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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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기서 개인적이라는 것은 이기적이라거나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으로 인해 소동이 일어날 것이며 그 소동으로부터 개인은 결코 자유로울수 없다는 점에서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무슨 일을 할지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의 표현으로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지는 도대체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결코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나간 사람들에 의해 해꼬지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며, 누군가의 손에 잡혀 집밖으로 휩쓸려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종말의 바보>라는 이 소설은 내일이 아니라 8년 후에 지구가 소행성에 부딪혀 종말을 맞게 된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5년간 살인, 강도, 방화, 자살 등등 혼돈기를 맞이하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해가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아의 방주를 찾아 어디선가 분명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지푸라기라도 잡을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망루를 지어 해일이 어떻게 도시를 삼키는지를 구경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으며, 가족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복수를 꿈꾸는 사람도 있으며, 그저 묵묵히 자신이 해 오던 일을 꿋꿋하게 계속 해 가는 사람들도 있다. 종말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고 나중에 알게 되면서 당황해하는 사람도 있는가하면, 칩거에 들어갔다 세상으로 나온 소녀, 자살을 꿈꾸는 자 등 다양한 인생군상이 시선을 끈다.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이야, "어떻게든 살아" "처절하게 치열하게 살아"라고 간단히 말할 수도 있다. 아니, 맨 처음 스피노자의 구절처럼 당장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자세로 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갖는 힘은 단순히 그런 메시지의 전달이 아니라 그 메시지에 수긍하도록 만든다는데 있다. 개인적으로 8가지 이야기 중 가장 기억하고 싶은 것은 '강철의 킥복서'다.

"나에바, 내일 죽을 거라는 말을 들으면 어쩔 거야?" 배우가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했다. "다르지 않겠죠." 나에바 씨의 대답은 냉담했다. "다르지 않다니, 어쩔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로킥과 레프트 훅밖에 없으니까요" 배우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고 한다. "그건 연습 얘기잖아. 아니, 내일 죽는데 그런 걸 한다고?" "내일 죽는다고 삶의 방식이 바뀝니까?" 글자들이라서 상상할수밖에 없지만 나에바 씨의 말투는 정중했을 게 틀림없다. "지금 당신 삶의 방식은 얼마나 살 생각으로 선택한 방식입니까?"(210쪽)

"할 수 있는 걸 하는 수밖에 없으니까요"(211쪽)

내가 언제 죽을 지를 안다면 삶의 방식이 바뀔까? 흔히들 말하는 예상 수명이라는 것이 있다. 그 예상 수명에 맞추어 지금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아마도 죽음은 일상 속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죽음은 나의 삶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아니 죽음 그 자체를 생각조차 않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암과 같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자살하면 안 되는 이유 따위, 내가 알게 뭐냐, 멍청아! 아무튼, 절대, 죽으면 안 되는 거야. 이 녀석아, 쭈뼛쭈뼛 인생의 산을 올라와서는, 힘들고 무섭고 피곤하니 처음 왔던 길로 슬슬 돌아가볼까, 할 수는 없는거야" "난, 오를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니까요" "대체 뭐냐, 넌? 난, 지금 올라가서 어떻게 하자, 따위를 말하는게 아냐. 오를 수 있을 때까지 오르라고 명령하는 거야. 그리고 말이다, 아나 다 올라가면 말이다, 정상에서의 경치는 틀림없이 각별할 거야"(316쪽)

경치가 각별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모른다. 시지푸스가 끊임없이 산을 오르고 또 오르듯이 살아간다는 것이 그런 일일지도 모른다. 경치를 구경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손을 놓아버리면 시지푸스는 바위에 깔려 죽을 것이다.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살아가는 건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는 소설 속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 아니 후회없이라는 말을 지워도 괜찮다.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일일지도 모른다. <종말의 바보>는 살아간다는 것의 위대함을 말해주는듯 하다. 이 소설은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한다. 강철의 킥복서가 오늘도 무수한 발차기 연습을 하듯이. 소설의 끝장을 덮으면 아릿한 심정과 함께 삶에 대한 애착이 무한정 솟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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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24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운 잔잔한 작품이었습니다.

하루살이 2006-09-25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전출처 : stella.K > ‘화성 남자…’ 저자 존 그레이 VS. 배유정 이대교수

 

[조선 인터뷰] ˝남편이여, 하루 20분씩 아내말을 들

어라˝

‘화성 남자…’ 저자 존 그레이 VS. 배유정 이대교수
˝남편을 너무 몰아붙이는 건 심장에 총질하는 것과 같아˝

도대체 남자와 여자는 왜 끊임없이 싸울까. “당신과 결혼하지 못하면 죽어도 좋아!” 외치던 열정은 어디로 가고 서로 티격태격하게 될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이 질문에 대해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던 중 1992년 미국에서 출간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남자와 여자는 ‘인종’이 다른 것도 아니고, 아예 출신 행성이 다르다니? 싸우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놀라운 건 이 도깨비 같은 책이 이후 4천만 부나 팔렸다는 사실이다.

그 저자 존 그레이(55)가 한국에 왔다. 21일 서울 코엑스, 2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그의 특별 강연에는 2000여명이 몰려와 성황을 이뤘다. 연극배우이자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인 배유정(42)씨가 그레이 박사를 만났다. 배 교수는 “일과 연애문제로 머리가 지끈지끈했던 30대 중반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읽고 맛본 쾌감이 아직 생생하다”고 말했다.

▲ 21일 서울에 온 존 그레이 박사가 배유정 교수와 인터뷰하고 있다. 배 교수가 “남자들은 왜 그렇게 게으른가?”라고 묻자 박사는“여자를 위해 요리를 하고 그녀의 말을 잠시 들어주는 작은 노력들이 얼마나 큰 효과를 불러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허영한기자 younghan@chosun.com
▲배유정(이하 배)=‘화성에서 온 남자…’는 지난 10여년 한국의 20·30대 여성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의 최초 아이디어는 어디서 왔나.

▲존 그레이(이하 존)=1980년대만해도 부부관계 상담의 전제는 ‘남녀가 동등하다’는 것이었다. ‘남녀가 다르다’고 하면 차별주의자로 오해받았다. 그런데 정작 해결되는 문제는 많지 않았다. 나는 ‘남녀는 다르다’는 전제로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제를 안고 살던 수많은 커플이 사랑을 되찾았다. 남녀의 권리는 동등하지만, 생리적 차이와 행동 양식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배=당신이 말하는 ‘남녀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해달라.

▲존=함께 영화를 본 뒤 여자가 “정말 좋았어”라고 말하면 남자는 마치 자신이 감독이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내가 이 여자를 행복하게 했다’는 성취감 때문이다. 반면 출장에서 돌아온 남자가 “아, 이번 출장 정말 좋았어”라고 말하면 여자는 자기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혼자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결코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꽃 한 다발을 주는 것보다 한 송이씩 매일 주는 것이다. 반대로 여자는 남자를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돈이 다인 줄 알아? 나한테는 관심도 없지”라는 말은 남자의 심장에 총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배=현재 한국의 이혼율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젊은 여성들은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아이 낳아봤자 여자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존=여성들이 부부관계에 불만을 갖게 되는 큰 요인 중 하나가 남편이 가사 분담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묻고 싶다. 만일 남편이 설거지도 해주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청소까지 해주면 과연 당신은 행복해질 것 같은가?

▲배=당연하다.

▲존=스웨덴 남자들은 세계에서 집안일과 육아를 가장 열심히 하는 남자들이다. 그런데 스웨덴의 이혼율도 최고 수준이다. 왜? 남자의 가사 분담이 여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법은 로맨스다. 여성은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아야만 여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그것이 스트레스를 완전히 풀어준다.

▲배=여자가 사랑에 목숨 거는 존재란 말인가?

▲존=최근 남녀 간의 생리적 차이를 조사한 연구가 나왔다. 남성의 스트레스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돼야 낮아진다. 이 호르몬은 뭔가를 성취했을 때 분비된다. 여성의 스트레스 해소제는 옥시토신인데, 이건 성취감이 아니라 로맨스를 느낄 때 분비된다. 여성들이 멜로 드라마를 넋 놓고 바라보는 풍경을 어느 나라 안방에서든 볼 수 있지 않은가.

▲배=남자는 낭만적인 분위기만 열심히 만들면 여자를 실컷 부려먹을 수 있겠다.

▲존=나는 남자들에게 일주일에 하루를 ‘로맨스의 날’로 정해서 그날만은 아내를 결혼 전 연애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라고 충고한다. 그러면 아내들의 잔소리가 멈추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콧노래가 흘러나오게 만들 수 있다.

▲배=여자들이 그렇게 순진무구하지만은 않다.

▲존=물론 남자가 더 노력해야 한다. 로맨스의 비결은 ‘마법의 20분’이다. 신은 남자에게 100단어를 내렸지만, 여자에게는 수천 단어를 내렸다. 남녀의 대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단 20분만 대화하라. 마법이 일어날 것이다.

▲배=당신의 부부생활이 궁금하다.

▲존=완전하진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부생활이 왕성한 연인이자 친구다.

▲배=한국의 몇몇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부부관계가 전혀 없이 부부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커플들이 상당수다.

▲존=1주일에 적어도 3번은 해야 하는데(웃음)? 섹스리스 커플은 섹스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무드가 생겨도 표현하지 않고, 그게 오해를 부르는 거다. 그럴 땐 양초·편지 같은‘사랑의 상징물’을 활용해라. 말의 위험성을 최소화하면서 열정의 불을 붙여준다.

▲배=우리는 학교에서는 이런 남녀관계를 배우지 못한다. 실전에 돌입, 싸우고 부닥치다가 패잔병이 되기 십상이다. 당신은 세 딸들을 어떻게 교육시켰는가.

▲존=남녀관계는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다. 자녀를 위해 아름다운 남녀관계가 무엇인지 보여주려면 스스로 배우자를 존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보다 쉽고 이상적인 방법이 또 있겠는가.



존 그레이는 누구

아내, 세 명의 딸을 포함해 4명의 ‘금성인’과 함께 살고 있는 ‘화성인’이다. 고교 시절 선(禪)과 명상, 요가에 심취했던 그는 미국 컬럼비아 퍼시픽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6년째 남녀관계를 상담하고 있다. 그를 세계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발돋움시킨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1992년 출간)는 150여개 국에서 팔리며 남녀관계서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화성·금성 카운슬링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을 돌며 대중 강연을 하고 있다.

정리=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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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6-09-2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를 인식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 그런데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면? 화성인이 금성을 정복하려 한다거나 금성인이 화성을 정복하려 한다면?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배유정의 질문이 날카롭군요. 아무래도 경험치에서 나온 예리함이 아닐까요. 핵심을 향해 질문하는 것.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플리커 스타일 - 카가미 키미히코에게 어울리는 살인
사토 유야 지음, 주진언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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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미스터리계 상인 메피스토 상을 수상했다는 문구보다도 가족 유괴 살인 오컬트 강간 감금 등의 말이 뇌리에 깊이 박히는 자극적인 소설이다. 그리고 정말 자극적인, 그것도 형이하학적(?) 자극이 가득한 책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꽤나 형이상학적(?)이다.

여동생이 납치 강간을 당한 후 자살을 하게된다. 평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상한 가족의 피를 경멸하며, 누나의 장례식 등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주인공은 느닷없이 찾아온 한 인물로 인해 엉뚱한 복수극을 꾸민다. 여동생을 강간한 중년 남자들의 딸과 손녀를 납치해 감금시킨다는 것.

소설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줄기는 나이프 잭이라는 연쇄살인범이다. 소녀들만을 대상으로 목에 나이프를 찔러 죽이는 살인범. 하지만 그 피살자들의 얼굴은 공포로 떨고 있거나 도망치려하지 않고, 오히려 평온한 모습이다. 이 연쇄살인범의 범죄행각은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의 눈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는 초현실적 양태를 띤다.

소설의 두 줄기는 따로 진행되다가 결론 부분에 이르러 하나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일본의 전설 또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또는 그것을 소재로 한 소설은 오컬트적이기 보다는 편협함으로 가득차 있는듯 여겨진다. 하지만 또한 굉장히 솔직한 고백들로 가득차 있기도 하다.

감정이니 인격이니 하는 것들이 인간을 얽어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것은 쉽게 다시 쓸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이 일반적으로 바보라 불리는 종족. 인격을 쉽게 한가지로 뭉뚱그리려 하기 때문에 남의 입장이 보이지 않는다. (92~93쪽)

하지만, 인생을 의미나 부가가치로 장식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뭐, 환상을 부정하는 것은 고양이를 죽이는 것보다 쉽지만, 쉽다고 해서 부정하기만 하는 것도 또 넌센스니까.(108쪽)

누군가가 누군가를 무의식중에 상처 주고 상처받는 것이 이 현상세계라는 것. 그것은 자명한 이치다.(164쪽)

토도 유미에도 미쿠니 아키코도 형도 왜 이렇게까지 의미에 집착하는 걸까? 그 집착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의미가 있는 것 자체가 필연인 것인가... 아니, 속지않아. 난 속지 않을거야. 속을 수 없어.(207쪽)

인생이 의미를 가져야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도덕이자, 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고정관념화 되어 오히려 당사자를 얽어맬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을까. 정말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의미를 찾는 과정마저도 삶의 엄청난 무게가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치장하거나 일관된 척 하는 위선에서 벗어난다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나도 누나도 케토인도, 자기 중심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아니, 따지고 보면, 어떤 살인 동기도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비록 그것에 어떤 명분이나 사명이 있다 해도 개인의 사고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돈을 위해, 종교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유를 위해, 세계를 위해... 뭐라고 하든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376쪽)

소설을 읽으며 가장 동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요 소재인 살인에 대한 단상이 이토록 강렬할 수는 없다. 어떤 명분으로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ㅇㅇㅇ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그러나 소설의 강렬함은 순정에 대한 집착, 예지 능력과 같은 초현실적 세계에 대한 동경, 나나 우리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배타적 또는 공격적 성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소설이 이런 것들에 대한 거부를 말하고 싶었다고 애써 생각하며, 이런 전제들에 대해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보다는 한번쯤 그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할듯 싶다. 인생이 의미를 꼭 가져야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소설의 전제가 되는 소재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타인에게 어떤 폐해를 끼칠 수 있는 정신적 무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때론 책의 의미를 뒤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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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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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은지 열흘도 넘은 것 같다. 줄거리조차도 가물가물하다. 그럼에도 리뷰를 쓰겠다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건 왠지 어떻게 해서든 책을 읽었던 당시의 기분을 다시 기억하고픈 욕망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욕망이 부질없음을 나는 잘 안다. 떠오르려 떠오르려 해도 끝내 떠오르지 않을 단상들.

소설을 쓴 지은이가 나와 동년배이다보니 아무래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여성이라 심리묘사에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무래도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성적 차이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는가보다. 남녀를 따지지 않고 소설 속 주인공들이 쉽게 동화가 된다.

최근 한겨례21이라는 주간지에서 <서른 다섯, 물음표 위에 서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와 맥락이 같다고 보여진다. 결혼을 해야 할 것인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 일을 추진할 것인지, 노후는 어떻게 될 것인지, 돈을 번다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사이에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사이에서 심하게 갈팡질팡 하는 세대. 물론 20대 중후반을 포함해 40대 들도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겠지만, 어쨌든 동년배의 작가가 기술하는 인물들은 내 주위에서 누군가를 하나 데려다놓고 글로 묘사해놓으면 얼추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가 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청춘(?)들의 삶을 투명하게 내비치고 있다. 기억나지 않는 소설을 떠오르려 애쓰기 보단 밑줄 그은 부분을 되돌아보며 소설을 반추해보기로 한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그렇게 말한 시인은 최승자다.(13쪽)

문자메시지는 참 고마운 도구다. 전화 통화의 어색한 침묵과 말줄임표의 곤혹을 감당하기 싫을때 더없이 유용하다.(21쪽)

모든 고백은 이기적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할 때, 그에게 진심을 알리고 싶다는 갈망보다 제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클지도 모른다.(106쪽)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 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140쪽)

혓바닥을 놀려 진심의 조각을 입 밖으로 밀어내는 순간. 진심은 진심이 아닌 것으로 변한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다만 의외의 곳에서 그 책임 없는 말들의 유령과 조우했을 때 받게 되는 고약한 느낌에 대하여 더듬더듬 기억할 수 있을 따름이다. (204쪽)

어떤 순간,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섭도록 이기적일뿐더러 자기가 이기적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215쪽)

뭘 하더라도 상처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럴 수 있겠니?(286쪽)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확고부동한 線이라는 것이 있다. 선을 밟는 행위는 반칙이다. 선을 밟거나 선을 넘다가 걸리면 찍 소리도 못하고 금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가야 한다. 그런데 때론 정말 궁금하다. 그것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404쪽)

예측 불가능한 인생을 사는 것은, 오로지 나뿐인가.

길들은 여러 갈래로 뻗어 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다. (441쪽)

음 밑줄 그은 것들을 죽 연결하다보니 책의 내용이 얼핏 생각난다. 인생을 소모하는 듯한 느낌. 부유하는 듯한 삶. 닻이 되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고 생각하는 순간 이건 거짓이라는 생각. 아무튼 분명 나도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타지 않도록 졸지 말아야 하겠다. 내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내가 올라탄 버스가 그 목적지로 가는지도 알 수 없겠지만, 무턱대고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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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9-10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책 읽고 후딱 써야지 한참있다가는 리뷰 못 올려요.
일단 올리고 나면 다시 읽지도 말아야하죠. 아유, 머리 아퍼지거든요^^
어쨌거나 버스는 이왕 탔습니다. 잘못 된 길로 가면 언능 내려서 바꿔 타야죠
그렇게 몇 번은 가는 길. 나중에는 목적지에 도달할 즈음이면 졸고 있겠죠?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저도 이 작가의 글은 감칠맛 나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하루살이 2006-09-1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아탈 시기가 왔다는 것은 아는데, 내려서기는 커녕 벨을 누르는 것조차 주저하고 있으니... 음, 차비가 다 떨어진건가? 호주머니를 들쳐보니 그래도 차비 정도는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렇죠? 언제, 호주머니에 깊이 박아둔 손을 꺼내 버스의 벨을 누르게 될지. 멈춰서서 새로운 길로 떠날지, 또는 누군가와 함께 동행할 수 있을지 궁금할 뿐입니다.

2006-09-10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6-09-1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실 필요까진 없는데...
혹시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추워서 떠시는건 아닌가요?^^
어차피 인생은 혼자서 걸어가는 길 아니었던가요ㅠㅠ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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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연금술사의 원형이라고 보여진다. 천 년 동안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걸었던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며,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을 적고 있다. 그 과정이 연금술사의 양치기 소년으로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작가는 처음엔 어떤 비범한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종교집단에서 수행을 한듯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에서 비참하게 깨진다. 바로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그래서 떠나게 되는 순례의 길. 자신을 인도할  안내자와 우여곡절끝에 만나고, 목적지를 향해 길을 떠난다. 중간중간 람의 수행법인 씨앗훈련이나 사자의 의식, 호흡법 등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 이 수행법들은 명상법과 닮아 있다. 일상적인 것 하나하나에 또렷이 정신을 집중할 때 얻어지는 것들. 바로 일상의 명상. 소리나 색, 움직임, 이름 등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찬찬히 들여다볼때 얻어지는 색다름은 그것의 진짜 본성을 찾을 수 있게 만든다. 다소 영적인 장면이 나와, 이성적 판단으로 볼때 주저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개개인의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다.

아무튼 그가 순례의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비범함을 벗어난  평범함 속에서 새로운 도전의 길이 열려있다는 것. 그리고 머물러 있지 말고 끝없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때만이 행복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배가 항구에 있는 것만큼 안전한 곳은 없지만, 절대 목적지에 도달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성장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 날마다 꿈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또한 순례의 길에서 얻은 것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비범한 능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고, 모험을 즐기고자 할때 행복은 성큼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길을 떠나자.고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아니, 최면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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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28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코엘료...
저에게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작가중의 한 명이지요.
오 자히르! 읽고서 맥이 빠진 후 코엘료에게 등을 보였습니다.
뭐, 이건 취향의 문제라 다른 분들은 코엘료를 겁나게 좋아하기도 하더군요.
근데 제목인 '순례자'가 제 마음을 흔듭니다.
제가 마음 약해지는 단어중 하나잖아요. 길....무수히 많은 내 속의 길....
하루살이님은 처마밑의 가로등 불빛 있는 길을 주로 따라 다니시고
여우는 한적한 딸기덩쿨길을 주로 다닌답니다.
가을인데, 예쁜 길 안내 리본이 또롱또롱 매달린 산에 또 가시겠죠?

하루살이 2006-08-29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 리본을 못찾아 헤매기도 한답니다. ^^
그러고 보니 산에서 길을 잃어도 또 산에 찾아가듯 인생의 길에서도 용기를 내어야 할 것 같아요. 딸기덩쿨 사이로 여우를 볼 날도 있겠죠...