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9편을 모은 책이다. 알짜만을 모았으니 주옥같은 책이라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 물론 일상적인 것에 대한 그의 독창적 시선과 철학적 사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뒤통수를 후려치는 맛이나, 가슴 속을 울려대는 감성으로 인한 책읽기의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가 제시한 예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한국의 거리와 조금은 다르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그가 이야기하는 예술 작품들을 모른다고 해서 큰 불편은 없지만 그래도 가슴 깊숙히 와 닿는데는 장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움직이는 기차안에서 혼자 타고 있거나, 도로변의 주유소나 카페등이 내뿜는 풍경 속에서, 즉 외로움이 묻어나는 환경이 자신을 바라보는, 또는 자아를 찾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엔 충분히 공감한다. 일상적인 공간은 물론 동물원과 같은 곳에서, 또는 공항에서 뜨고 앉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그것의 삶의 경로(진화)나 여행경로를 통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것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는 생각은 무척 재미있다. 한번쯤 나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과연 외로움이라는 감성이 어떤 식으로 변신을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따분함과 외로움 속에서 무난히 유영하던 삶이 점차 그 속에 가라앉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상에 대한 낯선 주파수 들이대기가 유효할지, 혼자놀기의 진수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생각에 동의한다. 특히 일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통렬하다. 행복하기 위한, 또는 가치를 지닌 일이라는게 진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 돈이 있어도 일을 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상식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그리고 과연 일이란 진정 자아완성의 도구인가? 실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할 수도 있다. 정말 당신이 로또라도 당첨되면 일을 할 것인가? 물론 지금 하고있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하는 그 일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지 않을까? 내가 평상시에 또는 평생의 소원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일이라는 것도 실은 경제적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는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닐까? 난, 강렬하게 원한다. 일로부터의 자유를... 하지만 꿈꾸는 일은 있다. 그것이 남들 보기에는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 일은 일이 아니기에 나를 찾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정말 자아완성의 일이란 남들 눈엔 일처럼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들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냥 지나치는 일상적인 것들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그것으로부터 가치의 변환을 시도하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자유롭다.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자아를 향한 진정성은 주위의 작은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부터 이루어짐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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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2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씨의 열렬팬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통씨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요
다만, 예전처럼 열렬한 마음이 좀 가라앉아서^^
신간인가보군요. 근데 일시품절이라는 거참 알라딘은....
우야튼, 보관함에 두고 구입할 때 땡스투 누릅니다.
나를 바라보는 자세. 아, 혼자서도 잘 노는 저는 혼자놀기의 달인입니다.
썩 나쁘진 않던걸요^^

하루살이 2006-08-21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놀기를 십년이 넘게 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져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