터넷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에 있다. 우선 지식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 다음 그런 지식을 남에게 공짜로 제공할 만큼 헌신적이어야 한다(*위키피디아의 한국어판을 영어판과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한글 인터넷이 내용 면에서 별 매력이 없는 이유는 우선 매력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적고, 그나마 그런 지식이라도 인터넷에 올리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더더구나 적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지간한 학회는 최근호를 제외하고는 학회지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것도 디자인을 아주 멋지게 해서. 반면 우리나라 학회들 중에서 홈페이지에 제대로 정보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니 한글을 사용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지식 수준은 영어권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력적인 지식을 갖춘 헌신적인 사람을 단기간에 많이 키울 수는 없다. 그나마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우리의 지식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돈을 내고 사게 돼 있는 각종 전문자료를 네티즌들이 무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전문자료들은 대개 논문의 형태인데 한두 회사가 학술지를 내는 학회나 연구기관과 계약을 맺고 일반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그래 봐야 회사만 돈을 벌 뿐 학회나 연구기관은 다른 전문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권리 정도밖에는 돌아오는 것도 없다.

일반인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알량한 자료를 사거나 무슨 무슨 학회지에 실린 논문 한 편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을 뒤져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이런 번거로움이 없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999~2005년에 실시한 두뇌한국(BK)21 사업도 그렇다. 1조 5,700억원을 들여서 나온 수많은 논문들이 인터넷에는 올라 있지 않다. 그냥 책이나 논문의 형태로 출판됐을 뿐이다. 이것만 그냥 인터넷에 올려도 지식검색에서 볼 만한 내용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국민 세금을 엄청 쏟아부어 나온 결과물을 극소수의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 중에서도 터무니없는 낭비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교육부도 좋고, 문화부도 좋고, 학술진흥재단도 좋으니 정부가 나서서 서고에서 잠자고 있는 연구물들을 인터넷으로 끌어냈으면 한다. 저자에게 최소한의 지적재산권 사용료만 지급하고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논문 한 편에서 영화나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제품 개발의 소재를 얻을 수도 있고, 전문지식을 키울 수도 있다. 이제 공부는 학생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식은 누구에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구글에서는 지금 미국 주요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1900년 이전 발행 도서를 영인해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종수만 해도 수백 만 권에 달한다. 그 방대한 자료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갈 때 어떻게 활용될지는 예측을 불허한다.(이광일 논설위원)

한겨레(07. 02. 17) 미 명문대 온라인 공짜강좌 ‘펑펑’

카리브해 연안 세인트루시아에 살고 있는 캐나다 출신 기업가 로버트 크로건은 요즘 미 아이비리그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무료 강의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 대학 몇몇 강좌의 강의노트가 자신이 추진중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업무와 폭넓게 관련된 ‘세계 개발’과 ‘기업금융’ 등의 강의도 공부하고 있다. 크로건은 “(MIT 강좌가) 내가 사회에서 배운 실무지식과 제도교육의 용어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미군 소위인 로니 매튜도 노트르담 대학의 ‘신학의 기초’ 온라인 강좌에 빠져 있다. 그는 담당 교수인 게리 앤더슨의 강의 계획과 내용, 과제에 따라 하루에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있다고 <원스트리트저널>이 15일 전했다.

미국에서 강의 내용을 온라인에 무료 공개하는 대학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문턱이 높은 대학 강의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해, 이른바 ‘교육의 민주화’를 추구하겠다는 게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들의 공식적인 설명이다. 이 외에도 △대학 지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동문 기부금을 확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신문은 분석했다.

강좌 공개에 가장 적극적인 대학은 MIT다. 현재 1500개 강좌의 강의 노트와 교육과정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다. 오는 11월까지 1800개로 확대해 사실상 대학의 모든 강좌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노트르담대도 지난 가을부터 ‘철학개론’ 등 8개 강좌의 강의노트와 필독서 목록, 과제물 등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으며, 2년 안에 30강좌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이비리그의 또다른 명문 예일대도 오는 가을 학기에 ‘구약개론’과 ‘물리학의 기초’ 등 7개 학부 강좌를 영상 녹화해 공개할 계획이다.

아이팟과 같은 엠피3 플레이어와 컴퓨터로 음성 파일을 내려받는 방식인 ‘팟캐스팅(Podcasting)’을 통해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미 서부 최고 명문 스탠퍼드 대학은 지난 가을학기부터 ‘위기의 문학’, ‘역사 인물로서 예수’ 등 3강좌를 애플의 아이튠 유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공개 강좌수를 12개로 늘릴 계획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도 강의 공개를 위해 일부 강좌를 음성과 영상 파일로 제작하고 있다.

이런 강의 공개에는 재단 지원금도 활용되고 있다. 교육자료 공개 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윌리엄 플로라 휼릿 재단’은 지금까지 각 대학과 비영리 재단에 6800만달러 이상을 기증했다. 이 재단의 교육 프로그램 간부인 캐서린 캐설리는 “지식은 공공재다. 공공재는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쪽에선 잠재적인 지원자를 늘리겠다는 목적이 크다. MIT의 공개강의 이용자 조사를 보면, 대학 입학 전 이 강의 사이트를 알고 있었던 신입생의 3분의 1은 강의 내용이 대학 선택과 등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대학들은 강의내용 공개가 지원자를 줄일 것이라고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신문은 전했다.(강성만 기자)

07.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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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닥터 레이는 클럽 '부들스'의 낡고 편안한 가죽 소파에 나와 마주 보고 않아 있었다. 그 클럽은 영국의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우리는 열기가 딱 기분좋게 느껴질 정도로 난롯불과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도 해내지 못했단 말인가?" 그가 재촉하듯 물었다.

"전혀" 내가 털어놓았다. "보름 전부터 벽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네."

내가 오랜 친구인 그를 찾아온 것은, 원기와 낙관주의와 집중의 힘을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기적의 약' 한 가지를 처방해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12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유수한 어린이 신문사의 편집장에게, 청소년 독자들이 내게서 기대함직한 교훈적이고도 멋진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쓰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그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대개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멋진 이야깃감이 떠오르곤 하지."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밤이 길어지고, 상점 진열장에 장난감들이 가득 찰 때가 되면, 그런 이야기가 절로 떠오른다네, 하지만 이번엔 내게서 영감이 떠나버린 것 같네. 벽 앞에 있는 것 같다니까...."

훌륭한 의사의 두 눈에 꿈꾸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자넨 멋진 주제를 찾아낸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벽이라...난 자네에게 약을 처방하지 않겠네. 부들스에서는 의사가 아니니까 말일세. 그 빌어먹을 알약을 원하다면, 병원으로 날 찾아오게. 5기니 정도 들 걸세. 하지만 그 대신 벽에 대한 실화 하나를 들려줄 순 있네. 여기서 말하는 벽은 원래의 뜻도 되고 비유적인 뜻이기도 하네. 이 사건은 혹한의 추위가 볼아치던 어느 해 성 실베스트르 축제일(12월 31일)에 일어났네. 사람들이 우정과 따스함과 기적을 가절히 필요로 하는 때 말일세.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에 관한 거라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내가 런던 경찰국 소속 법의학자로 일하던 때였네.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잠을 자고 있는 가엾은 사내를 들여다봐 달라고 사람들이 한밤중에 나를 침대에서 끌어내는 일이 종종 있었지. 12월의 어느 희뿌연 새벽- 이 점에서 런던을 당해낼 곳은 없을 걸세-, 나는 그런 식으로 얼스 코트의 가구 딸린 누추한 건물로 사망 확인을 하러 갔었지. 그곳의 서글픔과 더러움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동전을 넣어야 가스 난로가 작동하는 초라한 방으로 들어서자 그날 밤 목을 매어 자살한 스무 살가량의 젊은 남학생의 시신이 내 앞을 가로막았네. 얼어붙을 듯한 방 안에서 사망확인서를 쓰기 위해 탁자 위에 않았을 때, 신경질적인 글씨로 빼곡한 몇 장의 종이가 내 시선을 끌었네. 힐끗 눈길을 주었다가 문득 관심이 끌려 그것을 읽기 시작했네. 그 불쌍한 청년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적어두었더군. 얼핏 보기에 그는 고독의 발작에 꺾이고 만 것 같았네. 그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었네. 크리스마스가 돠자, 그의 전 존재가 애정을 갈구하게 되었지. 사랑과 행복을....

사건은 여기서부터 꼬인다네. 프랑스어로 '스 코르세'(이야기나 사건 따위가 복잡하게 꼬이다.-편집자)되는 거지. 옆방에는 안면은 없지만 때때로 층계에서 마주치는, '천사 같은 아름다움'-이런 표현에서 젊음의 극단적인 면을 읽을 수 잇을 걸세-으로 그를 깊이 감동시킨 처녀가 살고 있었네. 그런데 그가 슬픔과 낙담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안 옆방에서는 벽을 통해 삐걱임, 신음, 그리고 특이한 소리가 들려왔네. 그 소리를 두고 청년은 그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독특한 소리'라고 유서에 써놓았더군. 그가 유서를 쓰고 있는 동안  그 소리는 줄곧 이어졌던 모양이네. 그 가엾은 청년은 분노와 경멸에 차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그 소리를 자세히 묘사해놓았으니 말일세. 그의 글씨는 몹시 흥분한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었네. 영국 청년이 쓴 것치고 그 글은 상당히 노골적이었네. 분노에 찬 절망적인 풍자를 곁들인 그 글은 상당히 노골적이었네. 분노에 찬 절망적인 풍자를  곁들인 그 글은 아주 세세한 것까지 묘사하고 있었네. 그가 써놓은 바에 따르면, 적어도 한 시간에 걸쳐 침대가 삐걱이고 요동치는 소리와 명백한 쾌락의 헐떡임이 들려왔다는 거야. 내가 그 소리를 묘사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 모두 벽에 귀를 대고 그런 추잡한 쾌락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테니까 말일세. '천사 같은 옆방 처녀'의 쾌락에 겨운 신음 소리는, 그러잖아도 고독과 낙담과 총체적인 혐오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의 마음에 일격을 가한 것 같네. 그는 또한 자신이 남몰래 그 미지의 처녀를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털어놓고 있었네. '그녀가 어찌나 예뻤던지 감히 말도 걸 수 없었다.'고 그는 적어놓았더군. 그는 그 또래의 제대로 교육받은 영국 젊은이가 함직한 실랄한 비난을 '구역질나는 추잡한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었네. '그런 세상을 더이상 살지 않겠다.'면서 말일세. 요컨대 애정의 갈망에 찢기고 수줍음 때문에 말조차 걸어보지 못한 채 신비로운 '천사'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나치게 예민하고 너무나도 순수하고 극도록 외로웠던 그 청년이 벽을 통해 들려오는, 충분히 알 만한 너무나도 세속적인 그 처녀의 신음소리를 듣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걸세. 그래서 청년은 커튼 줄을 잡아 뽑고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 걸세. 그 글을 다 읽고 확인서에 서명을 한 나는 방을 나서기 전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옆방은 조용했네. 오래 전에 사랑의 유희를 끝내고, 당사자들은 기분좋은 잠에 빠져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지. 그게 인간 본능의 한계니까 말일세. 만년필을 주머니에 넣고 왕진 가방-내가 프랑스어로 '뫼랑빌(시내 죽음용)'이라고 부르는-을 집어들고,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이는 잠이 덜 깬 집주인이랑 경찰관과 함께 층계를 내려가려는 순간 나는 문득 호기심-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에 사로잡혔다네. 물론 그럴싸한 구실을 찾아낼 수 있었네. 어쨋든 그 처녀와 쾌락의 파트너는 비극이 일어난 방과 얇은 벽-얼마나 얇은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걸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으니 말일세. 그들이 우리에게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줄 수도 있었지.하지만 내가 그런 행동을 한 주된 동기는 특별한 호기심-변태적이든 파렴치한 것이든 마음대로 생각하게-에서였다는 사실을 자네에게 숨기지 않겠네. 나지막한 신음과 숨소리로 그런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그 '천사같은 여자'를 한번 보고 싶었다네. 나는 그 방 문을 두드려보았네. 아무 대답이 없었지. 그 여자가 아직도 남자를 안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자, 이불을 뒤집어쓴 채 겁에 질려 있을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네. 내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냥 층계를 내려가려 할 때였지. 두세 차례 문을 두드리며 '존스 양! 존스 양!'을 외치던 주인 여자가 열쇠꾸러미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었네. 외마디 소리가 들려오더니, 주인 여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방에서 달려나왔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커튼을 젖혔네. 침대 위를 한 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벽을 통해 들려와 청년을 절망적인 행동으로 몰아간 그 탄식과 소스라침과 신음 소리의 정체를 청년이 완전히 오해했다는 사실을 아 수 있었네. 베개 위에서 나는 비소 중독으로 인한 온갖 증상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금발 머리 여인의 얼굴을 보았네. 처녀는 몇 시간 전에 죽은 것 같았네. 그녀의 마지막 고통는 길고 고통스러웠던 모양이야. 탁자 위에는 자살 동기를 분명하게 말해주는 유서가 놓여 있었지. 그녀가 죽은 이유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 때문이었네."

말을 마친 닥터 레이는 우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울분에 겨워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 항의의 말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망연자실해 있었다.

"그렇다네, 벽은" 하고 의사는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자네의 아주 참신하고 흥미로운 크리스마스의 이야기의 주제가 될 걸세. 사람들의 가슴속에 이제 신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야."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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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TV] ‘악플’보다 ‘무플’이 두려운 세대의 아찔한 생존법
[매거진t 2006-12-07 10:32]    

김현진, <아찔한 소개팅>을 보며 80년대의 아이들을 생각하다.

<아찔한 소개팅>에 대해 마지막으로 쓴다. 그 이상의 글줄을 할애하는 것은 나에게도, 이 프로그램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도움 안 되는 짓이다.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이 프로그램이 싫었던 이유는 지난번 글에 이미 썼고,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며 이마를 찡그리고 텔레비전을 봤던 나는 이후 <아찔한 소개팅>이 검색어 상위에 오르고 이 프로가 죽도록 먹는 바로 그 욕을 양분으로 삼아 승승장구하다가 심의로부터 중징계를 받는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문득 서글퍼졌는데, 그 서글픔으로 인해 스스로 깜짝 놀랐다. 도대체 내가 왜 저 리얼리티 쇼를 보다 말고 서글퍼진단 말인가? 그러나 가을이니까, 혹은 넌 원래 미쳤잖아, 하는 식으로 그냥 넘기기에는 그 서글픔은 무척 진하고 질겼다. 킹카가 싸가지 없네, 퀸카가 이상하네,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버스 안에 옹기종기 모여 웃고 분노하고 사진을 밟는 그 청춘남녀들을 보며 거의 처음으로, 나는 나의 세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염불보다 젯밥, 소개팅보다 TV 출연

<아찔한 소개팅>이 그토록 많은 분노를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막말이나 출연자들의 어이없는 만행 때문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이 분노를 사는 가장 큰 이유이자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찔한 소개팅>이 겉으로는 소개팅 시켜 준다면서 사실은 싸움 붙이고 그걸 구경하는 프로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사랑의 스튜디오> 출연자들은 정말로 결혼하기도 했지만, <아찔한 소개팅>을 보면서 어떤 시청자도 본디 의도대로 ‘신세대의 솔직한 연애법’이나 ‘청춘남녀의 만남’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찔한 소개팅>의 재미요소는 바로 “이번 주에는 또 얼마나 미친 애가 나올까” 라는 것이다. 털 뜯기고, 물에 빠지고, 바보 취급 받는 꼴이 대한민국 온 천지에 중계되고 본방과 재방을 거듭하는데도 청춘 남녀들은 여전히 <아찔한 소개팅>에 출연하고 싶어한다. 모두가 이게 정말로 소개팅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이게 정말로 소개팅이라면 남자친구가 있는데도 출연한다거나 내가 방금 돌려보낸 여자가 다른 후보에게 내 이야길 미주알고주알 다 할걸 알면서도 “수작이 개수작”이라느니 “다리털을 빗어도 되겠다”식의 폭언은 못하기 마련이다. 이 좁디좁은 싸이천국 대한민국에서, 세 다리만 건너면 온 국민이 서로 아는 마당에 어떻게 그런 사회적 자살을 한단 말인가?

이게 소개팅인 척 하는 건 오로지 프로그램의 제목뿐이다. 그렇다. 만드는 쪽도 보는 쪽도 다 알다시피 이 프로그램에 모여드는 건 ‘소개팅을 하고 싶은’ 청춘남녀가 아닌 ‘TV에 나오고 싶은’ 청춘남녀다. 자,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네- 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라난 세대는, 이렇게 하여 텔레비전에 등장한 것이다.

<아찔한 소개팅>에 드러난 우리의 진실, 영혼의 공동(空洞)

그러나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나는 퀴즈를 못 맞춘다고 물에 빠뜨리거나 에스테틱 샵에서 남의 털을 뽑는 그 사람들과 바로 같은 세대다. 0으로 시작되는 학번과, 80년대 이후로 시작되는 주민번호를 지녔으며, 휴대폰 문자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쓰기 시작한 첫 세대다. 우리는 ‘왕따’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일 때에 학창시절을 보냈고, SM이니 DSP니 하는 곳에서 탄생한 아이돌 문화의 강력한 조력자이자 소비자였으며, 온라인 게임의 첫 고수들이었고 프로 게이머라는 생소한 직업군의 탄생에 일조하였으며, 스무살의 TTL이니 팅이니 알이니 N세대니 하는 “쿨하게 돈을 쓰라”는 미디어의 부추김 속에 성장하였고 ‘얼짱’이라는 단어가 생성되는 과정을 생생히 지켜보며 얼마든지 “얼굴 뜯어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뼛속까지 느낀 첫 세대다.

우리는 아무런 구호도, 아무런 외침도 없이 자라났다. 전교조 교사들이 끌려가는 걸 본 적도 없고, 전교조 교사들이 복직되는 걸 본 적도 없다. 적어도 바로 그 전 선배들인 70년대 후반 태생들에게는 “그래도 돈이 전부는 아니”라던가 “사람의 외모만 봐선 안 된다”다는 식의 위선적 점잔이라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뭣도 없다. 돈만 있으면 뭐든 다 되는 것과 외모가 얼마든지 밥 먹여 주는 것을 지겹도록 보았다.

여기에서 <아찔한 소개팅>의 권력구조는 견고하게 생성된다. 못생긴 여자 도전자는 킹카가 주는 수모를 견뎌야 하고, 키 작거나 조건이 보잘것없는 남자 도전자는 퀸카의 핀잔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찔한 소개팅>이 일견 의미있는 리얼리티 쇼처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 출연한 우리 세대의 군상들이 앞서 말한 성장과정을 통해 몸에 익힌 질서를 이렇게 사정없이 노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단편적 진실은 <아찔한 소개팅>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기도 모르게 노출해 버린 이 세대의 공동(空洞)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다.

맞서 싸울 대상이 없는 세대의 외로움

우리는 영혼에 거대한 공동(空洞)을 지닌 첫 세대다. 쿨하지 못하면 당장 나가 죽어야 할 것처럼 창피해하고, 가볍고 경쾌하다 못해 그만 양 조절을 못하고 천박해져 버린 세대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이자 불운은 맞서 싸울 그 어떤 대상도 딱히 없었다는 것이다. 맞서 싸울 대상이 없었기에 몸은 편안했으나 영혼에는 큰 공동이 생겼다. 맞서 싸울 대상이 없었던 건 정말로 싸울 대상이 없었던 게 아니라, 모든 것과 다 싸워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는 번번이 졌다.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부자 아빠가 되라고 등을 떠밀고, 외모보다 마음이라면서도 성형 한두 군데는 칼 댄 것도 아니라며 성형외과 가라고 눈 부라리고, 너의 모든 것은 20대에 결정되는데 지금 잠이 오냐며 청년실업, 영어공부, 얼짱몸짱, 끊임없이 들쑤신다.

그렇다, 우리는 쭉정이다. 우리가 가져 본 구호의 양은 어찌나 초라한지 “독도는 우리땅!” “오노 개새끼!” “대~ 한민국!” 정도면 끝나버린다. 세상이 우리보고 쿨하다고 하니까 정말 우리가 쿨한 줄 알았는데 사실 그건 쿨하게 돈 쓰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멋지고 도도하게, 세상 그 무엇도 저스트 텐 미닛, 단 10분 만에 내 밑에 쓰러뜨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실은 거대한 공동(空洞)이 안에서 텅텅 울려서 불안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렇게까지 모르는 첫 세대이기 때문에 이 공동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그저 잊혀지지 않기를 원한다. 이 공동은 끊임없이 우리를 들쑤시며 일촌평 써달라고 절규하고 메신저에게 누가 나 차단했는지 알아보고 연애나 해보려다 그냥 낚시로 끝나며 밤낮 지름신의 사제가 되게 한다.

유일한 두려움은 잊혀지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아찔한 소개팅>의 출연자들은 공동(空洞)을 안은 세대의 미덕을 전력으로 구현한다. 그 미덕은 있는 대로 욕을 먹고 내 홈피에 악플이 창궐할지언정 잊혀지는 것보다 어떻게든 기억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유일하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우며, 우리가 그것을 그 정도로까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도 싸워 본 기억이 없기 때문에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아찔한 건, 소개팅이 아니라 바로 그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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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2-0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플을 왜 두려워해야 하는가
어떤 날은 고즈넉한게 좋던데 큭^^
그래도 에오스님에겐 내가 찐드기처럼 안 떨어지고 있잖아요^^

클레어 2006-12-2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런 찐드기가 너무 좋습니다. ^^
 




 

올드보이 OST - The Last Waltz(미도테마)

<음악출처:자이(ziegfrie)님의 블로그에서>







1.
하나비 (Hana-Bi) -불꽃, 꽃불, 화화(火花):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면서  단조롭고 쪼잔한 일을 하는 사람[사무엘 존슨(언어학자)]

2. 하나비는 폭력의 화려하지만 끝내 짧은 시간에 명멸해가는 허무성에 대한 상징적의미이다. 하나비란 단어를 찾아보다가 '올드보이'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뭘까?

올드보이는 '오대수'라는 인물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대수 - 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산다.'가 삶의 목표였던 이 인물이 15년간의 감금으로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영화 내내 언급된다.

 

이렇듯,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단조롭고 쪼잔한 일을 하던 이가 '운명'의 덫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진다.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추락뿐!!

이런 영화속 인물의 변화는 하나비와 올드보이 모두에서 볼 수 있다.

 

'야쿠자 단속반 출신의 강력계 형사'였던 니시는 암투병중인 아내의 병문안으로 빠진 사이에 야쿠자의 습격으로 팀동료 '호리베'가 부상당하는 일을 겪게 되고, 그를 따르던 후배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범인을 쏘아죽이고 경찰복을 벗는다. 그와 함께 닥쳐온 생활고.. 아내 병원비를 위해 야쿠자의 돈을 끌어썼던 니시는 빚독촉에 시달리다 경찰복을 입은 채 은행을 턴다.

끝없는 추락....추락에서 벗어나기 위한 폭력(그는 빚독촉하던 야쿠자 마져도 죽이게 된다.)

그가 갈 곳은???

니시는 아내와의 마지막 바다여행을 떠나고, 니시를 추격하는 경찰들은 결국 두발의 총성을 듣게 된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 속에서 대충 수습해가던 오대수는 갑작스러운 납치와 15년간의 강금을 겪게 된다. 그 15년간 복수심으로 불타는 괴물이 되어버린 오대수 또한 탈출후 자신을 강금한 인물을 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폭력!!!

그러나, '자칭 오대수학'의 대가라고 하는 범인과의 두뇌 싸움 속에서 진실이 한꺼풀, 한꺼풀 벗겨질수록 오대수는 더욱 더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범인의 구두를 핥고 멍멍 짖으며 자신의 혀마져도 잘라버리는 오대수 또한 그 폭력의 끝이 보여주는 허무함,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영화 올드 보이가 조금 더 하나비에서 나아간 점이 있다면 나락에 떨어져 버린 인간일지라도 살 권리는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질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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