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으로 단옥수수를 먹어본다. 생으로도 먹고 삶아서도 먹을 수 있는 옥수수다. 초당옥수수도 단옥수수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단옥수수는 옥수수의 당 성분이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전분으로 변하는 속도가 일반 옥수수에 비해 느린 변이종이다. 그래서 단맛이 훨씬 강하다. 초당옥수수는 단옥수수보다 훨씬 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당을 초월한, 초당인 것이다. 초당두부의 초당과는 다른 뜻이다. 초당두부의 초당은 소금 대신 바닷물로 간수를 대신해 두부를 만든 초당 허엽(허균의 아버지)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무튼 단옥수수를 먹어본 소감은 맛의 정의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이며 여기에 감칠맛을 더하기도 한다. 단옥수수는 분명 단맛이 강하지만 맛있다고 느껴지기엔 2% 부족했다. 물론 개인 간의 호불호가 다르긴 할 테지만 말이다. 단옥수수는 아쉽게도 씹는 맛이 떨어진다. 알갱이가 작은데다 씹자마자 단물이 빠져나오면서 그냥 삼켜버리게 된다. 다행히 생으로 먹을 때는 옥수수알 뿐만 아니라 심지부분까지 씹게 되면서 이런 부족한 부분을 다소 채워준다.

 

이제 맛의 분류에 씹는 맛도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싶다. 단지 씹히는 감각이 조금 부족한 것만으로 맛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지니 말이다. 그럼과 동시에 건강한 치아가 왜 오복 중에 으뜸으로 여겨질 만큼 소중한 것인지도 통감한다(요즘 오른쪽 이 전체로 씹는 것이 불편하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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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예능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시청하고 있는 것이 [슈퍼밴드]이다. 7월 12일 오늘 생방송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아쉬을 정도다.

나이와 경력, 악기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뮤지션들이 밴드라는 공통의 목표를 세우고 음악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이 <>있다. 유튜브로 연주를 익힌 고등학교 천재 기타리스트에서부터 정통교육을 받은 클래식 연주자, 길거리에서 버스킹을 통해 실력을 다진 싱어, 방구석에서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소리를 창조해내는 아티스트 등등. 어떻게 조합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음악이 쏟아져나온다.

평소 듣던 음악과는 다른 사운드와 기발한 편곡, 음악에 대한 열정 등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간. 하나도 좋지만 여럿이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의 소중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슈퍼밴드는 좋은 점수를 주고싶다. 여기에 나온 뮤지션들 또한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협연을 통해 보다 더 성숙해졌으리라 믿는다. 

완벽한 100은 아니였지만 100을 뛰어넘을 가능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뭉치면 정말 100 그 이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슈퍼밴드. 물론 밴드 구성원 개개인 각자가 기본은 최소 갖추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기 기본을 갖추는 것은 이제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가능한 세상이 됐다. 정규교육이든, 유튜브든, 길거리 실전이든 말이다. 

세상을 향한 그들의 외침을 계속해서 듣고싶다.그리고 우리 또한 어느 분야에 있든 기본을 갖춘 각각의 개인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언젠가 함께 하고픈 그런 멋있는 사람이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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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이것처럼 명확한 것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하다.

왜 콩 심은데 팥이 나지는 않는걸까.

과학적 해답은 유전자일 것이다.

 

그런데 이 유전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유전자가 절대적이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유전자라는 것도 발현이 되어야만 그 쓸모가 있는 것인데, 즉 콩 심은데 콩이 나야만 하는 것인데, 그 발현이라는 것이 굉장히 상대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유전자가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지만 비로소  유전자의 형질이 나타나는 것이다.

 

 

텃밭에 고추 모종을 심고, 그야말로 관리를 하지않고 내버려 두었다. 거름을 주지도 않았고, 벌레를 잡아 주지도 않았다. 아주 가끔 고추보다 키가 커버린 풀만 뽑아주고, 정말 2주간 비가 오지않아 말라죽을 것만 같았을 때 물을 주었다.

조금 매운 고추라는 유전적 특성을 지닌 품종을 심었는데, 고추를 따서 먹어보니 청량고추 저리가라 할 정도다. 물을 주지않다보니 껍질이 두껍고 맛은 매워진 것이다. 즉 재배환경을 맞추어주지 않으니, 자신의 품종 성격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고추로서의 기본적인 특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요즘 딸내미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 이렇다 할 사교육은 한 번도 시킨적이 없다.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한 적도 없다. 다만 정리정돈과 씻는 것, 식탁 예절 정도에서 큰 소리가 나온다. 만약 도시에서 살았다면 옆집에서, 또는 친구들이 하고 있는 사교육에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교육들이 아이들의 유전적 잠재성을 드러내는 작용을 한다면 좋겠다. 하지만 솔직히 잠재성을 드러내는 사교육은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그냥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딸내미를 보며 불안해하지 않는 내 모습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정말 그럴까? ^^;).

다만 아이에게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만은 주고싶다. 그런 기회들 속에서 잠재된 능력이 꿈틀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듯하다. 고추가 그나마 제대로 크려면 풀을 뽑고 물을 주는 것과 함께 적절한 양분이 있어야 한다. 교육에 있어 다양한 경험들이 양분이 되어주지 않을까.그 이외엔 스스로 크는 것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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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는 드라마는 <보좌관><60일 지정생존자><왓처><아스달연대기>다. (ㅋ 드라마 없이 어떻게 하루를 마감할지 ^^;)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조금은 묵직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드라마와 동떨어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다. 주중에 잠깐 말랑말랑한 감성을 자극해 보고자 하는 의도?라기 보다는 검색포털의 뒷 이야기에 관심이 가서다.(그런데 최근의 경향이긴 하지만 공중파 보다는 케이블 TV 드라마만 찾게 되는 것은 왜일까)

지난주 <검색어...>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이 드라마 최고의 신이라고 할 만하다. 회사 동료들과의 즐거운(마지못한이 아니라 즐거운이다) 회식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장범준의 <손 닿으면>이라는 노래와 함께 흘러간다. 이적의 <달팽이> 가사를 연상시키는, 집에 홀로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하며 지쳐 보인다. 그냥 그렇게 외로운 모습이 짠하게 느껴질 쯤, 사퇴를 밝힌 바로의 대표 민홍주에게 위로와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우린 섬처럼 홀로 외롭지만, 그 섬들은 제부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리로 서로 이어져 있다.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홀로 있으면서도 홀로만 있지않은. 우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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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식물(넝쿨식물)은 정말 눈깜짝할 새에 자란다. 특히 박과 식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 있어 놀라게 된다. 그렇다해도 칡에 비할건 못되지만 ... 칡은 그야말로 사방팔방 가지를 뻗고, 누군가 그 가지를 잘라내어 내동댕이쳐도 흙에 닿기만 하면 새로 뿌리를 뻗어 자라나니 천하무적이다. 밭에 퍼진 칡을 약없이 없애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밭이 맨땅을 드러내지 않고 어느 정도 생태적 균형이 갖추어진다면 칡은 저절로 없어지리라 믿는다. 칡은 그야말로 선점식물?이지 않을까 싶다. 맨땅을 그대로 놔두기 싫어하는 자연의 성격상 그 첨병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니 맨땅이 아닌 생태적 균형이 잘 갖추어진 곳에서는 자신의 임무가 사라지니 자연히 없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일단 약을 치지않고 보이는 대로 가지를 잘라내고 있다. 칡이 자연스레 없어지는 그날까지 ^^;

어째됐든 이 박과식물들은 손을 뻗어 움켜잡는 성질이 있다. 이 성질을 잘 이용하는 것이 농사다.

호박이나 수박, 참외는 그냥 땅을 기게 놔두고, 오이는 망을 쳐서 위로 자라도록 한다. 열매의 무게나 생김새에 따라 이렇게 키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어져서 일 것이다. 또하나 포도는 천정을 만들듯이 고개를 들어 치렁치렁 매달리도록 키운다. 관상용으로 키우는 조롱박들도 이와 비슷하다. 포도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서 집의 어닝 역할을 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한여름 무더위 때에는 포도도 잎이 무성할 것이니 그늘을 만들어 줄 것이고, 겨울에는 잎이 다 떨어지니 해를 그대로 받을 수 있어 좋을듯하다. 그런데 첫해 벌레 피해로 잎을 거의 다 잃어버려 자라질 못했다. 겨우 겨우 목숨만을 건져, 올해는 벌레 관리를 어느 정도 해 준 덕에 높이 높이 자라났다. 아직 어닝 역햘까지는 힘들지만 말이다. 그런데 포도 잎에 점점 벌레들이 끼기 시작해 난감하다. 큰 벌레야 그냥 손으로 잡아냈지만 눈꼽보다 작은 것들이 폴짝폴짝 뛰어 도망가니 참....

이제 점점 벌레가 극성일 텐데 오직 손으로만 해결하려다보니 이 여름이 두렵다. 올 여름 잘 넘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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