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 월화드라마는 작정하고 과장을 한다. SBS [펜트하우스]는 연기와 줄거리로, tvN [산후조리원]은 장르를 넘나드는 플롯으로 과장을 한다.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펜트하우스]의 과장은 채널을 돌리게 만들고, [산후조리원]의 과장은 채널을 고정시킨다. 


2. [산후조리원]은 격정 출산 느와르를 표방하고 있다. 실상은 드라마와 코미디, 스릴러 등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연기의 과장이 필요해진다. 즉 [산후조리원]의 과장된 연기는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도한다. 아마도 연출가가 SNL코리아를 통해 코미디를 잘 알고있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그저 웃는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웃음과 함께 모성에 대한 고민과 공감을 끌어모으기도 한다.    


3. 모성이란 본능일까. 글쎄... 모성은 신화에 가까운지 모른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라는 거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폭행하고, 겁박하며, 함부로 대하는 엄마들을 뉴스에서 마주치게 되는 것을 보면 본능이 아닐 수도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국가가 그렇듯이 모성도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신화가 지금 우리 사회를 버텨내게 하는 원동력의 하나일 수 있기에, 막강한 힘을 가진다. 


4. [산후조리원]은 신화가 된 모성을 갖추기 위해 성장해가는 엄마들의 이야기다. 본능이 아닌 신화이기에, 모성을 갖춘다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괴로움과 수고 속에서 체득되어지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은 이렇게 모성을 갖추어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고민과 갈등을 코미디 장르를 통해 발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현진 역의 엄지원을 통해서 말이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보며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의 행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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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산하가 단풍으로 물든 이맘때는 자전거 타기에도 제철이다. 최근 자전거에 재미를 붙인 딸내미와 함께 오늘은 국토종주 오천자전거길의 괴강교 인근을 찾았다. 



괴강교 근처의 휴게소(인증센터가 이 부근에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인증에 관심이 없어서 인증센터가 있는지 여부는 살피진 않았다)에서 출발했다. 단풍나무의 강렬한 빨간색과 초록빛을 띠는 달천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전거길은 파란색 줄이 표시되어 있다. 이 줄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면된다. 인증센터를 100미터 지나면 이정표가 나오고 곧이어 괴강관광농원 캠핑장을 지나게 된다. 글램핑과 캠핑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인데 가족 단위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보니 여기까지는 꽤나 아기자기하게 길을 잘 꾸며놓은 느낌을 받는다.



캠핑장을 지나고 나면 여느 시골풍경과 다르지 않는 모습들과 마주친다. 왼쪽으론 한창 결구되어가고 있는 배추와 타작을 하고 있는 깨 등 밭을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달천이 흐른다. 천변으로는 갈대가 군데 군데 무리를 지어 하얀 손짓을 한다. 



2키로미터 정도를 달리면 두천교에 다다른다. 두천교 바로 앞은 쉬어갈 수 있는 넓은 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괴산의 산막이옛길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자전거길을 안내하던 파란색줄이 보이질 않는다. 보천교를 건너가야 하는 것인지, 건너지않고 도로를 따라 가야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파란줄이 끊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안내표지판이라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나중에 보니 보천교를 건너지 않고 도로를 따라 쭈~욱 200여 미터를 가면 다시 파란 줄이 나타난다).



딸내미와 함께 가는 길이다보니 이 종주길을 계속 갈 수는 없었다. 벌써 다리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 그래서 종주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보천교를 건너보았다. 보천교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꽤나 멋지다. 



보천교에서 바라본 은행나무길이 멋져보여 자전거길 대신 달천을 따라 난 둑방길을 선택했다. 배추의 초록색과 은행나무의 노란잎, 그리고 달천이 어우러져 마음이 밝아온다. 



이 길을 따라 500여 미터쯤 가다보면 달천에 놓여진 징검다리가 보인다. 물이 얕게 흐르고 있어 재미삼아 징검다리도 건너본다. 


집순이 딸내미도 방에서 뒹굴뒹굴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자전거를 타며 바람쐬는 것을 즐길줄 알게됐다. 물론 2시간 이상은 지루해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젠 제법 풍경이 주는 맛을 아는 듯하다. 아무리 멋진 풍경도, 경이로운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그저 주위를 둘러싼 자연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풍경이 주는 맛과 멋을 알게되는 듯하다. 무엇이 풍경을 대하는 마음에 변화를 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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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는 네이버 웹툰 [기기괴괴]의 '성형수'편을 영화화한 것이다. 성형수를 물에 희석해 얼굴과 몸을 20분간 담그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성형수를 둘러싼 사건과 표현이 대담해 자칫 구토를 유발(?)할지도 모르겠다. 성형에 대한 발칙한 상상력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우려가 잘 녹아있다. 사건이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지기에, 잔혹한 표현에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다면 추천. 


2. 외모도 실력인 세상. 다이어트와 화장과 관련된 시장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외모 때문에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면, 외모를 바꾸고 싶은 열망에 들뜰 수밖에 없다. 예뻐지기만 하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 이에게 예뻐질 수 있는 비결이 있다는 광고문자가 날라온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기기괴괴 성형수]의 주인공도 어렸을 적 발레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자신의 외모 탓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중도에 발레를 그만두고 지금은 연예인들의 메이크업을 맡고 있다. 하지만 외모 때문에 자꾸만 업신여김을 당한다. 그러던차 '성형수'의 광고를 보게된다. 성형수를 통해 외모가 180도 바뀐 그녀는 연예계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하지만 더 예뻐지고자 하는 욕망과 자칫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그녀를 옥죄고, 잠깐의 방심으로 성형수의 부작용 피해를 입게 된다. 과연 그녀는 이 피해를 이겨내고 화려한 외모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3. <관종>의 시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의 관심을 받지않고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면 사랑받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도를 지나쳐 타인의 관심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문제가 된다. 

SNS의 발달로 '나 좀 봐주세요'라고 외칠 수 있는 공간이 넘쳐난다. 더군다나 다양한 앱을 통해 카메라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여러가지로 왜곡해서 표현할 수 있게됐다. 물론 더 예쁘고 당당한 모습으로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앱으로 표현된 나와 실제 나와의 차이가 커질 수록, 그리고 그 차이를 느껴가는 정도가 심해질 수록 우울감은 커질 수 있다. 왜 진짜 나는 앱 속 나가 될 수 없는지 무력감이 커져가는 것이다.

'좋아요'에 대한 탐닉은 또 어떤가. '좋아요'는 SNS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도구로 발명되었지만, 자기애의 탐닉과 중독으로 이어졌다. 조회수가 낮고 '좋아요'가 없으면 나의 진짜 삶조차 불안해진다. 

더군다나 요즘은 '좋아요'를 넘어 '구독'이 경제적 힘까지 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됐다. '날 좀 봐주세요'에 대한 집착은 점점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를 봐준다는 것은 힘(경제적인 것을 포함해 권력까지)을 얻을 수 있는 큰 비결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게다가 예전엔 정말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 여겨졌지만, 이젠 그 힘을 누구나 가질 수 있을것처럼 보인다. '날 좀 봐주세요'의 유혹은 더욱 큰 것이다. 

[기기괴괴 성형수]는 그 욕망이 어떻게 비뚤어지고, 비극을 불러오는지를 호러라는 장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성형을 통해 예뻐지고 싶은 욕망으로 표현되었지만, 그것은 결국 관심의 다른 이름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 SNS의 홍수 속에서 발버둥치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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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보]는 생각보다 눈물이 나지 않지만, 마음 한 켠은 따뜻해지는 영화. 감정의 울림 폭이 크진 않지만 잔잔한 여운을 즐기는 이들에겐 추천. 아저씨가 아빠라 불릴 때의 감동이 영화의 매력. 슬픈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작은 재미도 곳곳에 있다. 하지만 격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는 부족해보인다.


2. 연변에서 한국으로 불법 체류한 아이(승이-박소이 분)의 엄마는 빚을 지고 있다. 빚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아이를 담보로 엄마에게 돈을 갚으라 한다. 말이 담보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납치에 가깝다. 아무튼 승이 엄마는 돈을 갚아보려했지만 오히려 불법체류자로 잡혀 추방된다. 승이엄마는 큰 아빠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큰 아빠는 빚진 돈을 갚아주고 승이를 데려간다. 하지만 승이는 곧 룸싸롱에 팔려가고...


3. 담보로 잡고 있던 승이와의 연 때문에 두석과 종배는 룸싸롱에 잡혀 있던 승이를 400만원을 주고서 데리고 온다. 한국 국적이 아니기에 학교에도 다닐 수 없던 승이를 위해 호적 상 딸로 올리고 교육을 시킨다. 승이는 커서 정부의 중국 통역을 담당하는 통역사로 자라게 된다. 하지만 두석이 승이를 위해 친아버지를 찾아준 날 두석은 오토바이 사고와 기억 상실로 승이와 종배와 헤어져 실종 상태가 된다.


4. [담보]영화의 매력은 어린 승이 역을 맡은 박소이 양의 연기가 크다. 똘망똘망한 눈동자에 행복에 겨운 미소와, 화가 잔뜩 묻어있는 째려보는 눈, 엄마를 그리워하는 눈물 등의 표정이 어른들의 묵은 때로 가득찬 가슴을 무장해제시킨다. 잠깐동안이라도 순수함을 찾고 싶다면, 승이의 표정을 마음으로 느껴보시길. 


5. [담보]는 어릴 적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룸싸롱에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환경에서 계속 자랐다면 승이가 어른이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비록 담보로 시작됐지만 두석과 종배는 승이에게 사랑을 주고, 교육을 위해서 헌신했다.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행복하게 자라도록 해주는 일은 어른에게 달렸다. 두석과 종배라는 개인 개인이 아니라 사회라는 체제가 이 어른의 역할을 해주어야만 한다. 사회와 정부가 아이들을 담보로 잘 키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담보]에서 잊지말아야 할 것은 룸싸롱에 팔려간 승이다. 아이들이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 안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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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의 여성참정권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졌고, 그후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점차 많은 나라들이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영국은 수차례 여성참정권을 담은 선거법안을 상정했지만 폐기되기 일쑤였다. 1917년, 1918년에 이르러서야 하원과 상원에서 차례되로 법안이 통과되었다. 

넷플릭스 영화 [에놀라 홈즈]는 영국의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사건을 배경으로 셜록 홈즈의 여동생 에놀라 홈즈의 활약상을 담았다. 영화적 상상력으로 담아낸 에놀라의 활약은 자립과 사랑, 성평등의 내용을 엄마를 찾아나서는 사건으로 쾌활하게 풀어냈다.


2. [에놀라 홈즈]는 먼저 추리소설적 재미가 있다. 단서를 남겨두고 떠나버린 엄마를 찾아나서는 에놀라의 추리가 흥미를 끈다. 단서로 남겨진 단어의 철자를 바꿔서 해답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주사위 놀이처럼 표현하는 편집기법도 흥미롭다. 여기에 에놀라가 화면을 바라보며, 즉 관객과 대화하듯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장면들도 영화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또 엄마를 찾아 집을 나서면서 처음 만나게 된 귀족 청년은 일회성 해프닝처럼 보여졌지만,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 되어가는 구성도 재미있다. 이런 구성과 편집은 물론 영화 전반을 발랄하게 이끌고 가는 주인공 밀리 바비 브라운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3. [에놀라 홈즈]는 교육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는듯 보인다. 에놀라가 자립적이면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순전히 엄마의 교육 덕분이다. 어려서부터 갖은 인문서적과 과학서적, 실험은 물론 운동을 섭렵하게 함으로써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스스로 독립해 생존해 갈 수 있는 힘을 기른 것이다. 물론 이런 교육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신뢰관계가 서로 간에 쌓여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아이가 점점 무엇인가에 물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부모의 말이 되었든, 학교의 생활이 되었든, 수많은 콘텐츠들이 되었든, 그야말로 백지장같던 영혼이 무엇인가로 채워져 가고 있음을 알게되는 것이다. 다만 수많은 것들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채우고, 채워진 것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재창조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그렇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에놀라가 엄마의 품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그 생각의 힘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에게 우린 무엇을 건네주어야만 하고, 또한 건네줄 수 있을까. AI가 위력을 더욱 더 발휘할 세상에서 추천 알고리즘의 추천으로만 둘러싸이게 놔둘순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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