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화초를 키운 적은 별로 없다. 방에다 가져놓기만 하면 죄다 죽어버려 자신이 없어서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대하면 잘 자란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군다나 정말 그네들이 나의 애정을 먹고 자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나는 애정이 없거나, 남을 살리는 관심이 아니라 죽이는 관심을 가졌을 뿐이라고 해석해야 하니, 그 이론을 어찌 믿겠는가?

그런데, 하하하. 처음으로 내가 키우던 난에서 꽃이 폈다. (어스름때 찍었더니 영 핀트가 안 맞는것 같네요) 공짜로 얻은 난이라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그만 화분에 빽빽히 들어차 자라던 것이 반은 말라 죽었다. 그래서 과감히 화분에서 그것을 덜어내고 나머지를 그냥 키웠는데, 그게 이렇게 보답을 해 줄 줄이야.

단순히 화분에서 자라는 난 하나가 꽃을 피웠을 뿐인데, 나의 마음은 왜 이리 흥분되고 기쁜 것일까?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번 물을 준 것 말고, 두어달에 한번 잎에 묻은 먼지를 닦아준 것 말고, 평상시 관심도 없던 놈이 이렇게 밝은 꽃을 피워주다니... 믿기지 않았다. 무엇을 키운다는 것이 이런 행복감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 무럭무럭 자라 꽃을 피운 난이 기특해보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아주 가끔씩이라도 지켜보는 사람이 혹 있다면(물론 부모님이야 평생을 그렇게 지켜보신 분들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 화려하고 풍성하진 않더라도 나만의 꽃을 피우는 것 그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물론 나 자신도 나의 꽃을 피워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더욱 행복할 테고. 묵묵히 생명을 키워가는 난처럼, 절망하지 말고 꿈을 키워갈 것을 난꽃으로부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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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난에 더 매료되는 건 왜 일까요? 뜬금없이 드는 생각입니다.
-난초와 같은 파란여우-뻥쟁이!

하루살이 2006-08-0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드러운 곡선? 갸날픈 몸매? ㅎㅎ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말로센 시리즈 1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은 백화점 품질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말로센을 주인공으로 한다. 어느날 백화점에서 폭탄이 터지고 사망자가 생긴다. 첫번째는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똑같이 되풀이된다면 뭔가 법칙이나 필연적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번째 폭탄, 세번째 폭탄이 터지는데 하필 그 앞에 꼭 말로센이 있다. 직접 폭탄으로 인해 죽지는 않지만 그가 가는 곳에서 터지는 폭탄들. 형사와 경찰은 그를 의심하고, 네번째 다섯번째 폭탄이 터질 때 동료들도 그를 의심하게 된다. 여섯번째 폭탄이 터질 때까지 과연 누가 진짜 범인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항상 그 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왔지 결코 범인이 아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건이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보면 소설은 완벽한 추리 소설물로 보이는데 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주인공 말로센의 입을 통해 자신의 피 다른 동생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환상을 넘나들고, 동생들 또한 저마다 독특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어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듯하다. 이성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추리물에 상상이 침투함으로써 초반 책을 읽을 때는 다소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 상상의 세계는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설을 이끄는 힘은 말로센의 역할 그 자체다. 말로센이 백화점에서 맡고 있는 품질관리라는 것은 그냥 직책일뿐 실제로 그가 행하는 일은 희생양이다. 자본주의 상품이 갖고 있는 폐해로부터 손해를 입은 고객들이 말로센의 눈물을 보고 그냥 돌아간다. 이 일때문에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거짓 눈물에 속아 고객들은 다 털어버리고 돌아서는 것이다. 욕을 먹는게 일인 직책. 그것은 마치 신령스러운 일을 하는 천사처럼 보인다. 그의 직책이 알려지고 나서 수많은 곳에서 그를 찾는다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의 설정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듯 하여 웃는 얼굴 표정 밑으로 다소 씁쓸한 기분마저 든다. 정작 폭탄사고와 그 처리가 말하고 있는 메시지보다도 더 강렬한 희생양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사회. 희생양을 만드는 사회. 주위를 둘러보라. 혹 누군가가 억울하게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또는 그녀가 희생양인지도 모르고 함부로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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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8-0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보관함에 있는 책인데 강렬한 제목에 비해 희생양의 이야기라니
조금 의외로군요.^^

하루살이 2006-08-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생양이라는 이미지는 제가 소설을 읽고나서 느낀 것이구요, 로드무비님께선 또 다르게 볼 수도 있으니... 초반 조금 갈피를 못잡다가 중반부터 내리 읽게 됐습니다.

파란여우 2006-08-03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합니다. 강렬한 제목에 하루살이님의 절제리뷰에 동합니다.^^

하루살이 2006-08-0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에게도 재미있어야 할텐데...
 
식인귀의 행복을 위하여 말로센 시리즈 1
다니엘 페낙 지음, 김운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6월
품절


세상의 다른 곳에서는, 다시 말해 어디서나, 사람들은 과거 또는 미래를 생각하며 골머리를 썩이고, 뭔가를 기념하거나 세워올리고, 되풀이하거나 증식한다. 하지만 아무도 스스로에게 봉사할 줄 모른다...

336- 쾌락의 약속에는 절대로 투자하지 말 것.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찬란한 미래를 위해 분투하는 다른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시라. -84쪽

그러니 여러 사모님들, 어디 말씀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오십 캐럿짜리 남편들 중 누가 필생의 자격시험을 희생하고, 일 년치의 학업을 내던지고, 일 년간의 낙오를 가수하면서 오로지 사랑과 소설을 택하겠습니까? 어느 남편이요?

245-따지고 보면 내 야망은 하나로 귀결된다. 가족의 수익성을 높이는 것. 나는 헌신하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다. -164쪽

기자들이란 자발적 충동에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자들이오. 결과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지. 우리는 자발성도 교육된다는걸 알잖소.

220- 유일한 법칙은 이것이다 하고싶은 것을 행하라. 왜냐하면 인간은 각기 하나의 별이기 때문이다. -201쪽

넌 고위층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하찮은 놈일 뿐이야. 넌 속단하고 왜곡하고 있어. 적응,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유일한 요법이지. 그들이 쥔 권력의 모든 비밀은 적응이라고. 그 품종은 적응한다.

209- 언어는 나태한 쪽으로 진화한다는 얘기지. 맞아, 맞아, 유감스럽게도.
277- 취향이란 원래 자연법에서 벗어나는 거지요
340- 현실이 늘 환상보다는 참을 만하다는 거야. 설령 그게 더 나빠진 현실이라도!-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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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8-0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죠? 김운비 씨.
글도 좋고 술술 읽힙니다.
 



영화를 보기 전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은 순식간에 해결된다. 영화 도입부부터 괴물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보여주고, 초반부터 괴물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영화를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이단 말인가?

궁금증을 모두 해결한 영화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은 딸을 조카를 손녀를 구하겠다는 가족의 좌충우돌 영웅담이라고 하겠다. <에이리언3>가 꼬마 아이를 구하려던 이야기였던가? 그럼 괴물은 액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걸까? 물론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할수 있다. 특히 프레임의 조작을 통해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을 보면 마치 액션을 넘어 공포물을 찍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할 정도다. 전체 화면을 보여주면 다 알 수 있는 것들을 클로즈업 화면 밖에 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괴물때문에 의자가 들썩이곤했다.  

그럼 괴물은 가족을 구하는 영웅담을 그린 액션물로 정의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에이리언>이나 <고질라>와 다른 점은 없을까? 아마도 웃음이지 않을까 싶다.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카리스마와 함께 영화 곳곳엔 웃음이 깔려있다.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일상임을 느끼게 해준다. 딸의 장례식장에서도 졸음은 쏟아지고, 텔레비젼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사라진 딸에게 자랑하고 싶은 아버지라니... 위선이 없는 모습이 엉뚱함을 드러내 웃음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웃음 이면엔 또 사회의 부조리가 깔려있다.  가짜 소독차가 검문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나, 휴대폰 위치 추적과 관련한 에피소드, 현상금에 눈이 먼 옛 선배, 돈을 받고 팔아치우는 한강주변 하수구 지도 등은 과장된듯 하면서도 절대로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영화는 정말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있는가? 글쎄... 역시,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은 훌륭한 그래픽과 자기를 극복해가는 영웅담으로만 기억될듯 싶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영화 속에 삽입된 조미료이지 않았을까? 뭐, 어찌됐든 그야말로 이것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한 조류로 남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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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0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네요. ^^ 전 주말에 봐야겠어요.. 여러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감독이 말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무척 기대되는 영화에요..^^

하루살이 2006-08-0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를 조금만 낮추고 보세요. 그래야 재미있을것 같은데... 암튼 전 영화보고 나서 생선을 먹는데, 갑자기 젖가락이 잘 가지 않더라구요. 속으로 혼자 웃었죠. 강렬한 이미지의 영화였구나 생각하면서...

로드무비 2006-08-02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를 많이 하지 않고 봤더니 재미있더군요.
조목조목 공감이 가는 리뷰(페이퍼)입니다.
어떻게 즐찾을 하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인사 드릴게요.^^

하루살이 2006-08-0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어떤 인연으로 서로 알게됐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구요. ^^. 그래도 다시만나기를...
 

 호주라는 나라 전체가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적한 시골마을의 노인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자신의 장례식 때 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는군요.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이 때 로드 스튜어트의 sailing 음악이 나오더군요. 참 절묘하다 생각했죠. 그러면서 들은 생각이 그럼, 난 어떤 음악으로 나의 마지막 길을 장식할까 였습니다. 나를 정리하는 음악이라...

딱히 떠오르는 음악이 없더군요. 하지만 김현식이나 김광석의 노래면 괜찮겠다 싶어요. 김현식의 하모니카나 김광석의 통키타 소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먼저 떠나버린 청춘들을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의 깊은 샘으로 침잠할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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