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발견
홍경수 기획.구성 / 샘터사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만인가? 책을 소리내어 읽어 본 것은.

TV에서 보았던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책 속에 등장하는 시를 나는 소리내어 읽어본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어색하다. 그런데 계속해서 낭독을 하다보니 어느새 나의 목소리에도 감정이 배어져 있음을 알게된다. 억양이 변하고, 속도도 변하고, 톤도 변해간다. 그 시에 따라서. 

눈으로 보는 시와 입으로 읽는 시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실감한다. 소리가 갖는 매력을 나의 목을 통해 얻는다는 것이 행복하다. 버벅거려도 좋다. 다시 읽으면 된다. 숨쉴 곳을 찾지 못해 뜻이 변해도 좋다. 또 다시 읽으면 된다. 소리낸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지만 기쁘다는 것을 정말 예전엔 미처 몰랐다. 가끔씩 시 한수 소리내 읽어보는 재미에 빠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TV로 보지 못한 시의 낭독들을 책으로 통해서 만나니 그것 또한 새삼스럽다. 평상시 시를 잘 접하지 않는 나로서는 귀중한 기회였다. 그리고 소중한 만남이었다. 김혜자, 안성기, 도종환, 황지우 등등 낭독한 사람들의 억눌려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감성을 접한것도 행운이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 진행되는 이 낭독을 관심있게 지벼보고 싶다.

이번 책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고 여러번 읽게 만들며 꼭 기억하고 싶은 시가 있다. 바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여기 전문을 싣는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길을 걷다 담쟁이를 마주칠 때면 이제 이 시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말없이 오르는 담쟁이. 혼자서 오르지 않고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담을 넘어서는 그 모습. 그저 벽을 파먹고 오른다고 생각한 나에게 있어 담쟁이는 도둑이었다. 하지만 시인의 눈엔 그는 영웅이다. 혼자 잘난 척하는 영웅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하는 민중의 영웅. 시인의 눈을 갖는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애정을 밑바탕으로 해야하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도둑과 영웅이라~ 내 마음 속 애정의 결핍을 느끼며, 가끔씩 걸음을 조금씩 늦춰봐야겠다. 내가 바라보는 사물에게 사랑의 시선을 뺏겨 시간을 잊어버리도록 가끔은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바삐 책을 읽지않고 가끔은 천천히 천천히 낭독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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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샘 2005-04-2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 낭독해봅니다...좋은시에, 제 목소리에, 혼자 취하네요..^^

하루살이 2005-04-2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해야 산다고 보들레르가 말했던것 같네요. ^^

2005-04-28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